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작품인 <둠> 리부트, 그리고 2020년 출시한 <둠 이터널>은 게임계의 영원한 고전 <둠>의 가치를 계승하면서 현대 게이머들도 적절히 포섭해 낸 모범 사례로 꼽힌다. 둘째 작품 <둠 이터널>의 난이도 논란, 그리고 OST 외주 작업을 맡았던 작곡가 ‘믹 고든’과 개발사 사이의 갈등 등 잡음도 들려오지만, 여전히 많은 팬을 거느린 시리즈로 남아 있다.
그런 만큼 2025년 출시 예정인 신작 <둠: 다크 에이지>를 향한 글로벌 게이머들의 관심 또한 크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시리즈는 처음 도입되는 ‘중세’ 테마에 도전하면서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1월 22일 개발사 이드 소프트웨어는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전 세계 기자들에게 게임을 소개하고 여러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게임 디렉터 마티 스트래튼, 휴고 마틴과 함께한 간담회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둠: 다크 에이지>는 중세를 배경으로 지옥과 전쟁을 벌이던 ‘둠 슬레이어’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까지 기록으로 전해지던 그의 과거사를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중세 테마를 빌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리즈 특유의 뒤틀린 SF 감성은 남아 있다.
스토리 상으로 <둠> 리부트의 프리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이전 두 게임의 경험을 차용하고 극대화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시리즈에 익숙지 않은 유저라면 입문작으로 삼을 만하다고 개발진은 말한다.
한편 고전 <둠>의 팬들에게도 각별한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품에서 개발진은 땅에 단단히 붙은 채로 날아드는 탄환 사이를 누비며 적을 분쇄하는 고전 시리즈의 게임플레이를 재현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둠 이터널>이 전투기였다면 <둠: 다크 에이지>는 탱크”라고 설명한다. 이전 두 작품에서 둠 슬레이어가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탱크처럼 지면을 누비며 적과 힘싸움을 벌이는 둠 슬레이어로 플레이할 수 있다.
고전 <둠> 시리즈의 특징이었던 좌우 움직임(스트레이핑)도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메카닉으로 다뤄진다. 천천히 날아오는 적 투사체를 끊임없는 이동으로 피하면서 공격을 이어 나가야 한다.
고전 재현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새로운 재미를 부여해 줄 신규 메카닉이 많이 더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방패 톱(shield saw)이다. 투사체를 막고, 투척해 공격하고, 근접 공격을 패리(튕겨내는)하거나 투사체를 반사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이 모든 동작은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도리깨, 건틀릿, 메이스 등 본격적인 근접 무기도 세 가지 추가됐다. 모두 하나의 버튼으로 동작하며, 별도의 콤보와 업그레이드가 존재한다. 고정된 애니메이션이 출력되던 ‘글로리 킬’도 변화했다. 이제 비틀거리는 적을 대상으로 어느 각도에서나 글로리 킬을 가할 수 있으며, 글로리 킬이 작동하는 동안에도 둠 슬레이어를 조작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유념할 만한 시스템은 게임에 처음으로 도입된 난이도 ‘슬라이더’다. 난이도 옵션에서 플레이어가 입는 피해량 배율이나 게임 전반적 속도 등 세부 사항들의 수치를 조절, 원하는 난이도를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30층 높이의 메카 ‘아틀란’이나 기계 드래곤에 탑승해 조종하는 별도 메카닉도 준비되어 있다. 두 가지 모두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며 다양한 능력이 준비되어 있고, 별도의 미니 보스전까지 만나볼 수 있다.
넓어진 세계에 맞춰 다양한 환경과 탐험 요소도 마련했다. 방패를 이용해 오브젝트를 절단하고 뛰어오르는 등의 메카닉을 통해 비밀 요소들을 찾아 슬레이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드넓은 공간에서 공략할 미션과 적을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골라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이번 게임의 특징이다.
이전 게임들에 비해 강화된 스토리텔링 요소도 눈길을 끈다. 이전 작품들은 장대한 서사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전달에 있어서는 텍스트 의존성이 커서 호불호가 갈렸다. 이번 작품에서는 텍스트 비중을 줄이고 컷씬을 늘렸으며, 새로운 캐릭터와 악당들을 추가해 신규 플레이어들이 보다 쉽게 게임의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Q. SF에서 중세로 배경을 전환한 이유는?
A. 마틴: <둠> 리부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팀이 원했던 일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혹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와 같이 성공적인 IP들을 보면, 흥미로운 세계를 만든 뒤에 거기에 역사를 부여해 놓는다. 그런 다음 위대하고 흥미로운 과거사를 지닌 영웅들을 그 안에 배치하고는 한다.
만약에 충분히 운이 좋고, 팬들이 그 작품 세계를 충분히 사랑해 준다면, 창작자는 해당 IP의 과거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제 <둠> IP를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작품에는 (전편에 등장한) 둠 슬레이어의 기록(testament)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팬 여러분 덕분이다. 팬들이 <둠> 게임을 계속 사랑하고 구매해 줬기 때문에 이번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Q. 슬라이더 UI로 난이도를 개인 맞춤형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마음에 든다. 이 기능을 통해 정확히 무엇을 조절할 수 있고, 이런 접근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있나?
A. 스트래튼: 기본적으로 게임의 전체 속도부터 조절할 수 있다. 혹은 패리 가능 시간을 아주 짧게 만들거나, 혹은 입는 피해량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외 영상에 공개된 항목들을 조절할 수 있다. (적이 입는 피해, 적 투사체 속도, 적 공격성, 현기증 지속 속도, 게임 속도, 자원 가중치 등)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반적 유저들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도 할 수 있고, 반대로 일부 하드코어 플레이어들의 경우 슬라이더를 높여서 말도 안 되는 경험에 도전할 수도 있다.
움직임에 장애가 있는 유저 등을 위한 접근성 옵션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측면에서도 많은 테스팅을 거쳤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Q. 멀티플레이 모드가 있나?
A. 스트래튼: 싱글플레이 캠페인만 있다. 개발 시작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결단을 했기 때문에 게임에 나오는 아틀란(메카), 드래곤과 같은 콘텐츠를 만들 여력이 있었다. 이들은 게임 속의 작은 게임이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들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총동원해서 최고의 현대식 <둠>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Q. 모든 후속작은 전작의 교훈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둠: 다크 에이지>의 전투는 어떤 지점에서 <둠 이터널>의 전투를 반영했나?
A. 마틴: <둠: 다크 에이지>는 리부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같은 시리즈의 게임을 세 번째로 만들 때는 끌어다 쓸 수 있는 교훈과 경험이 정말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이 셋 중에 최고의 작품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단순 홍보용 멘트가 아니라 정말 우리의 목표 지점이다.
2016년 첫 <둠> 리부트를 냈을 때 유저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부정적인 반응을 자주 물어봤는데, 당시 유저들이 특히 싫어했던 것은 게임의 반복성이었다.
이후 <둠 이터널>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반응은 게임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도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조작법이 너무 복잡해서 불필요한 난도 상승이 있었던 것 같다. 유저들이 악마들하고 싸워야지, 조작법하고 싸우면 안 되지 않은가.
이번 작품에서 원한 것은 인체공학적이고, 직관적인 조작 체계다. 그래서 유저가 압박을 느낄 때, 익숙하지도 않은 버튼으로 손가락을 뻗어야 할 필요 없이, 원래 쓰던 키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에는 지난 두 작품 당시와 비교해서 고전 <둠> 시리즈를 가장 많이 플레이했다. 그 결과 <둠>이 오랜 세월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다른 어떤 싱글플레이 슈팅 게임보다도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게임이 쉽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인체공학적이고 직관적인 조작 체계, 그리고 물 흐르는 듯한 전투 시스템이 있다는 얘기다.
<둠>은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게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도전 거리를 제공한다. 또, 고전 <둠>의 전투는 정말 부드럽게 연결되어서 지금 플레이해도 재미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둠 슬레이어 역시 고전 <둠>에서와 비슷하게 지상에서(grounded) 싸우게 했다.
아크로바틱하게 움직였던 <둠 이터널>과는 달리, 강력한 지상형 둠 슬레이어다.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리부트 시리즈 중에 가장 고전 <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리부트 시리즈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고전 <둠>에서 배울 게 남았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A. 스트래튼: 마틴의 이야기도 하나의 답이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둠 이터널> 보다 더 아크로바틱한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 여지가 없었다. 게임플레이를 수직적으로 더 확장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떤 방향으로 확장해야 전편과 구분될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그렇게 많은 변화가 찾아온 것 같다.
A. 마틴: 사실 2016년 첫 리부트 작품을 냈을 때도 정확히 똑같았다. 고전 작품들을 그대로 따라가면 사람들이 좋아하긴 했겠지만, 그런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아직도 <둠 이터널>을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2016년 작 <둠>의 2.0 버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는 개발하는 모든 게임이 독자적 입지를 가지길 바란다. 자기 복제를 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적의 투사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는 매커니즘은 기존 두 작품에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두드러지는 않았던 편이다. 이번에는 고전 <둠>을 참고해 이것을 주요 콘텐츠로 삼았다.
Q. 이번 작품에서는 스토리를 코덱스(인게임 텍스트)가 아닌 컷씬으로 더 많이 풀어냈다고 밝혔다. 그래도 게임의 중요한 설정을 드러내는 코덱스가 여전히 남아있긴 할 것 같은데.
A. 마틴: 이번에도 코덱스는 있다. 하지만 전편과 달리 스토리 이해를 위해 코덱스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코덱스에서 벗어나 컷씬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이번 개발의 목표였다. 스토리를 잘 표현한다면 게임 경험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Q. 적의 공격 패턴은 육중해진 게임플레이에 어떻게 맞춰져 있을지 궁금하다.
A. 마틴: 이번 게임에서는 고전 <둠>에서와 같은 스트레이핑(좌우 움직임)이 더 많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형을 편평하고 넓게 만들었다. 고전 <둠>에서는 많이 움직여야 게임을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적 투사체가 느리기 때문에 유발되는 것이다. 투사체가 느리면 느릴수록, 일종의 3차원 탄막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사이를 피해 다니면서 악마에게 대미지를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중장거리 무기와 단거리 무기를 잘 밸런싱해서, 유저가 고전 <둠>에서처럼 그 복잡한 탄막의 미로를 헤집고 적에게 다가가 근접무기, 방패, 혹은 총으로 결정타를 날리게끔 유도했다. 이러한 새로운 게임플레이 패턴을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이 들어갔다.
Q. <둠: 다크 에이지>는 오픈월드 게임, 혹은 오픈월드 요소를 갖춘 게임인가?
A. 스트래튼: 절대 ‘오픈월드’라고 표현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전의 선형적 <둠>에서 확장해 넓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순서대로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다.
또한 탐험 요소도 아주 많다. 모든 탐험은 성장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탐험하면서 자원 및 기타 요소를 발견해 총, 방패, 근접무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저 비밀이나 장난감 같은 것만 수집하는 게 아니다.
또한 드래곤에 탑승해서 펼치는 탐험도 매우 즐겁다. (그만큼) 이번 작품의 월드는 그동안 만든 것 중에 가장 광활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전장’에 나가 보면, 정말로 전장에 서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A. 마틴: 새로운 아이템을 이용해 이전에 갈 수 없었던 곳을 통과하는 방식의 맵 탐험이 많이 나올 것이다. 또한 스트래튼이 얘기한 것처럼, 숨겨진 요소들은 대부분 캐릭터 성장과 관련이 있다. 장난감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또한 인게임 경제와 재화를 정돈했다. <둠 이터널>을 통해 배운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재화나 스킬트리가 너무 많을 경우 유저가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을 정돈해서 비밀 요소는 늘리고 스킬트리는 복잡도는 줄였다. 재화 종류도 적어졌으며, 그 사용법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골드’를 얻었다면 그걸 가지고 뭘 할지는 뻔하지 않겠나.
탐험 측면에서 레벨 디자이너들이 보여준 성과에 매우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간의 우리 작품 중 최고 수준이다.
A. 스트래튼: 또한 아직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출시 후 유저들이 탐험 측면에서 정말 좋아할 만한 지점이 있다. 바로 이전의 <둠> 시리즈에서 한 번도 구현해 본 적 없는 독특한 장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냥 제자리에 서서 감탄할 만한 장소들도 있을 거다.
Q. <둠 이터널>에서는 점프하며 사격하던 둠 슬레이어를 이번 작품에서는 육중한 탱크처럼 만들기로 한 결정의 배경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다.
A. 마틴: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그게 전부다. 나는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똑같은 게임을 또 플레이하고 싶지 않아 한다.
내가 둠 팬 중 한 명이라고 가정해 보면, 이번에도 ‘둠 게임’을 하고 싶을 것이다. 즉, 상당한 스피드와 탐험을 즐기면서 ‘강력함’을 느끼고 싶을 거다. 그러나 ‘강력함’의 판타지가 어떤 유형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특히나 고전 <둠>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 일치한다면 환영이다.
유저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런 팬들을 위해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준비했다. <둠: 다크 에이지>는 중세 판타지 장르지만, 우리식의 판타지이기 때문에 SF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Q. 지금까지 나온 <둠> 게임 중에 가장 모험의 규모가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A. 스트래튼: <둠> 게임에는 원래 모험(어드벤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지만, 이번 게임에는 모험이라는 표현이 들어맞는다. 이번 게임은 용과 메카가 나오는 에픽한 모험이다. 이전의 <둠>게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될 거다.
Q. 여러분은 이드(ID)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 근접 전투 메카닉을 포함해 이번 게임 요소들이 <퀘이크> 1편의 초기 기획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A. 마틴: 그렇지는 않다. 진짜로 영향을 준 것은 <배트맨 이어 원>* 만화책이다. 지난 2016년에 ‘둠 슬레이어’의 배경 설정을 소설로 쓸 때부터 영향을 받았다. 내가 상당히 만화책 ‘덕후’(nerd)다. (배트맨 이어 원: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서사를 다룬 프랭크 밀러의 만화책)
그리고 중세 배경으로 이번 게임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뒤 레퍼런스 삼은 건 영화 <300> 속 레오니다스의 테르모필레 전투다. 레오니다스가 팔랑크스 방진에서 튀어나오면서 적들을 창과 검, 방패로 쓰러뜨리는 장면을 슬로모션과 정상 속도를 오가며 보여주는 패닝 샷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큰 목표 중 하나가 됐다. 해당 장면에서 검을 샷건으로 바꾼 밈을 팀에 돌리기도 했다. 팀이 실제로 그 느낌을 멋지게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영향을 준 것은 프랭크 밀러의 다른 작품인 <다크 나이트>다. 원래보다 더 나이들었지만 더 강력하고 건장해진 배트맨을 다룬다. 해당 버전의 배트맨은 배트모빌(배트맨의 전용 차량)마저 거대하다. 모든 것이 육중한 배트맨이다. 슬레이어에게 적용해 보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Q. 게임에 세 가지 근접무기가 존재한다. 근접 공격 버튼을 눌렀을 때 그중 무엇이 사용되는지는 어떻게 정하나?
A. 마틴: 근접 무기는 미리 수동으로 정한 다음 사용한다. <둠 이터널>의 특수 장비들처럼 하나를 장착한 다음 쓰면 된다. 처음부터 모든 무기를 주는 것은 아니고, 비교적 빠르고 가벼운 건틀릿으로 시작해 하나씩 언락하는 시스템이다.
근접 무기들은 <둠 이터널>의 ‘블러드 펀치’처럼 충전식이다. 이번 게임에는 <둠 이터널> 혹은 2016년 <둠>의 요소들이 잘 섞여 있다. <둠 이터널>의 전투는 아주 다이내믹했는데, 그런 요소를 이번 작품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다.
Q. 월드가 방대해졌다. 그러면 아틀란(메카)이나 드래곤을 아무 데서나 불러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게임의 특정 지점에서만 즐길 수 있는 요소인 것인지.
A. 스트래튼: 아틀란의 경우 아틀란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별도의 지정된 레벨(스테이지)이 정해져 있다. 드래곤은 조금 다르다. 드래곤을 타고 경험할 수 있는 탐험 요소들이 있고, 드래곤을 탔을 때만 접근 가능한 장소도 있다.
이전 방송에서 공개된 내용인데, 드래곤을 타고 공중 도시 주변을 날아다니며 지옥의 갤리온 범선들을 처치해 적의 방어선을 무력화하는 미션도 있다. 그러고 난 뒤 도시에 직접 뛰어들어 싸운 뒤 다시 드래곤을 타고 이탈하는 내용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드래곤을 타고 거대한 거인들을 해치우기도 하고, 반대로 침공하는 적들을 상대로 도시의 방어 작전을 돕는 구간도 있다.
아틀란과 드래곤은 게임의 중간중간에 배치되어서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이다. 슬레이어로 싸울 때만큼 깊이 있는 전투는 아니지만 더 속도감 높은 재미를 준다. 각각 별도의 보스가 준비되어 있고, 상대해야 하는 AI들의 유형도 조금 다르다.
Q. 이번 게임은 <둠 이터널>과 같은 허브(hub) 구조로 되어있나, 아니면 2016년 <둠>처럼 선형 구조인가?
A. 마틴: 선형 구조에 가깝다. 이번 작품은 비주얼 측면에서는 2016년 <둠>의 시네마틱하고 거친 스타일을 가져왔고, 게임플레이는 <둠 이터널>을 참고하되 더 부드럽게 만드는 등 두 게임을 섞어놓았다.
Q. 보조 콘텐츠는 얼마나 많은지, 전체 게임플레이 시간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A. 마틴: 게임플레이가 정말 길다. 다만 레벨 하나하나의 길이는 너무 길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아직 조절 중이지만 한 레벨당 한 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A. 스트래튼: 게임 전체 길이는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유저의 플레이스타일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게임 중에 볼륨이 가장 크다. ‘보조 콘텐츠’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탐험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정말 많다.
A. 마틴: 대부분의 보조 콘텐츠는 아마 비밀 요소 찾기가 될 것 같다. 완벽 클리어를 즐기는 유저라면 일반적인 플레이어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거다.
Q. 광활한 월드, 이야기, 캐릭터, 무기 등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은 평소 어떤 스토리 게임, 책, 영화, TV 등 콘텐츠를 소비하는지?
A. 마틴: 우리 가족 말로는 내가 콘텐츠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고 말한다. 그런 직업인 걸 어쩌겠나. 아무튼 <배트맨>을 많이 봤고, 그 외 <300> 등 여러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른 게임들처럼 여러 신화나 전설에 영향받은 점도 많다. 원작 <둠> 시리즈를 얼마나 많이 플레이했는지는 이루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이쪽 일을 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아들 친구 중에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 부모에게도 늘 하는 말이다. 그들은 애들한테 게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사실 많이 해야 한다.
주의할 것은 (다른 콘텐츠를)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거다. <둠: 다크 에이지>의 전투와 탐험이 유니크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A. 스트래튼: 개발자뿐만 아니라 콘셉트 팀, 사업개발팀 등 조직 전체가 다른 콘텐츠를 탐구해야 하는 것 같다. 새로운 세계를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팀원들과 같은 비전을 공유하려면 그래야 한다.
지금 팀원들과 길게는 11년 동안 가까이 일하면서 이러한 지점에서 서로 일치감을 느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같은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에 IP와 세계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것 같다.
Q. 게임을 수백 시간씩 플레이하며 ‘마스터’하고 싶은 유저들은 어떤 도전 거리를 즐길 수 있을까?
A. 마틴: 물론 (앞서 얘기한) 난이도 슬라이더가 있다. 자신만의 ‘나이트메어’ 난이도, ‘울트라 나이트메어’ 난이도를 만들 수 있다. 제정신 아닌 수준까지 난도를 높일 수 있을 거다.
Q. DLC 출시 계획이 있나?
A. 스트래튼: 그렇다. 캠페인(미션) DLC가 나올 예정이다
Q. 이번 작품은 신규 팬들이 <둠> IP에 진입하기 좋은 타이틀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번 게임에서 신규 팬과 기존 팬들에게 가장 어필이 될 만한 요소는 각각 무엇인지?
A. 스트래튼: 전투, 탐험, 스토리 등 세 가지 주요 축이 양쪽에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이머를 겨냥해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게임을 만들 때 신규 유저와 기존 유저로 구분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간 문제가 발생할 거다.
모든 종류의 ‘좋은 경험’은 그렇게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폰, <엘든 링>, <매트릭스> 같은 것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모든 유저가 세 가지 필러를 모두 즐기기를 바란다.
이번 작품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첫 ‘둠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더군다나 이번 작품은 프리퀄이니까. 각자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시리즈를 플레이할 수 있겠지만 (작중 시간 순서에 맞게) <둠: 다크 에이지>, 2016년 <둠>, <둠 이터널> 순서대로 플레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방법이 될 거다.
Q. 기존 작품들의 보스전에서 얻은 교훈이 이번 게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A. 마틴: 보스와 싸울 때 복잡한 조작이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조작 체계가 자연스러워야 유저를 더 많이 압박할 수 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버튼, 혹은 익숙하지 않은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어야 한다. 직관적 플레이가 핵심이다.
Q. 이번 작품에서 팬들이 경험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A. 스트래튼: 이번 게임이 얼마나 <둠> 다우면서도 이전과 다른지 보여주고 싶다. 새로 <둠>을 해보는 분들, 그리고 다른 미디어를 소비하다가 돌아오는 분들도 있을 텐데, 모두 게임의 장엄함과 광대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과 같은 순간이 우리 일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다. 팀으로 함께 모든 것을 쏟아서 게임을 만들고, 드디어 게임을 유저들에게 선보이고 유저들이 처음으로 게임을 즐기는 순간 말이다. 유저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는 일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A. 마틴: 나는 이번 게임의 방패를 유저들이 빨리 즐겨봤으면 좋겠다. 방패야말로 이번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다. 플레이할 때도 재미있고 보기에도 멋지다.
Q. 작년 6월에 게임이 처음 소개됐을 때부터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것이다. 해골을 갈아서 파편을 쏘는 그 총 이름은 뭐고, 대체 누구 생각이었나?
A. 마틴: 이름은 해골 분쇄기(Skull Crusher)다. 처음에 누가 생각해 낸 것인지는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뭐가됐던 팀이 함께 만들었다. 이게 이드의 좋은 점이다. 누구나 엉뚱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그걸 다 함께 진지하게 구현한다.
A. 스트래튼: 나도 가끔 특정 요소를 누가 만들었는지 살펴볼 때가 있다. 그러면 서른 명도 넘는 사람들이 손을 댄 경우가 허다하다. 게임의 어떤 요소든 혼자서 다 하는 경우는 없다. 모두 팀 공통의 노력이다.
Q. 새로운 ‘글로리 킬’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A. 마틴: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디자인이다. 이번에는 글로리 킬이 대량파괴무기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앞서 언급한 <300>의 장면을 보면, 레오니다스가 한 명의 적에서 다음 적으로 하나의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의 <둠>에서 글로리 킬은 그런 방식이 아니었고, 발동하는 순간 유저의 조작 능력을 빼앗아 가면서 다소 흐름이 끊겼다. 물론 <둠>과 <둠 이터널>에서는 한 번에 3~6명의 적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이번에는 근접 공격, 총, 방패끼리의 전환이나 글로리 킬을 할 때, 애니메이션 때문에 동작이 끊어져서 소중한 몇 초를 잃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전 두 작품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둠: 다크 에이지>에서는 문제가 된다는 것을 개발 초기에 발견했다.
다행히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들이 물리 엔진 쪽에서 대단한 혁신을 이뤄준 덕분에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글로리 킬이 가능해졌다. 이제 글로리 킬을 해도 조작 불가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이전의 개발자 라이브에서도 보여줬지만 4~6명의 적이 비틀거리는 상태에서 글로리 킬로 한 번에 처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A. 스트래튼: 글로리킬 뿐만 아니라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연결된다. 예를 들어 왼쪽 트리거로 방패를 던져서 적에게 고정한 다음, 오른쪽 트리거를 툴러 방패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는(끌어당겨지는) 기능이 있다. 그렇게 접근한 뒤,근접 공격이나 사격을 가한 뒤 즉시 글로리 킬로 연결할 수 있다. 만약의 기존의 글로리 킬 방식이었다면 그 속도감이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멋지게 연계된다.
A. 마틴: 글로리 킬을 어느 각도에서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리 킬의 충격 효과 역시 사용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비주얼로 구현되는데, 글로리 킬이 이제 물리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존의 글로리 킬 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반복성의 문제가 해결됐다. 이전 글로리 킬 애니메이션이 멋지기는 했지만, 똑같은 걸 계속 봐야 하는 게 문제였다. 이번에는 타격 방향에 따라 애니메이션이 조금씩 달라진다. 사실 이전의 글로리 킬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조금 겁이 나기도 했었는데, 막상 구현하고 나서는 다들 멋지다는 데 동의했다.
휴고 마틴 디렉터가 언급한 영화 <300> 장면 중 일부 (출처: 워너미디어)
Q. 기존 <둠> 게임들만큼 수집품이 많을까?
A. 마틴: 더 많다. 그리고 캐릭터 성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 유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전 수집품이었던) 음반이나 장난감 같은 것보다는 골드나 기타 업그레이드에 유용한 자원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
Q. 이전의 ‘머라우더’ 처럼 별도의 패턴 학습이 필요한 적이 이번에도 등장할까?
A. 마틴: 몇 놈 있다. 전장의 고수들이다. 여러분들의 실력과 게임 지식, 패리 능력을 시험대에 올리게 될 거다. 예를 들어 연속기를 사용하는 적들은 패리를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연속으로 성공해야만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
Q. 이전보다 컷씬이 많아졌는지
A. 마틴: 그렇다. 이야기가 더 방대해졌기 때문에 컷씬도 이번 게임의 중요한 축으로 다뤘다. 컷씬 또한 콘텐츠에 물 흐르듯 연결된다. 둠 슬레이어가 하는 행동이 뭔지, 어디에서 하는지, 이유는 무언지, 누구랑 싸우게 될지 알려주는 역할이다. 멋진 빌런이 등장할 예정이며, 좋은 스토리가 게임의 다른 축들을 훌륭하게 보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