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 게임에도 써먹을 수 있을까?
이제야 이 글을 쓰네요. 토론 도중에 금본위제를 게임에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말씀을 어느 분이 하셨길래 재밌겠다 싶어서 씁니다.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기탄 없는 지적 부탁드리며, 좀 딱딱하면서도 다소 엉뚱한 시도라 할 수 있는 금본위제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그 금본위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다음은 제 의견, 그리고 덧글에서 토론을 하고자 합니다.
1. 금본위제란?
딱딱하게 정의 내리자면 '화폐의 가치가 금의 양과 연계된 통화제도'입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금을 얼만큼 살 수 있냐로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럼 금본위제 하에서 금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첫째, 옛날의 금은 USD($)와 같이 공통적으로 결제 가능한 돈(기축통화)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일단 속성이 쉽게 변하지 않아 그 가치가 오래 보존되고, 가공이 쉽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여러 형태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덤으로 지배자들의 권위와 재력을 상징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지고 싶어했고요.
둘째, 국가끼리 무역을 할 때 화폐 가치를 비교하기 유용한 잣대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과거에 국가끼리 서로 상이한 화폐를 사용할 경우, 상대의 화폐를 자국의 화폐로 따졌을 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물건인 금으로 가치를 비교해보면 판단이 쉽죠. 예컨대 1달러로 금 1온스, 1프랑으로 금 0.5온스를 살 수 있다면, 미국의 달러 가치는 프랑의 두배라고 파악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그 화폐로 얼마만큼의 금을 살 수 있냐에 따라 환율이 규정되는 것이 금본위제의 특징입니다.
셋째,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전체 부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금은 종이화폐와 달리 찍어낸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나라가 가질 수 있는 금의 양은 한정이 되어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금만큼만 지출이 가능하고, 국가 내 돌아다니는 금의 양만큼만 거래가 이뤄진다는 뜻도 가집니다.
쉽게 생각해서 여러분이 휴대폰 결제, 카드 결제 수단 없이 사는 것과 같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지고 있는만큼은 쓸 수 있고, 부족하면 밖에서 보충하거나 안에서 캐와야 하는 것이죠.
즉 금본위제에 대해서 정리하자면,
(1) 금으로 결제하거나 금과 교환 가능한 화폐로 결제하고
(2) 상이한 화폐의 가치는 금을 기준으로 비교하고
(3) 가지고 있는 금만큼만 교환이 나타나는 제도
이렇게 쓸 수 있겠습니다.
2 . 게임에 금본위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거의 대다수 게임의 결제 수단은 골드니까 이미 금본위제 아니냐'라고 경제과 게임폐인들이 우스개소리를 하지만, 정의와 특성을 생각했을 때는 게임 내 통화체제를 아무도 금본위제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환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게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2)는 제외하고 생각해야겠지만, 특성 (3)이 결여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세계의 금본위제는 지구 전체에 부존된 금만큼만 거래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세계 전체에 유통되는 금이 갑작스럽게 증대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는 유저가 사냥하면 무한정 골드가 떨어져 나옵니다. 그건 어디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닌, 서버에서 새롭게 창출된 골드이고, 새로 찍혀나온 돈입니다.
즉 금으로 경제규모가 제약될 수밖에 없는 것이 금본위제이나, 온라인 게임의 경제규모는 제약 없이 계속 커지는 시스템입니다. 즉 화폐 자체는 골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조폐공사에서 필요한만큼 자유롭게 찍어내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의 화폐제도는 금본위제라 하기 없습니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에서, 금본위제를 '제대로' 도입하겠다 하면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겠죠.
'게임 내 유통되는 총 골드의 양을 한정시키는 패치를 한다' 바로 이것입니다.
혹은 '게임 내 외환의 개념을 도입하고 금을 매개로 환전이 이뤄지도록 한다'라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외환'이란 개념이 도입된 MMORPG 중 크게 알려진 것은 없으니 (지구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의문도 들지만, 있을 수는 있으니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토론하기가 다소 어려울 듯 하네요.
3. 금본위제, 게임에 도입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순기능: 인플레이션 억제
'게임 내 유통되는 총 골드의 양을 한정시키는 패치를 한다'라는 의미로 금본위제가 시행된다면, 돈이 너무 넘치게 되어서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서버에 100사람이 있고, 시간 당 100만골드씩 풀리는 게임이 있다 칩시다. 이때 시간 당 200만골드씩 드롭되도록 패치가 된다면, 평균적으로 한 사람 당 만골드씩 벌다가 갑작스럽게 2만골드씩 벌게 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생기니 판매자들이 가격을 자연스럽게 비싸게 부르기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그만큼 물건값이 비싸지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 내 인플레이션의 폐해는 많이 겪어보셨겠지만, '막상 처음에 시작하는 초보유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늘 끝까지 가격이 치솟은 장비를 살 수 없게 되어 유저 간 격차를 발생시킨다'가 가장 공통적인 폐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금본위제로 총골드의 양을 한정시키는 패치를 한다면, 갑작스럽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 이외에는 물가가 자체적으로 상승할 요인이 없습니다.
-역기능: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역기능이 더 많다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생각합니다
(1) 한정된 금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예컨대 서버 전체에 100만골드가 주어져있는데, 10만골드를 가진 유저 5명이 그 골드를 자기 인벤에 넣어둔 채로 게임을 접어버렸다 칩시다. 그렇게 되면 총골드량은 50만 골드밖에 안 되고, 돈이 귀해진만큼 사람들이 돈을 아끼기 시작할 겁니다. 결과 물가가 떨어지는 일이 일어날텐데, 신규유저에게는 좋을 수 있어도 기존유저는 열심히 렙업해도 큰 보상을 얻을 수가 없게 되니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은 그래도 꾸준히 결제해주는 기존유저에게 불리할 것은 없으니 게임 운영하는 데에는 큰 치명타가 안 되지만, 디플레이션의 경우 예전보다 벌이가 어려워지면서 게임을 할 때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당장 돈 못 버는 것도 문제지만, 누릴 수 있는 컨텐츠 중 상당수는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돈 벌기가 어려워지면 더욱 절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유저가 컨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존유저 이탈 문제와, 유저들이 앞으로의 컨텐츠 중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에 손을 뻗지 않게 되면서 컨텐츠가 유명무실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저들 간 골드 순환이 잘 일어나도록 패치하는 수도 있지만,이 경우 골드 순환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어느 한 계층에게만 머물지 말고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즉 부자에서 뉴비로, 뉴비에서 부자로의 부의 순환이 잘 일어나도록 패치를 하지 않는 이상 금본위제를 보완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죠.
(2) 성장의 재미를 잃을 수 있다
RPG는 성장이 가장 큰 컨텐츠입니다. 이 성장은 레벨을 뜻하기도 하지만 돈이 늘어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금본위제로 서버 내 벌 수 있는 골드가 한정되기 시작한다면, 유저는 이전에 비해 돈이 잘 벌리지 않아 게임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인플레를 감수해야 하지만 골드가 유저 활동하는만큼 창출되는 시스템이, 유저들에게는 돈 버는 재미를 보장해주죠.
4. 결론
때문에 특성 (1)과 (3)을 충족하는 방식으로만 금본위제를 구현해두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한다 해도 유저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금본위제와 같은 방법보다는 다른 수단으로 경제 시스템을 짜는 편이 낮지 않겠나 싶은 것이 바로 제 견해입니다.
PS. 교수님 죄송합니다, 공부해서 이렇게 써먹고 있습니다 OTL
....이론 자체에 대한 공부도 개념 수준에 머무른 탓도 있지만, 그걸 게임이라는 다른 영역에 적용시키려 하니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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