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스위치는 인디게임의 천국이었지만, 쓰레기(Slop)로 가득 차게 됐다."
오늘(5월 29일) 테크 및 게임 전문 외신 더 버지(The Verge)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이다. 해당 기사에선 다른 게임 웹진 폴리곤의 2018년 기사를 인용하며 "인디포칼립스"(인디게임+아포칼립스)라는 단어 또한 사용됐다. 한 마디로 말해, 수요에 비해 게임 공급량이 너무 많고, 그 중에 쓰레기(Slop) 게임도 많은데, 닌텐도 스토어가 이런 과잉 공급으로 인해 오염됐다는 것이다.
흥미롭게 읽은 기사지만, 기자는 해당 기사의 표현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급량이 과도하게 많은 것도 맞고 스토어에 불편함이 있는 것도 맞다고 보지만, '퀄리티가 나쁜 게임'의 존재를 비난하는 건 다소 비겁하고 아쉬운 관점이라 보고 있다. "인디포칼립스"라는 단어도, 이 상황을 인디게임이 초래한 것처럼 느껴져 어색하다. 그 공급량 안에서도 좋은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게 스토어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잘 알려져 있듯, 닌텐도 스위치 2는 기존 스위치 1 게임에 대한 하위 호환을 지원한다. 다시 말해, 스위치 1의 닌텐도 e숍에서 겪던 문제를 그대로 계승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퀄리티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퍼스트 파티 게임 라인업을 즐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오늘은 '닌텐도 스위치 2' 구매자들이 한 번쯤 고민해보면 좋을 "어떤 게임을 구매해야 하나"라는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보려 한다.

게임을 구매하려면 일단 스토어에 들어가야 한다. PC에선 스팀, 스토브, 에픽게임즈 스토어, 잇치 아이오, GOG 등이 있겠고, 모바일에선 양대 마켓으로 불리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가 있다. 콘솔 진영엔 PS 스토어, Xbox의 MS 스토어, 닌텐도 e숍 등이 있다.
닌텐도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이 중에서도 닌텐도 e숍의 경험은 최하위권에 속한다고 본다. 좋은 와이파이 환경에서도 페이지 하나를 넘나들 때마다 로딩을 경험해야 하고, 개별 게임 페이지에서의 설명은 게임 구매 여부를 결정하기엔 충분치 못한 정보량을 제공하고 있다.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질 나쁜 게임의 과잉 공급까지 더해지면서, 스토어 탐색 과정에서 좋은 게임을 찾고 구매하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래서일까? 기자는 닌텐도 스위치로 적잖은 게임을 구매했지만, 매번 다른 경로를 통해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 후 게임을 구매해왔다. 닌텐도 독점작이 아니라면 스팀 페이지나 개발사 공식 유튜브를 한 번 더 살펴보고 구매했고, 독점작인 경우엔 공식 홈페이지나 먼저 구매한 유저, 스트리머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여러분도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질 나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AI 아트로 도배를 해놓거나, 과도하게 선정적이면 무조건 질 나쁜 게임인 걸까? 물론, 기자에겐 기자 본인 나름의 기준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선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수박 게임>과 <8번 출구>의 예시를 생각해보자. 이 두 게임이 엄청난 퀄리티를 보유해서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던가? 그렇지 않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으로 재밌거나 참신한 게임들도 있다. 법적 제재 대상만 아니라면,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는 끝에 새로운 장르나 문법도 형성되는 법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큐레이션 기준은 스토어에서 어느 정도 제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닌텐도 e숍에서는 픽업, NEW, 할인, 랭킹, 발매 임박 등의 탭을 제공하고 있다. 이 중에서 신규 게임을 탐색하는 입장에서 자주 들어가게 되는 탭은 NEW, 할인, 랭킹 등의 탭인데, 이 3가지 탭 모두 조금만 아래로 스크롤하면 스토어의 물을 흐리는 수준의 게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은 기자의 스위치 1 기기를 촬영한 것이다. e숍에서 NEW 탭으로 들어간 상태다. <야바이 걸스>, <헨타이 솔리테어> 등의 게임을 굳이 보고 싶지 않았지만, 몇 안 되는 탭 선택지 안에서 이런 게임이 자주 뜨곤 한다.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에도 짧은 로딩이 가로막는데, 보여지는 게임들마저 이러니 경험이 원활하지 못하다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저 게임을 만든 사람들의 문제라기 보단, 스토어 관리 문제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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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이면 스위치 2가 시중에 풀린다. 닌텐도 측에서 물량을 많이 준비했다곤 하지만, 없어서 못사는 현상은 스위치 1 품귀 현상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닌텐도가 머리를 참 잘 썼다고 생각한다. 스위치 2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카메라, 보이스 채팅을 연결해 실시간으로 함께 게임을 즐기는 파티 플레이인데, 추첨 판매 응모 조건부터가 '스위치 온라인' 1년 이상 가입자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이런 조건을 뚫고 응모한 사람들은 파티 플레이 기능에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기자는 지난 4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닌텐도 스위치 2' 세계 최초 시연 현장에서 기기 실물과 주요 게임 라인업을 직접 체험해보고 왔다. 사람들이 본체 가격 648,000원에 대해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구매자들도 기기를 직접 만져보면 그 돈값은 충분히 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생각보다 안 무겁고, 생각보다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스위치 1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경험이었다.
다만, 퍼스트 파티 게임 라인업의 가격은 구매가 망설여질 정도로 비싼 게 맞다고 보고 있다. 타이틀 하나에 10만 원, 9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사람들이 쉽게 납득할까?


"스위치 2를 꼭 사야만 한다"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의 퍼스트 파티 게임 라인업 또는 주요 독점작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스위치 2 에디션으로 업그레이드해 추가 콘텐츠나 향상된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기존 게임들도 있고, 이게 스위치 2로도 나온다고 하는 고사양 타이틀도 꽤 있지만, 스위치 2 기기 구매라는 허들에 영향을 크게 줄 게임들은 아니기에 이 주제에선 일단 제외했다. 리마스터 및 완전판 등도 제외했다.
또한 <드래그 앤 드라이브>나 <웰컴 투어>처럼 기기 보유자라면 게임을 살 만 하지만, 해당 타이틀 때문에 기기를 구매하게 할 정도의 파급력을 갖지는 않은 게임도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 <마리오 카트 월드> 2025년 6월 5일 출시. 패키지 98,000원, 디지털 89,800원.
▶ <동키콩 바난자> 2025년 7월 17일 출시. 패키지 88,000원, 디지털 79,800원.
▶ <포켓몬 레전드 Z-A> 2025년 10월 16일 출시. 스위치 2 에디션 79,800원, 스위치 1 버전 69,800원.
▶ <젤다무쌍 봉인 전기> 2025년 겨울. 가격 미정.
▶ <커비의 에어라이더> 2025년 연내 출시. 가격 미정.
▶ <레이튼 교수와 증기의 신세계> 2025년 연내 출시. 스위치 1 버전과 스위치 2 에디션 함께 발매.
▶ <메트로이트 프라임 4 비욘드> 2025년 연내 출시. 스위치 1 버전과 스위치 2 에디션 함께 발매.
▶ <더스크블러드> 2026년 스위치 2 독점 출시. 가격 미정.
▶ <리듬 천국 미라클 스타즈> 2026년 스위치 독점 출시. (스위치 2 에디션은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 <더스크블러드> 하나 때문에라도 기기를 사고 묵혀두는 구매자도 있으리라.
핵심 게임만 놓고 보면, 상황 판단이 쉬워진다. 스위치 2 기기를 구매한 사람들은 <마카 월드>나 <동키콩 바난자>를 몇 달 동안 즐길 게 아니라면, 스위치 1의 기존 게임들을 '스위치 2 에디션' 게임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즐기거나, 다른 플랫폼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스위치 2의 휴대성을 적극 활용해 즐기는 등 핵심 타이틀이 아닌 곳으로 눈을 돌려야 기기 구매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그나마 있는 핵심 타이틀도 10만 원, 9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니, 지갑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가격의 게임을 물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수요를 충족해주는 건 결국 웰메이드 인디게임들이다.
우연 반, 의도 반으로 영리하게 이 기회의 시기를 맞이하는 인디게임들도 있다. 기자 또한 최근 외부 취재 현장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낸 인디게임 개발사들을 만나면, 스위치 2 기기 출시 이후의 기회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하던 중이었다. 퍼스트 파티 타이틀 만큼의 볼륨을 제공하긴 어렵겠지만, 합리적인 가격선에서 양질의 콘텐츠와 인디게임 특유의 개성 있는 재미를 앞세우면 스위치 2 주요 타이틀 사이의 공백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스위치 2 출시가 코앞이다. 주요 타이틀 사이의 공백에서 생기는 기회를 누군가는 쟁취할 것이다. 스위치 2 구매자들의 관심을 끌어오는 경쟁이 인디게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 웰메이드 초능력 추리 게임으로 입소문을 탄 <스테퍼 케이스>가 5월 29일 닌텐도 스위치로 정식 출시됐다. 일본어 풀더빙까지 새롭게 추가됐기 때문에, 기존에 게임을 해봤던 사람들에게도 눈길을 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