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차이나조이는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거대한 부스 외벽에는 ‘IP맹’인 기자가 보기에도 익숙한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고 ‘큰 형님’ 텐센트를 필두로 샨다, 퍼펙트월드, 알리게임즈, 360게임즈 등이 쟁쟁한 IP를 가지고 차이나조이에 출전했다. 또한, 중국 내 최대 갯수의 IP를 보유한 알파 그룹의 자회사 알파게임즈는 미디어 간담회를 통해 모회사가 보유한 IP를 소개하고 게임 사업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중국에서 신규 모바일게임 출시를 앞둔 사업자는 “20위권 이하로는 유명 IP가 아니면 사실상 진입이 어렵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IP 전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된 셈이다.

360게임즈 부스에 설치된 <이누야샤> IP의 모바일 대전게임 시연대
‘돈 벌 줄 아는’ 중국 사업자들의 눈
중국의 공룡 기업들이 게임 시장에서 싸우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의 넓은 시장’과 ‘중국 대기업의 자본력’은 몇 년 사이에 중국 게임 시장을 놀라운 속도로 견인해 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중국 게임 개발사에 다니는 한 관계자는 “더 이상 중국 개발사에게 외부와의 경쟁은 의미가 없다. 기업 내 스튜디오간 경쟁만이 의미있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모바일게임은 성공만 하면 단기간에 매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다. 그리고 경쟁에 뛰어든 중국의 게임 업체들은 늘 하던 대로 움직였다. 바로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소비자들은 과금 구조의 함정으로 옭아맨다고 돈을 써 주지 않는다.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이 재밌어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 돈 벌 줄 아는 중국 사업자들은 잘 짜여진 BM을 마련해 두고 유저가 결제까지 무리없이 다다를 수 있도록 콘텐츠라는 이정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이정표를 따라가는 과정은 타인에 대한 경쟁심이든 목적을 향한 노가다든 어쨌든 재미가 있었다.
콘텐츠 퀄리티 상승에 따른 상향평준화, 그리고 더욱 심화되는 경쟁
사실 BM과 콘텐츠는 구조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콘텐츠를 이용해 돈을 버는 방법이 BM, 즉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BM은 너무 좋은데 콘텐츠가 별로’라는 말은 성립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퉈 게임의 퀄리티를 올리기 시작했다. 선봉에는 당연히 막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공룡 기업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개발자들을 파격적인 조건에 중국으로 불러들이고,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조직을 세팅했다. 그 과정에서 간혹 취업 사기를 당했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생겨났다.
중국 게임들의 경쟁적인 퀄리티 상승. 사실상 전쟁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콘텐츠와 BM의 짜임새, 즉 게임성이 상향평준화되자 개발사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다.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퀄리티를 약간 더 올리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고, 그만큼의 효율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차별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케팅 역시 난관에 부딪혔다. IP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13억 내수가 뒷받침하는 IP 전쟁, 마니악한 IP조차 수요는 있어
중국 게임 사업자들은 한국 게임 IP는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 IP까지 닥치는 대로 긁어 모으고 있다. 아무리 마니악한 IP라 해도 내수가 13억이나 되는 만큼 어딘가에는 수요가 존재하고 매출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때문에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장르를 막론하고 전투적으로 IP를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IP를 확보했을 때의 장점은 또 있다. 바로 OSMU(One Source Multi Use,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매출 10위권 이내를 장시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천룡팔부>는 모바일에서만 다수의 타이틀이 출시됐으며 웹게임으로도 출시됐다. 룽투게임즈의 <고검기담>은 게임이 출시된 뒤 웹툰과 웹드라마로 영역을 확장했다. OSMU의 정석과도 같은 행보다.

특히 <고검기담>의 경우, 직접 만든 IP로 성공한 사례 중 하나다. 지금처럼 중국 사업자들이 ‘IP 쇼핑’을 하는 추세라면 조만간 쓸 만한 IP가 고갈될 가능성이 높고, 기업들은 또다시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 중에는 IP를 직접 개발하거나 IP를 만들어내는 회사를 인수하는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라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유니크한 IP로 사랑받는 픽사(Pixar)와 픽사를 인수한 IP 대마왕 디즈니, 이번 차이나조이에서 IP 전쟁에 참전을 선언한 알파 그룹은 ‘중국의 디즈니’로 불린다.
샨다 부스에 마련된 일본의 유명 IP <러브라이브>의 캐릭터 등신대
알파그룹은 현재 1만 7천여명의 작가와 4만여 개 이상의 IP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P 모방국에서 IP 블랙홀로. 대우부터 달라진 중국
그간 중국 게임은 숱한 저작권 논란에 휩싸여 왔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IP를 모방하던 모방국에서 IP를 전투적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공룡 기업들의 IP 전쟁은 중국 게임이 저작권을 지키지 않는다는 선입견까지 상당수 불식시킬 것으로 보인다. IP 전쟁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세상 모든 IP를 중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말이다.
더 이상 차이나조이에 <나루토>나 <원피스>가 나온다고 해서 ‘표절’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몇 년 사이에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