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물리엔진 미들웨어를 만드는 하복이 비전엔진 개발사 트리니지를 인수했다. 당시 두 회사의 합병은 하복이라는 물리엔진을 기본으로 한 게임엔진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본다면 하복이 트리니지를 안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비전엔진이 하복이라는 새로운 심장을 달고 파워업한 셈이다. 미들웨어 하복은 하복비전 엔진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하복비전 엔진은 오는 5월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올해 GDC 2012를 통해 일부 선보이긴 했지만, 새로운 렌더링과 인공지능(AI) 등 AAA급 게임 개발용 엔진으로 자리 잡는 게 하복의 전략이다.
디스이즈게임은 최근 한국에 온 하복의 펠릭스 로켄(Felix Roeken) 부사장을 만나 하복비전 엔진에 탑재될 새로운 기능을 알아보았다. 인터뷰에 앞서, 펠릭스 로켄 부사장은 하복의 새로운 데모 영상을 보여주며 신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하복의 펠릭스 로켄 부사장.
■ “하복비전 엔진, 신기술로 거듭난다”
TIG> 인터뷰에 앞서 하복비전 엔진의 신기술을 선보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펠릭스 로켄: 이번에 선보일 기술 중 하나가 하복 애니메이션(Havok Animation)이다. 이전에는 캐릭터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애니메이터가 세부 동작을 일일이 하나씩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하복 애니메이션 기술을 적용하면 아주 간단해진다.
정확히 12개의 기본적인 애니메이션만 만들면 중간 단계는 엔진 연산을 통해 자연스러운 동작이 가능하도록 실시간으로 처리해 준다. 천천히 걷다가 뛰기도 하고, 방향을 전환할 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등 움직임에 대한 과정을 엔진에서 처리해 준다.
하복 클로스의 데모 시연 장면.
또 하나는 하복 클로스(Havok Cloth)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입고 있는 옷이나 뚱뚱한 몬스터의 배가 출렁거리고 망토가 바람에 휘날리는 등의 모습을 미리 만들 필요없이 실시간으로 연산해 준다. 더욱 빠르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TIG> 건물을 부수거나, 구조물이 무너지는 효과도 이번에 추가된 기능인가?
맞다. 이는 동적 환경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든 하복 디스트럭션(Havok Destruction)이다. 기존의 비전엔진에는 없었던 것으로 하복의 물리엔진을 적용함에 따라서 실시간으로 건물이나 벽 등을 파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미리 건물이 어떻게 부서질지 설정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연산해 결과물을 출력해 주는 기술이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동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은 하복 인공지능(AI)이다. NPC가 플레이어의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등 주변 환경에 반응해서 움직이게 해 준다. 이 역시 실시간 연산으로 엔진 자체에서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의 움직임과 환경을 만들어낸다.
실시간 렌더링으로 빛과 그림자 표현할 수 있고, 인공지능(AI)과 물리엔진도 포함돼 있다.
TIG> 지금까지 설명한 신기술이 모두 하복비전 엔진에 포함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의 목표는 이런 모든 기술을 하나의 엔진에서 느낄 수 있도록 통합해 제공하는 것이다. 물리엔진을 게임엔진의 부속물처럼 적용하는 게 아니라 엔진 자체에 모두 포함시키는 개념이다. 5월 중에 업데이트로 이런 기능을 추가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높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TIG> 기능이 추가된 만큼 엔진 라이선스 가격이 상승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비전엔진으로만 보면 추가 기능에 따른 가격 변동은 없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개발사들과 일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엔진을 팔 때 비전엔진 전체를 구입하라고 하면 싫어하더라.
개발사는 필요한 기능만 사용하길 원한다. 그래서 비전엔진에서 필요한 기능만 구입할 수 있게 했고, 이미 그랬던 것처럼 엔진을 직접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 추가로 비스트나 스케일폼이 포함된 패키지 형태의 번들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번들은 제품을 개별로 구입할 때보다 1/5 정도 수준으로 저렴하다. 한국 개발사를 위한 번들도 따로 제공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가격을 계산해 보면 다른 엔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발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 “모듈화 가능, 원하는 기능만 쓸 수도 있다”
TIG> GDC에서 많은 엔진이 플래시와 웹브라우저, 모바일 지원을 발표했다. 비전엔진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가져 가는 모양새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플래시는 세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퍼포먼스 문제가 있고, 애플 기기에서 지원하지 않으며, 윈도 8에서도 플래시 지원이 제한적이다.
우리는 구글과 제휴를 맺고 비전엔진이 크롬 웹브라우저에서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고, 태블릿PC에서도 잘 돌아가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플래시보다는 HTML5가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픽게임스의 언리얼 엔진과 하복비전 엔진은 근본이 다르다.
언리얼이 통 엔진이라면 하복비전 엔진은 엔진을 뜯어서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듈화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언리얼 엔진은 기능 전부 사용해야 한다면, 하복비전 엔진은 모든 기능을 쓸 수도 있고,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만 사용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엔진과 언리얼 엔진 등은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지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근본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자면 물과 기름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이다. 모든 기능을 웹이나 iOS, 안드로이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미 iOS나 안드로이드 같은 플랫폼은 최적화 작업이 끝났다. 2주 뒤 게임테크 행사에서 발표할 내용인데, 하복비전 엔진 PC 라이선스를 가진 업체들에게는 오는 10월 초까지 한시적으로 무료로 모바일 기술을 제공할 것이다.
하복 디스트럭션의 데모. 물리효과와 결합해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TIG> 구글 크롬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웹브라우저 기반의 MMORPG를 시도하는 곳도 있더라. 하복비전 엔진을 이용해 가능할까?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현재 웹브라우저 기반의 MMO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일부, 예를 들어 <스타트렉 온라인>과 같은 경우는 큰 프랜차이즈임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방향성에 의문을 갖게 됐다. 하복이 이런 현상을 관찰하며 내린 결론은, 유저는 클라이언트 기반의 고해상도 3D 게임을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캐주얼게임 같은 경우는 모바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 “하복+비전의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
TIG> 한국에서는 온라인게임을 많이 만들고 있다. 국내 개발사가 비전엔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요구한 사항은 어떤 것이었나?
하나는 캐릭터의 커스터마이징 부분이다. 옷이나 머리 스타일 같은 부분을 바꾸기 쉽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또한 장비와 아이템 착용에 따라 외형이 변경되는 부분을 보다 쉽게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요청이었다. 다양한 움직임에도 자연스러운 액션이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에도 이미 해결된 부분이지만 신기술인 하복 클로스와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해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TIG> MMORPG의 경우 넓은 지형을 무리없이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을 요구한다. 하복비전 엔진은 MMO를 위한 터레인 기반(넓은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지형을 땅의 굴곡 등으로 표현하는 기술) 기술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우리는 터레인을 위한 큰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초기 비전엔진도 우리가 2009년 한국에 진출하며 실시간으로 지형을 불러들이기 위한 스트리밍 시스템을 지원했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며 많은 오브젝트나 메쉬(다각형 객체의 단위)를 쉽게 불러들일 수 있게 했다.
하복비전 엔진의 경우 현재 1만 Km 정도의 규모까지 제공할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전엔진이 제공하는 터레인 환경.
TIG> 아시아 쪽 요구사항은 서구 지역과 좀 다를 듯하다. 이전에 하복은 일본에만 지사가 있었고, 트리니지는 아시아에 지사가 좀 있었다. 둘의 합병으로 어떤 이점이 생겼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서로 보완의 관계가 있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한국지사는 일본 지사로부터 다른 하복 제품을 어떻게 판매하고 소개해야 할지를 배웠다. 반대로 일본지사는 한국지사로부터 어떻게 비전 엔진을 소개하고 알릴지를 배웠다.
일본지사와 한국지사 사이의 의사소통은 잘되고 있다. 서로 사람을 파견해 도와주며 잘 해나가고 있다. 이번에 참가하는 게임테크의 경우 일본지사 직원이 강연을 한다.
■ “하복비전 엔진, 한국에 더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TIG> 엔진은 개발자들이 많이 써보고 익숙해져야 프로젝트에서 사용하게 된다. 하복은 이를 위해 대학과 협의해 아카데미를 진행하지 않았나? 대학생들이 하복비전 엔진의 어떤 점을 좋아하던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굉장히 만족해했다. 작년 KGC에서 아카데미 협약을 가진 이후,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엔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듈러 형태의 기능을 좋아하더라. 가능성이 열려 있는 형태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며 일반적인 한국 개발 커뮤니티에 엔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복 아카데미는 우리에게 있어 첫 시작이다. 그 이후에도 KGC가 열리는 시점까지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TIG> 반대로 단점이나 어렵게 느낀 부분도 있을 텐데. 어떤 피드백을 받았나?
가장 큰 어려움은 하복비전 엔진이 실질적으로 C++ 기반이기에 다른 엔진에 비해 초반에 배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엔진을 처음 접했을 때 배울 수 있는 한국어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어 교재를 만들었다. 이 교재를 통해 작은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보고, 엔진의 기능을 두루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 이 교재를 출판할지, 엔진 업데이트에 포함시킬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두 번째는 고객이 원하는 만큼 빠르게 기술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이다. 하복은 이것을 깨닫고 나서 두 배 정도의 자원을 투입했다. 우리는 올해 엔지니어를 150명 정도까지 늘릴 생각이다.
TIG> 작년까지 15개 정도의 국내 업체가 비전엔진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는 얼마나 더 늘어났나?
정확한 업체 수를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이 늘어났다. 2012년 1분기 결과를 보면 역대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
TIG> 하복비전 엔진이 과거에 비해 스케일이 커졌다. 지금의 하복비전 엔진을 정의하자면?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다. 하복은 미들웨어 업체로는 규모면에서 세계 1위인데, 하복의 모든 제품을 비전엔진과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은 개발사가 원하는 기능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고, 원하는 기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한 예로, 모핌 같은 경우엔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지만, 계약을 맺어 비전엔진에서 모핌의 기능을 쓸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