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1인칭 슈팅(FPS) 게임은 양쪽 팀이 평등한 조건에서 서로의 실력을 겨루며 싸워야 하는 것이 큰 전제조건이다. 평등한 조건 속에서 실력이 더 좋은 유저는 좋은 기록을 내고, 실력이 떨어지는 유저라면 자주 쓰러지게 된다.
온라인 FPS게임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기획자들은 ‘평등’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고민에 빠진다. 양쪽 팀을 평등하게 맞추고 경쟁하는 구조 속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니 말이다.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개발팀 기획자 박영일, 이창훈은 25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온라인 FPS는 MMORPG와 다르지 말입니다!!’라는 제목의 공동강연을 진행했다. 그들이 라이브 서비스를 하면서 느꼈던 고충과 노하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 FPS의 경쟁,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재미를 빼앗는다
넥슨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개발팀 기획자 박영일
넥슨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팀 박영일 기획자는 먼저 온라인 FPS의 구조상 생기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계속해서 유저의 레벨이 상승하고, 더 강한 아이템을 장착하는 MMORPG와는 다르게 체력이나 공격력이 무작정 높아질 수 없는 구조다.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한 발의 총알로도 적을 쓰러뜨릴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또 하나의 고민은 신규 맵이다. 온라인 FPS 개발자들은 새로운 맵을 업데이트하며 ‘이번에는 유저들이 새로운 맵에서 재미를 느끼게 될거야’ 하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규 맵이 생기더라도 금세 ‘국민맵’이라고 불리는 인기 맵들이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FPS가 어떻게 재미를 유발하는지 먼저 설명했다. 실력이 좋은 유저가 있다면 혼자 상대 팀의 모든 유저를 쓰러뜨릴 수도 있다. 이렇게 평등한 조건에서 서로의 실력을 겨루고, 누구든 실력이 좋다면 그에 합당한 점수를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혼자 점수가 높은 유저 한 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점수를 올리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상대 팀은 분명 실력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한 명의 유저 때문에 패배하기도 한다. 박영일 기획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잘하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유저에게 자신의 재미를 빼앗긴다. 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재미를 빼앗는 독특한 구조다”고 설명했다.
■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 정보를 통해 줄일 수 있다
박영일 기획자는 “기획자로서 게임을 잘하지 못하는 유저가 다른 유저에게 빼앗긴 재미를 보정해 주고 싶다”며 평등한 PvP 기반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먼저 FPS는 몬스터나 필드에 따라 난이도가 순차적으로 상승하는 MMORPG와는 다르게 PvP 기반이기 때문에 난이도가 순차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상대의 실력에 따라 게임마다 난이도가 달라지고, 여기에 흔히 말하는 ‘세컨드 아이디’로 초보를 학살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는 FPS의 기본인 ‘평등한 조건 속에서의 경쟁’을 깨지 않으면서 자신의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라자루스의 스트레스 이론’을 적용했다.
라자루스의 스트레스 이론이란, 스트레스는 인지에 따른 피드백이라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FPS의 스트레스는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당했다는 지각에서 비롯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할 때 극심해진다.
그는 전투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데스 캠’을 활용했다. 데스 캠은 일반적인 FPS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으로, 사망했을 때 내 캐릭터가 죽었던 상황을 다시 보여주는 기능이다. 그는 이 데스캠을 이용해 나를 사살한 유저의 행동을 잠시 동안 관찰할 수 있도록 했고, 좀 더 효과적으로 상대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복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있게 되고, 복수를 통해 아까 당했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FPS의 경쟁이라는 기반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스템을 통해 그 결점을 보완해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FPS에서 유저는 반드시 성장하지 않는다
넥슨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개발팀 레벨 기획자 이창훈
발표를 넘겨받은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팀 레벨 이창훈 기획자는 “FPS에서 유저는 RPG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RPG는 유저가 시간을 들여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아이템을 모은 만큼의 성장을 항상 보장하지만, FPS는 아니기 때문이다.
FPS는 유저가 맵에 익숙해져 있고 많이 플레이해 봤더라도 다른 상대를 만날 때마다 새로워지며, 특히 유저의 경험 축척 정도와 숙련도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손이 빠르거나 샷 감각이 좋은 유저라면 플레이 횟수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유저는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플레이 횟수나 시간에 비례해 레벨 등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기서부터 레벨 디자이너의 고민은 시작된다.
■ FPS의 난이도, 맵에 따라서도 바뀐다
이창훈 기획자는 FPS의 난이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시야’와 ‘이동’을 꼽았다. 시야가 넓으면 당연히 넓은 곳을 보고 대처할 수 있기에 유리하다. 이 때 상대와 나의 이동 경로나 방향에 따라 난이도는 달라진다.
그는 유저가 목표를 식별하고 반응해 총을 쏘는 동작에 이르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FPS에서 유저는 이동하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상대가 있다면 조준점을 상대에 맞추게 된다. 이런 교정을 반복하면서 오차 범위를 줄여나가게 되는데, 오차 범위가 줄어들수록 편하고 쉽게 느낀다.
이 때 갑자기 오차범위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상대가 좌우로 이동하는 경우다. 반대로 상대가 앞뒤로만 움직인다면 큰 오차범위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FPS에서 동선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유저가 느끼는 난이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밀폐된 방 안에서 입구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다. 유저는 방 안에서 진입경로 한 곳만 바라보면 되는 상황이라 시야가 넓으면서 이동도 자유롭다. 반면, 상대는 좁은 진입경로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돼 있고, 좌우보다는 앞뒤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T자 형태로 구성된 구간에서 두 명의 상대를 마주치게 되는 경우는 어떨까? 이 때 무턱대고 앞으로 나서면 옆이나 뒤에서 공격받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히려 뒤로 물러서서 상대가 좁은 통로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 “레벨 디자인을 통해서 유저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이창훈 기획자는 이렇게 유저의 경험이 쌓이며 맵의 구조 등에 따른 대처 방법을 학습하고 숙련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유저의 경험 축적에 따른 성장이다.
이어서 그는 맵을 만들 때 난이도를 조절해 초보자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맵 구조의 난이도를 낮춰 유저의 경험 축적이 수월하도록 만들면 같은 맵에서 계속 전투했을 때 남는 것은 샷에 대한 숙련도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발자는 맵을 만들 때 유저의 동선 등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유저의 재미를 위해 맵을 깎는 장인이 되어야 한다”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