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게임 개발사에 취업한 신입 기획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다름 아닌 ‘기획서 작성’이다. 으레 신입 기획자는 기획서에 어떤 부분을 설명해야 할지,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획서에는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작성하면 좋을까?
25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는 신입 기획자들을 위한 강연이 있었다. 넥슨 <마비노기 영웅전>팀 기획자 박일호 책임연구원은 ‘신입 기획자를 위한 실전! 게임 기획서’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기획서 작성에 필요한 내용과 작성 요령을 공유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넥슨 <마비노기 영웅전>팀 박일호 책임연구원
■ 기획서는 보는 사람에 맞춰 작성 “그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박일호 연구원은 게임 기획서에 대해 “내 의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설득시키는 문서다”고 요약했다. 예를 들어 기획자가 <마비노기 영웅전>에 ‘얼음으로 된 용’을 추가하고 싶다면 그 의도를 팀원들에게 전달하고, 함께 만들 마음이 들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기획서는 실제로 개발자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작업문서이기도 하다. 실제로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가 기획서를 보고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알고 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획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제안용 기획서, 콘텐츠 기획서, 시스템 기획서 등이 있는데, 각각 그 기획서를 볼 사람들이 다르다. 콘텐츠 기획서라면 아티스트가 주로 보게 되고, 시스템 기획서는 프로그래머가 주로 보게 된다. 그렇다면 역시 기획서를 읽는 대상에 맞춰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쓸 필요가 있다.
■ 제안용, 콘텐츠, 시스템 문서 만들기
박 연구원은 제안용 기획서, 콘텐츠 기획서, 시스템 기획서에 꼭 필요한 내용을 설명했다. 제안용 기획서는 팀장 및 팀원들에게 콘셉트 및 재미 요소를 보여주기 위해 쓴다. 기획 의도, 개발 목표, 콘셉트, 재미 요소가 꼭 들어가야 하는데, 장황하게 쓸 필요는 없다. 간단하게 핵심만 요약해서 1페이지 정도면 충분하다.
팀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좋은 제안용 문서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디어나 재미에 동의하고, 열심히 개발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하니까.
콘텐츠 기획서는 콘텐츠의 콘셉트가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아티스트가 작업하는 영역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아티스트는 자신들의 업무에 있어서는 기획자들보다 더 좋은 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들의 작업에 제한은 거는 것은 대개의 경우 좋지 않다.
또 어떤 리소스(게임을 만들기 위한 맵, 모델 등의 자원)를 만들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획서를 읽는 당사자가 스스로 몇 개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지 파악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스템 기획서를 쓸 때는 명확한 규칙이나 진행 방식 등을 설명해줘야 한다. 실제 게임에서 구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의 설명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또 프로그램 및 개발 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이나 개발 툴, 엔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그래머와 의사소통을 해야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시스템 기획서에서 자세하게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문서를 보고 실제 작업에 착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획서의 의도를 이해시키고 함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서 작성 요령, 백문의 글보다 한 장의 이미지!
그렇다면 실제 기획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되는 요령은 무엇이 있을까? 박 연구원은 “구구절절 긴 문장으로 설명하려 드는 것은 좋지 않다. 짧게 함축적으로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처음 기획자가 됐을 때 한 달 동안 36페이지 분량의 파티시스템 기획서를 썼었다. 하지만 지금은 5일 걸려서 5페이지면 설명을 끝낸다. 비결은 핵심을 요약해 설명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핵심을 요악해 전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전문성’이다. 전문 용어를 사용해 기획서를 작성하면 보다 짧은 문장 안에 핵심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다. 그는 기획자의 전문성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를 문서작성을 위한 워드 등의 프로그램 이해, 기획서 작성 양식 숙지, 팀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의 이해, 개발에 사용되는 툴에 대한 이해로 요약했다.
그는 이어서 기획서 작성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기획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백문의 글보다는 한 장의 이미지가 효율적이다. 글을 읽고 상상하는 것보다 이미지로 전달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전달할 때는 그림을 못 그려도 상관없다. 의도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 된다.
또 한 가지 팁은 모든 의도를 설명할 필요없이, 핵심적인 의도만 명확하게 설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기획서를 보고 작업할 개발자들 역시 프로이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핵심 의도만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면 된다.
기획서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할 때는 표를 통한 목록으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목록으로 전달 할 경우 무엇을 몇 개 만들어야 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때 꼭 들어갈 항목은 목록, 세목, 명칭, 설명, 비고다.
그는 “아티스트에게 전달할 콘텐츠 기획서에는 몇 개의 리소스가 필요할지 목록으로 작성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서는 작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박 연구원은 “기획서를 넘기면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보통 기획서 작성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획서 작성 이후 프로그래머 및 아티스트와 계속해서 회의하며 수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의를 하다 보면 기획서를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자연스러운 일이니 상처받지 말라. 하지만 핵심적인 의도는 변질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비노기 영웅전>에 얼음 용 ‘뷔제클로스’를 만들었을 때의 예를 들면서 “아무리 기획서를 수정하더라도 얼음 용을 만들겠다고 한 의도 자체는 변하지 않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획서를 팀원들에게 넘겨 놓고 나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웅장하고 거대한 얼음 용을 생각했는데, 미꾸라지 같은 용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 개발과정에서도 발생하는 일이다. 그래서 개발기간 중에 계속해서 다른 팀원들의 진행사항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처음 의도한 것과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프로토타입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미리 파악하거나 재미 등을 검증해 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를 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을 만들기로 했다면, 공중에 날아다니게 구현한 것을 토대로 테스트해 보면 된다. 이런 작업을 통해 발생할 문제를 미리 알고 수정할 수 있기에 오히려 개발기간이 짧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