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게임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논점의 중심에 서있는 대표 장르로 '인터렉티브 무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터렉티브 무비란 특정 상황에서 버튼이나 커맨드를 입력해 게임을 진행하는 장르로 대부분 많은 컷씬과 적은 조작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유저의 조작으로 진행되는 RPG, FPS 등 여타 다른 장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갖춘 장르라 볼 수 있죠.
하지만 콘텐츠의 형식은 그것을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개발사 퀀틱드림은 전작 <헤비레인>과 <비욘드 투 소울즈>를 통해 이를 꾸준히 증명하려 노력해왔죠. 물론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히 크게 갈립니다. '조작의 즐거움'을 얻을 수 없을 만큼 유저 개입이 적었으며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 콘텐츠와 비교되면서 '빈약한 스토리'에서 비판받기도 했죠.
그렇다면 퀀틱드림의 신작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어떨까요? 기자는 생각합니다.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가 게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이전보다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다고요. /디스이즈게임 김지현 기자
# 섬세하게 설계된 세계가 흔드는 보편적 '감정'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이야기를 한 줄로 쉽게 표현하자면 '지나친 차별 대우로 인해 인류에 반기를 들고일어난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소설 등 다른 스토리텔링 콘텐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사실 이야기의 소재만 따져봤을 때 독특한 맛은 떨어지죠.
하지만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보는 이들의 어떤 감정을 어떻게 자극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매력은 달라집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평범한 감정들을 자극합니다. 학대받는 아이에 대한 '동정', 일방적 차별에 대한 '분노',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 등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들을 이야기 전반에 쏟아냅니다. 주인공들이 '안드로이드의 벽'을 부수고 감정을 갖게 된 계기 역시 이러한 감정의 흔들림이죠.
분노, 슬픔, 동정심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은 사람을 가장 쉽게 자극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감정 짜내기는 오히려 보는 이들에게 불쾌함으로 올 수 있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이러한 감정의 완급 조절이 잘된 편입니다.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몰입을 위한 장치'가 체계적으로 설계돼 있죠.
초반 플레이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꼽자면 단순 배경으로 머물렀던 NPC나 사물이 '몰입'에 활용된 점입니다. 반 안드로이드 단체의 시위 현장을 지나가거나, 배경 정도로 취급되던 NPC 앞에 잠시 머무르면 주인공을 향해 폭언을 쏟아내는 컷신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이나 인물들은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꼭 지나가야 하는 목표 역시 아닙니다. 아마 어떤 유저는 모르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죠. 하지만 단순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오브젝트가 아닌 주인공들이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그곳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좀 더 명확하게 느끼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적절한 QTE와 인터렉션, 독특한 액션이 주는 '강력한 몰입감'
캐릭터 움직임에 대한 관여가 많다고 해서 몰입감이 커지는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개발사의 전작 <헤비레인>을 들 수 있겠네요.
게임은 유저가 벌이는 모든 행동에 적지 않은 관여를 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옷을 입고, 씻고,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많은 인터렉션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유저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 의미가 과하면 흐름을 방해하고 몰입감을 낮추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인터렉션은 달랐습니다. 유저에게 캐릭터의 모든 행동 조작을 맡기는 과도한 인터렉션이 아닌, 안드로이드의 상황과 역할에 맞는 동작들만 조작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과거 작품과 마찬가지로 실제 캐릭터가 움직이는 듯한 인터렉션이지만, 그 횟수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줄었죠.
이러한 개연성 있는 인터렉션은 주요 인물들과 게임 속 세계관에 대해 쉽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 인물들에 대한 몰입감이 더해진 건 당연하고요.
코너, 카라, 마커스 3명의 주인공은 옴니버스 식의 구성으로 각자의 설정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 성격의 인터렉션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에 다양성을 부여했죠.
사건 수사를 돕는 코너는 현장에서 모은 증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전개를 추리합니다. 마커스는 이동 경로와 시간을 예측한 후 행동을 취하는 계산된 액션을 보여주죠. 안드로이드라는 설정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액션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코너' 파트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코너의 이야기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유저 행동에 따라 결과가 정말 많이 변합니다. 유저가 얼마나 단서를 모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전개부터 이야기의 흐름까지 변화시킬 수 있죠.
게다가 코너는 게임 안에서 액션이 가장 풍부한 편입니다. 사건 조사 및 재현 외에도 제한 시간 안에 사건 용의자를 추적하는 일이 많아 플레이하는 내내 긴장을 놓지 못했죠. 보통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느낌이 강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저 스스로가 이야기의 주체라는 인식이 뇌리에 강하게 꽂힐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긴박한 순간 등장하는 QTE 역시 훌륭한 편입니다. 보통 회피는 아날로그 스틱, 공격은 우측의 OX 버튼으로 고정돼 있어 갑작스러운 QTE도 대비할 수 있을뿐더러 캐릭터 움직임에 확실히 관여하는 '액션'의 느낌을 주었죠.
다만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의 다른 게임과 비교했을 때 액션의 속도가 빠르고, 생각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어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한 두 번의 실수가 결말을 만들어내는 결우는 별로 없기에 조금은 마음을 편히 먹어도(?) 괜찮습니다.
전반적으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액션은 유저를 지나치게 귀찮게 만들지도, 짜여진 이야기를 보여주듯 스토리 밖으로 밀어내지도 않았습니다. 개연성 있는 인터렉션과 조작의 느낌을 확실하게 주는 QTE를 통해 유저가 자연스럽게 인물에 녹아들도록 만들었죠.
# 세계관에 녹아들게 만드는 속도감있는 스토리
잘 만들어진 스토리텔링 콘텐츠는 독자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지루함을 주지 않는 '빠른 속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독자들의 호기심을 더 이상 자극하지 못하거나, 전개가 느려진다면 대부분 지루함을 느끼고 이탈하게 되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스토리 전개는 꽤나 긴박한 편입니다. 게임은 위에서 언급한 코너, 카라, 마커스 세 인물의 스토리가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개발사의 첫 작품인 <헤비레인>보다 인물 간 전환이 빠르고, 각 인물의 핵심 사건이 숨 가쁘게 전개되면서 스토리의 긴박감이 유지되죠.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R2 버튼을 통한 '분석' 기능을 꼽을 수 있겠네요. 게임 내에서 R2 버튼은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유저가 해야 할 일들을 보여줍니다. 마치 RPG의 퀘스트 창 처럼요.
게임에서 R2 버튼은 유저가 이야기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목표와 그 위치를 바로 볼 수 있으니 헤매지 않고 목표를 향해 바로 접근할 수 있죠. 게다가 안드로이드라는 설정 덕분에 개연성을 흐리지 않고 게임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스토리 자체의 매력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이야기는 유저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듭니다. 주요 인물 삼인방은 스토리의 후반부에서야 서로 대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기 전부터 유저는 알고 있습니다. 코너의 선택이 마커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마커스가 어떤 이유에서 그런 행동과 선택을 했는지도 말이죠.
이러한 이유로 유저는 플레이하면 할수록 더욱 모든 행동에 신중하게 됩니다. 게다가 고민의 순간 역시 많은 편이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는 유저가 개입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합니다. 직접적인 행동뿐 아니라 인물 간의 관계, 오브젝트와의 접촉 유무 등에 따라 사건 전개가 달라지죠.
단순히 선택지가 많이 제시되는 것뿐만은 아닙니다. 유저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의 큰 맥락부터 결론까지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큰 편입니다. 게임 초반에 선택했던 것들이 후반에 와서 영향을 주기도 하며, 아주 사소한 결정 하나가 주연의 운명을 바꿀 정도죠. 심지어 엑스트라급 인물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부에 따라 메인 캐릭터들의 생사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행동에 따라 선택지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경비병 몰래 무언가를 훔쳐야 하는 상황에서 창문 밖 드럼통을 바라보면, '밖으로 유인한다'는 선택지가 생깁니다. 유저의 행동에 따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주체가 '나'라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었죠. 동시에 게임 속 세계가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게임 내내 등장하는 추상적인 선택지가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스토리 전개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모호한 문장이나 '중립적', '공격적', '방어적' 등 짧은 단어만으로 작성된 선택지가 많은 편이죠.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에서 선택지는 유저에게 '개입한다'는 느낌을 가장 확실하게 제공하는 핵심 조작 파트입니다. 유저에게 선택지를 제시할 때는 보다 직관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생각입니다.
모호한 선택지를 제외한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이야기는 유저가 끊임없이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유저가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친절하게 안내하면서도 숨 가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흔드는 질문들을 던지죠.
# 무엇이 게임을 게임이라 정의하는가?
최초의 물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게임은 무엇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게임일까요. 그리고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는 게임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게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겠죠. 기자는 게임을 '유저가 이입하고 싶은 세계와 이야기를 제공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세계 속에서 유저가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주어야 하고요.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가 '게임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만들었던 이유는 유저가 충분히 녹아들 수 있는 세계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에서 '조작'은 유저에게 게임에 개입한다는 느낌을 주는 가장 직관적이면서 직접적인 요소입니다. 그 조작이 적다면 유저는 자신이 게임 속 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덜 받을 테죠.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에서 가장 쉽게 유저에게 '개입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선택지조차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유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을 것이고 게임 속 세계와도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겠죠.
기자는 퀀틱드림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통해 인터렉티브 무비 장르의 한계뿐 아니라 틀에 박혀있던 게임의 전통적 형태를 깨부쉈다고 생각합니다. 유저를 몰입시킬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인 '조작'이 적더라도 유저를 매료시킬만한 이야기와 세계를 만들어냈으니까요.
모든 콘텐츠는 날이 갈수록 진화합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죠. 해가 지날수록 전통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게임인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 역시 반복될 수 있죠.
하지만,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기 보다 그것의 형태와 관계 없이 매력적인 세계와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그 자체가 좋은 게임으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치 안드로이드들이 벽을 부수고 그 이상의 존재로 자리하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