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1996년 장편소설 데뷔작의 제목이다. 파괴는 어떤 충동의 발현이자, 강력함의 상징이고, 곧잘 폭발적인 흥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 파이널스>는 '파괴'를 게임의 중심에 둔 FPS다. 엠바크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넥슨이 유통하는 이 게임은 슈팅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시야, 은엄폐, 협동 혹은 방해의 과정을 '파괴'라는 하나의 키워드 안에 녹여냈고, 동시에 맵에 너무 익숙해지면 재미가 떨어지는 장르 특성을 신선한 변수로 극복했다.
존재했다, 부서졌다, 원인과 결과 두 단계로만 쳐다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파괴'되는 방식과 과정의 디테일은, 출시 2주 만에 1,000만 플레이어 이상을 달성한 이 게임의 핵심 중 하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오브젝트, 벽, 천장, 바닥, 심지어 건물을 통째로 파괴하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형을 활용하는 전략까지 선보인 <더 파이널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활용인 동시에, 적을 교란하거나, 아군의 길을 터주는 등의 협동으로도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바로 '파괴'다.
이런 파괴의 레퍼런스는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레드 팩션: 게릴라>였다고 한다. 건물과 다리까지 파괴하는 폭파 스케일을 참고했고, 건물을 부숨과 동시에 적을 사살하는 부분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창작, 시물레이션, 퍼포먼스, 그 외로 나뉜 작업 단계는 파괴될 조각, 다시 말해 지오메트리 분할에서 시작됐다.
이제 또 중요한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부서지는가 여부다. 인게임에선 발코니가 부서지고 창문이 부서지는 등 충격의 영향을 받는 범위와 파괴 영역이 다른 형태들이 존재한다. 각각의 단위들은 연결되어 있다. 지오메트리의 연결을 반영하면 이젠 '힘'을 계산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충격에 어느 정도로 부서질 것인가? 그리고 이를 인게임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한 부분에 충격이 가해질 때, 연결된 부분은 함께 부서진다. 이제 물리학의 시작이다.
이제 본격적인 파괴 구현 시작이다. 연쇄적인 파괴도 있는가 하면, 부분적이고 즉각적인 파괴들도 있다.
지오메트리들은 일종의 집합으로 엮여, 그룹을 형성한다. 어디까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구분하는 방식이다. 이런 파괴는 '모나코' 맵에서도 '서울' 맵에서도 모두 중요하게 활용된다.
이제 문제는 연산을 줄이는 과정이다. 실시간 멀티 게임에서 많은 조각들의 파괴 연산이 적용되어야 하다 보니 데이터 크기를 줄이는 과정도 중요했던 것이다. 델타 컴프레션이라 불리는 상대적인 좌표 계산을 통해 데이터 크기를 줄인 사례가 소개됐다.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문답 중에는 "파괴가 진행되는 중에 다른 파괴가 또 다시 생겨나면 어떻게 연산하느냐"는 질문도 있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파괴가 진행되는 시간은 짧게 설정한 편이며, 복합적인 파괴에 대해서도 계산을 할 수는 있다"는 답변이 있었다.
지오메트리 단위의 물리 연산은 끝났으니, 이제 플레이어가 시작적으로 이런 '파괴'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할 때다.
이제 시야 안의 맵 단위로 모든 지오메트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렌더링 과정을 거치게 된다. 구조가 부서지는 표현 위에 효과 레이어가 겹쳐지며 디테일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지오메트리 구분으로 투박한 파괴된 단면에 자연스러운 표현이 더해지기도 하고, 먼지가 날리고, 광원에 의해 빛이 분산되는 등 실감나는 '파괴'를 만드는 작업이 한 곳에 모인다.
엠바크 스튜디오에서는 개발자들의 노하우를 집약해 '파괴'를 구현했고, 이는 <더 파이널스>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