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게임생태계를 떠돌고 있다. 게임 토론회라는.’
2017년 한국 게임 생태계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주일이 멀다하고 각종 게임 토론회와 포럼 등이 열리고 있는 거죠. 4월 20일 현재 14개의 행사가 쏟아졌습니다. 3월 31일과 4월 17일에는 하루에 행사가 두 개나 있었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계에 무슨 긴급한 이슈가 있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시기가 시기여서 그런 듯합니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 누가 되건 정권 교체는 확실해졌습니다. 따라서,
▲ 정부 정책의 기조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표를 잘 합시다!)
▲ 정부 조직과 공공기관의 위상과 역할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꼭 투표를 해야죠!)
▲ 새로운 공공기관이나 민간 위원회 등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 각 기관과 위원회의 수장이 바뀔 수도 있고, 새로 임명될 수도 있겠죠.
그러니, 움츠려 있던 각종 의견과 요청, 요구가 튀어나오고, 공적인 소망 또는 사적인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겠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고요.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민주주의'와 '게임 생태계' 모두 크게 위축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애정하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민주주의의 핵심 영역이라고 칭한 ‘공론의 장’(public sphere, 맨 아래 참조)이 열리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게임 생태계가 처한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가 늦은 감이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그 많은 토론회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잘 몰랐습니다. 게으른 탓이 크지만, 너무 많은 토론회가 한꺼번에 쏟아져 정신을 못 차렸죠. 이런 토론회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정도의 보도는 간헐적으로 접했습니다. 피식 웃기도 했고, 쯧쯧 한심해 하기도 했죠. 왜 이렇게 많이 열리나,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좀 이상한 흐름이 느껴졌습니다.
저희 기자에게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대충은 아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업계 관계자와 게이머에게 물어봤습니다. “잘 몰라요.”
의회 민주주의 핵심인 ‘공론의 장’은 숱하게 열렸는데, 정작 민주주의의 파수꾼(언론)과 주인(게이머, 게임 생태계 종사자)은 모르고 있는 엉뚱한 상황. 하버마스가 경고한 ‘민주주의의 재봉건화’처럼 느껴졌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 또는 자본 권력에 공론의 장이 귀속, 악용되는 현상 말이죠.
3년 전 ‘게임과 권력’ 시리즈를 쓰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이명박 정권 시기, 게임을 놓고 펼쳐졌던 뉴라이트와 일부 개신교 단체, (쓰다 말았던) 정신의학 기관들의 일방적이고, 집요한 공세와 그 뒤에 놓여있던 이해관계가 떠올랐죠. 그 당시 그들도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활용해 각종 입법 활동을 했습니다. 게임 생태계는 일방적으로 유린당했고요. 미련한 저는 그 음험한 흐름을 3년 뒤에야 겨우 파악하고, 쓸 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게임과 권력] ③ 뉴라이트와 게임규제 (1/2)
물론 올해 열린 토론회나 포럼 등은 그 당시 상황과 무척 다릅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할 수 있죠. 게임 생태계의 위기 해결 방안이 주로 논의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다수 우리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거죠. 자주 열리는 토론회와 포럼 등이 공론의 장이 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역대 가장 많은 게임 토론회가 국회에서 집중적으로 열렸고, 국회의원들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자주 나오는 주제와 관련 기관, 인물 등의 일관된 흐름이 있고, 그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분명 어떤 맥락과 배경이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니 업계 주변에서는 수근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토론회라는 공론의 장이 ‘요식행위’로 활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디스이즈게임은 올해 열렸던 모든 게임 관련 토론회와 포럼을 체크했습니다.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룬 행사들과 함께 우려되는 흐름도 엿보였습니다. 여론의 쏠림현상이 목격됐고, 끼리끼리(like-minded)의 움직임도 포착됐습니다.
토론회가 숱하게 쏟아진 동안 공론의 장은 결코 열리지 않았고, 저희의 시야는 깜깜했습니다. '깜깜이 선거'를 걱정하는 여론은 있지만, '깜깜이 토론회'를 우려하는 여론은 없었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토론회에 대한 작은 공론의 장을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들어 볼까 합니다. 아래와 같은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 언제, 어디서 어떤 행사가 열렸는가?
▲ 어떤 주제가 주로 논의됐는가?
▲ 어떤 기관이나 사람이 그런 행사를 주도하는가?
▲ 각각의 주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 바람직한 토론회와 진지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무엇인가?
위기에 처한 한국 게임 생태계를 돕기 위한 토론회와 포럼 등은 환영합니다. 그것이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특정 업체나 기관, 개인의 이해를 위해 악용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도 피해야 합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그런 우려가 불식되고 폐해가 청산돼, 건전한 공론의 장이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이후 나올 콘텐츠들 관심있게 봐주기 바랍니다.
더불어, 적극적인 댓글 참여와 공유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우리 모두의 리그’로 바꿔나가는 무모한 삽질을 도와주시길 요청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공론의 장 (또는 공론장, public sphere)
현존하는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민주주의의 핵심 영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론장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면서 여론을 형성시키고 결집시키는 민주주의의 핵심 거점이라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17, 18세기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유행한 카페와 살롱에서 '신분에 구애 받지 않는 토론문화'의 진수를 발견한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토론에 참석할 수 있으며, 금기의 영역에 있던 주제까지 토론하는 공간'이란 공론장 개념과 함께 '이상적 담론 상황'이란 하버마스의 주장은 민주적 토론 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이상적 담론 상황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그로 인한 광고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성역 없는 토론이란 사실상 무의미해져 버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① [허접칼럼] 누구를 위해 게임 토론회는 열리나?
② [기획] 2017년 봄, 어떤 게임 토론회와 포럼이 열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