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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알아?!...게임 '리파인드 셀프' 체험기

성격진단게임 '리파인드 셀프' 체험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신동하(그리던) 2023-11-23 16:14:23

최근 웃긴 일화를 하나 들었다. 요즘에는 연애를 하다가 성격 차이가 나면 성격 진단 카페(놀랍게도 진짜 있다)에 가서 MBTI 자격증(놀랍게도 진짜 있다)을 수료했다는 카페지기에게 소통법을 진단받는단다. 


'금쪽이들'처럼 이상 행동을 해서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저 글자 몇 개가 다르다고 성격을 '진단'한다니. 뇌절에 뇌절을 거듭해 온 '성격 유형 진단'이 이제는 정말 주술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것일까?


최근에는 무려 성격을 진단할 수 있다는 게임도 나왔다. <리파인드 셀프>가 그것이다. <리파인드 셀프>는 게임을 진행하며 자신의 성격을 진단해 보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 여러 추억의 장소를 탐색하며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이때 상호작용에는 캐릭터와의 대화, 조사, 아이템들, 미니게임 등이 포함되며, 이는 모두 진단을 위한 자료로 분석된다는 것이 게임의 특징이다. 참고로 한국어를 지원한다.


게임은 출시 직후부터 버튜버와 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스팀 리뷰에도 '다른 것들과는 달리 평가 기준이 직관적이고 납득이 된다'며 칭찬 일색이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알아?!'하는 마음으로 막차를 타본다.







# 당신의 껨비티아이는?

게임은 액자식 구조로 구성된다. 어느 가상 세계에서 '나'에 대해 정의하지 못한 주인공이 한 술집에 방문하고, 바텐더로부터 100년 전 만들어졌다는 미니 게임이 담긴 CD 롬을 받는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집에 돌아가 그것을 플레이해 본다는 설정이다.


건네받은 미니 게임은 한 로봇 공학 박사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로봇이 시스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닿는 대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게임 오버나 멀티 엔딩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로봇의 인간다움인 '마음'이 1퍼센트씩 차게 되고, 이 마음이 100퍼센트가 되면 성격 진단이 끝난다. 게임 자체가 100개의 문항이 있는 검사지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설명만 보면 굉장히 막연한 느낌이 들지만, 막상 플레이해 보면 굉장히 명료하다. 상호작용할 거리가 많은 '반 오픈월드'이고, 게임의 중간마다 질문을 던지지만, 스토리 자체는 선형적인 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많은 동인녀들의 10대 시절을 책임졌던 '유씨노벨'의 테스트를 생각해보면 쉽다. 


​일례로, 게임은 박사의 무덤 앞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박사가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때, 게임에서 직접적인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아도 먼저 박사의 묘지로 가서 그를 추모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살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박사와 로봇이 어떤 관계였는지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많은 선택지들을 추적하는 식이다.


그에 따라서 플레이어는 모든 건물들을 하나씩 열어보거나, 모든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나눠보거나, 벽에 붙은 벽보를 읽어보거나,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거나, 길에 난 꽃을 꺾어보거나, 앞도 보이지 않는 광산을 파보거나, 고철을 모아 동전으로 바꾸거나, 라멘을 사 먹을 수 있다. 


이렇게 행동할 때마다 상단에는 플레이어가 어떤 유형에 가까운지에 대한 라벨이 뜬다. 메뉴에 들어가면 언제든 이 유형이 무엇인지 알 수는 있지만, 게임의 의도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정확한(?) 검사 결과를 위해 끝날 때까지 유예하는 것을 추천한다.






# '사랑'과 '그리움'을 알게 된 로봇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껨비티아이'라는 신박한 컨셉 뒤에는 은근하게 사람을 울리는 스토리가 있었다.

기자에게 있어서 '안드로이드'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영화 <A.I.>다. 극의 후반부에서 영화 내내 주인공을 도와주던 성매매 로봇은 "I Am, I Was."라고 말하며 끝까지 자신을 희생한다.  한낱 미물 취급을 받았지만 자신은 세상에 "존재했고, 존재했었다"라는 의미다. 이 말은 안드로이드를 다루는 많은 SF 장르 콘텐츠를 꿰뚫는 주제이기도 하다.

<리파인드 셀프> 속 주인공 로봇 역시도 스스로 인간의 마음을 가져도 괜찮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때 게임은 이 주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가르치려는 대신 은근한 방법들로 철학적인 논제들을 제시하고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둔다.




일례로, 게임 속에서 로봇은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들은 물론 점쟁이까지 로봇으로 대체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마을의 구성원들도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을 정도다.

박사와 친했던 마을 주민들은 세상의 전부였던 박사를 잃은 로봇을 걱정해 준다. 그림을 그리는 주민에게 다가가면 그는 마음에 상처를 입어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행동도 하지 않는 로봇을 위로해 준다.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려주고 그림을 통해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반대로 벽 곳곳에는 얼굴 모를 누군가가 로봇들을 비방하는 글과 포스터가 잔뜩 붙여두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사를 사랑하는 주인공 로봇은 인간을 사랑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갈등한다.

이런 로봇의 내적 갈등은 마을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을 때 절정을 이룬다. 로봇은 거울을 보며 자신이 인간인지 혹은 로봇인지 고민하다가 선택을 포기하고 거울을 보길 거부하기도 한다.


이때, 게임 오버도 없고 멀티 엔딩도 없다는 점이 빛을 낸다. 플레이어의 행동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주인공 로봇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오롯하게 플레이어의 몫이다.


선택지와 상호작용에 따라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속 '마커스'처럼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물건들을 때려 부술 수도 있으며, <애프터 양> 속 '양'처럼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난 인연들과의 추억을 간직한 채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







# <리파인드 셀프>가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진단'은 의사가 환자의 병 상태를 판단하는 일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2번 뜻으로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자세히 판단함'도 제시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진단'을 위해서는 잘못된 상태가 전제된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도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격은 '진단'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영역이기에 '옳다'와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적인 문제가 있다거나 애착이 불완전하게 형성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은 성격을 유형화한 MBTI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경우는 성격을 진단 받을 것이 아니라 병원이나 심리상담소에 방문해야 한다. 그렇기에 INFP를 '씹프피'라고 매도하거나, 'T'들에게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며 '너 T야?'라고 놀리는 것은 단순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하여 벌어지는 전형적인 거짓 원인의 오류다.


이러한 오류를 만드는 것은 무분별하게 문화를 소비하는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검사지의 문제도 크다. 이러한 오류를 만드는 것은 무분별하게 문화를 소비하는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검사지의 문제도 크다.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무료로 진행하는 약식 검사는 물론이고, 병원에서 꽤 큰 돈을 지불하고 진행하는 정식 검사의 질문지는 모두 이런 형식이다.


"파티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나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아니다', '조금 아니다', '보통이다', '조금 그렇다', '매우 그렇다'로 오지선다이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이 모든 질문들에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고, 정말로 자기 자신의 성격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도 적을 것이다.


물론, <리파인드 셀프>도 심리학이나 의학적인 방법으로 고안되진 않았을 것이다. 두 시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며 얻어낸 결과도 대단한 인사이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리파인드 셀프>는 어지러운 텍스트형 선택 대신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고 플레이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 다음 설득력 있는 통계 자료와 함께 재미있는 별명을 지어준다. 무엇보다도 MBTI 검사지보다 딱딱하지 않고, 예쁘고, 즐거웠다.


다만, <리파인드 셀프>는 큰 내용도 없고 게임 자체의 플레이타임 또한 두 시간 내외로 매우 짧다. 그렇기에 게임에서도 가성비를 따지는 못된 기자는 이 게임이 '돈값'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기자의 껨비티아이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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