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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자인이란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의미를 만드는 것"

게임 디자이너 꿈꾸는 한국 학생들 만났다

한지훈(퀴온) 2025-05-29 11:41:10

​전 세계 유명 게임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성균관대학교 게임센터가 게임 산업의 창의성 회복과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 행사 ‘Ctrl+Alt+Game: 상상력의 재부팅’을 개최했다. 게임디자인학과 설립 1주년을 맞아 개최된 이번 행사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성균관대학교와 판교 테크노밸리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진행된다.


이번 행사에는 해외 유명 대학 및 기관에서 활동 중인 국내외 게임디자이너들이 연사로 참여했다. 주요 연사로는 미국의 게임 개발사 게임랩(GameLab)의 공동창립자인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 뉴욕대학교 게임센터 교수와 이승택 놀공 대표, 예스퍼 율(Jesper Juul)  덴마크 왕립 아카데미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활동과 연구는 초기 게임 디자인 이론을 형성하고 이를 학문화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28일 진행된 행사에선 이들이 게임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29일에는 이들과 함께 직접 게임을 디자인하는 워크숍이 진행되며, 오는 30일에는 게임 산업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해 글로벌 게임 산업의 현주소와 한국 게임 산업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아래는 28일 이들이 나눈 질의응답의 내용이다.


왼쪽부터 에릭 짐머만 뉴욕대 게임센터 교수, 예스퍼 율 덴마크 왕립 아카데미 교수, 이승택 놀공 대표




Q. 각자가 생각하는 ‘게임 디자인’의 정의는 무엇인가?


A. 예스퍼 율: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일종의 연극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게임 디자인은 참가자들이 무언가를 고민하고 결정하도록 만든다. 체스 게임에서는 체스말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요리 게임에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요리를 할지, 어떤 재료를 넣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 디자인은 플레이어가 현실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캐주얼 게임은 대부분 사람들이 평소에 하고 싶어 하는 즐거운 것들을 다룬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평화로운 섬에서 귀여운 고양이들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하드코어한 게임들도 그렇다. 은하계에서 거미 외계인들과 싸우는 일은 현실에선 할 수 없지만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지 않은가. 이 같은 경험들을 제공하는 것이 게임 디자인이다.


이승택: 게임 디자인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즉 누군가가 어떤 생각을 갖도록 만들고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한 행동을 유발한다는 게 게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게임 디자인은 일종의 마찰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많은 디자인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것을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반면, 게임 디자인은 오히려 무언가를 매우 눈에 띄게 만든다. 마찰을 통해 그것을 인식하게 만들고 때로는 플레이어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게임 디자인은 마찰을 통해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이해하게 만들어 어떤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에릭 짐머만: 간단한 게임을 하나 해보자. 다섯 손가락은 자신의 남은 목숨을 의미한다. 각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가 되면 다른 플레이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선택된 플레이어는 목숨을 하나 잃는다.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순서대로 자신의 차례를 진행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가 이기는 게임이다.


게임 디자인은 이런 규칙과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다. 플레이어가 따르고 행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이런 의미에서 게임 디자인은 다른 디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게임 디자인이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앞선 게임에서 누군가를 가리키는 행동은 그를 공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선택받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고, 남은 손가락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숨기려고 든다.


게임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장 즐겁다. 예술 작품을 만들 때와는 다른 경험이다. 예술 작품은 하나의 동일한 경험에서 각자의 해석이 등장하지만, 게임은 서로 다른 경험에서 의미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규칙과 도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게임 디자인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Q.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


A. 예스퍼: 개인적으로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게임 산업의 역사는 닌텐도와 아타리로부터 시작되어 코모도어 64나 게임큐브 등 다양한 게임 기기들과 이를 통해 구동되는 수많은 게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에선 PC 게임이 많이 이용되고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대 또는 국가별로 다르게 게임을 경험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이승택​: 최근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를 위해 공감에 관한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게임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이 공감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우리는 쉽게 무언가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진짜 공감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공감한다고 해도, 실제로 시각장애를 겪지 않았다면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다, 공감은 분명히 좋은 개념이지만 실제로 공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비현실적인 일이다.


앞에서 게임 디자인이란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라 밝혔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저는 게임을 통해 하나의 행동을 공유하고 공감을 형성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에릭: 교육자로서 어떻게 게임 디자인을 가르칠 수 있을지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 모두가 계속 알아가고 있는 부분이지만, 게임 디자인이 게임 외에 다른 분야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게임 디자인은 문화와 기술, 예술이 모두 결합된 영역이다. 이렇게 종합적인 영역을 다루는 사고 방식을 다른 분야의 학문에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1977년부터 1999년까지 게임 기기별 타이틀 출시량을 소개하고 있는 예스퍼 율


Q. AI가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시대의 게임 디자인은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A. 에릭: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AI가 많은 일들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게임 디자인만큼은 AI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게임 디자인은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게임 속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게 만들고, 시스템을 조정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조정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어야 가능한데, AI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다.


물론 AI가 아이디어나 텍스트, 이미지 에셋, 애니메이션, 음악 등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디자인은 불가능하다. AI에게 게임을 디자인하라고 요청하면 기껏해야 기획안 정도는 만들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게임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통해 문제 해결 방법을 익히라고 강조하고 있다. 게임 디자인에는 끊임없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기를 반복하고, 다른 이들과 협업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걸 AI가 해낼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Q. 게임을 디자인하다 보면 한 명의 게이머로서, 학자로서, 또 창작자로서 다양한 관점으로 게임을 접근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게임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A. 에릭: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게 된다. 게임 디자이너는 여러 역할을 맡는다. 파티 주최자가 되어 분위기를 띄우고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만들어야 하고, 엔지니어가 되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적절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때로는 이야기꾼이 되어 캐릭터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게임 디자이너에게는 이렇게 같은 프로젝트에서 매일 다른 문제를 마주하며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승택​: 물론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한 번에 맡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모든 일을 혼자 할 필요는 없다.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연 중인 에릭 짐머만


Q. 프로젝트에는 서로 다른 배경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뭉친다. 이들과의 협업에는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 에릭: 앞서 말한 대로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어떻게 협력하고 결정을 내릴 것인지 등 우리가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모두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공통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프로젝트에 대해 왜 흥미를 느끼는지 설명하는 단어나 구문을 브레인스토밍한다. 이를 모두에게 공유하고 문장을 만들어서 프로젝트의 표어로 삼는다. 수백 명이 함께 일하는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이 같은 ‘기둥’을 여러 개 세워 프로젝트를 지탱한다. 모두가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와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프로젝트의 크기와 범위에 관계없이 중요한 일이다.



Q. 게임을 활용한 교육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아직 게임을 통한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교육용 게임은 우리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 게임이 다른 목적, 예를 들어 교육이나 치료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져도 여전히 게임의 본질을 유지할 수 있나?


A. 이승택​: 교육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게임이 그 본질을 잃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게임은 재밌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그건 게임이 아니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선 누군가를 충분히 몰입시켜야 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몰입이 안 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게임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다. 게임은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니까. 사람들이 단순히 듣고 있지 않고, 직접 행동하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는 건강을 위해 운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운동하지 않고, 담배가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 교육은 게임과 비슷하다. 디자이너가 플레이어의 경험을 고려하듯, 교사도 학생의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


재미없는 교육용 게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교육용 게임이라서 재미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냥 형편없이 설계된 나쁜 게임이다.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충분히 고민하고 이에 맞게 디자인된다면 재미있는 교육용 게임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행사를 주최한 성균관대 게임센터 및 게임스 포 체인지(Games for Change)와 강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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