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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예술관] 게임 속 선율을 지휘하는 지휘자, '플래직' 진솔 대표

게임예술관 36화 - '플래직' 진솔 대표

김재석(우티) 2019-11-04 10:33:39
디스이즈게임은 ‘게임예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최근 한국 '블빠'(블리자드 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팬을 부르는 은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벤트가 있었죠. 바로 '플래직'의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음악 연주회였습니다. 풀 오케스트라로 두 차례나 훌륭한 연주를 선보인 플래직의 대표는 바로 여성 지휘자 진솔입니다.

여성 지휘자. 생소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 지휘자는 그 수가 적은 편입니다. 클래식을 자주 듣지 않는다고 해도 카라얀, 번스타인, 정명훈, 금난새 같은 남성 지휘자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만, 여성 지휘자의 이름은 잘 안 떠오르지 않나요?

진솔 대표는 '성덕'(성공한 덕후)입니다. 그녀는 학창시절 PC방을 오가며 수많은 게임을 즐긴 '겜순이'였습니다. 슈팅 게임부터, RTS, MMORPG까지 가리지 않고 게임에 몰두했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게임을 1만 시간 넘게 즐겼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의 음악을 직접 지휘하게 된 그녀는 요즘도 바쁜 와중에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브롤 스타즈>와 <포켓몬 고>를 한다고 하네요.

그녀는 국내에서 지휘과 학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독일로 석사과정을 다녀온 후 대구MBC교향악단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음악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법하지만, 그녀의 삶에는 길고 어둡고 구불구불한 터널처럼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진 대표는 오랜 가정불화에 시달렸고, 순탄치 않은 학교 생활을 했으며,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소녀였습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에도 "여자가 무슨 지휘봉을 잡아?"라는 구닥다리 편견과 싸워야 했죠.

자신의 역량과 노력으로 온갖 악조건을 넘어선 그녀에게 게임은 도피처 이상의 좋은 친구였습니다. 게임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지휘하는 플래직 진솔 대표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최근 블리자드 IP를 바탕으로 두 번의 연주회를 했다. 소감이 어땠나?


신선했다. 다양한 청중을 겪다 보니 나 자신에게도 공부가 됐다. 플래직을 운영하면서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만나게 됐다. 공연 이상으로 굿즈에 관심을 보이는 청중도 있었고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청중도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나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정말 열정적으로 좋아한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청중을 겪을 일이 많지 않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연주회에서 호드와 얼라이언스로 진영을 구분한 게 독특했다. 가운데는 중립이었고. 다른 클래식 연주회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었는데, 양 진영의 좌석들이 먼저 팔리고 중립 좌석이 가장 마지막으로 나갔다고 들었다. 원래 클래식 연주회에선 중앙이 가장 좋은 좌석 아닌가?

맞다. 클래식 연주회에서는 통상적으로 홀의 중심이 가장 가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소리가 울렸을 때 가장 중심이 잘 잡힌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연에서는 음향 장치로 전체적인 밸런스를 조정했다. 첫 공연이기도 했고, 음향을 비롯해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호드와 얼라로 자리를 나눈 것은 재미있는 시도였다.


신생 기업에 속하는 플래직이 세계적인 게임사 블리자드와 음악 연주회 개최에 대한 3년 계약을 맺었다. 어떻게 가능했나?

서로의 니즈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블리자드는 유저들이 만족할 수 있는 유의미한 수익 사업이 필요했고 우리는 정당하게 좋은 게임음악을 정당한 경로로 빌려서 연주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도 블리자드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블리자드가 오케스트라 규모의 좋은 음악도 많이 있기 때문에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앞으로 블리자드와 어떤 일을 같이 할 수 있나?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게임의 IP를 확보한 만큼 내년에는 더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플래직은 게임음악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블리자드 음악 연주회도 그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고.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자세히 설명해달라.

 

클래식 음악가들과 게임음악 작곡가 사이에  입장과 시각의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음악을 하게 된 환경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 사용하는 음악적 언어도 다르고, 게임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둘 사이에 생각의 골이 좁혀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 클래식 음악가들이 게임계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탓에 게임 음악이 필요한 게임사들은 예산을 추가로 들여서 해외 오케스트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해외 인력으로 대체되는 것 아닐까? 플래직은 이렇게 서로 멀어진 게임계과 클래식계를 연결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일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지휘자의 일과 CEO의 일은 비슷하다"라고 말한 적 있다. 최종 책임을 지는 위치에서 조직을 이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했을 것 같은데, 회사를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플래직은 원래 예술경영을 주로 하는 분들이 뜻을 모아 만든 회사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가 됐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자리가 됐다. 책임을 지고 블리자드와 계약을 맺고 회사를 키워왔다.

 

사실 힘들긴 다 힘들다. (웃음) 게임음악을 찾아서 연주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게임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면 그 게임 회사에서도 IP 관리 권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대체로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랬다고 여겨진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나 플래직에서 마음대로 음악을 사용해버리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아쉬워도 연주하지 못한 음악들이 있다. 

 

음악을 연주회에서 써도 되는지 안 되는지 게임 회사 측으로부터 확답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땐 적응하기가 참 어려웠다. 법률과 관련된 지식 개념도 희미했고 IP 사용 관련 서류를 작성해서 정식으로 계약을 해본 적이 없었다. 2분짜리 짧은 곡 하나 연주하는데 몇 주 몇 달이 소요되더라.

 

플래직이 계약을 해낸 블리자드의 경우 블리자드 측에서 매우 협조적으로 대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지휘자로서 게임 음악은 어떤 특징이 있나? 게임 음악만의 매력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있듯 게임음악도 너무나도 다양하다. 모바일 게임 중에서도 RPG와 같이 호흡이 긴 게임이 있고 몇 분 안에 한 판이 끝날 정도로 짧은 호흡이 특징인 게임이 있지 않은가. 일단 게임 자체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나오는 음악도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음악의 매력을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플래직의 입장에서는, 클래식으로 담아낼 만한 게임음악이 많지는 않다. 모든 게임이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어울리지 않듯이. 웅장한 클래식 오케스트라로 표현할만한 음악보다 가볍고 명료한 소규모 앙상블로 표현되는 음악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앙상블 곡도 선호하지만 아무래도 플래직의 기본 모토가 오케스트라 쪽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스케일이 큰 곡들에 집중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국내 게임사의 게임음악 중 오케스트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있나?

훌륭한 음악들이 많다. 국내 게임사의 곡들 중 유명한 작곡가인 한스 짐머가 작곡한 곡도 연주했었는데 정말 훌륭했다. 또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음악이 굉장히 클래식하다는 특징이 있다. 클래식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작곡을 했나 생각도 들었다. 금관악기로 임팩트를 살리거나 타악기를 적절히 이용하는 등 관현악법을 굉장히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상상하면서 작곡했다는 것이다.

게임음악을 지휘하면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로 곡들의 제목만이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음악이 정말 많은데도 말이다. 한스 짐머가 아닌 다른 국내 작곡가들도 곡마다 이름이 적혀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누가 작곡했는지가 정말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에 약간은 생소하기도 했다. 


게임 음악 지휘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사실 그 동안 홀 연주회 같은 큰 무대보단 유저들이 오가는 행사에서 작은 무대를 많이 했다. 네코제나 플레이엑스포 같은 행사의 이벤트성 무대에 자주 올랐다. 그런 무대를 할 때마다 컨덕트 어스(CONDUCT US)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로 온 관객이 평소에 듣던 게임음악을 무대 위에 올라 지휘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관객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벤트성 프로그램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실제로 지휘를 직접 경험해보는 사람들은 말로 이를 수 없을 만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뿌듯함과 쾌감으로 인해 지휘자의 평균 수명이 길다는 연구도 있다는데, 이 기분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기획하게 된 프로그램이다. 

하루는 그 프로그램을 하는데, 마침 우리가 연주하던 것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곡이었다. 행사장에 온 유저들이 "호드를 위하여" 라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 영상도 남아있다.

 


 

 

게임을 엄청 많이 했다고 들었다. 요즘도 게임을 하는 편인가?

 

최근에 다시 <포켓몬 고>를 시작했다. 여럿이 참가해야 하는 레이드 배틀을 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알아보니까 그룹 채팅방에 참가하는 게 수월하다더라. 결국 지역 유저들의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서 열심히 레이드를 뛰고 있다. 지역 주민을 계속 실제로 만나면서 플레이 한다는 것이 약간 민망하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뮤츠 하나 잡겠다고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발까지 삐었다. 이렇게 열심히 게임을 하다 보면 유저들에게 조금씩 다가가서 그들의 마음을 더욱 잘 알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게임 유저들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어렵지 않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또 이들을 만나보면 게임이 이들의 삶에 크나큰 위로와 힐링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렸을 때는 한없이 엄하고 불편한 가족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유학을 간 동안에 어머니가 <윈드러너>를 하고 계시더라. 이제 어른들도 게임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구나 싶더라. 손가락 클릭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유저들이 게임을 하면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겠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음대 교수와 성악가였던 부모님의 특수성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지냈어야 했다. 부모님께 맞을 때도 있었다.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원하셨지만 가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되니까 이런 가족을 이해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혹이 들었다.

 

이상하더라. 그 시기에 많이 흔들린 거 같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당시엔 나빴다고 생각하면서도 합리화하면서 지냈다. 성인인 지금 내가 보기엔 당시의 내 행동이 아주 나쁜 게 아니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피시방이 일종의 해방구였겠다. 그동안 어떤 게임들을 즐겼는지 돌아보자면?

 

어린 시절 피시방에 깔려있던 게임들은 다 해봤다. <테트리스>, <포트리스>,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이런 것들은 당연히 했고 그중에는 <포트리스>를 제일 많이 했다. <리니지>와 <라그나로크>도 했었는데 <스타크래프트>는 조금 늦게,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어린 여자애가 보기에 재미없게 생겨서. 남자 애들이 시간 가는지 모른다길래. 학교도 안 나가고, 수업 듣다 중간에 나가서 <스타>하고 그랬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들어가서부터는 공부만 했다. 그전까진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 시기에 게임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한예종에선 그 '뭔가'가 공부였고 감을 잡으니까 공부도 게임을 연구하듯이 계속하게 되더라. 

 

지금은 모바일 게임을 많이 하고. 콘솔 게임도 관심을 갖고 있다. 게임을 하면서도 음악을 주의 깊게 듣는다. 

 



부모님 몰래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를 준비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 반대가 심했다. 음대 교수로 여성 지휘자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의견을 따랐고. 그 두 분에게는 '여성 지휘자'라는 게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래서 몰래 준비했다. 어렸을 때부터 불편한 교육 시스템 안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준비를 하게 됐다. 선생님 불러서 이거 얼마나 했어 저거 얼마나 했어 같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됐던 거다. 그래서 준비하는 마음도 가벼웠다. 

혼자서 문제집 사서 풀고 그랬다. 정말로 잘하는 게 맞는지 체크하기 위해 몇 명한테 피아노 치는 걸 보여준 정도? 면접 담당하는 분이 독일 교수였는데 그분이 나에게서 남들과는 다른 뭔가를 보진 않았을까 생각한다. 운 좋았다. 혼자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면접장에 외국인 교수가 있고, 그걸 통역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의 우려와 사회적 시선과 달리 여성 지휘자가 되어갈 때 소감이 어땠는지? 

너무 좋고 뿌듯했다. '내가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갈수록 자존감이 커지는 거다.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내가 감당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추진력이 생긴 것 같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기가 세다고 하는데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다. 나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스스로 게임 컨트롤하듯이, 어떻게 하면 움직일 수 있는지 터득한 것이다.


여성 지휘자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을 바꾸자는 모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다. 어떤 예술가든지 그런 사명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시대는 자꾸만 앞으로 가는데 혼자 가만히 있거나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나의 페르소나를 천천히 구축하다 보면 언젠가는 예술계의 발전에 조금 더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플래직도 그렇게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 음악을 지휘하고 싶나? 

그렇다. 


유일한 단답형 대답이었다 (웃음) 본인 자체가 진성 게이머였다 보니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연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 업게 바깥에서도 이런 사람이 많이 나온다면 인식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게임도 학습적인 게임이 있고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이 있다. 부모님들께서는 일단 아이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조건 막으시려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 가진 긍정적인 면들이 조금씩 주목받다 보면 게임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의 음악 하는 친구들도 게임 많이 한다. 게임을 못 하더라도 스트리머 영상을 챙겨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고, SNS에서도 "여기서 언제 연주합니다",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이런 이야기만 한다. 어쩌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만을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임 좀 좋아하면 어떤가? '일코' 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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