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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명 대표해 주 52시간제 사인 후 자괴감 몰려와”, 스마일게이트 노조 차상준 지회장

게임업계 2호 ‘기업 노조’ 깃발 들어올린 스마일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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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이(세이야) 2018-09-05 20:52:31

​게임업계에 첫 기업 노동 조합이 생기고 이틀 뒤, 또다른 기업 노조가 깃발을 들어올렸다. 바로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스마일게이트 지회다. 디스이즈게임이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지회장을 만나 노조 설립 계기와 추후 계획을 물었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차상준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스마일게이트 지회장 



넥슨 노조가 설립을 발표하고 이틀만이다. 시기는 의도한 것인가?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지회장: 원래는 같이 발표하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슈가 있어서 같이 할 거냐 말 거냐를 고민했는데, 넥슨 노조 발표하고 이틀 뒤에 하자고 최종 결론이 났다.

 

시기는 전략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게임 개발하는 분들은 다 알아도 게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우리 쪽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인원도 우리 쪽이 절반 정도로 더 적고. 같이 선포하면 우리 쪽이 묻힐 것 같았다.

 

넥슨이 첫 번째 기업 노조라면 우리는 넥슨에 이어 바로 바톤을 받는다는 것을 테마로 잡았다. 다른 회사에서 노조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자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넥슨과 함께 준비한 것인가?

 

우리 말고 다른 게임회사가 노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민주노총 측에서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노조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일이기 때문에 한쪽이 꼬리를 밟히면 다른 한쪽의 일도 틀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넥슨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게임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지인들도 서로 겹치고. 

  


오늘 하루 어땠나. 많이 바빴나?

 

우리는 넥슨과 전략이 좀 달랐다. 넥슨은 조직도를 통해 운영진들이 모두 실명을 공개하며 오프라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실명을 공개한 사람이 나 뿐이다. 운영진 수에 따라 사측 대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실명으로 나설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전사에 메일 보내고, 메신저 이용해 운영진, 사우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다. 나는 소속 팀 게임에 중요한 이슈가 있어서 하루종일 업무하느라, 전화 받느라 바빴다. 

 

 

조합원은 얼마나 모였나?

 

아까 12시(정오)를 기점으로 100명 돌파한 것 확인했다.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노조 이름이 ‘SG길드’다. 무슨 의미인가?

 

노동 조합의 옛 이름이 길드다. 그런 의미도 있고, 장인들이 모였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모두 프로그램, 기획, 아트, 마케팅, 사업, QA 등을 하는 장인들이란 뜻이다.  

 

  

 

 

노조는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나? 

 

원래부터 노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넥슨과 마찬가지로 주 52시간제 관련 논의에서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근로자 대표였다. 넥슨 노조가 주 52시간제 논의하며 부당함을 느꼈다고 했는데, 나도 근로자 대표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인을 하느냐 마느냐 정도 권한 뿐이니까. 

 

내가 속한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인원이 1,000명 정도 된다. 주 52시간제가 7월 1일부터 시행됐는데, 사측에서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한 게 시행 이틀 전이었다. 근로자 대표인데 정작 1,000명에 달하는 사우들의 의견을 들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1,000명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인을 하고 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날, “또다시 사측이 이런 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면 사인하지 않겠다”라고 사우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노조 결성을 행동으로 옮기자고 결심하게 됐다. 여자친구가 교사인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해 달라”라고 하더라. 



넥슨도, 스마일게이트도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산하에 결성됐다.

 

노조를 결성하려고 알아보다 네이버 노조를 소개받았다. 네이버 노조가 자신들의 상부 조직인 화섬노조를 찾아가라고 조언해 줬다. 

 

최근 화섬노조에 합류한 파리바게뜨,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 비율을 보면 2~30대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2~30대 머릿속의 노조는 아마 빨간 머리띠 하고 화염병 던지는, 그런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사람도 많을 거고. 문제는 그렇게 노조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산업에서 착취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게임이 IT보다는 엔터테인먼트랑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찍이 노조가 발달한 제조업의 경우 노동자의 아웃풋이 뚜렷하지 않나. 그러나 게임은 대박이 나도 그 과정에서의 내 성과를 뚜렷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게임이 대박나는데는 게임을 잘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트렌드, 사업 전략, 운영 이슈 등 너무 많은 것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수가 노래만 잘 한다고 뜨는 게 아니듯 말이다. 

 

성과 측정이 어렵다는 것은 사측에 굉장히 유리한 요건이다. 게임이 망하든 흥하든 사측 논리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매출 증대를 원하는 회사의 니즈에 맞춰 게임을 만들었고, 그 게임이 망한다 하더라도 내 실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고용 불안 문제가 야기된다. 

 

 


 

넥슨 노조도 언급했고, 게임업계에서 고질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고용 불안’ 문제인데. 

 

프로젝트가 접힐 때 보통 그 이슈가 많이 발생한다. 우리도 보통 다른 팀으로 이동하는 ‘전환 배치’를 일단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원칙적으로 진행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노조를 준비하며 여러 법인들을 조사하면서 내린 결과다. 어떤 팀이 왜 접혔는지, 접힌 다음 프로세스는 왜 팀마다 다른 지 등이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는지 잘 모르겠다. 

 

고용 불안 문제는 회사에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게임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노하우는 사람에게 남는데, 실패하면 잘리니 그 노하우를 기반으로 다시 도전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유저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개발자들도 하드코어 게이머들이다. <젤다의 전설> 같은 것 당연히 만들고 싶다. 그러나 그런 게임은 하루 아침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배틀그라운드> 나오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킨만 다른 똑같은 게임들을 보고 있다. 나라도 하기 싫은 게임을 유저들이라고 하고 싶겠나. 창작자로서 자괴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스마일게이트보고 유저들이 ‘믿거스’라고 한다. 우리는 즐거움을 만드는 회사인데, 우리 삶이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나. <젤다의 전설>도 개발자가 어렸을 적에 했던 즐거운 상상들을 게임으로 만들어 낸 것이지 않나. 개발자에게 즐거운 일상이 있어야 유저들에게 즐거운 일상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협상이 시작되면 무엇부터 테이블에 올릴 생각인가?

 

먼저 말한 고용 안정 문제부터 얘기하고 싶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스마일게이트가 그간 <크로스파이어>말고 괄목할 만 한 성과를 낸 게임이 없다. 그게 사람들이 더욱 고용 불안에 떠는 이유기도 하다. 팀이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1년에 한 번 연봉계약서에 사인하면 최소한 1년 동안 고용이 보장된다는 것 아닌가. 이 과정이 투명하길 바란다. 

 

두 번째도 연관된 얘기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원칙대로 일이 진행되길 바란다. 게임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프로그래머, 기획자, 아티스트, 마케터 등등 이렇게 다양한 직군이 한 회사에 모여있는 건 게임 회사 뿐일거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금만 정보를 감춰도 반목을 만들기 쉽다.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이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보를 감추는 것에서 오는 구성원간 반목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나는 <크로스파이어>팀에 오래 있었다. 중국 서비스 담당이었고, 총기 밸런스를 기획했다. 알다시피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높은 매출을 거두고 있고 총기 판매가 매출의 핵심원이다. <크로스파이어> 팀 돈 잘 버는 것 사람들 다 알고 있다. 아마 팀 구성원들도 높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 외부에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그만큼 대우를 받았느냐 생각하면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 감춰져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간 추측과 반목이 이어진다. 앞의 예시에 따르면 연봉테이블과 인센티브 기준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반목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보통 포괄임금제 하지 않나. 중간 관리자는 노동자가 주에 52시간을 모두 채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에 12시간까지 더 일해도 회사는 40시간 만큼의 임금만 줘도 되는 게 포괄임금제니까. 그럼 중간관리자와 사원 사이에 또 반목이 생긴다. 그리고 회사는 이걸 그냥 관망한다.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보다 서로 싸우는 게 이득이니까. ‘무조건 40시간만 일한다’, ‘추가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수당을 받는다’라는 원칙이 세워져 있고 잘 지켜지는 문화가 생기면 사원과 중간관리자가 반목할 필요가 없다. 

 

민주노총 찾아갔더니 그러더라. 어쩌면 이렇게 두 회사가 말하는 게 똑같냐고. 게임 하나 접히면 다른 회사 가는데 그 회사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겪는다. 업계 전체가 연대해야 한다. 

 

 

익명 커뮤니티 앱에 따르면 넥슨은 대표로부터 단체교섭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하더라. 스마일게이트는 사측으로부터 별다른 액션 없었나?

 

우리도 비슷한 절차로 가지 않을까 한다. 노조를 설립하면 민주노총이 회사에 공문을 보낸다. 설립된 이 노조를 인정할 것이냐고. 그렇다면 노조와의 단체교섭에 나오라고. 우리나라는 복수 노조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 노조 중 인원이 많은 쪽이 단체 교섭권을 갖는다. 악질적인 회사는 이 과정에서 어용 노조를 설립해 조합원을 몰아주기도 한다.  

 


노조는 일단 설립했고, 사측과 협상에 나서기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사우들에게 노조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겠지. ‘조합비 받아서 어디에 쓸거냐’ 문의 많이 받는다. 슬프게도 나쁜 케이스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화염병 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촛불 들지 않나. 노조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우들에게 설명할 것이 많다. 많이 가입해 주시라고 말하고 싶은데, 우리가 아직 보여준 게 없어서.

 

 

차상준 지회장은 지난 두 달간 내내 공부했다며 문서 뭉치를 테이블 가득 꺼내놨다.​

 


사우들이 힘을 실어줘야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전략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작은 성취들부터 보여드리고 그게 마음에 드시면 힘을 듬뿍 실어달라. 임금 관련 문제를 협상하기 시작하면 정말 서로 목숨 걸고 하게 된다. 이때는 사우 여러분의 큰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른 생각 가지신 분들, 심지어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배척하지 않겠다. 이제 노조가 생겼으니 부당한 상황에 놓이면 언제든 찾아달라. 임원급 아니면 모두 가입할 수 있다.

 

다른 회사 분들에게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바꿔보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도전하시라. 도움이 필요하시면 찾아달라. 우리 한 번 바꿔봅시다. 

 

 

회사에는 할 말 없나?

 

회사도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도 회사가 필요하다.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공생하는 관계지 않나. 같이 잘 해서 좋은 회사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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