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온라인 카드수집게임(Collectible Card Game, 이하 CCG) <하스스톤>의 수석 디자이너 에릭 도츠(Eric Dodds)가 지난 21일(미국시간) GDC 2014 강연에서 <하스스톤> 개발과정과 기획팁을 알려주는 자리를 가졌다.
도츠는 <하스스톤> 개발팀이 프로토타입 게임을 자유롭게 여러 번 시도해볼 수 있던 점이 매우 중요했다며 “여러 번을 빠르게 진행하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하스스톤>은 수많은 잘못된 생각들을 시도해보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디자인(기획) 시간 역시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팀 개발자들이 많이 다른 부서로 옮겨 가면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을 기획하는 데 쏟을 수 있었다”고 웃으며 뜻하지 않게 동료 디자이너 벤 브로드(Ben Brode)와 오랫동안 기획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 덕분에 개발 도중에 게임의 방향이 크게 바뀌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소수의 디자이너가 종이로 프로토타입 게임을 만들어보는 게 한 팀이 프로토타입 게임을 직접 개발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당부했다.
<하스스톤>은 종이 프로토타입 게임에서 플래시 프로토타입 게임으로 넘어오면서 여전히 볼썽사납고 조악했지만 이후 개발팀이 빠르게 게임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스스톤> 개발팀은 종이 프로토타입을 이용해 개발팀이 빠르게 게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대표적인 TCG인 <매직 더 개더링>.
단순하게, 간단하게, 하지만 재미있게!
도츠는 <하스스톤>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는 “CCG를 더 재미있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려고 했다”며 CCG가 갖는 가장 기본적인 재미와 함께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고유의 게임성과 다양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개발팀의 고민 끝에 사라진 CCG 요소 중에는 하수인 고유능력, 카드 특수능력, 자원의 가변성 등이 있다. 도츠는 실제로 이런 요소들을 배제해보니 게임이 더 재미있고 더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너무 단순하게만 만들려고 하다 보니 CCG의 핵심 시스템인 ‘소환 후유증’(카드를 소환하면 그 카드를 다음 턴까지 사용할 수 없는 규칙)까지 건드렸다. ‘소환 후유증’을 없애 보니 오히려 재미도 함께 줄어버린 것이다. 도츠는 “단순화할수록 너무 많은 게임성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소환 후유증은) 다시 집어넣고 예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스스톤>의 특징 중 하나인 영웅의 능력은 게임 플레이를 간단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됐다. 하수인의 능력과 기술 등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게임이 너무 간단해지자, 영웅들에게 고유 불변의 능력을 하나씩 부여해 턴마다 언제나 쓸 수 있도록 했다.
도츠는 “항상 무언가를 추가하고 싶겠지만 때로는 펫 없이도 게임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며 욕심을 버리라고 당부했다.
<하스스톤>도 하수인을 소환하면 그 턴에 행동이 가능하게 바꿔보는 등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설명이 필요 없게 만들어라
보다 단순하고 쉬운 게임을 만들기 위해 도츠와 개발팀은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밀카드다. 일반 CCG에서 볼 수 있는 기존의 플레이-카운터-플레이(한 턴에 여러 행동을 교차로 플레이하는 방식)를 버리는 대신 비밀카드를 추가해 카운터의 맛은 살리면서도 한 턴에 한 명만 행동할 수 있도록 바꿨다.
특히, 턴 제한시간을 15초로 단축하는 ‘노즈도르무’ 카드나 상대 카드 중 2개를 복사해 가져오는 ‘생각훔치기’ 카드 같은 건 <하스스톤> 같은 온라인 CCG에서 가능한 독특한 카드다.
하지만 <하스스톤>의 게임성은 독특한 카드도, 비밀카드도 아닌 카드 간의 상호작용에 있다. 미니언을 바로 없애버릴 수도 있는 영웅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여러 종류의 카드가 얽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재미있는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게 바로 <하스스톤>이다.
도츠는 “조지 팬(George Fan)의 말을 따랐다”며 <플랜츠 VS. 좀비>의 개발자인 조지 팬의 지난 GDC 2012 강연이 <하스스톤>이 보다 대중적인 게임으로 개발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CCG의 재미를 그대로 온라인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어서 그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게 최고다”며 너무 많은 걸 바꾸는 건 금물이라는 당부와 함께 장르의 전형성은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정까지 신경 썼다
<하스스톤>은 게임성뿐만 아니라 유저들의 이야기와 감정까지 신경 써서 만들어졌다. 게임 내 스토리를 없애서 유저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도츠는 실제로 카드를 기획할 때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밀하우스 마나스톰’ 카드는 값싸고 강력한 하수인인 대신, 상대가 다음 턴에 마나 소모 없이 주문을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마나스톰의 특수능력은 상대에게 여러 선택권을 주는데,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나에겐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이런 선택들이 하나씩 모여 유저들끼리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발전하게 된다.
도츠는 꽤 많은 시간을 유저가 느낄 순간순간의 감정에 신경 썼다고도 밝혔다. 그는 “유저가 느낄 감정을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며 번지르르한 UI를 직접 건드려보는 유저의 기분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CCG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카운터 주문이나 자원파괴 덱 조합을 보여주며 “이런 조합을 내가 하면 재밌다. 하지만 그대로 내가 당하면 짜증 난다”며 <하스스톤>에는 이런 카드들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