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피직스’(PhysX) 엔진은 인텔의 하복(Havoc) 엔진과 더불어 게임업계의 대표적인 물리 엔진으로 손꼽힙니다. 본래 PC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에서만 많이 주목하던 기술이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피직스 엔진을 만드는 엔비디아 본사에 한국인 엔지니어가 맹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바로 엔비디아 피직스 팀의 김태용 엔지니어가 그 주인공인데요. 디스이즈게임은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게임과 물리엔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물리효과와 물리엔진에 대해] 게임의 ‘물리 효과’란 쉽게 이야기해서 게임 속 사물의 움직임을 마치 현실처럼 재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돌이 굴러가는’ 간단한 장면부터 ‘머리카락/천이 바람에 휘날리는 장면’, ‘폭발로 사물이 파괴되는 장면’ 등을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현실감 넘치게 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물리 효과를 게임 속에서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개발도구가 바로 ‘물리엔진’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명 물리엔진으로는 엔비디아의 피직스와 인텔의 하복을 꼽을 수 있으며, 특히 피직스는 에픽게임스의 언리얼 엔진 3에 사실상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온라인 게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엔비디아 피직스팀 김태용 엔지니어
[김태용 엔지니어 약력]
*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학사
* 미국 써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석사 / 박사
* 2003 - 2010: 미국 리듬 앤 휴 스튜디오
* 2010 - 현재: 엔비디아 본사 PhysX팀 근무 중
헐리우드에서 엔비디아까지… |
이력을 보면 게임이 아닌, 영화 쪽에서 일을 시작한 것 같다. 맞다. 본래는 미국의 리듬 앤 휴 스튜디오(Rhythm and Hues Studios)에서 헐리웃 영화의 특수효과 제작에 사용되는 물리관련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한 직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게임업계에서도 물리효과가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또 엔비디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합류하게 되었다.
엔비디아에 다른 한국인 엔지니어는 없는가? 엔비디아는 현재 피직스 외에도 그래픽 카드(GPU)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일단 피직스 팀에는 한국인이 나 하나밖에 없지만 GPU 쪽에서는 제법 많은 한국인 엔지니어와 관련 직원들이 있다.
참고로 현재 내가 속한 엔비디아의 피직스 팀은 소프트웨어 개발툴 개발자를 포함해 관련 서포트 팀까지 모두 합쳐 약 50여 명의 인원이 소속돼 있다.
물리효과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인데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 사실 나 역시 처음에는 영화의 CG나 특수효과를 하려고 했지, 물리효과를 할 생각은 없었다. (웃음) 하지만 마침 내가 일을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은 영화업계에서도 물리효과를 이용한 특수효과가 많이 주목을 받던 때였다.
일례로 이전에는 영화에서도 CG 애니메이션으로 ‘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물리효과를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입사하던 시기에 마침 물이나 사람 머리카락 등 여러 사물의 특수효과에 사용되는 물리효과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쪽 분야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게임 역시 과거에는 물리효과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게임은 과거의 영화를 따라가는 것 같다고도 볼 수 있다.
김태용 엔지니어가 참여한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한 장면. 그는 이 영화에서 사자의 털과 헤어 등의 특수효과에 참여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물리효과, 활용 가능성 무궁무진하다. |
게임과 영화의 물리효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실 기본적인 알고리즘은 영화나 게임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장면(Scene)을 만든다고 하면 밤을 새서라도 한 번 만들면 그만인 반면, 게임은 플레이어의 PC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표현해내야 하기에 하드웨어적 제약이 심한 편이다.
그만큼 ‘속도’가 중요하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물리효과의 수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편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게임의 물리효과가 영화에 비해 약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보는 것 같다. 맞다. 하지만 단순하게 발전속도만 놓고 보면, 지금은 게임이 영화보다 훨씬 빠르다. 아무래도 게임업계는 그래픽 카드와 CPU 등 하드웨어의 발전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게임의 물리효과가 영화에 비해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봤는데, 최근에는 한 5년까지는 따라온 것 같다.
또 전반적으로 보면 게임의 물리효과가 영화에 비해 발전 가능성도 더 높다. 영화는 사실 물리효과를 이용해 CG를 만들어도 관람객 입장에서는 ‘보는 것’이 전부다. 반면, 게임은 유저가 게임 속에서 직접 물리효과를 이용한 특수효과를 이용해 게임을 ‘즐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게임 쪽의 물리효과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리효과를 잘 활용한 게임으로 유명한 <배트맨 아캄시티>
물리효과가 적용된 게임 속에서 게이머들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가? 개발자가 물리효과를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한 방식의 게임이 나올 수 있지만, 대표적인 것만 하나 꼽자면 ‘현실과 같은’ 자유도와 비주얼이다.
가령 물리효과가 적용되지 않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오직 개발자가 미리 만들어 놓은 패턴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총으로 벽을 파괴할 수 있다고 해도 물리효과가 적용되어있지 않다면, 오직 개발자가 미리 만들어 놓은 패턴으로 파괴될 뿐이다.
하지만 물리효과가 적용된다면 플레이어가 총을 쏘는 방향, 총의 위력, 게임 내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파괴된다. 이런 물리효과를 이용하면 게임 내에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물리효과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PC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은 유저와 유저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어떻게 보면 다른 플랫폼에 비해 더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온라인 게임은 콘솔 게임에 비해 PC 하드웨어의 ‘사양’이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 3~4년 후, 지금보다 PC의 사양이 더욱 더 높아진다면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물리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게임 속 물리효과의 화두는 "배경" |
최근 게임 물리효과에서 가장 ‘핫이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역시나 ‘폭파연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최근에는 단순한 폭파라고 해도 물리효과를 이용해, 주변 환경에 따라 보다 현실적인 파괴연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좀 가까운 미래의 화두라고 한다면, 연기나 불, 구름 같은 배경 쪽 물리효과일 것이다. 배경의 물리효과는 최근의 영화에서는 굉장히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는 것이지만, 정작 게임에서는 그렇게 많이 논의되지 않았기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아마 조만간 멀지 않은 미래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엔비디아는 최근 피직스 3.0을 선보였다. 그렇다. 이번 피직스 3.0은 기존에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을 많이 개선해 개발자들이 보다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특히 코드 자체가 기존 엔진에 비해 깔끔해지고, 속도도 빨라진 게 특징이다.
피직스 물리엔진은 처음 세상에 선보여진 지 10년 가까이 된다. 그런데 기본 코드는 그 동안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번 피직스 3.0은 그에 대한 아쉬움을 확실하게 개선했으며, 또 멀티 쓰레딩 처리 능력도 좋아졌다. 아마 피직스 3.0을 이용한 게임은 2012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여질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를 이용한 게임이 나오면 게이머들 역시 이전에 비해 더 나은 물리효과를 게임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 피직스 3.0 기술데모 영상
마지막으로 엔비디아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이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에서 해왔던 모든 노하우를 게임에서도 녹여내는 것이 1차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산업은 영화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전체를 이끄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내가 만드는 기술이 게임, 나아가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는 것. 그럴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자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