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거 좋아해"
사실 <소녀전선 2>의 성공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 먼저 출시된 중국 시장에서는 '실패'에 가까운 성적을 거뒀고, 게임 장르도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SRPG다. 이는 간단하고 가벼운 게임을 선호하는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브컬처 게임의 핵심 요소로 여겨지는 '스토리'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많았으며,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출시 시기인 12월은 여러 인기 게임들이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경쟁이 치열한 시기였다.
이처럼 실패를 예견하는 여러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전선 2>는 포화 상태인 국내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 초기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의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의 반응은 첫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에 한달 동안 게임 플레이를 통해 느낀 점을 정리해보았다.
당시 아시아 모바일 서브컬처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꾼 주요한 흐름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격의 바하무트>와 <확산성 밀리언아서>로 대표되는 TCG 형식 게임의 흥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코레류'라는 새로운 장르를 확립한 <칸코레>(함대 콜렉션)의 등장이었다.
<칸코레>는 실제 전함을 미소녀 캐릭터로 재해석하여 육성하는 '캐릭터 수집형' 게임이다. 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캐릭터 획득 방식이었다. <칸코레>는 일반적인 가챠 게임과 달리, 지속적인 게임 플레이를 통해 원하는 캐릭터를 '제조' 시스템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서브컬처 게임에서 2차 창작의 영향력은 매우 중요하다. 유저들은 2차 창작을 통해 게임 외적으로도 IP를 지속적으로 접하고 소비할 수 있으며, 이는 게임에 대한 장기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칸코레>는 출시 6개월 만에 100만 유저를 확보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소규모 개발사의 저비용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칸코레>는 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일본 서버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팬층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식 출시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일본 전함'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논란을 우려한 결정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칸코레>의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소녀전선>이었다. <소녀전선>은 <칸코레>와 유사한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되, 전투 시스템을 차별화했고 '전함' 대신 '총기'를 모티브로 한 미소녀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게임의 퀄리티를 알아본 한국 팬들이 중국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며 자발적으로 한글 패치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팬들의 열정이 개발사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서비스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이후 개발사와 퍼블리셔는 이러한 팬들의 공헌을 인정하여, 한글 패치 팀의 로고를 게임 내 아이템에 이스터에그로 삽입하고 별도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많은 게임 매체들이 이러한 이례적인 성공을 분석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개발사는 이러한 한국 시장의 성공을 바탕으로 'K2'와 같은 한국 특화 캐릭터를 출시하며 현지화에 더욱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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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팬덤의 존재는 신규 이용자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소녀전선 2> 출시 이후, 기존 팬들은 세계관 설명, 게임 시스템 가이드, 개발사의 업데이트 방향성 등 신규 유저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가이드를 자발적으로 제작하며 게임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소녀전선 2>는 '코레류'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캐릭터 뽑기형 수익 모델을 채택했다. 이러한 변화는 모바일 게임의 트렌드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코레류 게임이 오랫동안 유행하면서, 게이머들은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비용을 들여서라도 시간 투자를 줄이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요 소비층이 이제 충분한 구매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의 애정이 있는 게임인 만큼, 퀄리티만 좋다면 어느 정도의 과금은 할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규모 및 중규모 과금 유저들에게 "이 정도 금액이라면 구매해볼 만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매출 증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개발사 '선본 테크놀로지'를 이끄는 우중(본명 황충 - 黃翀) 대표는 이미 <소녀전선> 서비스 시절부터 독특한 취향으로 서브컬처 마니아들 사이에서 밈이 될 정도로 유명한 '스타 개발자'였다. 그의 특이한 취향은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국내 서브컬처 마니아들에게는 "나 이거 좋아해"라는 솔직한 태도로 각인되었다.
이 문구가 실제 그의 발언은 아니었지만, 게임 개발 기조에 강하게 반영된 그의 취향과 마이너한 분야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애정, 그리고 뚝심 있는 개발 자세를 잘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소녀전선 2>는 출시 전부터 '서브컬처와 밀리터리에 진정한 애정을 가진 개발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임'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실제로 <소녀전선 2>가 전체적인 게임 퀄리티 면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서브컬처 게임에서 핵심으로 여겨지는 '캐릭터 모델링' 부분에서는 이른바 업계 탑의 모습을 보여줬기도 하다. 특히, 정교한 스타킹 모델링이나 전술적인 복장 및 행동 묘사에서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 줘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일설에 따르면 모션 캡처 중 일부는 우중 대표가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중국 특허 사이트를 살피면 개발사 '선본'은 캐릭터 모델링을 위한 몇몇 렌더링 방식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상태기도 하다. 선본은 '스타킹 객체를 렌더링하는 방법 및 장치'와 '캐릭터 복장의 보풀을 렌더링하는 방법' 그리고 '머리카락 묘사'에 대한 특허를 2023년 출원해 놓았다.
이는 커뮤니티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알려져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캐릭터 위주의 서브컬처 게임임에도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은 상당히 놀랍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개발사 대표의 이미지를 고려하면, 그 만큼 <소녀전선 2>에도 자신과 개발자들의 취향에 대한 열정을 쏟았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된다.
정리하자면, <소녀전선 2>는 소비자가 게임에 '기대할 만한 것'을 잘 유도했고, 게임을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잘 구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성공했다. 이는 '개발사가 그만큼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개발 및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이 인상은 게임의 충성 유저층 확보로 이어졌다.
<소녀전선 2>의 장르는 난이도가 높아 진입장벽을 가진 탄제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SRPG)다. 난이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X-COM>을 떠올려보면 된다.
수오미는 게임의 난이도를 대폭 완화해 줄 수 있는 지원형 캐릭터다. 보통 서브컬처 게임의 첫 픽업 캐릭터는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 대부분이 가져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수오미의 높은 성능이 오히려 난이도가 까다로운 SRPG 장르의 진입 장벽을 낮춰 신규 유저가 유입되고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수오미가 있으면 대부분의 스테이지를 '자동 전투'로 해결할 수 있다.
SRPG 장르의 난이도를 밸런스를 잡은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안정 게이지' 시스템이 있다. SRPG의 대표로 여겨지는 게임 <X-COM> 시리즈는 '명중률' 시스템에 대한 악명이 높다. 90%의 명중률을 확보한 공격을 시도했는데, 운이 정말 없어 10% 확률로 공격이 실패하고 계획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다.
<소녀전선 2>도 개발 과정을 살피면 초기에는 명중률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명중률 시스템에 대한 불호 의견이 나오자 삭제했다. 대신 상대의 '안정 게이지'를 전부 소모시키면 엄폐 여부와 상관없이 공격이 무조건 100% 대미지로 들어가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더불어 기존에 중국 서버를 즐기고 있던 유저층에 따르면 글로벌 출시된 <소녀전선 2>는 여러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상당히 완화됐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소녀전선 2>는 중국 서비스 당시 비판받았던 많은 문제점을 고쳐 나왔다.
게임이 무겁지 않다는 점도 플러스다. 앱을 실행하고 메인 화면에 진입하기까지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그래픽을 낮출 경우 발열이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 등 최적화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UI는 최고의 퀄리티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적응하기 어렵지 않으며 버튼을 클릭했을 때의 반응이 빠릿한 편이다.
서브컬처 게임의 퀄리티 경쟁이 심해지며 부족한 최적화로 인해 "말만 모바일 게임이지 사실상 PC 게임이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다.
출시 한달을 맞이한 12월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소녀전선 2>의 성적은 두번째 픽업 캐릭터인 '마키아토'가 업데이트된 지금도 모바일 매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서브컬처 게임은 픽업 캐릭터 출시와 함께 매출 순위가 크게 출렁이지만 큰 기복없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소녀전선 2>가 이런 좋은 모습을 2025년에도 이어갈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서브컬처 게임이 과포화되기 시작한 2024년 연말, 신규 출시 게임이 이 정도의 성과를 기록했다는 점은 분명 놀랍고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