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PO: ‘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의 약자. 주로 IT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며, 기업의 업무처리 과정을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 ‘Offshore BPO’는 이런 업무를 해외에 있는 회사에 맡기는 것을 뜻함.
몇 년 전에 어떤 책을 읽고 신기했습니다. 일본 국내의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중국 콜센터에서 하다니! 일본 내 인건비가 높아서, 저렴한 중국 다롄(大連)의 인력을 활용한다는 거였습니다. 다롄은 4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여서, 일본어가 유창한 사람이나 일본어 교육기관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다롄보다 이런 류의 해외 BPO에 더 특화된 나라가 있습니다. 인도와 필리핀이죠. 일본어보다 영어의 수요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인도와 필리핀은 약 10년 전부터 BPO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초창기는 주로 콜센터와 관련된 업무였고, 차츰 IT나 회계 관련 서비스로도 확대됐죠. 미국에서 PC 수리나 잡지 구독, 보험금 신청을 위해 전화하면 인도나 필리핀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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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BPO 이야기냐고요? 온라인게임 산업에도 비슷한 게 있어서요. 영문 서버의 운영 외주와 관련된 것이죠. 몇 년 전 필리핀을 갔을 때 처음 BPO라는 단어를 들었고, 현지 게임회사들이 이런 쪽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그 뒤 인도에 운영 센터를 세운 국내 업체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런데 최근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이쪽 시장에서 확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 LA에 위치한 이그나이티드게임즈(Ignited Games)가 필리핀에 BPO 회사를 세웠는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였죠. 신기해서 좀 들여다보고, 강한근 대표에게 물어도 봤습니다. /시몬
■ 10년의 북미 서비스 노하우, 운영 아웃소싱 업체로
이그나티드게임즈는 2010년 9월 미국 LA 공항 근처에 설립됐다. 넥슨이 엔도어즈를 인수한 뒤, 엔도어즈 북미법인의 강한근 대표가 <아틀란티카> 남미 판권과 <원더킹> 북미 판권을 가지고 나와 새로 만든 회사다. 그런데, 법인 설립 3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이 회사는 필리핀 마닐라에 게임 운영을 담당할 IGSP(Ignited Games Service Philippines)를 세웠다.
“새 회사의 게임 운영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필리핀 법인을 만들게 됐습니다. 엔도어즈 시절 <아틀란티카>의 북미 서비스를 필리핀 운영법인에서 관리했던 경험도 있었으니까요.”
필리핀 법인은 본사 게임만 운영하기 위해 만든 곳은 아니었다. 강 대표는 2003년부터 그라비티의 미국법인장을 시작으로 줄곧 북미에서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해왔다. 그는 북미 서비스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었다.
“10년 동안 운영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고민하는 업체들을 많이 봐왔는데, IGSP는 그간의 경험을 활용해 파트너들과 윈윈(win-win)할 수 있는 솔루션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본사 설립 3개월 만에 필리핀에 회사를 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2010년 11월 지스타가 끝난 뒤 곧바로 필리핀으로 날아갔습니다. 사무실 임대부터 법인 설립까지 모든 일을 1개월 이내에 완료해야 했죠.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명절입니다. 그 전후로는 공공기관까지 몇 주 동안 연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직접 천장과 벽을 깨가며 공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BPO의 핵심은 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다. 아무리 저렴해도, 업무를 믿고 맡기려면, 그에 대한 전문성이 필수다. 운영 외주에는 운영자가 핵심이다.
“필리핀에서 8년 동안 게임을 운영해온 경력자를 먼저 채용하고, 그 후 경력자 10명으로 세팅했습니다. 12월 첫 파트너사와 미팅한 후, 그 이듬해 1월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죠.”
급조, 혹은 날림의 느낌마저 들 정도의 속도감. 그런데, 그 후의 성장세는 더욱 빨랐다. 2011년 정초 10명의 인력과 1개의 파트너사로 시작했던 회사는 그 해 연말, 85명의 인원이 21개의 타이틀 운영을 맡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북미 회사는 물론 한국의 GSP(글로벌서비스) 운영사, 유럽의 영문 서비스 업체 등과도 계약했다. 얼마나 커버린 걸까? IGSP에 따르면 현재 BPO 서비스 시장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약 70%. 나머지 30%를 기타 작은 업체들이 나눠 맡고 있다고 한다.
IGSP 여성 GM들이 만들어 준 TIG 로고 포즈. 원더걸즈의 팬들인 모양이네요.
기존 BPO 강자였던 레벨업이 브라질과 미국 퍼블리싱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IGSP가 반사이익를 얻은 면도 있지만, 1년 사이의 초고속 성장은 그 동안 쌓아왔던 경험의 공이 크다. IGSP는 신생회사였지만, 10년 동안 북미 서비스를 경험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였으니까.
“저희 필리핀 법인의 주요 미션은 ‘퍼블리셔들의 니즈를 이해하는 능동적인 운영 조직’입니다. 북미 퍼블리싱 경험을 통해 퍼블리셔가 원하는 것과, 유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게 단기간 내 시장 선두가 된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 PM이나 개발자보다 앞서, 게임의 개선사항이나 유저의 의견이 잘 반영되게끔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했던 것이 많은 파트너사들에게 호응을 얻었죠.”
현재 IGSP의 기본 서비스는 게임 운영과 고객 관리다. 부가적으로 마케팅과 로컬라이제이션, 빌링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업무를 시작하면 퍼블리셔의 모든 운영 관련 권한을 부여받아, 실제 게임 운영자로서 업무를 보게 된다.
■ 세계 최강 BPO 국가 필리핀
필리핀 BPO의 장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영어인력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글로벌 서비스는 인력의 배치와 근무시간의 운용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BPO가 이점이 있다.
“글로벌 서비스는 24시간 내내 세심한 운영이 요구됩니다. 영문 서버의 경우, 영어에 능숙한 운영자가 필요한데, 이런 인력을 구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인건비는 둘째치고 관련 인력을 찾기가 어렵고, 유럽이나 미국은 내수 인력배정이나 근무시간 설정 등의 애로사항 때문에 대규모 인력을 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의 BPO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거죠. 현재 한국에서 글로벌 영문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는 업체가 10여 곳 있는데, 플랫폼과 관계없이 이러한 서비스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미나 유럽도 마찬가지고요.”
IT 산업의 발전과 함께 시작된 BPO 사업 초창기에는 인도가 앞서나갔다. 하지만, 최근 동향은 필리핀의 우세. 지난해 IBM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BPO 강국으로 부상했다. 2010년 기준, 91억 달러(약 10조3,000억 원)의 산업 매출액은 필리핀 GDP(국내총생산)의 5%에 해당하고, 52만5,000 명 가량의 인력이 종사하고 있다.
이 같은 고속성장에는 필리핀 정부의 공이 크다. 고용창출과 국가 경쟁산업 강화를 위해 소득세 및 관세의 면제·감세 등 BPO 육성책을 시행했다. 미국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통신 인프라 면에서도 정부의 지원 덕분에 필리핀이 인도보다 우세하다. BPO 업계에 취직하기 위해 봐야 하는 테스트까지 만들었다.
문화적으로도 필리핀이 미국과 가까운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반면, 필리핀은 20세기 전반에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미국 문화와 가깝다. 게다가 필리핀 BPO 인력의 급여 수준이 인도보다 낮다. 많은 미국 기업들이 필리핀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리핀의 고급 인력들도 BPO 쪽으로 많이 흡수되고 있는 추세다. 평균 근로자에 비해 약 40% 이상 급여가 높고,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필리핀에서는 콜센터에 입사하려면 4년제 대학을 반드시 마쳐야 한다.
“IGSP 전체 인력의 50% 이상이 필리핀 대학(University of Philippine) 출신입니다. 필리핀 대학은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 급입니다. 이 중 유년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친구들 및 졸업 후 게임업계에서 근무한 친구들을 주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영어 구사능력 및 업무 이해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급여 수준도 꽤 높은 편이죠. 운영 경력자들이 관리자로 배정돼 한 달 동안 교육하는데, 5차에 걸친 시험을 통과해야만 정식 직원이 될 수 있습니다. 5명이 지원했다면, 평균 2명 정도 이 시험을 통과해 최종 채용됩니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운영과 관련해서는 필리핀이 인도에 비해 더욱 유리하다. 필리핀은 이미 몇 개의 큰 퍼블리셔가 있고, <란온라인> <그랜드체이스> <스페셜포스> 같은 게임들이 흥행을 거뒀던 시장이다. 반면 인도는 아직까지 온라인게임의 보급이 매우 더딘 상황. 따라서 양국 인력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BPO 사무실의 ‘버라이어티한’ 풍경
저렴하게 영어 잘하는 고급 인력을 쓰는 장점이 있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것에 비하면 약점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격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약점이 있습니다만, 최근에는 화상통화나 메신저 기능이 잘돼 있어 큰 무리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업데이트나 세부적인 시스템과 관련된 깊이 있는 내용의 소통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만 할까.
“그래서 파트너 회사와 정기적인 미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파트너 회사들이 정기적으로 필리핀 사무실을 방문해 담당 GM에게 업데이트 교육을 하고 있죠. 화상 회의를 통해 향후 업데이트 및 운영 방안에 대해 정기적인 논의도 진행하고 있고요. GM도 일일, 주간, 월간 리포트 등을 통해 수시로 발생되는 이슈들에 대해 파트너 회사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좀더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필리핀 GM을 1개월 동안 파트너 회사에 파견 보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고요.”
실제 에피소드를 들어보니, 퍼블리셔와 IGSP 직원들 사이의 관계가 꽤 근사하게 보였다.
“퍼블리셔들이 자사 게임을 담당하는 운영 인력들에게 티셔츠나 POP(매장에 세우는 홍보용 광고물)은 물론 사원증까지 보내줄 정도로 관계가 좋습니다. 내부적으로 직원들끼리 경쟁이 붙기도 하죠.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더라도 담당 퍼블리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A업체는 사원증과 회사 유니폼을 보내오고, B업체는 각종 게임 관련 미니어처를 부쳐오고, C업체는 아예 회식비용을 보내주기 때문에 매월 ‘버라이어티한’ 풍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부러운 풍경의 이유.
“저희 직원들이 게임에 문제가 있을 때 밤낮 가리지 않고 2분 안에 신속하게 리포트를 보냅니다. 그 순간에는 힘들더라도, 빠른 대처가 이루어진다는 좋은 평가를 얻었죠. GM이 유저와 소통하면서 현재 게임의 밸런스와 이벤트나 업데이트 방향까지 개발팀에 제안하기 때문에 게임 기획자는 좀 힘들 수도 있겠죠. 서비스 중인 일부 게임은 게임 자체가 좋아진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저희가 운영을 맡은 뒤 동시접속자 수가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저희가 1년 사이에 급성장한 배경에는 GM들의 이런 노력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