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플랫폼. 하나의 작품이 여러 플랫폼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플랫폼 유저들도 같은 환경에서 서로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가 언리얼 서밋 2019에서 특별히 강조한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기조 강연에서부터 기자들과의 인터뷰 내내 이를 거듭 언급했다.
크로스플랫폼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하드웨어 환경적으로는 PC·콘솔·모바일 스펙의 발전 추이가 크로스플랫폼에 점점 유리해진다는 점, 산업적으로는 근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소셜' 요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플랫폼 구분 없이 유저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개발자들에겐 플랫폼을 고를 선택지가 많아지고, 각 플랫폼은 경쟁 때문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에픽게임즈의 행보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14일, 서울을 찾은 팀 스위니를 만나 직접 들었다. 그가 꿈꾸는 에픽게임즈의 미래부터 이를 위한 일련의 행동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스토어 관련 이야기까지. 팀 스위니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대표
디스이즈게임: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이지만, 과거엔 게임 개발자이자 언리얼엔진의 아버지로 더 유명했다. 대표가 돼서도 프로그래밍을 틈틈히 한다고 밝혔고. 요즘은 어떤가?
팀 스위니: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체크인 해 프로그래밍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연구 차원에선 꾸준히 하고 있다.
CEO 일도 만만치 않을텐데, 프로그래밍을 계속 하는 것이 대단하다.
물론 내 일은 에픽게임즈의 대표다. 하지만 내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취미를 가지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프로그래밍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내게 프로그래밍이란 다른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정원을 다듬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프로그래머로서의 경험이 대표 일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줬는가?
지금은 흔치 않지만, 기술 전문가가 회사를 운영하는 시대가 있었다. IT 회사는 시장 상황을 분석하거나 다음 행보를 정할 때 '기술적인 지식'이 중요하다. 나도 기술 전문가의 성격이 강하고, IT 회사인 에픽게임즈를 이끌 때 이런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물론 프로그래머로서의 덕목과 대표로서의 덕목이 다른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IT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제품'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기술 개발을 정말 중시했기 때문에, 큰 실수 없이 이 일을 했던 것 같다. 대표 성향에 따라 말을 잘해 투자를 잘 받아오는 사람, 조직을 잘 관리하는 사람 등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IT 회사에는 나 같은 케이스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 "PC 업그레이드 둔화와 모바일 기기의 급성장, 크로스플랫폼 생태계를 이끌 것"
에픽게임즈의 제품이라고 하면 '언리얼엔진'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면 언리얼엔진의 개발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
2개다. 하나는 개발자들이 고퀄리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틀. 다른 하나는 높은 생산성.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둘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퀄리티 작품을 만들 순 있지만, 사양이나 생산 속도 때문에 비용이 커진다면 본말 전도다. 때문에 우리는 퀄리티와 생산속도 2개에 초점을 맞춰 언리얼엔진을 개발한다.
언리얼엔진은 하이엔드 그래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건 필연적으로 높은 하드웨어 사양을 요구하는데, 현재 시장 상황은 하드웨어가 좋은 PC쪽은 업그레이드가 둔화됐고 오히려 하이엔드완 거리가 있는 모바일 쪽 성장이 거세다. 이런 환경에서 에픽게임즈의 전략은 어떻게 되나?
나는 오히려 이런 환경이 개발자들과 우리(에픽게임즈)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C 업그레이드가 둔화되고 모바일 성장이 빠르다는 것은 플랫폼 간 하드웨어 격차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이는 여러 플랫폼 노리는 개발자들에겐 기회다. 더군다나 요즘은 멀티플랫폼 지원이 크게 어려운 시대가 아니다. 게임 하나로 시장 상황에 맞춰 다양한 플랫폼에 대응하는 게 보다 용이해졌단 의미다. 서구권에선 콘솔, 동북아지역에선 모바일 버전을 내는 식으로. 여러 플랫폼이 공존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언리얼엔진의 강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멀티플랫폼을 넘어, 크로스플랫폼(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플랫폼이 달라도 서로 플레이가 가능한 것)에도 최적화된 솔루션이다. <포트나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에게 지금 환경은 또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크로스플랫폼을 강조하는데, 이건 기조강연 때 얘기한 (스토어 달라도 유저들이 같이 게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생태계와 궤가 같아 보인다.
둘 다 각기 다른 환경의 유저들이 서로, 제약 없이, 같이, 편하고 쉽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유비소프트와 연계해, 두 회사 스토어 유저들이 플랫폼(스토어) 상관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같이 게임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유저들의 플랫폼이 달라도 같이 즐길 수 있고, 플랫폼을 이동해도 통일된 플레이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우리 꿈이다.
이게 에픽게임즈가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라고 봐도 될까?
맞다. 우리는 유저가 어디서 게임을 사던,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할 땐 플랫폼 제약 없이 모든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래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토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게임은 어느 한 곳에 한정돼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같은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선택지가 더 많아지니까.
# 수익 배분 비율부터 메트로 이슈까지. 팀 스위니에게 들은 에픽게임즈 스토어
이상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전에 에픽게임즈 스토어 또한 독점 게임이 있다는 것을 말할 수 밖에 없다.
이걸 얘기하기 위해선 플랫폼과 개발자 간의 수익분배 구조 문제부터 말을 해야 한다. 스팀 등 대부분의 플랫폼은 7(개발자):3(플랫폼)으로 수익을 분배한다. 그리고 개발자는 퍼블리싱 등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게임 수익의 절반조차 손에 쥐지 못한다. 물론 이게 각 단계에서 정당한 가치가 지불됐다면 문제 없다.
하지만 우리가 <포트나이트>를 직접 서비스해본 결과, 플랫폼 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익분배는 5~7%면 충분했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이 가치의 5배 이상을 가져가는 셈이다. 플랫폼 이윤을 위해 (유지 비용과 관계 없이) 5%를 가져간다고 해도 10~12%다. 30%에 비하면 절반 이하다. 개발자가 플랫폼에 비해 개발·서버·유지 등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데, 결국 보면 스토어가 더 많은 것을 남기는 경우가 비일비제하다.
우리는 이게 게임 업계 전체적으로 장차 큰 문제가 될 이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걸 바꾸기 위해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만들었고, 개발자들이 퍼블리셔에 목 매지 않게 '에픽게임즈 온라인 서비스'(친구 시스템, 매칭 시스템 등 포트나이트에 사용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패키지) 같은 솔루션도 공개하고 있다. 선택지가 많아져야 개발자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니까.
독점 게임은 에픽게임즈 스토어가 자리 잡기 위한 장치고?
우리가 이상적인 것을 꿈꾸긴 하지만, 현실을 모르진 않다. 점유율 90%짜리 게임 스토어(스팀)이 있는 시장에서 점유율 0% 스토어가 자리 잡기 위해선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우리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게임이 없다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른 스토어가 우리를 의식할 일도 없고, 그럼 경쟁을 위해 변화할 필요성도 못 느낄 테니까.
물론 독점에 대한 스팀 유저들의 불만은 이해한다. 하지만 EA 오리진이나 배틀넷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건 거대 회사도 많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모델이다. 또 우린 작은 회사들도 (에픽게임즈 스토어처럼) 이런 모델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사람들이 게임 독점(exclusive)보다, 시장 독점(dominant)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유저들이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반감 가진 이유는 독점 게임도 이슈지만, 그보다 <메트로 엑소더스> 같은 사례가 더 크지 않을까? 스팀에서 사전 판매되던 게임이 에픽게임즈 스토어 독점 게임이 됐고, (한국은) 가격도 더 비싸졌으니.
우리가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론칭하기 전, 각 파트너사들에게 스토어 정책을 안내하는 자료를 보냈다. 그 때 우리 수익 배분 정책을 보고 많은 회사가 연락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디를 강압적으로 한 것은 없었다. 사실 사업 영역에서 그런 것은 불가능하고.
<메트로 엑소더스>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퍼블리셔는 이미 스팀을 통해 사전 판매를 한 상태였다. 그쪽에선 이미 스팀과 계약한 상황에서, 스팀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스토어가 나온 셈이지. 이것 때문에 유저 분들이 보기엔 왔다갔다 하는 모양이 됐다. 이제 우리 정책이 잘 알려졌으니,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팀 사전 구매자는 현재 회사 측에서 스팀을 통해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힌 모르지만, 미국판은 10달러 더 싼 것으로 알고 있다.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게임들도 다른 스토어에 비해 (한국 기준) 1~3천 원 더 싸고. <월드워Z>도 처음엔 39.99달러로 예약 받다가 우리 수익 배분 비율이 좋아 34.99달러로 바꿨다.
어떤 것을 말하고 싶은진 알겠다. 하지만 유저들의 반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는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판매량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다면 에픽게임즈가 추구하는 개발자 우선 정책에도 실질적으로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다행히 우리 스토어를 통해 출시된 게임 대부분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나온 <월드 워 Z>는 1달도 되지 않아 30만 장을 판매했다. 그리고 개발사가 스팀에 게임을 냈을 때 생각했던 것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계약 문제 때문에 다른 게임의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스팀에 냈을 때 산정했던 것보다 더 큰 이득을 거뒀다는 것은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다.
# 머신러닝이 그래픽 분야에도 큰 영향 끼칠 것
일각에서는 에픽게임즈가 이런 것들에 왜 신경쓰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별 이득이 없어 보이니까.
긴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도, 업계에도 이득이다.
우리는 솔루션 제공 업체다. 엔진부터 온라인 서비스, 스토어 등 다양한 솔루션을 개발사들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생태계를 개선하고 개발사들의 사정을 났게 한다면, 개발사들은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우리 솔루션을 사용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업계 상황이 좋아지면 우리 같은 솔루션 업체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하는 것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긴 관점에서 하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걸 하기 위해선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을 더 열심히 해야겠지. 그 노력의 일환으로 조만간 에픽게임즈 안드로이드 스토어가 열릴 예정이다. 만약 애플에 협조를 받는다면 이쪽도 가능하지 않을까?
개발자이자 에픽게임즈의 대표로서, 앞으로 게임계의 트렌드가 무엇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기술적인 면과 산업적인 면에서 각각 부탁한다.
그래픽 관련해서, 머신러닝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최근 실사풍 그래픽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리얼타임 레이 트레이싱이 많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은 계속 나올 것이고. 그렇다며 머신 러닝을 통해 AI가 이런 기술을 다 배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디지털 휴먼을 구현하는데 훨씬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나는 머신러닝이 사실적인 게임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업적인 면에선 지금도 그러하듯 '소셜' 요소가 트렌드를 이끌 것이다. 옛날엔 게임을 게임 안에서 생긴 친구들과 즐겼다면, 요즘은 (그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현실의 소셜 커뮤니티 친구들과 만난 후 그 다음 즐길 게임을 정하는 식이다. 때문에 현실의 소셜 커뮤니티는 물론, 매신저 같은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도 게임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 여기서 말한 소셜 커뮤니티란 게임도 포함이다. 게임도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이런 역할도 중요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