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이면 직장 여성들을 괴롭히는 하나의 과제가 있으니, “오늘은 대체 뭘 입지?” 분명 옷장 한 가득 ‘천 쪼가리’들이 들어차 있는데, 어째서 매번 입을 옷은 하나도 없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야흐로 대(大) 모바일게임 시대, 하루에도 수십 개의 게임들이 쏟아지고 있다는데 마켓을 둘러보는 게임기자 꼼신과 수지큐의 심정은 아침 시간 옷장을 열어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수수 쏟아지는 수많은 게임 중 그녀들의 마음에 꼭 맞는 게임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죠.
신이 내린 ‘발컨’으로 언제나 지켜 보는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꼼신과, 웬만한 게임은 성에 차지 않는 코어 게이머 수지큐. 그녀들은 어떤 모바일게임을 즐기고 있을까요? 모바일게임을 둘러싼 디스이즈게임 여기자들의 화끈한(?) 수다를 공개합니다.
99% 남캐만 등장! 당신의 화분에 미소년을 모아 주세요
홍보 문구부터 다르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99%가 남자란다. 아울로그가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재배소년>은 정원사가 되어 남성 맨드레이크(뿌리가 사람 모습을 한 판타지 속 식물)를 모으는 수집 게임이다. 남자도 그냥 남자가 아니다. 무려 미소년(美少年)이다.
그동안 모바일게임 시장은 오로지 가슴이 큰, 허리가 잘록한, 얼굴이 예쁜 여자!여자!여자!뿐이었다. 어쩔 수없다. 과거에는 대다수 유저가 남성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오로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본격 ‘미소년 수집’ 게임이 등장한 것.
플레이 방식은 간단하다. 보유한 화분에 씨앗을 심어 놓고 꽃이 피었을 때 터치만 해주면 맨드레이크와 골드를 수확할 수 있다. 이렇게 수확한 맨드레이크를 데리고 ‘탐험’을 마치면, 캐릭터에 해당하는 스토리와 일러스트를 보는 방식이다.
본격적으로 ‘
여심’을 노린 <재배소년>. 공통점이라고는 덕심밖에 없는 디스이즈게임의 그녀들이 <재배소년>을 만났다.여덕
첫 인상? "그래서, 미소년은 어디에 있나요?"
꼼신: 첫인상이 어때? 난 보자마자 그 생각이 들던데. 안 예뻐! 미소년(美少年)이라며! '당신을 설레게 할 미소년 어쩌고 저쩌고'했으면 미소년이 나와야지. 하나도 안 설레.
수지큐: 대놓고 여심 공략에 나섰구나, 얼마나 훈훈한 애들이 나오나 하고 봤더니 SD캐릭터만 잔뜩 나오는거야. 무슨 여성 유저들을 다 쇼타콤으로
아나, 싶었다니까. 이게 남태인지 여캐인지 성별도 모르겠고.
꼼신: 풉. 그러니까. 나는 전작인 <재배소녀>도 좀 플레이해 봤는데, '소녀'하고 '소년'하고 구별이 안 가더라고.
수지큐: 이럴거면 차라리 <만져라 탐정 나메코 재배 킷트>가 낫지. '나메코'는 아스트랄한 맛이라도 있는데. 뭔가 기분 나쁜
듯 하지만 귀염성도 있고 그런 게 있어서, 독특한 걸 좋아하는 층에게는 확실히 먹히잖아.
난 처음에 보자마자 무슨 예전 싸이월드가 생각났어. 미니미 말이야. 싸이월드 미니미는 내가 이것저것 꾸밀 수라도 있었지, <재배소년>에서는
캐릭터를 꾸밀 수도 없어서 답답했었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억지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꼼신: 캐릭터가 예쁘지 않다는 건 결국 수집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잖아. 물론 탐험을 통해 일러스트를 모을 수 있지만, 그 일러스트를 모으기까지
인내할 만한 매력적인 요인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거지. 진짜 '나메코'처럼 차라리 못생기기라도 했으면 못생겼으니까 이해라도 하고 관심이라도
갖지.
거듭 말하지만 미소년이라며!
꼼신: 혹시 사운드는 어땠어? <재배소년>이 내세우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성우들이 참여한 풀 보이스 잖아. 캐릭터마다 있는 성우까지는 좋았어. 몰입하게끔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구나 했지.
수지큐: 말도 마. 난 지하철역에서 이어폰 없이 플레이하다가 식겁했잖아. 맨드레이크 뽑을 때마다 '웩웩' 거려가지고!
꼼신: 나도 그 얘기 하고 싶었어. 아니 이게 캐릭터에 따라서 목소리가 달라지잖아. 사냥꾼 이런 애들은 '웩웩' 거리는데, 야들야들하게
생긴 수국 이런 애들은 신음 소리를 내는거야!
수지큐: 진짜. 나도 민망해서 게임을 꺼버렸다니까. 내가 웬만하면 게임을 소리 끄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 다음부턴 계속 소리 끄고 했잖아.
꼼신: 듣기 좋은 성우 목소리들이 나오는데, 막상 재배를 할 때는 사운드를 끄고 플레이해야 한다는 이 아이러니함. 그냥 스토리 볼 때만 틀게 되더라고.
알듯 말듯 '밀당'이 아쉬운 스토리
꼼신: 스토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세히 읽어 봤어? 대놓고 BL(Boys Love)이던데. 소싯적 소설이나 만화 혹은 팬픽 좀 봤던 여성층이면 재미… 아, 재미라기보다 일단 '흥미'는 가질 것 같아.
다만, 몰입을 하기엔 너무 짧았어. 한 챕터당 스토리가 짧아서 뭔가 보다만 기분이랄까? 몰입도 안되고 감질맛 나고. 그러다보니까 재미도 없고.
수지큐: 중요한 건 그거지. 재미가 없다는 거.
꼼신: 짧더라도 진행할 때라도 뭔가 보는 맛이 있었음 임팩트가 있었을 텐데, 그 때 조차 SD캐릭터만 주야장천 나오니 몰입이 더 안되더라고.
차라리 벗었으면 나았으려나?
수지큐: 에이, 그건 너무 갔고. (웃음) 어쨌든 스토리 모드에서 보는 맛이 아쉽다는 건 공감. 스토리에서 챕터 넘어갈 때 제대로된 일러스트가
미연시 게임처럼 팝업으로 '파바방' 나왔으면 그거 보는 재미로라도, "나 수국 선생님 만나러 갈 거야 하악하악" 했을 텐데
말이지.
스토리만으로 사람들이 이 게임에 대한 목적을 갖기에는 너무 빈약하고 짧아. 재미도 2% 부족하고.
수지큐: 2%? 난 한 40%는 부족해 보여. 단순한 만큼 일러스트 이상으로 중요한 게 스토리인데 아쉽더라고.
.
수지큐: <재배소년>이 그렇게 셀 필요는 없어. 그러면 게임 출시도 안되고 목적이나 의미도 달라졌겠지. 그럼 안되는 거고. 적정한
수준을 예를 들자면 클램프 만화가 아닐까 싶은데.
꼼신: 캬~ <카드캡터 사쿠라>!
수지큐: 클램프 만화는 BL 만화는 아닌데 적절한 선에서 BL을 표방하고 있다고 생각해. 오죽하면 하나의 만화에 모든 장르를 다 담았다고
하잖아. <카드캡처 사쿠라>부터 뭐 <X>나 <도쿄바빌론>도 그렇고 은근히 그런 코드들을 심어 놨단 말이야.
<도쿄바빌론>은 온갖 위험한 요소가 다 들어 있지만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면서 잘 포장했지. 여자들은 거기에 열광을 했고.
꼼신: 내 생각에 <도쿄바빌론>은 너무 코어하고, 오히려 <카드캡터 사쿠라>가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 물론 원작은
참 심오했지만,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전체관람가로 방영될 만큼 나름 말랑말랑했단 말이야. 전투도 요약하면 결국 카드 가지고 쿵짝쿵짝 하는 거잖아.
지금 보면 조금 유치할 수도 있지.
거기에 예쁜 그림과 도진(원작명: 토우야)과 청명(유키토)의 알듯 말듯한 감정선. 나는 <재배소년>에게 이런 느낌을 바랐던 것
같아.
수지큐: 캐릭터 설정도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취향을 고르게 담은 것 같아. 아기자기한 애들을 좋아하면 주인공 체리(사쿠라)나 샤오랑을 찾으면
되고, 든든한 사람이 좋으면 도진 오빠가 있고, 다정다감한 게 좋으면 아빠라든지 청명 오빠가 있었으니까.
여성 게이머 "캐주얼게임만 즐기는 게 아니라고요"
수지큐: 나는 탐험이 너무 아쉬웠어. '탐험'에 맞는 확실한 어떤 요소를 넣어 줬어야 하는데, 이름을 너무 거창한 걸 달아 놨잖아.
꼼신: 탐험이라는 말 자체에 너무 기대감을 갖게 한다?
수지큐: 그렇지. 돈 내고 들어가면 뭔가 던전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 말이야.
꼼신: 이런 것 자체가 여성 게이머들을 너무 캐주얼 유저로만 본 느낌도 들어.
수지큐: 여심을 공략해서 여자들이 이걸 하게끔 만들려고 했으면 확실한 주 타깃층을 두고 그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팍팍 넣었어야 하는데 일단
타깃 자체가 모호해.
BL에 관심이 있는 성향이 있으면서, 하드코어 성향도 맞추면서, 그냥 아기자기한 것 좋아하는 여자들까지 끌어 모으겠다고 한 그 문어발적인
의도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낳은 게 아닌가 싶어.
수지큐: 차라리 탐험에서 뭔가 조작성을 더해서 싸움이 벌어진다든지, 이런 RPG 요소를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재배만 하면 심심하니까 돈 모아 탐험을 나가서 전투도 하고, 또 그러면서 좋은 씨앗을 떨궈준다든지 이상한 식물들하고 싸워서 특수 씨앗을 얻는다든지. 이런 연계성 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재밌었을 것 같아.
나는 랜덤 씨앗으로만 플레이를 해봤는데, 의외로 다양한 애들을 뽑을 수 있더라고.
꼼신: 응? 정말 그러네?
수지큐: 그러니까 0원짜리 랜덤 씨앗을 심어도 시간을 녹이면 뭔가 뜨긴 뜬다? 게임이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은 아니라서 골드 벌면 탐험 보내 놓고, 탐험 끝나면 또 다시 클릭하고. 그냥 켜 놓고 있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 단순함을 노린 건 알겠어.
문제는 요즘 여성 유저들 그렇게 게임 못하고 단순한 걸 원하지 않아. 요즘 모바일게임에 여성 유저들이 돈을 얼마나 많이 쓰는데. 또 손이 바쁘더라도
꾸미고 이런 거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아이러브파스타> 이런 게임이 꾸준하게 나오고 있고 성공하기까지 하고.
꼼신: 맞아. <아이러브파스타>는 번듯한 가게 하나 차리려면 돈이 진짜 많이 들지.
수지큐: 돈도 돈이지만 손도 진짜 많이 가거든. 그 작은 화면에 가구 일일이 옮기려고 하면.
꼼신: 손뿐이야? 시간도 많이 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내가 모아서 꾸미고 하는 게 가시적으로 딱 보이니까 안 아깝단 말이야. 돈도 시간도.
수지큐: 다니다가 이쪽 동네 집 봤는데 너무 예쁘게 해 놨어. 근데 내 가게로 돌아와서 보니까 너무 초라한 거야. 그때 이제 '나도 저렇게
‘핑크핑크’하게 꾸미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가게를 보면서 계산하기 시작하는 거지.
'아 이거 다 사려면 캐시는 얼마나 들지? 이건 나도 한번 사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게임에 빠지게 되는 거니까. 결국은 그런 수집욕에서 과금 욕구라든지 생기는 건데, <재배소년>은 그런 게 없어보여.
단순함은 OK, 덕심 자극은 '글쎄'
꼼신: 그럼 뭔가 추가가 되면 재미있을까? 난 솔직히 회의적이거든.
수지큐: 애매해. 사실 아까 말한 탐험에 전투를 넣자니 그 리소스 가지고 RPG를 하나 만들면 되는 거고. 오히려 여성 취향 RPG를 하나
새로 만드는 게 빠르겠지. 그렇다고 탐험에 스토리를 강화하지니 전부 까 뒤집어야 해서 그것도 애매하고.
요즘은 여성들도 게임을 많이 해. 물론 아직까지 게임보다는 SNS나 뉴스 보는 여자들이 많지만, 출퇴근길에 예전보다 게임을 하는 여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고, <퍼즐앤드래곤> 하는 게이머도 봤고, 요즘 많이 나온다는 게임도 많이하고.
꼼신: 물론 여전히 <캔디크러시사가>나 <애니팡2> 하는 여성 유저들이 훨씬 많아. 근데 그건 이동 중인 지하철 안이니까
유난히 많아 보이고. <아이러브파스타> 같은 코어급 SNG를 많이들 하고 있다고.
수지큐: <아이러브파스타> 한창 나왔을 때 막 쿠폰 뿌리고 할 때, 지하철에서 이거 하는 사람들도 진짜 많이 봤는데.
꼼신: <아이러브파스타> 뿐이겠어? 적어도 카카오톡을 하는 20대 이상의 여자라면 현재 구글 플레이 1~2위를 다투고 있는
<블레이드>라든지 <몬스터 길들이기> 같은 게임을 한 번쯤은 다운 받아서 해봤을 거라고 생각해.
수지큐: 노리는 타깃층은 20대 이상의 여자이면서, 싸이월드 미니미도 알고, 어떤 BL 동인의 맛도 아는. 적어도 최대 마지노선이 30대
중반일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이 게임이 가장 바라는 유저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일거야. 어느 정도 지불 능력도 있으면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그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근데 만약 이들을 제대로 노릴 거였으면 차라리 좀 더 쎘어야 해.
꼼신: 그렇지 아예 수위가 높았어야 한다니까. 이 연령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좀 더 자극적인(?) 콘텐츠가 있었어야 한다는 거지. 일러스트도
더 갔어야 했고, 퀄리티도 더 높았어야 하고. 스토리도 더 밀도 있어야 하고.
수지큐: 그 '세다'라는 게 단순히 19금 야한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자극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 거지. 그 미묘하게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아 집에 있는 내 자료를 좀 갖다 주고 싶다. (웃음)
예전에 대한민국 동인 문화 초창기 때는 코믹월드나 아카 같은 곳에서 부스 검열이 심했어.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창작물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고. 돈 다 내고
참가해 놓고 부스 철거당하는 거도 부지기수였다니까.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말이야. 물론 난 잘 포장해서 팔긴 했지만. 하하.
꼼신: 헉. 팔았구나. 난 구입만 했는데.
수지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다보니까 대놓고 막 야한 걸 내놓는 게 아니라 되게 수려하고 예쁘고 알콩달콩한 글이나 그림이 많았어.
여자들의 그 묘한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꼼신: 만약 이 게임이 비주얼노벨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 성우가 중요한 게 아니야. 대사 한 마디에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했다고 봐.
수지큐: 내 취향의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꼼신: 소꿉친구 에피소드를 보는데, 솔직히 너무 직설적이고 단순한거야. 그러니까 좀 유치하게 느껴 지고.
수지큐: 어떤 게임이든 자선 사업 하려고 내는 건 아니잖아. 수익을 내기 위해 서비스를 시작한 거고, 자기네 게임에 돈을 써 줄만한 타깃팅을
명확함을 해야 하는데, 그 명확함이 부족하니까 이런 애매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 내가 이걸 왜 누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안되지.
결국 ‘여덕’을 노린 게임이잖아. 물론
여덕들이 전부 게임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패키지든 PC든, 모바일이든 게임은 다 해봤을 거란 말이지. 하다못해 동인게임이라도 해봤을 거고.
진지하게 정말 게임의 기획자를 만나보고 싶어. 커피 한 잔 하면서 여성향의 세계를 잘 모르시는 가봐요, 라며 물으면서.
꼼신: 사실 전작이 <재배소녀>였잖아. 난 정말 너무 궁금한 게 과연 <재배소년>을 만든 이들은 정말 여자였을까? 정말 여덕의 세계를 알까? BL을 깊이 알까? 여자들이 정말 SD캐릭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수지큐: 전혀! 넓고 큰 가슴, 떡 벌어진 어깨 20 후반~30대 여자들은 이런걸 좋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