대한민국 게임업계가 2019년 시작과 함께 술렁이고 있습니다.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회장이 넥슨의 지주회사 NXC를 매물로 내놓았다는 소식 때문인데요. 사실상 시가총액만 13조원이 넘어가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회사 넥슨(NEXON)이 매물로 나온 것이기에 업계 전체가 충격에 빠져 있으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김정주 회장이 NXC를 매물로 내놨는 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넥슨 또한 공식적으로는 “상황 파악중” 이라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제로 김정주 회장이 NXC를 매물로 내놨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지난 10여 년 간의 활동을 보면, 일본 상장 이후 엄청나게 성장한 회사와는 별개로, ‘개인’이 야심차게 추진한 것은 실패가 많았고, 최근에는 구속 직전까지 몰리는 시련까지 겪었습니다. 충분히 개인적으로는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탈출’을 꿈꿔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김정주 NXC 대표이사
# 장면 1. 손까지 다 들어온 대어를 놓치다.
김정주 회장은 ‘세계적인 회사’로의 발돋음에 꿈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미국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경영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 입장에서 봤을 때는 '변방의 작은 국가'인 한국 게임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소위 '메이저'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2010년 초반에 하나의 승부수를 던집니다. 바로 세계적인 게임회사이자 수많은 흥행 IP를 보유하고 있는 EA의 인수였습니다. 실제로 김정주 회장은 넥슨의 일본 상장으로 확보한 현금에 더해, 오랜 지기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까지 끌어들여서 EA의 인수를 의욕적으로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2012년에는 엔씨소프트의 지분 14.8%를 확보하게 됩니다)
2012년, EA는 계속된 실패로 시가총액이 4조원까지 떨어지면서 실제로 매각 움직임이 있었다. 김정주 회장의 도전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제 가능성이 있었던 것. (현재 NXC의 매각액으로 거론되는 액수가 10조 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2년 넥슨의 EA 인수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것도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인수가 막판에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주 회장 개인의 입장에서는 손까지 다 들어온 대어를 놓친, 쓰디쓴 실패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매입한 것은 훗날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바로 2015년 벌어진 넥슨과 엔씨소프트 경영 분쟁입니다.
# 장면 2. 엔씨소프트와의 갈등. 1+1이 항상 2는 아니다.
넥슨은 EA 인수를 추진하며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확보했고, 겸사겸사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양사의 협업을 시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야심 차게 진행한 것이 바로 넥슨의 대표 개발 스튜디오인 데브캣 스튜디오가 엔씨소프트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다고 밝힌 <마비노기 2> 였죠.
하지만 <마비노기 2>를 포함한 엔씨소프트와의 모든 협업은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모두 다 실패로 끝났습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넥슨'과 '엔씨소프트'라는 전혀 다른 DNA가 수월하게 융합되기는 것은 무리였다는 반응이 많았는데요. 그리고 괜히 긁어 부스럼이라고, 양사는 이 과정에서 상처만 입고, 갈등까지 불거지게 됩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마비노기 2> 같은 협업 프로젝트들을 다수 공개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1년도 되지 않아 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2015년 초, 넥슨이 갑자기 ‘엔씨소프트의 경영에 참여한다’고 선언하면서 양사의 갈등은 표면화됩니다. 이에 반발한 엔씨소프트는 3자인 넷마블까지 끌어 들이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이전투구 직전까지 치달았습니다.
결국 2015년 10월, 넥슨이 확보했던 엔씨소프트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서 두 회사의 갈등은 간신히 봉합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최초에 엔씨소프트 지분 매입을 결정한 김정주 회장 입장에서는, 이 과정 자체가 크나 큰 아픔이 되었을 것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좌)와 김정주 회장(우)은 서울대학교 선후배사이로 오랜 지기이기도 하다.
# 장면 3. 구속 직전까지 몰린 ‘공짜 주식’ 논란
그리고 지난 2016년, 김정주 회장 개인에 있어서는 가장 큰 시련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터지고 맙니다. 바로 친구이기도 한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의 주식을 뇌물로 제공했다는 ‘공짜 주식’ 논란이 터진 것이죠. 이 일로 인해 김정주 회장은 2년 여간 법정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크나큰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인해 넥슨의 등기 이사직에서도 사임해야만 했습니다.
대법원에서 4년 형을 선고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왼쪽)과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정주 회장(오른쪽)
결과적으로 김정주 회장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비난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상당히 심신이 지쳤겠죠.
김정주 회장은 무죄 판결 직후에 밝힌 입장문에서 “재산 1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2세 경영권 승계도 금지할 것”이라며, 지방 자치단체와 협력해서 '어린이 재활병원'을 전국 주요 권역에 설립하는 등 사회적 공헌 활동을 하겠다고 밝혀야만 했습니다.
# 김정주 회장의 '탈출'이 업계에 미칠 파장은?
다시 말하지만 김정주 회장의 NXC 매각설은 아직은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짚은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김정주 회장 ‘개인’은 여러 의미로 현재 많이 지쳐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NXC의 매각이 실제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NXC 매각 시도는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현재 NXC의 매각 추정치는 10조원이 넘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게임사보다는 해외 게임사의 인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데요. 특히 <던전앤파이터>에 매년 수 천 억 원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텐센트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힙니다.
넥슨은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픈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게임사입니다. 굳이 텐센트가 아니라고 해도 중국이나 다른 해외 업체의 손에 이와 같은 넥슨이 매각된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사가 해외에 넘어갔다"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떠한 후폭풍으로 업계에 몰아칠지는 너무 쉽게 예측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은 아마 고스란히 김정주 회장 개인을 향할 것이라는 것도 손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NXC는 김정주 회장 및 그의 부인 등 관계자가 소유한 지분이 98%가 넘어가는 사실상 '김정주 개인 회사' 입니다. 그가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자유가. 과연 대한민국 게임업계, 그리고 1994년 창업 이래 그가 25년간 열정을 다바친 넥슨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김정주 회장은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만 할 것입니다.
2014년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지속적인 신작의 개발로 유저들의 사랑을 받겠다"고 발언하고 있는 김정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