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미디어이자 예술이었다면, 게임은 21세기를 대표할 만한 새로운 미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만 하더라도 게임의 시장규모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음악, 만화 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크다. 5대 문화콘텐츠 장르 중 가장 많은 수출액을 자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한 게임의 시장 규모 덕분에 상당수 게임이 영화로 재현되거나, 인지도가 높은 게임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디어 학자인 헨리 젠킨스는 이 같은 매체 간의 교섭과 재창조 양상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콘텐츠의 생명력을 지속하는데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가적 논란이 됐던 최초의 '영화 기반 게임', <죽음의 경주>
영화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게임은 1976년 엑시디(Exidy)에서 개발한 <죽음의 경주>(Death Race)다. 이 아케이드 게임은 1975년에 나온 컬트 영화 <죽음의 경주 2000>(Death Race 2000)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죽음의 경주 2000>은 인권과 자유가 통제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근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사람을 치면 점수가 올라가는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B급 영화다. 게임은 이 영화로부터 특정한 액션, 즉 사람을 치면 점수가 올라가는 자동차 경주라는 설정을 가져왔다.
아케이드 게임장 용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핸들과 페달을 조작해 계속해서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치는 것을 주요 메커니즘으로 한다. 몬스터나 좀비가 아닌 사람을 마구 치고 다닌다는 점에서 게임의 폭력성에 관해 국가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주요 방송사(CBS, NBC) 등에서 비중 있게 이 내용을 다뤘고, '가장 논란이 된 게임 리스트'의 단골 손님이 됐다.
영화와 게임의 트랜스미디어적 전환을 최초로 보여준 이 게임이 지닌 폭력성은 상당히 상징적인데, 이는 게임과 영화 사이의 트랜스미디어적인 전환이 서사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임은 영화 속에서 표현된 특정한 액션을 메커니즘으로 가져와 특별한 서사적 장치 없이 이를 게임화할 수 있다. 게임은 소설,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등 서사적 매체와 달리 서사를 그 중심적인 진행방식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많은 게임이 퀘스트나 미션, 전사(前史) 등의 이야기적인 요소들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한 역학적 요소(mechanics)과 사용자의 상호작용에 있다.
앞선 <죽음의 경주>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게임에서는 영화의 서사 전반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없다. 영화 속 흥미로운 액션을 부분적으로 차용해 게임의 전면에 내세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와 게임 사이의 트랜스미디어적인 전환의 역사는 이처럼 본질적으로 다른 두 장르를 서사적으로 화해시키기 위한 시도로 점철됐으며, 거의 대부분 상업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유명한 게임 주인공의 영화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반대로 게임을 영화화하는 경우는 영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보다 출발이 매우 늦었다. 비디오 게임은 1972년에 출시된 <퐁>(Pong)의 성공으로 산업화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게임의 주인공은 1981년작 <동키콩>(Dongkey Kong)으로부터 시작해,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Super Mario Bros.)로 훌쩍 뛰어오른 마리오였다. 이 캐릭터의 인기 덕분에 영화화가 가능해졌다.
게임을 영화화한 사례 중 국제적으로 널리 배급된 작품 역시 1993년에 출시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최초다. 게임 <슈퍼 마리오>에서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공룡 쿠파을 인간 세계에 등장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놉시스를 마련한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배관공으로 일하는 마리오와 루이지 형제는 맨하탄 지하에 있는 공룡들의 도시 디노하탄을 발견한다. 인간처럼 진화를 거듭하면서 살아오던 공룡들은 자원의 고갈과 곰팡이에 시달린 나머지 쿠파가 반란을 일으켜 인간 세계로의 침입을 준비 중이었다.”
이 작품의 경우 게임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영화적 문법에 맞추어 인과관계적으로 설명하려다 기존의 게임이 지닌 경쾌함을 잃어버린 경우에 해당된다.
게임에서 흔히 사용되는 초현실적인 배경이나 판타지적인 요소들은 게임 내에서는 현실의 요소들과 특별한 설명이나 인과관계 없이도 충분히 즐길만한 상호작용적 요소로 전환가능하다. 화면에 표시되는 동적 요소(dynamics)들이 각 요소들 간의 합리성이나 인과관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영국의 시인 새뮤얼 코울리지(Samuel Coleridge)가 말한 ‘불신의 자발적 포기(willingly suspension of disbelief)’에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부끄러운 성과
문제는 이렇게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들도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이후 <모탈 컴뱃>, <파이널 판타지>, <라라 크로프트와 툼 레이더>, <사일런트 힐>, <맥스 페인> 등 국제적으로 개봉된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 27편 중 여러 영화평론지의 점수를 평균 낸 메타크리틱 점수는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균 30점에 불과하다.
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모탈 컴뱃>의 경우도 58점에 그치고 있다. 이는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대부분 기존 게임 팬층의 기호에만 의존하면서 일반 대중의 공감을 살만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세울만한 스토리가 없는 액션 중심 게임의 스토리를 개작하다 기존의 게임 팬층마저 영화를 외면해버린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처럼 문화콘텐츠 창작론을 언급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등의 용어가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각 장르의 관습과 문법을 무시한 원 소스 멀티 유즈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의 실패 사례만 보더라도 충분히 예를 들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질 꼭지들에서는 디지털 게임이 산업화되기 시작한 1972년을 이후 게임이 영화로, 혹은 영화가 게임으로 트랜스미디어적인 전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를 통시적으로 검토해보고, 이러한 트랜스미디어적인 전환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안을 제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