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서 MMORPG는 ‘정형화’됐다. 퀘스트와 파티, 인스턴스 던전, 탈것, 펫 등 기본적으로 챙기는 콘텐츠들이 늘어났고 타겟팅을 위주로 한 전투방식과 퀘스트를 통한 레벨 업도 이제는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MMORPG는 길고, 복잡하고, 비슷비슷한 게임이 됐다. 누리비스타의 스타덕스 스튜디오 최준 PD가 <와일드버스터>를 개발한 계기다.
“하고 싶은 건 다 했습니다” 최준 PD는 <와일드버스터>에 평소 꿈꾸던 다양한 콘텐츠들을 넣었다. 레벨 업은 마음먹고 이틀이면 최고 레벨에 도달할 만큼 빠르고 쿼터뷰 슈팅방식의 전투를 도입해 직관적인 조작을 이끌었다.
리스트를 가득 메운 퀘스트도,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꽉 짜인 레벨 업 동선도 <와일드버스터>에는 없다. 시원시원하고 빠른, 다량의 몬스터들을 몰아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준 PD에게 <와일드버스터>가 꿈꾸는 이상향을 들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스타덕스 스튜디오의 진치윤 실장(왼쪽)과 최준 PD(오른쪽)
■ 학살과 시원한 진행이 와일드버스터의 무기
<와일드버스터>는 쿼터뷰 시점으로 즐기는 액션 MMORPG다. <와일드버스터>의 전투는 논타겟팅 방식의 액션이며 키보드로 캐릭터를 이동하고 마우스로 총을 쏠 방향을 정한다. 엔씨소프트에서 선보였던 <메탈블랙: 얼터너티브>나 최근 세시소프트에서 공개한 <메탈리퍼>와 비슷한 방식이다.
적과 아군 모두 장거리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 만큼 화면에는 총알이 빗발치며 전투 진행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빠르게 굴러서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수류탄을 던져 주변의 적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본 <와일드버스터>는 액션보다는 ‘슈팅’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정도다.
최준 PD는 여기에 속도감을 한층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준비했다. 던전에서는 ‘약한’ 몬스터가 ‘많이’ 등장하고 몬스터와 플레이어의 기본 이동속도도 확 끌어 올렸다. 몬스터도 굉장히 공격적이다. 던전의 구조가 단순하고 제한시간까지 있는 만큼 빠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잘한 몬스터들에 신경 쓰는 걸 막기 위해 보스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체력게이지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도 길지 않다. 보스 몬스터는 10~15개 정도의 공격 패턴을 갖고 있지만 같은 공격 패턴을 두 번씩 보기도 전에 전투가 끝나도록 디자인할 예정이다.
레벨 업도 굉장히 빠르다. 하루 종일 즐긴다면 최고레벨까지 약 2일이면 도달할 수 있다. 극단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속도’에 몰입한 게임이다. 이 모든 게 답답하지 않은 빠른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다.
기존의 MMORPG는 빠른 진행을 막는 요소들이 많았다.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던전은 길고 답답했다. 전투 하나하나도 너무 길었다. 게임에 집중하는 것도 스트레스의 일종인 만큼 지나친 집중은 오히려 해가 된다. 그런 것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학살을 벌이는 전투방식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최준 PD의 설명이다.
지나치게 빠른 레벨 업과 콘텐츠 소모속도가 걱정되지 않을까? 그래서 <와일드버스터>에는 계정단위의 성장시스템이 삽입됐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직업을 최고레벨까지 올려야 C직업을 고를 수 있다거나 D직업을 통해 해당 조건을 만족시켜야 B직업의 스킬이 강력해지는 방식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통한 성장 유도다.
현재 <와일드버스터>에는 20종 이상의 직업을 준비 중이다. 기획 중인 직업까지 포함하면 40종이 넘는다. 여기에 아이템을 모두 구하면 조금 독특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수집 시스템도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 10대를 색상 별로 모으면 장갑차 1대를 주고, 다시 장갑차 10대를 모으면 탱크 1대를 얻는 식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한 것인 만큼 능력은 동일하다. 빠른 개발을 위한 프로세스도 구축 중이다. <와일드버스터>가 빠른 성장을 내세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MORPG가 아닌 MMORPG. 필드는 ‘랜덤한 재미가 있는 곳’
<와일드버스터>는 MORPG가 아닌 MMORPG다. 겉모습만 봐서는 파티를 짜고 방을 만들어 즐기는 게임 같지만 일부 인스턴스 던전을 제외한 모두 장소는 유저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필드다. 당연히 필드콘텐츠의 비중도 높다.
하지만 ‘학살에 가까운 빠른 대규모 전투’와 ‘많게는 수 백 명이 한 번에 몰리는 공용필드’는 어울리기 힘든 요소다.
유저에 비해 몬스터가 적을 경우 정해진 자리에서 몬스터의 부활만 기다리는 자리싸움으로 치닫기 십상이고, 반대로 많은 유저가 몰릴 걸 예상하고 몬스터의 숫자를 너무 많이 배치할 경우 사람이 없을 때는 해당지역에 유저가 진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사방으로 총기를 난사하는 <와일드버스터>의 특성상 다른 유저의 전투에 휩쓸리기도 쉽다.
최준 PD는 그래서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공용필드를 레벨 업이 아닌 콘텐츠를 즐기는 장소로 준비한 것이다. <와일드버스터>의 필드에서 플레이어는 생존자를 찾고 보호하는 퀘스트들을 진행하거나 행성 곳곳에 위치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자들과 대립하게 된다.
몬스터도 지상에 배치되지 않았다. 플레이어의 숫자나 강함에 따라 그때그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방식이다. 때로는 다른 플레이어의 퀘스트를 방해하는 퀘스트나 대규모 전쟁도 주어진다.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 필드 레이드 보스도 있다.
다른 유저들과 부대끼는 재미를 강조하기 위해 마을도 하나로 통합했다. <와일드버스터>에서 도시는 거대한 대도시 하나뿐이다. 플레이어는 언제나 도시에서 게임을 시작해서 레이드나 전쟁, 인스턴스 던전에 도전할 유저들을 모으고 한바탕 콘텐츠를 즐긴 후 마을에서 돌아오면 된다.
안전한 인스턴스 던전에서 레벨업하고 필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다양한 콘텐츠를 즐긴다. <와일드버스터>에서 필드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일종의 ‘랜덤 이벤트가 가득한 노는 장소’인 셈이다.
진영구분도 독특하다. 먼저 <와일드버스터>의 세계관을 보자. 4행성 로터에 문명의 꽃을 피운 인류는 엄청난 자원이 매장된 3행성 타이탄을 개척하며 유례없는 번성을 누린다. 하지만 어느 날 위성 요세프가 우주 저편의 기계문명에서 찾아온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무인위성인 요세프는 손쓸 겨를도 없이 기계문명에 잠식당한다.
위성을 장악한 기계들은 인류의 3대 행성 중 하나인 프라우를 멸망시켰고 극히 일부의 난민만이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기계문명의 확산을 두려워한 인류는 프라우의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장의 에너지가 급했던 난민들은 3행성인 타이탄으로 발길을 돌린다.
행성 프라우가 멸망하는 동안 인류는 기계문명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들을 개발하게 되고 전쟁은 보다 가속화된다. 그리고 행성단위의 전쟁이 이어지면서 태양계는 극심한 중력이상을 겪는다. 결국 인류는 기계문명을 전멸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신 주행성인 로터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린다.
로터의 인류들은 프라우의 난민과 마찬가지로 3행성 타이탄으로 이주하고 살아남은 기계문명 중 일부도 생존을 위해 타이탄으로 향한다. 인간을 이용한 개조작업에 성공한 이들은 스스로를 브로켄이라고 부르며 타이탄에서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로터 사람들에게 거부당해 타이탄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던 프라우의 난민, 뒤늦게 대규모 물자와 인원을 이끌고 타이탄을 찾은 로터의 이주자들, 인간사냥에 맛들인 브로켄들이 타이탄에 모두 모이면서 <와일드버스터>의 무대가 꾸려진다.
플레이어는 이 중 프라우의 난민출신인 비정규군과 로터의 이주자들로 구성된 정규군 중 하나의 진영을 골라 게임을 즐기면 된다. 같은 인류지만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정규군은 도시 내의 다양한 자원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퀘스트를 통해 각종 물자도 손쉽게 얻는다.
반면 비정규군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정규군에 의해 도시의 극히 일부 구역만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물자는 자급자족으로 얻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 뱀장어를 잡아 전기를 일일이 채우고 정규군을 약탈해서 무기를 얻는 식이다.
게임플레이에서도 두 진영의 차이는 극명히 드러난다. 레벨 업 속도 자체는 비슷해도 비정규군의 플레이 과정은 정규군에 비해 몇 배는 더 힘들다. 대신 비정규군은 ‘군’에서 벗어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정규군이 가지 못하는 지역에 접근하거나 정규군 플레이어의 인스턴스 던전을 침입하는 퀘스트를 받기도 한다.
밸런스가 걱정될 법도 하지만 최준 PD의 이야기는 자신에 차 있다. 애당초 서로 전쟁을 벌이는 대립구조가 아니고 구조자체가 정규군 80%, 비정규군 20%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어렵긴 해도 독특한 전투방식을 즐길 수 있고 비정규군만의 콘텐츠도 많은 만큼 많은 하드코어 유저들이 몰릴 것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 PvP가 핵심! 하고 싶은 건 다 해본 게임
<와일드버스터>에서 내세우는 최종 콘텐츠는 PvP와 캐릭터의 연이은 성장이다. <와일드버스터>에는 ‘스쿼드리그’라는 다수vs다수의 전장이 존재한다. 스쿼드리그는 일종의 미니게임 형식의 전장으로 깃발뺏기와 진지점령, 디펜스 등 다양한 규칙이 있다.
애당초 슈팅게임 방식의 전투를 도입한 만큼 미니게임 방식의 전장도 굉장히 잘 어울릴 것이라는 게 최준 PD의 생각이다.
이 밖에도 동기시스템을 통해 비슷한 기간에 게임을 시작한 유저끼리 뭉칠 수 있는 퀘스트를 계속 주거나 매일매일 필드 레이드와 전장, 특정 던전 클리어 등의 목적을 줌으로써 ‘접속하면 언제나 가볍게 즐길 게 있는 게임’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퀘스트도 그날 해결 못한 건 퀘스트목록에서 다 날려버릴 예정이다.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획이다.
최준 PD가 이전에 개발했던 게임은 <로한>이다. 친숙한 시스템으로 성공은 거뒀지만 만들 수 있는 콘텐츠에 한계가 있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와일드버스터>에는 그가 꿈꾸던 과감한 도전들이 가득 녹아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겁니다. 초기에는 스킬이 아예 없는 캐릭터처럼 같은 팀에서도 이게 뭐냐고 반문했던 캐릭터가 많았어요” 소원을 풀었다는 최준 PD의 답변이다. 최준 PD와 누리비스타의 꿈이 담긴 <와일드버스터>는 32명의 팀원이 1년 정도 모여 개발 중이며 올해 하반기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