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부터 사흘간 EBS에서는 <게임에 진심인 편>이 방영됐다. 총 3부작으로 1부는 게임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드라마였고, 2부는 5명의 게이머가 퀘스트를 받고 게임이 각자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찾는 인터뷰였다. 마지막 3부는 인터넷방송 스트리밍 콘셉트를 빌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냈다.
3편의 다큐멘터리에서는 '게임에 진심'인 여러 인물들이 출연해 주목을 끌었다. 유명 방송인 침착맨(이병건)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듯 다큐멘터리를 이끌어나가고, 게임 캐스터 전용준이 '게임의 신'을 연기했을 뿐 아니라 웹툰 작가 가스파드, 공연 음악 지휘자 진솔, 소설가 박서련이 인터뷰에 나선다. 게임을 학술적으로 바라보는 여러 연구자들은 물론 송재경 대표와 아카이 타카미 감독도 모습을 보인다.
다큐멘터리는 제목 그대로 '게임에 진심'이었다. 진심은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유익했다.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고, 유튜브 댓글에서도 시청자들의 상찬이 이어졌다.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3부작을 '정주행'한 뒤,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획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EBS 교육다큐부에서 일하는 박진우 PD를 만났다. 다큐멘터리의 기획 의도와 제작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Q. 디스이즈게임: 자기소개를 청한다.
A. 박진우 PD: EBS 8년차 PD 박진우라고 한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3년 반 정도 맡았고, <뭐든지 뮤직박스>라는 프로그램을 기획부터 제작까지 맡아서 했다. 교양부서에서는 위클리 다큐멘터리의 연출도 맡았다. 이번에 맡은 다큐프라임 <게임에 진심인 편>은 (위클리 다큐와는 달리) 오랜 제작 기간과 투자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다큐프라임은 조금 더 많이 공들여 제작하는, 프리미엄 다큐멘터리를 지향하고 있다.
Q. 3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게임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었구나'라고 느꼈다. 인터넷 밈(Meme)에 대한 이해도 피상적이지 않더라. 장례식에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하이라이트가 나오는 건 진짜로 쓰는 밈 아닌가.
A. 실제로 게임을 즐기고 인터넷 문화도 좋아한다. (웃음) 이번 기획을 하면서 내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EBS도 그렇고 보통 방송국에서 하는 고민이 시청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대 또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목마름이 되게 컸고, 게임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게임이라는 소재는 내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였고, 이것을 풀어내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BS에 처음 입사할 때부터 딱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게임으로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다큐프라임은 굉장히 선망되는 프로그램 타이틀이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가장 좋은 제작 환경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다큐프라임이다.
후회 없이 만들려고 노력했다. 주변에 농담 삼아 그런 말을 했는데, 남은 수명의 5년 정도를 깎아서 프로그램 퀄리티를 올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실제로는 3년 정도 깎인 거 같다. (웃음)
Q. 악마와의 거래를 절반 정도만 한 건가?
A. 끝나고 나니 좀 늙은 것 같다. (웃음)
Q. 페이스북 커버 사진이 <롤> 전적이던데.
A. 그 당시 주챔(주 챔피언)이 신 짜오였는데 8연승인가 했다. (웃음) 요새 주챔은 티모다. 다큐멘터리 안에 티모가 등장하는데 반응이 핫하더라. 실은 남들 잘 안 하는 가렌이나 티모를 주로 한다.
사실 (다큐멘터리 1부에서) 티모를 <롤> 메인 캐릭터로 등장시킨 건 단순히 주챔이라서만은 아니다. <롤>이라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나름 조사를 해봤을 때, 티모라는 캐릭터의 인지도가 가장 높았다. 그 외에 귀여운 외모나 인 게임 내의 대사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 프로그램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Q. <롤>에서 주로 탑 라인을 가는구나.
A. 그렇다. 티모를 똥챔(안 좋은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잼(재미없음)이라고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웃음)
Q. 제작에 대단히 오랜 기간이 소요됐다고 들었다.
A. 순수하게 제작한 시간만 보면 1년 6개월 정도가 들었다. 내부에서 기획안을 공모해서, 선정되고, 제작하는 데 그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게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한 지는 10년 정도 된 듯하다. 학부 졸업논문 소재가 게임이었는데, 그 논문을 쓰면서 게임을 진지한 학문적 탐구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학문으로서의 게임을 어떻게 더 풀어서 설명할 수 있을까, 학문적으로 뭐가 더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 게 이번 다큐멘터리의 시작 같다. 그때가 2012년이었는데 한국에 게임학(Ludology) 자료는 전혀 없고 미국도 막 걸음마를 떼던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게임학과 관련된 한국어 자료는 다 읽어봤던 것 같다.
Q. 다큐멘터리의 1부는 '게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가 담겨있다. 학술적인 내용에 관해서 자문은 어디서 구했는지?
A.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 한국 게임 담론의 지형에 대해서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 이후에 인터뷰이를 소개해주시기도 했다. <G식백과> 김성회님이나 이다민 연구원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얻었다. 국내 게임 관련 유튜브 채널은 거의 다 봤다. 해외 채널로부터도 영감을 많이 얻었는데 <게임 메이커스 툴킷>(Game Maker's Toolkit)이라는 채널이 참고가 많이 됐다.
Q. 1부에는 게임개발자(희극인 서태훈)가 게임의 신(전용준 캐스터)이 마련한 퀘스트를 깨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게임개발자는 <바람의나라>, <프린세스 메이커 2>, <롤> 등 총 3종의 게임을 탐험하는데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A. 고민이 많았는데, 상징성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바람의나라>는 세계 최초의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았나? 이런 식으로 게임의 역사에서 나름의 상징성을 가진 타이틀을 선정했다. <프린세스 메이커 2>나 <롤>도 '이 게임이 예시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이 들어있다. 나름 국가별 균형도 맞춰보려고 노력했다.
Q. 그런데 2부에 등장하는 <제2의 나라>는 아이코닉한 게임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다.
A. 1부가 게임 이야기라면 2부는 게임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런 방식을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했을 때, 기존 휴먼 다큐와 비슷한 형식으로 구성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의 요소를 1,2,3부에서 공히 녹여내고 싶었는데, 실제 게임의 모습을 통해서 중간중간 환기를 시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부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게임을 말할 때의 분위기와 온도는 '따스함'에 가까웠다.
그런 온도를 담아낼 만한, 화사하고 밝고 따스한 영상미를 가진 게임으로 <제2의 나라>를 선정했다. 게임의 내용 자체도 현실에서 '제2의 나라'로 넘어가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 않나? 그런 부분들이 맞닿아있어서 선정했고, 넷마블로부터 협조를 구했다. 덕분에 2부에서 게임이 프로그램을 감싸는 형태가 완성됐다.
Q. 각 게임사로부터 어떻게 게임 이미지, 영상에 대한 사용 협조를 구했나? 인 게임 그래픽이 대단히 많이 쓰이는데, 또 그 위에서 연기를 하거나 플레이하는 연출이 들어간다.
A. 다큐멘터리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게임 에셋을 요청했다. 그를 바탕으로 EBS에서 직접 CG 작업을 했다. 이번 다큐를 만들면서 CG팀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롤>은 직접 게임 화면을 녹화해서 '리그디렉터'나 '스킨 스포트라이트' 같은 프로그램을 적용했고, 그 결과를 편집했다. '킬링벌's'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롤> 소재로 게임 영상을 만드는 곳이다. 이 채널에서 영상 제작에 참여해 도움을 주셨다. 눈치를 채셨을 수도 있는데, 원래 티모에게는 은신 패시브가 있다. 약 2초 동안 가만히 있으면 투명 상태가 되는데, 방송에서는 은신을 하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은신이 적용되지 않게끔 티 안 나게 합성했다.
넥슨에서도 <바람의나라> 효과음, 음악, 맵 등의 에셋을 제공해주셨다. 원래 <바람의나라>도 화면 녹화 방식으로 편집하려고 했다. 2D 게임이니까 게임 화면 위에서 연기하는 게임개발자를 얹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채팅 같은 부가적인 시각 요소가 너무 많더라. 이를테면 <바람의나라> 초보자사냥터에는 다람쥐가 엄청나게 많은데, 다큐 제작을 위해서 전부 빼달라고 요청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완성된 게임에서 한두 요소를 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받은 에셋을 합성한 형태로 작업했다.
요나고 가이낙스에서도 흔쾌히 <프린세스 메이커 2> 에셋을 내주셨다. 분장한 실제 배우를 크로마키 촬영한 뒤에 게임에 붙여봤는데 묘하게 안 붙더라. 그래서 손수 게임을 본떠서 삽화를 그렸다. (웃음)
Q. 가이낙스의 아카이 타카미 감독은 어떻게 섭외한 건가?
A. 현지 사정에 밝은 코디가 있어서 그분께서 진행하셨다. 코로나19 시기여서 내가 직접 가지는 못했는데, 해외 제작 네트워크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부분이 EBS의 장점 같다.
Q. 1부에 국내 대형 게임사 사옥이 실제로 등장하는데, 그 안에서 8년 차 개발자가 깨달음을 얻고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한다. 배경이 되는 게임사에게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건가?
A. 특정 게임이나 회사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소회가 담겨있다.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게임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뀐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과금요소 때문일 수도 있는데, 게임을 작동하는 방식에서 개인적인 불만족이 있었다. 여전히 재밌는 게임도 많지만, 그 변화에 대해서 '게임의 본질'이 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큐 한 편 50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게임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바람이 들었다.
Q. 근래 메타버스, P2E 같은 유행이 대단했는데,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소개되지 않는다.
A. 맞다. 작년에 엄청나게 핫했다. '이거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유혹이 있었는데 게임의 근본을 다루는 게 이번 기획 의도였다면, 메타버스나 P2E는 일종의 현상 같다고 여겨졌다. 일종의 아카이브 차원에서 이번 다큐가 내년, 내후년, 또는 10년 뒤에도 봤을 때 유의미하려면 일시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감하게 덜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의성이 중요한 위클리 다큐라면, 그런 부분에 초점을 더 맞출 수도 있었겠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 같다.
Q. 이번 <게임에 진심인 편>을 보며 특이했던 점은 게임의 산업적 측면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게임의 산업적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되는 편인데,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인가?
A. 기획 단계에서 '뭘 하겠다'도 분명했지만, '뭘 하지 말자'라는 쪽도 대게 뚜렷했다. 그것이 바로 산업으로서의 게임, 스포츠로서의 게임, 중독으로서의 게임이다. 이미 기존에 많이 다루어졌는데, 해외 다큐나 국내 다큐나 죄다 대동소이한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산업적으로 성장했고, e스포츠가 얼마나 전도유망하고... 이런 상황에서 '굳이 우리까지 보탤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게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거기에 집중하기 위해 애초에 그런 분야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물론 당연히 산업적 측면에 대한 주목이 있었기에 지금의 논의가 가능해진 부분이 있다. 그것이 담론 형성의 초기 버전이었다면, 앞으로는 게임 자체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다큐가 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이번 다큐로 물꼬를 트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Q. <게임에 진심인 편>은 게임 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보다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서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이야기한다.
A. 1부가 게임학개론처럼 게임의 정체에 대해 묻는다면, 2부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게이머라는 게 사실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아닌가? 여기도 하고, 저기도 하고, 이걸 보는 당신도 게임을 한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혹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게이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도움이 되는 다큐이길 바랐다. 게임이 누구에게는 친구이고, 성장이고, 위로라면, 그 부분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도 게이머로서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제작했다.
Q. PD도 게임을 통해서 위로받고 성장한 경험이 있나?
A. 다큐멘터리에 자료화면으로 나온 게임들은 모두 다 내가 좋아하고 즐겼던 게임이다. 게임을 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고 요즘도 취재가 잘 안 될 때 게임을 한다. 3부작의 시작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나에게 답을 해보고 싶었다. '왜 그렇게 게임을 미친 듯이 했었지?', '정말 게임은 시간 낭비인가?' 라는 질문을 늘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 답을 만들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했고, 나름의 답이 다큐멘터리 안에 담겨있다.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Q. 특별히 즐기는 게임이 있다면?
A. 게임을 하는 방식 같은 게 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헌터 7:1 컴까기(혼자서 7개의 인공지능을 상대하는 것)를 한다. 이게 프로테스랑 테란은 쉬운데 저그는 입막(입구막기)이 어려워서 쉽지 않다. 연구하다 보니까 6시에서 7시가 걸리면 입구를 막는 방법을 체득했다. 그렇게 컴까기를 혼자 한 판 하면 40분에서 50분 정도가 걸리는데 머리 비우기에 굉장히 좋다.
<문명 5>도 늘 하던 것만 하는데, 바빌론 문명을 신-빠름 난이도로 플레이한다. 판게아 맵을 고르고 문명을 하나 더 추가해서 9~10개 정도의 문명이랑 경쟁한다. 거기서 1등을 하는 데 대략 이틀 정도가 걸린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이틀을 보내려고 할 때 최고의 선택이다. 그걸 하도 많이 해서 이제는 '고인물'이 된 것 같다. 이 2가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방송도 할 수 있다. (웃음)
Q. 3부는 '게임이 예술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자는 당연히 게임이야말로 음악과 미술 등이 총동원된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큐멘터리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에 관해 논한다.
A. 3부에서 '결론을 내리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쉽게 결론을 내릴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방송 말미에 덧붙이기도 했지만, 법적으로 게임이 문화예술의 범주에 자리를 잡았지만, 일반 대중 차원에서 게임을 예술로 받아들이는 부분은 별개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게임과 예술을 포괄적으로 엮어서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낯선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여러 관점이 도출되는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 3부의 의도였다. 그렇게 결국 게임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한 뼘 정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예술의 입장에서는 이렇겠구나', '게임에서는 저렇겠구나'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2022년의 시점에서는 여러 관점을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아내려고 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물음은 대단히 어렵고 학구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침착맨을 기용했다. (웃음)
Q. 침착맨이 정말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듯 연기하더라. 개인적으로는 다큐멘터리에서 처음 보는 포맷이었다.
A.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할수록 보기 싫어진다. 다큐멘터리 측면에서도 3부작 전부 실험적으로 보여주려고 의식을 많이 한 편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게임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실험적으로 영상을 만들기에 좋은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또 게임이 인터넷 문화와도 상당히 잘 붙지 않나? MZ세대라는 말을 되게 싫어하는데, 본격적으로 게임과 교류했던 세대가 밀레니얼이고, 그 자장 안에는 Z세대도 포함된다. 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방식이 인터넷 문화와 밈이라고 생각했다.
Q. 방송에서 채팅은 누가 친 건가?
A. 이거 약간 영업기밀 같은데... (웃음) 제작진 주변 지인 중에 침착맨 방송을 많이 보고, 드립(농담)에 밝은 사람들을 6~7명 정도 모았다. 침착맨님을 실제로 볼 수 있다고 꼬드겼다.
사전에 이런 내용을 다룰 거라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평소처럼 드립을 많이 쳐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 실시간 채팅을 수집한 다음에, 재구성했다. 침착맨의 시선 처리도 진짜 인터넷방송을 하는 것처럼 채팅이 등장하는 위치도 조정했다. 그래서 진짜 채팅 같은 CG를 넣을 수 있었는데, 이것도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출연자나 기타 채팅창에 등장하는 아이디를 넣는 것도 재밌었다. 다 같이 모여서 랜덤 아이디 생성기가 되어 아이디를 만들었다. 캐릭터와 특징을 담을 수 있는 이름을 자막으로 삽입했다.
Q. 실제로 게임을 문화예술로 분류하도록 법이 바뀌었는데 이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 건가?
A. 그렇진 않고 법안이 제출되는 상황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법안이 계류 중인 상태를 기준으로 방송을 만들어 편집 중이었는데, 법이 통과됐더라. 그래서 '오히려 좋아' 마인드로 다큐멘터리의 뒤에 상황을 업데이트했다. 3부의 내용이 쭉 나오고 게임이 문화예술로 분류된 것을 덧붙이면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Q. 3부 시작에 나오는 페이크 다큐야말로 <게임에 진심인 편>의 백미였다. 많은 게이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PC방 전원 차단 실험'을 그렇게 비꼬다니.
A. 시작은 <바보상자의 역습>이라는 책이었다.
대중예술이 실제 이상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사람들의 인지 능력과 지적 능력을 향상시켰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그 책 중간에 나오는 '게임이 책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걸 어떻게 다큐로 풀까 하다가 뉴스의 포맷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문제의 '실험'이 나왔다.
보통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만장일치로 모두가 좋아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 페이크 다큐는 모두가 좋아했다. 워낙 상징적인 사건 아닌가.
Q. <게임에 진심인 편>을 제작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아무래도 섭외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침착맨님을 섭외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 게임과 예술을 주제로 인터넷 스트리밍을 한다면 침착맨 말고는 없다고 판단했다. 쉽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다행히 마지막에 섭외에 응해주셨다. 실제로 녹화할 때도 나이스하게 연기를 잘 해주셨다. 개인적으로도 침착맨의 팬이기 때문에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전용준 캐스터는 프로그램 설명을 다 드리기도 전에 흔쾌히 하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연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일반적인 프레젠터형 다큐멘터리라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게임에 진심인 편>은 드라마타이즈(Dramatize)된 다큐멘터리라서 프레젠터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 잘 소화해주셨다. 또 전 캐스터를 '게임의 신'이라고 불렀을 때 누가 뭐라고 하겠나? (웃음)
Q. 이번 기획에서 못다 한 이야기나 아쉬운 점이 있을까?
A.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아쉽다. 너무 어렵게 받아들여지지 않게끔 의도적으로 덜어낸 부분이 많다. 그래서 지식정보를 전달하는 다큐에서 기대할 만큼의 밀도는 아니다. 그런 부분이 살짝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게임 담론에 대해서 첫 시도를 하는 것이니 너무 어렵게 가게 되면 사람들이 놀라거나 질릴 수도 있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게 가기로 했다.
자료 조사만 1년을 했는데 아까운 아이템이 많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게임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 당장 대여섯 개의 아이템이 있다. 100명의 게이머를 불러놓고 '최고의 걸작'을 뽑아보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걸작이 뽑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게임은 예술이나 아니다를 떠나서 진짜 게임을 잘 만든다면 이런 논의도 필요 없는 건 아닐까?'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Q.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싶다.
A. '게임에 진심인 편 2'를 만들고 싶다. 요즘 유튜브 댓글을 열심히 읽는데 '수신료의 가치' 이야기가 빵 터지더라.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순수하게 방송국 예산만으로 이 정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회사에서 편성이 이루어져야겠지만, 이번에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게임문화재단의 지원이 있기에 제작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 관심과 지원이 더 이루어진다면, 재미있는 게임 다큐를 들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