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PC 온라인게임 시장에 한 신생 개발사가 도전장을 던졌다. 크리스 정 대표가 2010년 설립한 ‘모티가’가 그 주인공이다. 본래 모티가는 모바일 기반의 온라인게임 개발을 목표로 했던 개발사. 하지만 2년 전 돌연 개발 방향을 선회해 PC 온라인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모티가가 새로운 무기로 내세운 것은 캐주얼 팀 대전게임 <자이겐틱>.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경은 녹록치 않다. 북미 PC 온라인게임 시장은 몇 년 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는 상태이며, <자이겐틱>이 목표로 하는 시장은 이미 <리그오브레전드> <팀포트리스2> 등 기존 강호들이 차지하고 있다.
모티가가 이렇게 험난한 PC 온라인게임 시장에 도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 모티가 본사에 찾아가 크리스 정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벨뷰(미국)=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모티가의 크리스 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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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정 대표가 게임업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3년 엔씨소프트와 아레나넷과 만나면서였다. 정 대표는 평소 온라인게임, 정확히는 다수의 유저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게임을 즐겼던 인물. 그는 이 인연을 계기로 엔씨소프트 북미지사에서 아레나넷의 살림을 도우며 <길드워>의 산파 역할을 했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라 사업가지만,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실제로 나부터가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 덕에 일상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 이런 즐거움을 다른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돕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길드워>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엔씨소프트 북미 지사 대표, <리프트>로 유명한 트라이온월드의 최고전략책임자(CSO) 직을 역임했다. 하지만 매번 아쉬웠던 것은 아레나넷 초창기, 소수의 팀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크리스 정 대표는 2010년, 현재 모티가의 CTO인 릭 램브라이트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온라인게임이 목표였다. 당시는 아이폰 열풍 덕에 모바일게임 시장이 막 주목받던 시기였다. 나도 온라인게임도 궁극적으로는 모바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마칙 나에게 연락했던 릭에게 이런 구상을 이야기하니 재미있겠다며 동참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릭은 다른 회사에서 헤드헌팅 제안을 받고 나에게 상담 차 연락한 것이었는데, 졸지에 사람 하나를 빼앗아 온 꼴이 되었다. (웃음)”
크리스 정 대표를 게임업계와 연결해 준 작품 <길드워>
불모지에서 시작된 PC 온라인 개발
모티가의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정 대표의 친구인 크리스 테일러가 운영하는 개스파워드 게임즈(<던전시즈> 개발사) 사무실 구석에서 일을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자금의 소비는 무지막지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모바일 환경에서 그들이 추구하던 온라인게임이 성공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설립 1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아무리 봐도 모바일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기술을 빌려주며 외주 줬던 모바일게임도 퀄리티가 처참하게 나왔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팀원들에게 PC로 방향을 바꾸자고 말을 꺼냈다. 사실상 1년 반 가까이 작업한 것을 날리자는 소리였다. 하지만 다행히 다들 나의 생각에 동의해 주더라. 심지어 똑똑했던 릭은 우리가 개발하던 기술을 PC에도 적용할 수 있게끔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였고. 정말 고마웠다.”
‘모티가’라는 회사의 이름도 처음에는 ‘멀티플레이어 터칭 더 게임’이라는 명칭에서 따왔으나, PC 온라인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개발 방향을 바꾸고 회사 분위기도 일신했지만 당면한 어려움은 줄지 않았다. 당시 서구권 투자사들은 한창 모바일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상태. 설상가상으로 당시 북미 온라인게임 업계 최고 루키라고 할 수 있었던 트라이온월드가 2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도 처참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투자사들의 눈초리는 더 싸늘해졌다.
그러는 와중에 크리스 정 대표가 모아놨던 자산은 진작에 바닥났고 신용카드까지 한계에 다달랐다. 한때는 자살까지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시아권 투자자들은 PC 온라인게임에 대한 니즈가 존재했다. 모티가는 스마일게이트∙넷이즈 등의 동양권 회사의 투자를 받으며 극적으로 회생에 성공했다.
이렇게 수년간 어려움 속에서 개발을 해왔기 때문인지, 모티가 직원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특히 더 아끼는 편이다.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행사 세팅을 할 때 외주업체에게 맡긴다. 8일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들 직접 설치하자고 하더라. 자기들이 만든 게임이 처음 선보이는 자리인데, 남에게 맡길 수 없다더라. (웃음)”
PC 온라인게임을 고집하는 이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
크리스 정 대표, 그리고 모티가 직원들이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PC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려 한 까닭은 무엇일까? 정 대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온라인게임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개발자들의 꿈을 이야기했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우리 모두 온라인게임을 정말 좋아한다. (웃음) 다들 공감하는 것이 당분간은 PC가 여전히 온라인게임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바일게임 시장이 뜨긴 했지만, (서구권) PC 온라인게임 유저는 줄지 않고 있다. 개발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임을 만들면 얼어붙은 온라인게임 시장도 녹을 것이라 믿는다.”
<자이겐틱>의 스크린샷
그렇다면 모티가의 개발자들이 꿈꾸는 온라인게임이란 무엇일까? 그들의 목표는 온라인게임답게 게임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소통하고 고민하고 즐기는 것이다.
모티가의 첫 PC 온라인게임 <자이겐틱>은 그중에서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캐주얼 대전게임이 목표다. 캐주얼게임답게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기고, 팁 대전게임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다양한 고민과 소통이 나오는 그림이 크리스 정 대표가 꿈꾸는 미래다.
이러한 게임을 처음 구상하게 된 데에는 개발진들의 취향도 영향이 컸다.
“많은 팀 대전게임이 나와 있고, 우리 직원들도 그 중 많은 것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이 많다 보니 다들 틀에서 벗어난 게임을 목말라했다. MOBA(≒AOS)와 TPS, 액션 RPG 등 다양한 요소가 섞인 <자이겐틱>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자이겐틱>을 플레이하고 있는 모티가 직원
유명 개발자가 있는 회사, 성공한 회사가 아닌, 개발자가 즐거운 회사를 꿈꾼다
모티가와 <자이겐틱>이 해쳐나가야 할 길은 만만치 않다. 이미 팀 대전게임 시장은 몇 년째 이렇다 할 흥행작 없이, 기존 강호들이 유저를 잡고 있는 상태. 이러한 어려움을 헤쳐갈 방도에 대해 크리스 정 대표는 회사의 개발자들을 꼽았다.
<스타크래프트> PD이자 <길드워> 시리즈의 수석 기획자였던 ‘제임스 피니’, 언리얼엔진 코어 시스템을 만든 ‘란 퍼슨백’ 같은 회사 내 유명 개발자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꼽은 것은 개발자들이 게임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이상과 목표, 열정이었다.
“게임업계에 몇 년 간 몸담으며 느낀 것이, 개발진의 열정이 없는 작품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은 모두 <자이겐틱>이 재미있고 멋진 게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도 실력 못지 않게 우리 게임의 이상에 얼마나 공감하느냐를 중요하게 본다. 덕분에 매번 수많은 이력서를 받고도 그 중 하나를 뽑을까 말까 고민했다. 당장 개발자 하나를 더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과연 우리 게임을 얼마나 좋아할까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바로 빌드에서 증명되더라.”
이렇게 모티가 직원 모두가 <자이겐틱>이라는 게임에 애정을 가지다 보니, 게임의 기획회의는 항상 개발자부터 재무, 홍보 등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복작복작한 모습을 띤다. 실제로 디스이즈게임이 모티가를 찾았던 10일에도 회사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모여 새로운 영웅에 대한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자이겐틱> 기획회의 중인 모티가 직원들
크리스 정 대표는 모티가의 이런 문화가 앞으로 그들이 만들 게임 모두에게 적용되길 꿈꾼다. 모티가가 만드는 게임 모두, 직원들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만들고 싶어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존경하는 선배가 어느날 내게 경영에 대해 묻더라. 나는 피터 드러커며 뭐며 폼나는 이야기를 잔뜩 했지만, 그의 답은 간단했다. 경영은 ‘생산이라는 꽃이 잘 필 수 있도록 잘 챙겨주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내 지침이 되었다. 나는 개발을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개발진들을 믿고, 그들의 열정을 믿는다. 그렇기에 그들이 몰두하는 <자이겐틱>과 그들이 언젠가 도전할 새로운 작품도 믿고 있다. 개발자가 가장 빛날 때는 무언가에 몰두할 때다. 그리고 그것은 개발자뿐만 아니라 회사 또한 빛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개발자가 즐거운 회사를 목표로 하는 만큼, 모티가의 근무 분위기도 자유로운 편이다. 남자가 들고 있는 장난감 총은 입사 시 모든 직원들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 덕분에 모티가에서는 수시로 총싸움이 벌어진다.
<자이겐틱>은 2015년 중 정식 론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미 지역은 자체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한국 등 해외에서는 퍼블리셔를 구하는 중이다. 크리스 정 대표의 경영철학 때문인지, 파트너를 구하는 조건도 간단하다. 대전제는 얼마나 개발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개발자의 의도를 희석시키지 않는 파트너다.
“개발자들이 워낙 정성을 쏟은 만큼, 퍼블리셔도 우리만큼 <자이겐틱>에 열정을 가진 회사였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것은 유저와 개발자를 잘 연결시켜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스마일게이트 같이 우리에게 투자한 회사에게 우선권이 있겠지만, 우리 게임에 열정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