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안정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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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귀농일지 ‘대하먹튀사극, 맨 VS 서리범’

본격 아키에이지 영농 플레이 체험기행 ②

 

오늘의 인트로. ‘묘목이 방울방울~’

 

<아키에이지>를 어떤 게임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룻배 한 척으로 망망대해를 건너다 해적들에게 봇짐부터 호주머니까지 탈탈 털리고 나서 헌법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의 의무에 대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계몽적 게임?

 

18세 이상 이용가에 대도시의 환락가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기대에 부풀어 대기자 수 천 명을 뚫고 접속했더니, 환락가는 최고레벨이 다 돼서야 나오고 그조차도 밤 10시면 등장하는 홈쇼핑 속옷모델만도 못한 노출도의 여성이 ‘잘 보이지도 않게’ 배치된 것을 보며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득도수련용 게임?

 

본격 텍스트로 만든 환락가. 심지어 말투도 굉장히 얌전하다.

 

“엄마, 사람이 철창 안에 갇혀 있어~!”

 

써놓고 나니 뭔가 <아키에이지>를 ‘이달의 청소년 사회의식 고양을 위한 추천게임’으로 선정해도 될 법하지만. 아무튼 다 틀렸다. 필자가 보는 <아키에이지>는 농부와 서리꾼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감동 따위는 없는 대타협을 그린 ‘대하먹튀사극’이다.

 

먼저 ‘서리’의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보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서리의 정의와 의의는 아래와 같다.

 

서리: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단지 약간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곡식이나 과일을 훔쳐 먹는 일종의 장난.

 

의의: 서리와 원두막은 오늘날의 삭막한 인정 속에 오아시스 같은 마음의 여유를 주는 풍속이자 풍물이다. 서리는 청소년들에게만 관용되던 장난으로 선조들의 넉넉한 인심을 읽을 수 있다.

 

페레 스토리에서도 서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뻥)

 

끄덕~ 끄덕. 좋은 뜻이다. 약간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곡식을 훔쳐 먹는 장난. 그리고 청소년에게만 관용되던 장난, 선조들의 넉넉한 인심.

 

상상해 보라. 자기 몸통만 한 수박을 부둥켜안은 채 (오늘은 너로 정했다는 표정과 함께) 코를 흘리며 도망가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맞으면 전치 8주부터 계산할 것 같은) 몽둥이를 든 채 (나도 오늘은 너로 정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루마기 자락을 가로로 휘날리며 달려오는 밭 주인의 모습을.

 

괄호 안의 문구들이 심하게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훈훈한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할 점이 있다. 지난 1화에서도 말했지만 <아키에이지>의 사실성은 현실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그것도 가볍게.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것들이 기다리는 <아키에이지>의 세계.

 

 

 


 

 

 

내겐 너무 작은 그녀, 아니 그 텃밭

 

<아키에이지>의 모든 유저는 텃밭을 받는다. 사실 공짜는 아니고, 이럴 시간에 밭을 매도 나주평야 두 개는 일구고 남았겠다는 시간이 들만큼 퀘스트(를 빙자한 노동탈취 및 손목 내구성 실험)를 거치고 나면 쥐꼬리만 한 텃밭을 선심 쓰듯 던져준다. 물론 세금과 건축비는 별도 구매다.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음성지원이 되는구나. ‘사랑합니다. 호갱님.’ :)

 

지난주의 명장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무릇 인간이란 쌍쌍바 하나를 잘라 먹어도 큰 쪽을 갖고 싶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아리따움에 감탄하면서도 바람이 불기를 바라기 마련. , 뭔가 조금 위험한 말을 한 듯싶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키에이지>도 마찬가지다. 집 사랴, 배 만들랴, 도구 만들랴, 농장 세우랴, 약방의 감초는커녕 라면의 MSG처럼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목재를 얻기 위해서는 농장보다도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들 농장을 벗어나 자연 속에 자신의 소중한 나무를 방치하는 ‘야외 플레이’()를 하곤 한다.

 

10시간 동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나무를 채집하면 좋겠지만 인간사가 그리 쉽게 바라는 대로 됐다면 당장 퇴근길에 로또부터 긁었게? 그리고 퇴직서를 낸 후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매체인 디스이즈게이를 만들어… 미안하다. 오늘 여러 번 위험했다.

 

꿈에 부푼 첫 야외 영농 생활.

 

지난주 좁아터진 농장에 감동을 받은 필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야외플레이에 나섰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심는 놈 위에도 캐는 놈이 있는 법. PC방 날틀까지 타고 날아간 이니스테르 꼭대기에 심어둔 첫 농사는 상...게 털렸다.

 

울창했던 숲은 당장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그라운드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끄럽게 다져졌고, 혹시 보기에 심심할지, 누가 이곳을 다듬었는지 궁금해할지 걱정하기라도 한 듯 빨간 발자국으로 예쁘게 데코레이션을 가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는 대머리는 격세유전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뒤늦게 발모제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우리 삼촌마냥 인벤토리의 몇 안 남은 씨앗을 움켜쥐고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필자의 작물을 훔쳐간 유저의 이름은 서리꾼XXX과 서리꾼OOO. 사람은 이름 따라 산다며 필자 친구의 아들에게 ‘박만땅’이라는 이름을 권했던 작명소 아저씨의 이야기가 묘하게 신뢰가 가는 순간이었다.

 

먼 훗날, 필자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리라.

 

아들아, 옛날에 아빠가 농사를 지을 때만해도 여기에 울창한 숲이 있었단다.”

에이~ 여기에 나무를 심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어요?”

그게 네 아빠다 이놈아. ㅠㅠ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날이 심해져 가는 서리는 무슨 ‘밤비노의 저주’를 보듯 필자를 따라다녔고, 산 넘고, 바다를 지나, 저 하늘 끝에 닿을 듯한 곳까지 나무를 심어 봤지만 그 때마다 필자를 반기는 건 아름다운 빨간색 발자국이었다.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라는 생각으로 진입이 금지된 곳에 강제로 나무를 심어도 봤지만 이 역시 채 10시간을 넘기지 못하더라. 서리는 둘째치고 들어가면 곧바로 강제 귀환이 되는 지역에서 어떻게 그 걸 캐 갔는지 알려라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지어 서리꾼들 사이에도 충돌이 있던 듯 핏자국과 발자국이 동시에 있던 적도 있었으니, 세상은 이를 가리켜 ‘대서리 시대’라 부른다.()

 

내 모든 것을 그곳에 (심어)두고 왔다.

 

이를 막기 위해 범죄점수가 있지만 일단 죽지 않으면 잡혀가지 않고, 일정 점수가 되기 전까지는 아예 생활에 지장이 없으며, 잡혀가더라도 게임을 켜놓고 하룻밤 정도 세워 두면 형기를 다 채울 수 있는 구조다 보니 사실상 무용지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적이 되겠다며 범죄점수를 무슨 신용카드 마일리지라도 쌓듯 차곡차곡 모으는 유저까지 등장했다. 내륙 산꼭대기에 심어 놓은 철쭉과 해적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중에는 루X나 조X, X처럼 원X스의 영향을 받은 유저들도 많았으니… 평소 초파 인형 사달라고 조르는 조카한테 현실의 해적은 이런 거라고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작물을 캐기 위한 서리꾼과의 숨막히는 항해전! 근데 어째서?! 내 작물인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서리의 정의와 의의를 살펴보자.

 

서리: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단지 약간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곡식이나 과일을 훔쳐 먹는 일종의 장난.

 

의의: 서리와 원두막은 오늘날의 삭막한 인정 속에 오아시스 같은 마음의 여유를 주는 풍속이자 풍물이다. 서리는 청소년들에게만 관용되던 장난으로 선조들의 넉넉한 인심을 읽을 수 있다.

 

…이놈의 <아키에이지> 서리꾼의 배에는 무슨 거지왕이 4열 종대로 열 맞춰 드러누워 있기라도 한 거냐? 아니면 그 놈의 약간의 허기를 채우려면 개인 단위로 유니세프 식량 원조라도 받아야 하는 거냐? 그 이전에 대체 어째서 허기를 채우는은사시 나무와 자그마한 푸른색 산호바위까지 캐 가는 건데? 그거 먹을 거야?

 

어서 와. 서리는 처음이지?

 

사실 <아키에이지>도 처음부터 이런 게임(?)은 아니었다. 서리가 없었고 그래서 농작물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마저 없었… 아무튼 그랬던 1 CBT는 저리 치우고, 다른 게임 OBT보다 긴 CBT 일정으로 유저들을 행복과 지침 사이에서 갈등케 했던 4 CBT만해도 ‘우리 아키 푸르게 푸르게’ 운동을 벌이며 서리한 자리에 다른 나무 한 그루라도 심고 가는 훈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발전할수록 사람 사이의 인연은 각박해지는 법. OBT에 와서는 우리 아키 푸르게 푸르게는커녕 캐 갈 수 있다면 몬스터라도 훔쳐갈 기세다.

 

그렇다. 지금의 <아키에이지>는 ‘대서리 시대를 맞고 있다.(이건 진짜)

 

빠른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서리꾼은 후! 농사꾼은 하! 둘이 합쳐 하나같이 후! ! ! !

 

 


 

묘청법을 아시나요?

 

심지어 서리가 뜨면서(?)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서리꾼 사이에도 다양한 종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나무 한 그루가 급해서 양해의 말까지 남기며 캐 가는 ‘생계형 서리꾼’부터 험난한 산맥을 오가며 서리 그 자체를 즐기는 ‘익스트림 서리꾼’, 막강한 힘을 앞세워 중립지역에서 주인을 비롯해 모든 목격자를 죽이며 나무를 캐 가는 ‘나무강도’ 등이다.

 

특히 마지막 나무강도는 서리로 인한 범죄보다 폭행 및 살인으로 인한 범죄수치 증가가 더 크다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치열한 서리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선택하고 있다. 옷으로 따지자면 유행을 선도하는 파리의 패션 위크 정도가 되겠다.

 

여기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선인들의 가르침과 부처께서 태어나면서 외치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에 입각해 ‘내가 못 캐는 나무는 남도 캘 수 없다’는 사상을 몸소 실천 중인 유저들도 있었으니. 바로 ‘묘목 헌터’.

 

잔인함의 상징! 피도 눈물도 없는 묘목 살해범! 그 가냘프고 어린 것을 뽑아내다니!

 

이들은 푸릇푸릇 자라나는 나무들이 미처 크기도 전에 자신의 노동력까지 소비하며 그 자리에서 뽑아낸다. 마치 녹색 그 자체를 저주하는 듯한 그들의 만행은 1시간만 넘기면 통나무 500개를 얻을 수 있는 외딴 섬에 위치한 한 원정대원들의 수목원까지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 정도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다 자라지도 못한 묘목을 유린한다는 뜻에서 ‘묘청법’(+아동소년보호)이라 부르고 있다.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유저가 재판에서 ‘묘청법 위반자’에게는 최고형을 줄 정도로 악질 범죄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기행을 쓰겠답시고 전 재산을 들여 <아키에이지>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은 필자의 푸른 꿈은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보다도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인벤토리의 골드도 함께….

 


미안해, 호박. 다시는 널 버리지 않을 거야.

흐… 흥! 그렇다고 널 용서한 건 아니거든?

 

 

 


 

 

다음 편 예고

 

누가 그랬던가? 원수는 외나무 다리, 아니 서리꾼은 법정에서 만난다고. 마침내 나무를 캐 간 그 분을 법정에서 만났다! <아키에이지>에서 벌어지는 본격 법정드라마! 아니, 그 전에 이 기행은 어디까지 가는 ‘기행’을 보여줄 것인가?

 

뭔가 3부작으로 가볍게 써 보려다 어느새 일상 취재업무까지 방해하게 된 늘어지는 기행! 남들 다 원대륙에 갈 때 홀로 법정이야기를 던지는 용기! 이 모든 것들이 다음 편에서 벌어진다. 놓치지 마시라.

 

내 앞자리 깨쓰통 선배의 명예를 걸고 범인은 이 안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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