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전통문화 콘텐츠를 소재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재미와 흥미를 위해 윤색되는 편이었다. 그것을 두려워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전통문화를 게임에 담아야 할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디스이즈게임 김규현 기자
그치지 않는 눈보라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살기 어려워지자,
소녀 '누나'는 북극 여우의 도움을 받아 눈보라의 원인을 찾아 떠난다.
험난한 극지 모험을 다룬 플랫포머 어드벤처 게임,
네버 얼론
북극 현지인들의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 게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알래스카 북단에서 약 3,000년간 생활 하던 이누피아트 족은
척박한 빙하지대에서 주요 식량인 고래, 바다표범 등을 사냥해 배분하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매우 오랜 세월, 자신이 속한 환경의 지혜를 터득하고 이를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던 이들은
현대문명을 만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지구온난화와 서구식 생활 문화는 부족민의 생활방식과 유대를 위협했다.
그 결과 이누피아트 족의 문화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어려서부터 현대 문명을 접한 젊은 세대에게
나이든 세대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문화를 전수하기 어려워졌다.
"그럼 게임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글로리아 오닐, 쿡 후미 부족 회의 CITC 회장)
2012년 어느날, 원주민 비영리 단체에서 문화단절을 막을 획기적인 발상이 나온다.
곧바로 많은 우려와 고민이 따랐다.
게임이란 매체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다른 작품들처럼 외부의 시선으로 원주민을 그려내는 것을 우려했다.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현장에서 이야기에 개입하죠."(에이미 프레딘, CITC 부회장 겸 대변인)
하지만 게임이 가진 장점을 놓칠 수 없었기에
이사회는 신문물로 전통을 지킨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연을 접한 경력 개발자들이 참여하면서 마침내 게임 제작이 시작되었다.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현지인들과 게임 개발자들은 개발 방향부터 새롭게 잡았다.
게임은 현지인들의 문화와 가치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재미를 잃지 않아야 했다.
개발팀은 직접 이누피아트 족 근거지인 알래스카 북동쪽 지역을 방문하였고
원주민 단체가 소개한 다양한 연령과 직업에 종사하는 이누피아트 족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지인 중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자신의 문화 안에서 인상적인 게임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굉장한 게임 아이디어지만, 현지인에게 맞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현지인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도전적인 대안을 내놓곤 했습니다."
(션 베스, 어퍼 원 게임즈 수석 개발자)
기존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게임의 디자인 요소 대부분에 대해
계속 토론하고 공유하며 만든 현지인과 개발자들
그리고 상호 존중과 신뢰 속에서 탄생한 결과물들
구전 설화 쿠누크사유카를 바탕으로 하여
이누피아트 족의 조언과 지도로 탄생한 주인공 '누나'(이누피아트 어로 '땅, 대지'라는 뜻)
그리고 상호공존을 중시하는 이누피아트 족의 가치를 토대로 만든
누나와 북극 여우의 협동 게임플레이
만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이누피아트 족에서 나온 개성 있는 캐릭터들
여기에 캐릭터 움직임에 맞춰 나오는 해설은
현지인의 이누피아트 어로 소개하며
게임 중간마다 획득한 정보를 통해 이누피아트의 문화와 역사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부족문화를 지켜내고 기억되게 하려는 목표로 개발된 네버 얼론은
2014년 콘솔과 PC 출시 이후, 300만 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부족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이누피아트 족을 기억시킨다.
2016년 6월, 네버 얼론은 애플과 안드로이드 버전이 각각 출시되었으며
현재는 지역 학교에서 이누피아트 학생들을 위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네버얼론은) 우리에 대한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한 게임입니다.”
(에이미 프레딘 CITC 부회장, 대변인)
현대문화인 게임이 이렇듯 전통에 대해 깊이 있는 조화에서 탄생할 때,
전통은 결코 외로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