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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룩백] 바꾸고 고치고 또 변경하고...'라핀'의 원동력은 각별함이었다

스튜디오 두달 포스트모템 ② 토이 프로젝트에서 업(業)으로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12-24 09:37:11

2019년 12월 말, 다섯 명의 대학생들이 방학 동안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이게 되었다. 하지만 개발은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직접 만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온라인 콜로 초창기 협업을 하게 되었다. 얼굴을 못 본 상태에서 개발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것은 우리 팀이 넘어야 할 산 중 가장 작은 것에 불과했다.


지난 1편에서는 스튜디오 두달이라는 팀이 결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다섯 토끼들의 이야기 <라핀>을 만들며 겪은 여러 굴곡을 전해드리려 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라핀>이 될 수 있었는지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 디테일을 모두 담았다. /기고=스튜디오 두달 김민정 공동대표,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모바일게임에서 PC 게임으로

<라핀>은 원래 모바일게임으로 기획되었다. 토끼를 이동시키고, 점프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주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2020년, <라핀>의 기획을 구체화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우리의 욕심은 점점 커져 갔다. 모두의 니즈를 모으다 보니, 게임은 처음 계획보다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변경했을 때의 득과 실을 명확히 따져보며 신중하게 결정했을 테지만, 작은 팀이었던 그땐 다른 무엇보다 우리 팀이 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초기 모바일게임 버전 <라핀>의 프로토타입 플레이 화면

훨씬 정밀한 조작을 요하는 시스템을 추구하고 싶었고, 토끼들의 스토리를 보다 깊게 풀어내길 원했다. 결론적으로 캐주얼한 느낌보단 좀 더 정교한 조작이 가능한, 오랜 시간 동안 앉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우리는 바라고 있었다.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면 <라핀>은 모바일게임이 아닌 PC 게임의 형태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방학 프로젝트로 함께하기로 한 팀원들인데, 프로젝트가 길어지는 것에 부담감이 있을 만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팀원 모두 긴 시간을 들여 <라핀>을 PC 게임으로 개발하는 것에 긍정적이었다. '이 포맷의 게임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팀원들 또한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렇게 스튜디오 두달은 방학 동안의 프로젝트를 넘어, 긴 호흡의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학기 중에도 최대한 시간을 맞춰 <라핀> 개발을 진행하려 노력했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집중 작업'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콜로 모여 작업을 진행했다. 모두 각자의 일정을 조율해 만들어 낸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일주일에 4시간 남짓한 작업 시간 동안, 서로의 작업물에 대해 열띤 피드백을 했고, 여러 회의를 진행했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던 때였지만, <라핀>이란 프로젝트를 위해 늦은 저녁 시간에 모여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척 각별했다. 그 각별함이, 그 이후로 이어진 여러 번의 고통스러운 게임 수정 과정을 기꺼이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라핀>은​ 많은 수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 메인 기획과 스토리텔링 방식의 변경

2020년, 개발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라핀>의 메인 기획은 계속해서 삐그덕거렸다. 개발 초기의 게임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게 느껴졌고,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 기획을 조금씩 변경해봤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그렇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족한 부분에 괴로워하던 중, BIC 2020에 <라핀>을 출품하게 되었다.


개발자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프로젝트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엔 큰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땐 플레이어분들의 피드백이 그만큼 절실했다. 너무나 부족한 빌드지만, 플레이어분들이 어떻게 게임을 플레이하는지 확인하고, 직설적인 피드백을 꼭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우리 게임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고칠 부분을 명확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20년 당시의 BIC 전시작 썸네일. 
썸네일 일러스트를 그릴 시간이 없어 인게임 화면과 스프라이트로 간단히 만들었다.


그렇게 BIC 2020 온라인 전시에 당시 개발 버전을 출품했고, 역시 냉담한 반응을 마주하게 됐다. 플레이어분들이 남긴 피드백을 하나하나 소중히 읽고 고칠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피드백을 들여다보니, 개별 부분들을 고치는 것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라핀>은 대수술이 필요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스토리와 플랫포밍이 완전히 유리된 게임플레이 방식이었다. 


원래 <라핀>은 Day별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1일차, 2일차, 3일차를 거치며 총 40일차-까지의 미션과 스토리가 있었다. 주인공 리베는 식량 담당이고, 토끼굴에서 밖으로 나가 그날의 할당된 식량을 바깥에서 가져오기 위한 플랫포밍을 했다. 플랫포밍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 날짜에 토끼굴에서 있었던 토끼들의 스토리를 감상한다. 그리고 방에서 '잠자기'를 누르면 다음 날로 넘어갔다.


이런 토끼들의 스토리를 매일의 플랫포밍 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구조는 결국, 플랫포밍을 하고 싶은 사람에겐 밤에 토끼굴에서 일어나는 스토리 이벤트가 플래포밍의 흐름을 끊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스토리를 감상하고 싶은 사람에겐 매일매일 해야 하는 플랫포밍이 숙제처럼 다가가게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것은 게임에 어울리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나의 패착이었다.


소설과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너무나 다르다. 특히 <라핀>처럼 스토리 드리븐이 아닌 게임에선 그 차이가 두드러졌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소설의 독자는 글의 행간까지도 유추해가며 천천히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단 것이고, 게임의 플레이어는 스토리를 대부분 안 읽는다는 점이었다.


소설은 독자들이 문장 하나하나를 공들여 읽기에 문장 단위의 섬세함이 필수적이다. 무언가 암시할 때도, 사소한 뉘앙스를 정교하게 다룰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에선 오히려 그런 섬세함은 독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교하게 숨기거나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닌,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연타하며 대사를 넘기더라도 주요한 정보는 웬만하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게임 스토리를 대충 읽거나 안 읽는다'는 점을 수용하는 과정이, 오랫동안 '공들여 읽는다'를 전제하는 소설을 써왔던 내겐 초기에 적응하기 힘든 포인트였다. '사람들은 게임 스토리를 잘 안 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나니, 스토리 드리븐이 아닌 게임의 스토리는 플레이어의 행동(<라핀>에서는 플랫포밍)과 최대한 결합될 때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글로 보여주기보다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그 장면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혹은 글로서 전달한다면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 읽게끔 유도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흥미가 갈 수 있도록 여러 힌트를 이곳저곳에 숨겨둬야 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 읽게 하고, 큰 그림을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그릴 수 있게 하거나 그런 감각을 주면 가장 좋다. 현재 개발 중인 <솔라테리아>에선 이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솔라테리아> 스크린샷. 모든 스토리는 원한다면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볼 수 있게 했다.

다만, <라핀>은 선형적인 스토리 구조였고, 다섯 토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기에 스토리 감상을 완전히 플레이어의 선택에만 남겨둘 수는 없었다. 결국 '메인 스토리'라는 것이 존재해야 했고, 플레이어의 조작을 막는 대화 이벤트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스토리에서 능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스토리와 플랫포밍을 결합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먼저 플랫포밍의 이유를 '식량을 구하기 위해'에서,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떠나기 위해'로 변경했고, 리베의 역할을 '식량 탐사'에서 '탐험대장을 하고 싶어 하는 막내'로 변경했다.


<라핀>의 기존 스토리 포커스는 인간들의 공사로 인해 토끼굴을 떠나기 전, 토끼굴 속에서 일어나는 토끼들의 갈등과 화해였다. 하지만 이 변경을 바탕으로 스토리 포커스는 이미 토끼굴을 떠나는 날을 기점으로, 낙원을 찾아 떠나는 토끼 탐험대의 모험 이야기와 동료애로 변경되었다. 토끼들이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주된 서사로 하고, 모험 과정에서의 여러 난관들과 그 해결 과정을 스토리와 그에 대응하는 플랫포밍으로 풀어내 보려고 시도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협동하는 <라핀>의 토끼들.
리베는 열기구 위에서 뛰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열기구 안에 타 있는 장면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족제비에 의해 동생을 잃은 몽블랑의 슬픔과 책임감은, 동료들을 위협하는 족제비를 안고 떨어지는 장면으로 변했다. 리베에게 언제나 밝은 등불이 되어주고 싶었던 대장의 서사는, 어둑한 하수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대장을 따라 리베(플레이어)가 대장의 뒤를 따르는 플랫포밍으로 전달했다. 다섯 토끼들이 협동한다는 테마는, 토끼들이 함께 트램카를 조작해 강을 건너는 이벤트성 플랫포밍 등으로 전달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리베가 모험을 거치며 성장해 겁쟁이 막내 이미지를 벗고 모두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는 점은, 초반엔 리베가 주도적으로 하는 행동보단 요청과 명령에 의해 움직이게 하고, 후반엔 어려운 플랫포밍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또한, 이야기 진행을 위한 메인 스토리 외엔 모두 선택적인 잡담으로 두어, 플랫포밍을 원하는 플레이어는 메인 스토리 외엔 추가적인 스토리를 굳이 감상할 필요가 없게 했고, 토끼들과의 대화를 원하는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다른 플랫폼으로 향해 숨어 있는 토끼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물론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딪혀 보며 알아가는 중이다. <라핀>은 첫 작품이라 여전히 대사가 많은 측면이 있었고, 구조상 해결하기 어려웠던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라핀>의 이야기가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라핀>을 제작했다.


협동해 여러 상황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라핀>의 토끼들.


스토리와 플랫포밍을 더 결합하는 방식의 기획 수정은, 곧 그동안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여러 아트 리소스들과 제작된 맵들을 다시 한번 새롭게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새로운 큰 변화로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두려움이 있었지만 디렉터로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이러한 메인 기획 변경이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게임을 훨씬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팀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근거를 정리했고, 논의 끝에 모두가 그 확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BIC 2021 전시에서, 우리는 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이것이었다. '작년 그 게임이랑 같은 게임인지 몰랐어요. 너무 재밌어졌어요.' 그 피드백을 듣고 우리 팀은 그동안의 힘든 수정 과정들을 모두 잊을 만큼 기뻤다.


돌이켜 보면, <라핀>의 출시까지 정말 많은 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두 달 간의 프로젝트에서 장기간의 프로젝트로, 모바일에서 PC로 플랫폼이 변경되는 것만 해도 큰 변화다. 이 뒤에도 전체적인 아트 수정과 메인 기획 수정이 있었다. 이후로도 여러 니즈가 반영되어 게임은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라핀>은 비주얼 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좌) 개발 초기 버전에서, (우) 2021년도의 비주얼로 변화하며 전면적인 리소스 재작업이 필요했다. 
물론, 이 변화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니즈들 중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본격적인 시작 전 여러 검증을 거칠 것 같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필요한 것들 또한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땐 미래를 고민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모두가 대학생이었기에,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것처럼 의욕만 넘쳤다. 이 결정으로 인해 개발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얼마나 많은 작업이 필요할지 생각하지 않은 채 모두가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재작업의 과정을 거쳤다.


그때의 결정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게임을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들은 정말 큰 위험 부담이 따른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원하는 것만을 구현하다, 프로젝트를 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기 때문이다.


팀으로서의 게임 제작과 회사로서의 게임 제작에서 가장 큰 차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후를 고려하는 것'이라 느끼고 있다. 뒤를 고려하지 않은 잦은 변경으로, <라핀> 또한 그 변경의 방향이 옳은 것과는 별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랬기에 우리가 초기의 팀 단계에서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고민해보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마냥 즐거웠던 2020년의 스튜디오 두달 팀. 맨 끝의 나(김민정 공동대표)와 이규원 공동대표.



# '토이 프로젝트'에서 '일'로서의 전환점

2021년 2월, 대학교를 졸업하며 <라핀> 개발을 업으로 삼을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나의 생각은, 일단 회사를 다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라핀>을 개발하는 것은 재밌었지만, 취미로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회사를 경험하는 것은 지금이 기회라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인턴에 지원했고, 서비스기획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핀>은 볼륨이 다소 커진 토이 프로젝트일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일은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고, 보람 있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의 만족감과는 별개로, 내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에 퇴근 후 짧은 시간만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턴 과정에서 오히려 <라핀>이 그동안 나에게 단순한 토이 프로젝트가 아닌, 온 힘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인디게임 기획개발 공모전에서 생각지도 못한 2위를 하게 됐다. <라핀>으로 받은 첫 수상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팀원들 모두가 뛸 듯이 기뻐했다. 특히 2020년 내내 아무런 대외적 성과가 없던 우리 팀에게 그 수상은 너무나 큰 의미였다. 대학생에겐 상당히 컸던 상금도 있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하던 팀원들의 슬랙


다만, 상금도 상금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었다. 그동안 팀원들은 오로지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 재미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에만 기댈 수 있었다. 하지만 공모전에서의 성과로 인해 팀원들의 사기가 올라갔고,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이라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은 너무나 귀하다. 그 순간이 1년의 시간을 버틴 우리 팀에게 가장 필요했고,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 수상을 계기로 <라핀>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인턴 기간이 끝난 후, 회사에 남지 않고 퇴사하는 방향을 결정했다. 당시 졸업 후 게임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재직 중이었던 이규원 공동대표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결정했다. 우린 이왕 <라핀>에 인생을 바쳐볼 거라면, 그 도전은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공동대표 모두 회사를 짧게나마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더욱 미련 없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라핀>은 토이 프로젝트에서, 진심을 다해 전념할 업(業)이 되었다.



# 개발 공간을 구하다
 

2020년 당시 우리는 주로 온라인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방학 때는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종종 만나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주로 카페에서 만나 작업했는데, 카페는 오래 느긋하게 개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카페처럼 꾸며진 스터디카페였다.


스터디카페. 시간권을 끊으면 커피와 음료가 무료였다.


스터디카페에선 여러 세미나가 열리는 등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 가능했고, 시간제로 운영되어 오래 있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팀원들이 오프라인에서 스터디카페에 와 함께 개발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해, 스터디카페에 오면 이용권을 대신 결제해주었다. 적어도 팀원들이 금전 부담은 없이 개발했으면 하는 것이 나와 공동대표의 바람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개발이 안정기에 돌입하나 싶었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며 스터디카페의 정상 운영이 잠정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방법을 여러모로 찾아보다, 근처에 창업을 목표하던 팀에게 제공되던 무료 공유 라운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행히 면접에 통과해, 우린 스터디카페에서 공유 라운지로 개발 공간을 옮길 수 있었다.


잠시 사용했던 공유 라운지

하지만 그렇게 팀원들과 함께 공유 라운지에서 개발을 진행하던 것도 잠시. 공유 라운지의 장기적인 리모델링 공사로, 모든 팀들이 라운지에서 짐을 빼야 했다. 노트북과 여러 짐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며, 고정된 개발 공간 없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당시 팀원들 또한 함께 모여 작업할 수 있는 개발 공간에 대한 니즈가 컸다. 하지만 보증금을 마련할 만한 여력이 없어 그것은 염원일 뿐,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다. 특히나 토이 프로젝트를 위해 작업실까지 만든다는 것은 너무 과한 투자 같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인디게임 기획개발 공모에서 수상하게 된 것은 마침 이때였다. 상금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겠지만, 가장 우리 팀의 개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바로 작업실 마련이었다. 특히 수상을 기점으로 <라핀>을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기에, 상금을 기반으로 작업실을 구하는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개발 공간 없이 방황했던 우리 팀은, 낙성대 한 편에 오랜 시간 염원했던 개발 공간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낙성대 작업실. 
이때 함께했던 팀원들 중,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함께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낙성대 작업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곳에서 알차게 개발하고 재미있게 놀았다. 여러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고, 게임 스터디를 진행하고, 자체 게임잼을 하고, 영화를 보고, 숱한 저녁을 함께 먹고, 생일 케이크도 잘랐다. 2021년에 있었던 스마일게이트 인디게임 공모전 그래픽상, 유니티 코리아 어워드 그래픽상, GIGDC 일반부 대상 수상의 기쁨 또한 작은 낙성대 작업실에서 팀원들과 함께 나눴다.


스튜디오 두달의 첫 번째 게임잼에서 만들었던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 
이틀 동안 즐겁게 만들었다. 
약간의 심리적 공포가 있는 게임이었고, 메인 컬러를 몇 가지로 제한했다. 
외부 공개는 하지 않았다.


작업실의 환경이 좋지 않아도, 우린 서로 모여 안정적으로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작업실을 갖추게 되면서 <라핀>은 점차 토이 프로젝트에서 업(業)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라핀>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뿐, 여전히 스튜디오 두달은 회사가 아닌 '스튜디오 두달 팀'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2022년 초, 낙성대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끝나 가고 회사로서의 전환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3편에서 계속)


편집자 주: 출고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이번 기사를 보신 분들 모두 연말연시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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