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게임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너무 튀어도 안 되는, 마치 영화에서 조연배우 같은 역할이다.
배경은 게임의 몰입감을 키우고, 플레이의 맛을 더해 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캐릭터에 밀려 알려진 정보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이로 인해 배경 아티스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이러한 정보 부족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네오위즈게임즈(이하 네오위즈) <블레스> 스튜디오의 김태근 테크니컬 아티스트(이하 TA)와 김주미 배경 월드빌드 파트장은 <언리얼 게임 배경 테크닉>이라는 책을 펴냈다. <블레스>(BLESS)는 언리얼 엔진 3로 개발 중인 MMORPG다.
디스이즈게임은 이들이 책을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고, 배경 아티스트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김태근 TA와 김주미 파트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 “게임 배경 그래픽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
TIG: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태근 TA: 액티비전블리자드에서 <기타 히어로> <토니 호크> 시리즈 개발에 참여했고, 이후 EA로 회사를 옮겨 <배틀필드 온라인> <NBA 스트리 온라인>에서 배경 테크니컬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웹젠의 FPS게임 <배터리>의 배경 파트를 담당했고, 지금은 네오위즈의 <블레스> 스튜디오에서 테크니컬 아티스트를 맡고 있다.
김주미 파트장: 처음부터 게임 분야에서 일한 것은 아니다. 3D 애니메이션 <꾸러기 더키> <범버킹 재퍼>의 제작 참여를 시작으로 이후 <다크에덴 2> <아이온> 개발에 배경 아티스트로 참가했다. 지금은 <블레스>의 배경 월드빌드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TIG: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태근: 시중에는 게임 배경 그래픽에 집중해 설명해 주는 책이 드물다. 처음 배경 그래픽 일을 시작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히 배경 작업이라는 게 워낙 소재와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이 독학으로 소화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외국에서 나온 배경 그래픽 관련 서적이 몇 종 있었지만, 모두 원문으로만 볼 수 있었다.
이후 일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서 배경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팀이 구성돼 있는지 알게 됐고, 이 일을 희망하는 학생이나 디자이너에게 조금이라도 설명하고 싶었다. 또한 ‘내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크게 작용했다.
김주미: 근본적인 이유는 김태근 TA와 비슷하다. 이 책을 쓰기 전에 출판사의 요청으로 원고를 한번 쓴 적이 있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이렇게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TIG: 이 책의 구성은 어떻게 돼 있는가?
김주미: 앞에서는 배경 그래픽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이후 예시로 오브젝트를 하나씩 만들어 실제 하나의 맵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를 위해 통나무 통이나 벽, 나무 등 다양한 오브젝트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하는 식으로 최대한 예를 많이 들기 위해 노력했다.
TIG: 두 사람 모두 네오위즈 소속이다. 네오위즈에서 책을 만들자고 한 것인가?
김태근: 아니다. 네오위즈로 회사를 옮기기 전부터 원고를 작성 중이었다. 원고를 쓰면서 혼자서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출판사에 함께 일할 파트너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옮기고 나서 김주미 파트장이 같이 참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 “UDK와 랜드스케이프까지 책에 담았다”
TIG>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김태근: 게임 배경 그래픽이라는 것이 아직 확실히 정의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분야도 다양하고, 개발팀마다 멤버 구성도 다르다. 게다가 독자의 수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연했다.
특히 수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3D MAX를 다룰 수 있지만 배경 그래픽 쪽은 잘 모르는 유저를 대상으로 한 입문편에 책의 수준을 맞추고 일을 시작했다.
김주미: 책은 내가 아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고 어렴풋이 알던 지식을 글로 남기는 것인 만큼 정확한 사실을 검증해야 헸다.
예를 들어 메모리에 저화질 텍스처가 2장 올라갔을 때와 고화질 텍스처 1장이 올라갔을 때, 어떤 쪽이 메모리를 많이 차지하는지, 언제 더 효율이 좋은지 같은 경우 프로그래머가 아니어서 애매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을 확실히 해결하려고 했다.
TIG: 그 외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주미: 기술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배경 그래픽에 대한 이론과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책을 채웠다. 그런데 원고를 작성하던 중 에픽게임스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UDK(언리얼 개발 킷)를 공개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별다른 진입장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UDK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의 제목도 <언리얼 게임 배경 테크닉>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또 매달 UDK가 업데이트되다 보니 바뀌는 내용도 많았다. 심지어 처음에 찍은 메뉴 이미지가 지금과 달라 다시 찍은 것도 많다. 이렇게 업데이트에 맞춰 내용을 바꾸고 이미지를 편집하니 일정이 많이 늦어졌다.
김태근: 특히 작년 말에 지형과 관련된 ‘랜드스케이프’라는 중요한 기능이 UDK에 추가되면서 거의 완성됐던 원고가 다시 3개월이 밀렸다.
물론 랜드스케이프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기능이었다. 만약에 이 내용을 넣지 않았다면 개정판이 나왔어야 할 정도였다. 만약에 3월에 또 중요한 업데이트가 있었다면 이 책의 발매는 또 밀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최근 이슈를 담아서 그런지 실제 개발에 참가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은 그런 부분을 많이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아무래도 회사에 알리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어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주로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이나 주말은 대부분 책을 만드는 데 투자한 것 같다.
TIG: 책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주미: 개인적으로 2009년 봄에 계약한 상태였다. 같은 해 7월 출산 예정이라 그 전에 원고 집필을 끝내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일정이 점차 밀리면서 아이가 먼저 태어나게 됐다.
김태근: 나도 지난 2월에 아내가 출산했다. 원래 일정은 2주 후였는데 아이가 책보다 늦게 나오기가 싫었던 것 같다(웃음).
당시에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아내의 출산으로 집에서 하던 일도 놔두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3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컴퓨터는 작업하던 화면에서 멈춰 있고, 마우스는 어딘가로 날아가 있고, 집분위기가 굉장히 어수선했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쓰는 동안에 서로의 아이 2명과 책이 1권 나오다 보니 총 3명의 아이가 태어난 셈이다(웃음).
■ “환경에 대한 이해력과 응용력이 필요하다”
TIG: 게임 배경 그래픽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주미: 3D 그래픽를 시작했을 때부터 배경 작업을 좋아했다. 캐릭터들이 내가 만든 공간에서 뛰어논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뿌듯했다. 또한 배경은 같은 공간이라고 해도 오브젝트를 어떻게 배치했는지, 어떤 색을 강조했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서 좋았다.
김태근: 캐릭터 모델링이나 애니메이션 작업도 해 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오브젝트를 만들어 조화된 공간을 꾸미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 디테일이 부족해 섬세함이 요구되는 캐릭터 작업은 조금 힘들었다(웃음).
TIG: 김태근 TA는 국내외 개발팀에서 모두 작업해 봤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
김태근: 아무래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도 자유롭게 바뀌고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외의 경우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고, 정해진 시간 동안 집중력 있게 맡은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점이다. 모두들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별도의 야근이 없고, 금요일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일해도 터치가 없는, 그런 환경을 제공하는 것 같다.
일을 만족스럽게 마감하기 위해 스스로 일을 더 하는 것은 프로라면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 해외에서 일할 때 (게임 속) 쓰레기통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개발팀에서 쓰레기통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을 일주일 줬다. 그래서 쓰러진 것도 만들어 봤고, 심지어 쓰레기 봉투도 만들어서 분리할 수 있도록 작업했다. 그런 부분이 그들 눈에도 좋게 보인 것 같았다.
TIG: 배경 아티스트로서 필요한 능력은 어떤 것이 있는가?
김태근: 자신이 직접 콘셉트를 만드는 능력도 많이 필요하다. 캐릭터야 원화부터 탑뷰, 사이드뷰 등 콘셉트와 함께 디테일한 설명이 추가되지만 배경은 일일이 콘셉트나 설명이 추가되지 않는다.
특히 던전의 경우 어떤 이미지나 분위기가 주어지면 배경 아티스트가 직접 맵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는데, 여러 개로 나눠진 던전의 구역마다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는지도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는 많은 이미지를 접하려고 노력했다. 풍경화, 자연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기도 해서 자연물이나 폐허, 철도길 등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나만의 레퍼런스로 만든 게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배경 아티스트는 빛과 색감에 민감해야 한다. 같은 공간도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빛이 어떻게 바뀌고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실제 작업에서도 보다 사실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주미: 아주 가깝고 당연한 것이라도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길을 가던 중에도 주변에 핀 꽃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또, 같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이를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을 만들어도 사람에 따라 답답한 공간이 될 수 있고, 웅장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김태근 TA가 말했듯이 같은 쓰레기통이라도 찌그러진 것, 쓰러진 것, 가득 찬 것 등 다양한 오브젝트를 만들 수 있는 센스도 중요한 것 같다.
TIG> 각자 기억에 남는 여행이나 영화가 있다면?
김태근: 지난 2002년 처음 갔었던 미국 그랜드 캐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웅장함과 거대한 느낌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때 사람이 여행을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도 2~3년에 한 번씩 갔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다양한 지역이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장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김주미: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라푼젤>이다. 특유의 밝은 느낌과 섬세함이 무척 잘 표현됐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배경을 만들 때 많이 참고했다.
TIG: 배경 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태근: 열심히 꾸준히 하는 게 결국 통하는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쓰레기통을 만드는 데서 시작했지만 열심히 했더니 더 큰 쓰레기통, 일정 구역 등 점점 내가 만드는 범위가 늘어났고, 어느 순간 메인 섹션을 모두 맡게 됐다.
배경 작업하는 것을 보면 캐릭터 못지않게 많은 기술이 들어간다. 그만큼 장인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파트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배경도 캐릭터의 뒷전이 아닌 메인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듯하다.
김주미: 게임에서 캐릭터를 뺀 나머지 공간은 대부분 배경으로 채워진다. 그만큼 게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이제는 컴퓨터의 사양이 좋아지면서 높은 퀄리티의 배경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게임 배경 아티스트가 참여할 여지는 많다고 생각한다.
배경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가 되고자 책을 쓴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물론 책만 보고 그대로 따라해서는 의미가 없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다양한 맵과 오브젝트를 만들어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TIG: 끝으로 <블레스>를 개발하는 입장에서 한마디 부탁한다.
김주미: 작년 지스타 2011에서 선보인 <블레스>는 전투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다 보니 그래픽 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다음에 <블레스>를 공개할 때는 유저에게 만족스러운 그래픽을 선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