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면 마약을 한 것처럼 전두엽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입니다. 헤로인, 코카인처럼 뇌에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반응을 보이는 것 뿐이죠.”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는 ‘뇌에 대한 게임의 반응’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그는 게임을 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반응하고 어떤 재미를 느끼는지 살펴보고, 프로게이머들의 주치의를 맡아 그들과 대화하고 연구한 내용을 소개했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
■ 뇌가 느끼는 재미, 반복·변형·현저성
게임의 자극은 일반적으로 시각영역과 청각영역, 그리고 재미로 이뤄져 있다. 재미라는 부분은 다시 반복, 변형, 현저성(Salience)으로 나눠진다.
딸랑이를 예로 들면, 별다른 조작이나 행동 없이 딸랑이를 흔들어주기만 해도 아이는 좋아한다. 그저 반복적인 움직임에 아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딸랑이를 흔들어도 아이가 웃지 않는 순간이 온다. 아이가 딸랑이를 흔드는 것에 반응하지 않으면 부모는 여기에 새로운 행동을 추가해 다시 아이를 웃게 만든다. 반복에 새로운 변화를 준 것이다.
MMORPG가 인기 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유저들 사이의 채팅과 커뮤니케이션도 있지만 반복이 일정해서 한번 플레이하는 방식을 배우면 편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같은 외모의 캐릭터들이 움직이긴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적인 플레이에 변화를 주는 요소가 된다.
다른 스포츠게임이나 FPS게임도 마찬가지다. 플레이 방식은 같을지 몰라도 상황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반복과 변화가 공존하는 셈이다.
현저성은 동일한 패턴 속에 다른 하나가 있어 유독 돋보이는 것을 말한다. ‘>>>>>>><>>>>>>’에서 ‘<’만 눈에 띄는 것과 같다. 즉 유저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기 위한 것으로 <리니지> <워크래프트> 등이 새로운 시리즈를 내는 것도 현저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저성에서 중요한 것은 ‘스키마’(schema) 안에서 변형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키마는 재미를 유지하는 일종의 틀이다. 같은 장난감 블록이라도 어떻게 쌓거나 움직이냐에 따라 이미지가 완전히 바뀔 수 있듯이 같은 게임도 반복과 변화의 빈도와 핵심구조의 변화에 따라 유저가 받아들이는 것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시각과 집중도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 특히 흑백과 컬러의 인식, 2D와 3D 사이의 집중과 재미는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색이 너무 화려하고 그래픽이 복잡하면 전두엽이 한 번에 계산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기 때문에 반복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그 게임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스키마가 무너졌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독특한 것을 보고 다음에 다시 보면 이전에 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저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주의력 결핍 환자들은 반복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으로 인지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한 교수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어제 심하게 술을 마셨다면 다음 날 빈 술병만 봐도 질리게 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는 오히려 술을 반갑게 생각한다. 이런 것이 의존중독 성향이다. 게임에서는 의존중독보다는 반복 속의 변화를 통한 재미가 더 유저를 끌어들이는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 프로게이머 활동기간이 늘수록 전두엽 발달
대뇌피질의 전두엽은 ‘작동기억’(working memory) 또는 ‘작업기억’ 능력이라 불리는 기능을 한다. 이는 이미 들어온 정보를 머리 속에 유지하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3’이라는 문제를 들으면 사람들은 바로 ‘4’라고 대답한다. 문제를 보지도 않고 풀 수 있는 것은 1과 3을 기억하고 더하기(+)에 대한 개념이 있는 상태에서 계산하는 작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작동기억이다.
시공간 인지와 반복하고 변형이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도 전두엽에서 담당한다. 즉 전두엽은 뇌가 받아들이는 재미에 대해 뇌가 반응하는 곳이다. 어떤 사람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녹아 내린다고 주장한 부분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스타)와 <스타크래프트 2>(스타 2)를 플레이할 때 뇌가 활성화되는 부분을 살펴보면 서로 비슷하게 활성화가 되긴 했지만 <스타>를 할 때는 기억을 담당하는 두정엽과 전두엽이 더 활성화됐다.
반면 <스타 2>는 두정엽과 물체를 인식하는 부위인 소뇌가 활성화됐다. <스타 2>가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입체감을 통해서 균형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소뇌 자체가 균형감각과 관계 있기 때문에 자극이 되는 것이다.
한 교수는 “반면에 <스타 2>는 인터페이스가 향상되면서 상대적으로 컨트롤에 신경 쓸 부분이 줄어들었다. 반면 <스타크래프트>는 2편에 비해 순간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에 맞춰 선수들이 훈련했고, 활성화되는 부분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의 뇌 사진을 찍어본 결과 전두엽 안쪽의 두께가 프로게이머로 지낸 기간이 오래될수록 두꺼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프로게이머는 게임을 통해 긍정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하지만 그저 재미를 위해 오래 플레이하는 유저는 전두엽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킹 메모리에 대한 개념을 인지한다면 이를 향상시키는 게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그는 “게임을 통해 작동기억을 얼마나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반복, 변형, 보상 중추는 의존중독 문제와도 연결돼 있는 만큼 단순히 노출로 심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3개의 요소가 심각하게 강하다면 자제력이 약한 학생에게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게임을 통한 치료도 연구 중
한 교수는 게임과 뇌의 반응 연구와 함께 게임을 통한 자폐아 치료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과 달리 자폐아는 한 가지를 특별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를 말한다.
상황에 맞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자폐아는 사람을 만나서 눈을 마주치고 앉아 있는 것 자체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한 교수는 사람 대신 아바타가 나오고 채팅이 되는 게임을 선정해 일주일에 3번씩 게임을 통해 자폐아와 대화를 나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환자들은 게임에서 다른 유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꽃을 사주는 등 상황에 맞춰 행동하거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는 “기능성 게임을 보면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는 경우가 있다.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자폐아를 치료할 때도 기능성게임이 아닌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상용게임을 선택한 이유는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어야 환자들도 즐겁게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재미요소에 신경을 써 달라”고 말하며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