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좀 해주세요!”
“나중예요...”
미국에 진출한 한국 온라인게임 회사와 나눈 대화다. 인터뷰를 꺼린다. 소셜과 모바일의 위세에 밀려 최근 몇 년간 부진했기 때문이다. 몇은 아예 문을 닫았다. 상황이 어렵다. 대책도 마땅찮다. 알려지기를 기피한다. 궁여지책으로 물었다.
“요즘 괜찮은 업체 없어요?”
“KOG 게임즈(KOG의 미국 법인)가 요즘 제일 괜찮아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KOG 게임즈를 찾아 간 이유다. /어바인(캘리포니아)=시몬(임상훈 기자)
KOG 게임즈의 대표작은 <엘소드>다. 10월 현재, 동시접속자(이하 동접) 수는 1 만 명 남짓, 월 매출은 10억 원 정도 나온다.
얼마 되지 않는다고? 일부 대작을 빼면, 미국에서 이 정도 동접과 매출을 안정적으로 기록하는 온라인게임을 찾기 드물다. 회사 규모나 비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10명 남짓 규모의 회사가 동접 4,000~5,000명에 월 매출 40만 달러(약 4억 2,000만 원) 정도만 나온다면 꽤 의미 있는 성과로 여겨진다. KOG 게임즈의 직원 수는 현재 10명이다. 1인당 매월 1억 원을 벌고 있다.
<엘소드>가 처음부터 이렇게 좋은 성과를 거뒀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평범했다. 아니, 위기였다.
초반부터 닥쳐온 위기
<엘소드>를 처음 미국에서 서비스한 회사는 ‘Kill3rCombo’였다. KOG와 레벨업(Level up!)이 반반씩 투자해 만든 조인트 벤처(JV, 합작회사). 레벨업은 필리핀과 브라질에서 KOG의 <그랜드체이스>를 서비스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 인연과 ‘으~리’로 두 회사는 손을 잡았다. 미국 땅에 야심차게 뛰어들었다. '킬러콤보'라는 회사명은 액션게임에 대한 애정과 두 회사의 협력을 상징했다. 2011년 4월 <엘소드>가 그 선봉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발 변수가 생겼다. 거대한 중국발 폭풍이었다. 브라질과 동남아시아 시장 등에 관심을 갖던 텐센트가 2012년 1월 레벨업의 지분 49%를 사기로 했다. 낯선 미국 땅, 두 회사가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대책이 필요했다.
대안은 별로 없었다. 2012년 6월 KOG는 Kill3rCombo에 있던 레벨업의 지분을 몽땅 인수했다. 이름을 ‘KOG 게임즈’로 바꿨다. 당시 <엘소드>의 동접은 2,500명 정도였다. 기대만큼 높은 성과는 아니었다. 지분을 모두 산 것은 과감한 베팅이었다.
<엘소드>의 도약, 신규 캐릭터 청과 ‘스팀’의 버프
KOG 게임즈로 거듭날 무렵, <엘소드>는 대규모 콘텐츠 업데이트를 했다. 신규 캐릭터 ‘청’이 추가됐다. 2,500 정도였던 동접 수가 처음 5,000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유니크 유저도 2배 수준으로 늘었다.
동접은 마케팅과 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계속 늘었다. 약 1년 뒤 1만 명을 돌파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스팀’이었다. <엘소드>는 2013년 7월 스팀을 통해서도 론칭했다. 전방위적 마케팅도 함께 했다. 스팀 론칭 전 8개월 동안 그린라이트에서 게임을 알리려 노력했다. 통했다. 스팀 유저들이 몰려들면서 처음으로 동접 1만을 넘었다. 하루 유니크 유저의 수가 4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2013년 4월 KOG 게임즈의 책임자가 된 김유진 대표는 “스팀 론칭 초기 동접 규모를 20% 정도 늘리는 데 도움을 줬다. 버프가 조금 빠지면서 동접이 8,00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전체 동접의 10% 정도는 스팀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여전히 스팀 100위권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덕에 스팀에서 괜찮은 협조를 얻고 있다. 스팀은 시스템적으로 성적이 좋으면 혜택을 얻을 수 있다. “패치를 하면 메인과 FTP 게임 메이저 페이지의 중요 위치에 배너가 올라갈 수 있다. 이러면 하루 가입자 수가 4~5배 늘어난다.”
신규 캐릭터, <엘소드>를 계속 키우다
동접 1만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다시 확보하는 데 반년이 걸렸다. 지난해 말 추가된 신규 캐릭터 ‘아라 한’ 덕분이었다.
새 캐릭터가 동접과 유니크 유저 수를 끌어올리는 현상은 계속 반복됐다. 올해 3월 ‘엘리시스’(아래 이미지)가 업데이트 됐다. 동접은 역대 최고인 1만 5,000명까지 치솟았다. <그랜드체이스>의 원조 캐릭터 ‘엘리시스’는 <그랜드체이스> 유저층까지 <엘소드>로 유인했다. 자연스럽게 크로스 프로모션 효과를 거뒀다.
새 캐릭터의 위력은 <엘소드>의 공식 포럼과 페이스북에 여실히 드러난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캐릭터에 대한 수준 높은 팬아트도 자주 올라오곤 한다. 비공식 티저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순간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는데, 우리는 그 수준을 보고 유저들의 기대도를 측정할 수 있다.”
'엘리시스'가 추가됐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 티저 동영상과 정식 동영상을 공개했다. '좋아요'(Like)와 '공유하기'(Share) 이벤트를 했다. 티저 동영상은 약 93만명, 정식 동영상은 약 72만명의 페이스북 유저들에게 전달됐다. 인기가 워낙 높아서, 정식 동영상은 '게임트레일러'(www.gametrailers.com) 메인에도 올라갔다.
<엘소드>의 미국 동시접속자 성장세
콘텐츠가 좋으면 게임은 뜬다. 하지만, 콘텐츠만 좋다고 게임이 뜨는 것은 아니다. <엘소드>의 미국 시장 도약 뒤에는 홀로서기 이후 서비스에 더욱 집중한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홀로서기, 현지화와 운영의 전화위복
이별은 때로 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레벨업과 합작회사 관계를 청산한 KOG 게임즈도 그런 케이스였다. 5:5의 합작회사는 시너지를 만드는 효과는 있지만, 의사결정 등에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잦다.
김유진 대표는 “예전에는 반반 씩 가진 두 회사가 각각 서로 더 잘 하고 싶은 열정이 있어서 결정을 내릴 때 애매한 경우가 꽤 있었다. 서로 다른 의견도 있었고, 눈치도 봤다. 현재는 가치와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서 일사불란해진 느낌이다. 어쩌면 레벨업과 분리가 성장 발판이 된 듯하다”고 밝혔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김유진 KOG 게임즈 대표. 어바인까지 이동 및 사진촬영 등 취재과정에는 LA에서 IDC 및 CDN 사업을 하는 Xgirdcolo(//www.xgridcolo.com/kr/) 김병용 대표(Brian Kim)의 도움이 컸다.
해외 서비스의 핵심인 현지화와 운영 또한 그 과정을 거치며 더 단단해졌다.
해외 게임회사 직원들은 현지 코드와 안 맞는 한국 콘텐츠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발사에 고쳐달라고 요청한다. 이런저런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절충된 버전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KOG 게임즈 멤버들은 다르다. 현지 코드에 맞춰달라는 요청을 본사(KOG)에 힘 닿는 데까지 쭉 계속한다.
사무실 벽에는 4개의 시계가 있다. LA, 마닐라, 서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간이 흐른다.
“현지화 수준에 대해 본사와 줄다리기를 하는 회사들이 많은데, KOG는 현지 사정을 따라줘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준다. 예를 들면, 할로윈 전용 이벤트와 코스튬이 있다. 미국에서 유명한 Black Friday 이벤트도 있고. 현지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
10명의 인원으로 동접 1만 이상을 관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고객 서비스와 기술지원 업무는 필리핀 법인에서 맡고 있다. 레벨업 출신을 주축으로 합작회사 때부터 함께 해왔다. 손발을 맞춰온 지 3년 반,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식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매주 화상회의를 통해 얼굴을 보면서 팀워크와 우정이 쌓아왔다. 시차를 활용해서 필리핀 동료들이 미국의 밤시간대를 커버해 주고 있다."
망가(만화) 마케팅의 위력
<엘소드>는 론칭 초기부터 신규 유저 유인을 위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매출액 대비 마케팅 비용을 경쟁사보다 평균적으로 2~3배 높게 잡았다.
"월 매출 30~40만 달러가 안되는 게임의 경우, 일반적으로 매출의 5~10% 정도까지 마케팅 비용으로 책정하는 반면, 우리는 꾸준하게 매출의 15~25%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신규유저 모집의 발전이 계속 있었다. 매출이 더 늘면서 마케팅 비용의 비율이 더 이상 적용하고 있지 않지만, 금액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모집을 통해 들어온 유저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게임을 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성격과 취향의 유저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KOG 게임즈는 코어 유저층을 공략하는 전략을 추가했다. 집중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엘소드> 유저의 95% 이상이 망가(일본 만화)를 좋아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이후 광고 배너를 망가 스타일에 더 맞췄다. 광고와 홍보 활동을 일본 애니메이션과 망가 관련 사이트, 행사 등으로 확장했다. 비중은 계속 커졌다. “Play Your Manga!”라는 마케팅 구호를 2013년 초반부터 1년 이상 가져갔다. 모집과 잔류 성과가 좋아졌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한 셈이다.
“컷신 등 <엘소드>의 게임 내 요소가 만화를 플레이하는 듯한데, 이런 요소가 고객에게 어필하는 게임이 많지 않았다. 그 부분을 <엘소드> 마케팅에 활용하면 잘 될 것으로 판단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KOG 게임즈는 2년 동안 Anime Expo 등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전시회에 참여했다. 부스를 내거나, 유저와 만남을 갖는 번개 이벤트를 열었다. 오프라인에서 바이럴 기질이 높은 타깃 유저층과 접촉하려는 시도였다.
현재도 <엘소드> 페이스북에는 망가가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망가 그리기 콘테스트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유저가 올린 망가를 찾아 소개도 한다.
"퀄리티가 좋은 작품들이 많고 '좋아요'(Like) 숫자가 꽤 높게 나온다. 유저가 그린 망가는 커뮤니티 상에서 <엘소드>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훌륭한 콘텐츠다."
모바일게임의 위세보다 온라인게임 회사에 더 큰 문제는...
김유진 대표는 모바일게임의 성장으로 온라인게임의 파이가 줄어든 점에 동의한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은 물론 현지 회사들도 꽤 어려운 상황이 됐다. KOG 게임즈의 성과는 이런 척박한 상황 탓에 더 두드러진다. 2013년, 2014년 캘리포니아에 있던 다른 회사들이 KOG 게임즈를 찾아가보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
김 대표는 온라인게임이 주춤한 이유를 모바일게임의 성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온라인게임 회사들이 제대로 못했기 탓이 크다는 입장이다.
“<엘소드>의 성공에 특별히 대단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을 철저히 하는 것이 성공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기본 중의 기본은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인데, 미국 업체들이 의외로 이 부분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말하는 기본의 예는 다음과 같다.
“<엘소드>는 한 달에 두 번 이상 콘텐츠 패치는 가져가되,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런 부분 철저히 하면 고객들과 유대감 좋아질 것이다.”
“게임회사들이 은근히 점검 시간을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패치 준비, 그리고 서버나 네트워크 등을 꼼꼼히 관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 그러는 듯하다. KOG 게임즈는 그런 부분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 약속시간을 더 잘 지킨다.”
‘원 게임 컴퍼니’를 넘어
<엘소드>를 성공 궤도에 올려 놓은 김 대표는 뒤를 이을 타이틀을 보고 있다. 현실은 만만치 않다. 새 게임을 찾는 일은 <엘소드>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국내 게임 회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온라인게임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탓이다. 미국 시장은 안 된다는 분위기가 너무 세다.
KOG 게임즈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씩 집중해서 가져가면 <엘소드>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소드>를 통해 확인된 전략적 마케팅의 꾸준한 시행과, 기본을 잘 지키는 서비스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미국 게임 시장의 특성 상, RPG나 액션게임을 찾고 있다. <엘소드>처럼 망가나 애니메이션 풍 그래픽을 선호한다. 하지만, 유행이나 대세에 민감하지 않은 미국 시장 유저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특이한 개성과 재미 요소를 겸비한 게임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 대표는 조곤조곤 조용히 이야기한 편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비관해 진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톤이 살짝 올라갔다.
“해보지 않고'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엘소드>도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고, 서포트가 좋은 게임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제대로 발전시킨다면 <엘소드>처럼 성공할 수 있다.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면, 고객들도 알아준다. 그렇게 하지 못 한다는 법 없다. ‘정말 이 게임에 대해 끝까지 해봤냐’ 물으면 그렇게 했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