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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예측불가 세계관 속 방구석 탐정, 아찔한 센스까지 더해지면

국산 인디 게임 'There is NO PLAN B'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04-03 18:53:56

"어딘가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친구.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싶다가도, 결국 함께 박장대소를 하는 사이"


국산 인디 게임 <There is NO PLAN B>의 첫인상이다. 일단, 이 게임 평범하지 않다. 추리 게임인데 상식 밖의 상황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5명의 인디 개발자들이 만들었는데 2D 애니메이션이나 3D 그래픽 전환의 퀄리티가 이상하리 만치 뛰어나다. 아트 스타일이나 개그 센스도 이 세상 물건들이 아니다. 


추리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건'이다. 아구몬의 머리와 엉덩이에 피카츄의 귀와 꼬리가 달린 '아구-츄'(?)가 가방 속 다마고치 안에서 빛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구원 복장을 한 여성의 명찰과 소지품들은 몇 번의 흔들림 끝에 가방에서 바닥으로 쏟아지고, 용의자는 피해자의 지갑과 다마고치만 훔쳐 달아난다. 이름만 들어도 웃긴 '아구-츄'는 일회성 개그 소재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핵심 설정으로 등장한다.



▲ '아구-츄' 도난 사건과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


주인공 'B'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히키코모리 탐정이다. 2070년 사이버펑크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로봇이나 네트워크 접속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바깥 세상을 넘나든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다. 한치 앞도 예측되지 않는 SF 만담 같달까? 


잇치 아이오에 에피소드 1의 66% 지점까지 4시간 안팎의 플레이만 공개된, 개발 중인 게임임에도 독특한 인상을 진하게 남긴 <There is NO PLAN B>. 잠시 다른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플레이 경험을 공유한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비주얼은 모두 데모 버전에서 볼 수 있는 인게임 요소들이다.


# 꼭 유능하고 똑똑해야 탐정을 하나요?


<There is NO PLAN B>는 다양한 '비밀'을 품고 있는 게임이다. 왜 주인공 'B'는 히키코모리 방구석 탐정이 됐는가-라는 질문부터 근간에 있다. 요리 잘 하는 동거인 '유진'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은 'B'에게 대체로 호의적이다. 다시 말해, 사회성 결여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타이틀의 플랜 'B'도, 주인공 'B'를 지칭하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보이니, 정식 발매 버전까지 이어질 중요한 설정으로 보인다. 


'아구-츄'의 등장부터 눈치채셨겠지만, 이 게임은 클리셰를 거부하고 있다. 일단 'B'가 추리물의 전형적인 주인공들처럼 똑똑하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무능한 편에 가깝다. 의뢰인 평점을 기준으로, 도시 안에 존재하는 700명이 넘는 사설 탐정들 중에서도 600등 밖인 수준이다. 사건 현장이나 의뢰인 앞에 직접 등판해 해결하지 않다 보니, 의뢰인들의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도 'B'의 2점 대 평점을 납득하게 된다. 친구 '닐'의 도움으로 투자에 성공해 큰 돈을 벌게 된 주인공은 계좌에 입금이 되기도 전에, 오랜 기간 팬심으로 지켜봐 왔던 버츄얼 유튜버에게 거액의 도네이션을 하게 된다. ''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들에게 같은 투자 조건을 제시했었고, 투자금을 모두 챙겨 도시에서 행적을 감춰버린다. 


즉흥적인 판단 때문에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게 된 'B'. 큰 돈이 생겼다며, '유진'이나 '키'를 비롯한 지인들에게도 일종의 턱을 냈던 주인공은, 이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도시 안에서 욕만 먹던 경찰 집단 'SCPD'는 수사 협력을 요구(?)하는 계약서를 내민다. 'B'는 이를 수락하고 '아구-츄' 도난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된다.


'B'는 큰 돈을 벌게 될 줄 알았지만

이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도시 안에서 평이 좋지 못한 (B 본인도 마찬가지지만) 경찰과 협력하게 된다.


# 낯설지만 묘하게 녹아드는 세계


서문에 소개했던 것처럼, 이 게임은 SF 설정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독특한 세계관을 계속해서 제시한다. 단순히 안드로이드 로봇, 의수나 의족과 같은 의체, 네트워크 해킹 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이 아니다. 뭔가 비틀린 세계다.


일단, 주인공 'B'를 비롯한 다수의 등장인물들은 '고아원' 출신으로 묘사된다. 도시는 상류층이 사는 '어퍼'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슬럼'으로 나뉘는데, 슬럼에 사는 사람들은 '영양팩'을 주식으로 먹고 살아왔다. 실제 음식, 요리, 심지어 생물을 본 기억도 거의 없는 상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종의 대체 역사 설정도 포함하고 있는 이 게임은, 쿠데타로 인해 '소울 시티'까지 피신한 '대한제국' 황실 수라간 나인 출신 '유진'의 요리를 중요한 매개로 활용한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커피의 맛에 대해 "아스팔트를 끓여도 이것보단 맛있을 것"이라 표현하면서, "우유나 설탕을 넣어도 아스팔트는 아스팔트" 정도의 감상을 남기는 식이다.


오므라이스를 마주했을 때는 '계란'에 대한 첫인상이 등장한다. 닭도 달걀도 본 기억이 없고, 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B'는 "알을 낳는 것은 모두 곤충이니, 닭도 곤충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분위기 전환용 개그라고 보기엔, 플레이어의 상식을 깨는 대사들이 많다. 2070년의 소울 시티는 어딘가 이상한 동시에 곱씹어 보면 암울한 세계고, 주인공은 유쾌하지만 전혀 탐정다운 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낯선 세계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 당긴다. 동거인 '유진'의 손에서​ 슬럼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요리가 나오니, 히키코모리 주인공의 집으로 다른 인물들이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인공은 사건 해결을 위해 탐정 소형 보조 로봇 'A.I'의 몸을 빌어 바깥 세상에 나선다. 분절되어 있던 각자의 세계가 조금씩 섞여가는 과정인 것이다.


동거인 '유진'의 요리와

주인공 'B'의 사건 해결은 모두 인물들의 관계 확장으로 이어진다.

# 추리는 재밌나?
 

추리 게임은 결국 추리가 재밌어야 한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재밌다. 근미래 설정을 인터페이스나 시스템에서 잘 녹여내,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기본적인 현장 조사 및 피해자, 목격자 인터뷰 외에도, SF적인 상상력을 적용한 상호작용이 적잖게 등장했다.


빗물에 의해 많은 흔적이 지워진 실제 사건 현장을, 가상으로 새로 복원해 두 차례에 걸친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그 과정에서 니코틴(담배) 흔적, 혈흔, 발자국, CCTV, 현장에 있는 의심스러운 사물 등을 모두 조사하게 되는데, 'B'와 보조 로봇 'A.I'의 대화 안에서 중요한 정보들을 하나씩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발자국이라도 파여 있는 깊이가 다름을 보고 유추한 특정 물체를 들고 이동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인상적이었고, 발자국의 무게 중심 이동을 보고 사람의 걸음걸이인지, 안드로이드 로봇의 걸음걸이인지 구분하는 장면도 독특했다. 니코틴 조사에서 연초와 액상 담배의 흔적이 나오는 것으로, 1명으로 예상됐던 용의자가 2명 이상일 수 있다는 추리도 등장해, 사건 초기엔 알아챌 수 없던 진상으로 나아간다.


발자국 조사 장면

혈흔 조사 장면. 게임의 3D 그래픽은 현장 조사에서 더욱 빛난다.

이런 조사는 개별적인 아이템 단위에서도 진행되고

피해자, 목격자 외에도 해당 증거에 대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인물들과의 대화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결국 '아구-츄' 도난 사건의 진상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B'는 인터넷을 통해 용의자를 끌어낸다. 사라진 '아구-츄'는 6종류의 개체값이 모두 31점 만점인, 매우 값비싼 캐릭터였기 때문에, 용의자가 현금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추리가 적중했다.


경찰은 'B'에게 수갑을 비롯한 장비를 제공하며,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그런데, 이 구간이 꽤나 독특하다. 용의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보통 싸이코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구-츄' 거래 과정에서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핵심 정보도 얻어내고, 동시에 적절한 때에 용의자도 체포해야 하는데, 더빙 음성이 없는 텍스트만 봐도 어째선지 시끄러운 느낌이다. 


SNS, 웹 서치, 채팅 등 여러 인터페이스를 넘나들며 용의자를 줄여 나간다.

음악과 플레이 방식이 변하는 '긴급체포' 구간. 용의자 캐릭터가 너무 괴짜라서 속된 말로 기가 빨린다.
근데 묘하게 매력적인 녀석이다.

#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게임

그래서 남들에게 추천할 만한 게임인가?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부분은 이 내용일 것이다. 기자의 솔직한 평은 "재밌는데, 다소 취향을 탈 수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일단, 잇치 아이오에 슈퍼웨이브 스튜디오가 자체적으로 올린 이용 등급도 15세 이상이지만, 게임에는 적잖은 비속어가 등장한다. 일부 캐릭터들의 다소 선정적인 의상 또한 기자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나 데모 버전의 끝까지 플레이하고 나면, 왜 이들이 이런 표현을 담았는지 납득이 간다. '소울 시티'라는 세계 자체가 우리가 상상하는 평범한 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개된 분량은 에피소드 1의 중후반까지로, 개발 플랜에서 소개된 바에 의하면 에피소드 3까지 이어질 3개의 사건과 에필로그 챕터까지가 게임의 전체 분량이다. 에필로그 이후에는 멀티 엔딩을 준비 중이고, 전체 플레이 타임은 약 15시간, 스팀 정식 출시 예상 가격은 30달러(약 4만 원) 내외다.


현재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개발 비용을 충당하고 있으며, 2024년 10월 에피소드 1 완결 무료 공개 이후, 2026년 10월 에필로그 완성을 목표로 개발 중인 게임이다. 차후, 어떤 사건과 세계관이 등장할까? 가능성이 엿보이는 현재의 모습에서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되는 국산 인디 게임 <There is NO PLAN B>의 정식 출시를, 추리 게임 마니아인 기자 또한 기다려본다.


'B'와 '유진'. 개인적으로 'B'의 배경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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