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D&D WORLD!"
당신이 20대 혹은 30대의 게이머라면, 어렸을 적에 오락실을 몇 번 이라도 드나든 경험이 있다면 이 말을 기억할런지도 모르겠다. 단어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은 캡콤의 아케이드용 <던전 앤 드래곤스>(Dungeons & Dragons, 이하 D&D)에서 코인을 넣을 때 마다 나던 소리이다.(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 말을 할 때의 독특한 억양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자존심 강한 캡콤이 다른 게임의 세계관을 차용한 것도 모자라서, (캡콤의)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준비가 되었나? 라고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D&D'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한다는 것으로 게이머를 반기는 것이다. 도대체 'D&D'가 뭐길래??
서양식 RPG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D&D'는 원래 보드 게임에서 발전한 TRPG(테이블 토크 알피지: 연필과 주사위를 가지고 대화로 플레이 하는 역할 연기 게임)로, TSR사에 의해 1970년대에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이래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차례의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판권의 주인이 바뀌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도 전세계적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베스트셀러이다.
'D&D'의 인기는 실로 엄청나서, 수많은 PC 혹은 콘솔용 RPG 혹은 MMORPG 게임들이 'D&D'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제작되었거나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아이 오브 비홀더, 발더스 게이트, 네버 윈터 나이츠 등이 D&D 시스템으로 제작된 게임이며, 리니지, 에버퀘스트, 파이날 판타지1,2 등이 D&D 시스템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인기가 많은 'D&D'이지만, 여지껏 딱 한가지 이뤄지지 않은 일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온라인게임화 이다. 'D&D'의 온라인화는 MMORPG라는 장르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 팬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꿈꿔왔던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여지껏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팬들의 협박에 굴복한 것인지(?) 이제서야 드디어 <던전 앤 드래곤 온라인>(Dungeons & Dragons Online, 이하 DDO)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타났다.
DDO의 로딩 화면. 제작사는 애쉬론즈 콜로 우리에게 익숙한 Turbine사 이다.
(클릭하면 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D&D'의 온라인게임화 계획이 공개 되었을 때에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캠페인 셋팅은 뭘까? 그레이호크 일까? 역시 대중성이 있는 포릴이겠지? 드리쯔트와 엘민스터는 당연히 나올테고.. 세븐 시스터즈와 블랙 스텝도 나오겠지?"
"최대 레벨은 얼마일까? 온라인 게임이니까 적어도 50레벨은 되겠지? 그럼 에픽 레벨까지 가는 건가? 프리스티지 클래스도 있겠지? 이건 확장팩으로 나오려나??"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다른 게이머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X바, 저게 도대체 뭔 소리야..."
팬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정확히 재현 되는 지에 쏠렸고, 특별히 팬이 아닌 온라인 RPG 게이머들은 뭔가 재미는 있을것 같은데 왠지 하드코어해 보이고 머리를 잔뜩 싸메면서 즐겨야 할 것 같은 게임이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정작 세상에 나온 <DDO>는 팬들에게 환희와 절망을, 일반 게이머들에겐 재미와 두통을 동시에 선사했다.
이것이 D&D의 게임 화면. 퀄리티를 줄이면 WOW 정도의 사양에서도 잘 돌아간다.
터바인사의 <DDO>는 팬들에겐 조금 덜 익숙한, 'D&D 3.5'의 기본 캠페인 셋팅인 에버론. 그것도 다소 변방인 스톰리치를 주무대로 하고 있다. 'D&D'의 팬들은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D&D인데…'라는 심정으로 참았다.
하지만, 게임에서 캐릭터의 최고 레벨이 10레벨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터는 팬들도 참지 못했다. "도대체 10레벨을 가지고 뭘 하란 거냐?" "미티어 스웜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 "이래가지고 어디 용이나 잡을 수 있겠냐?" 등등.
그리고 2005년 12월, 3일간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시작 되었고 테스트가 종료된 후 'D&D'의 팬이든 아니든, 재미있는 온라인 RPG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환호성을 질려댔다.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어째튼 확실히 '재미있는' 게임이 나온 것이다.
<DDO>를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던전 탐험 액션 MORPG" 정도라고 할까?
<DDO>는 필드 사냥이 없다. 퀘스트를 받아서 던전을 돌며 퀘스트를 완수하는 것으로만 경험치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지나가는 오크의 경험치와 살코기가 탐난다고 해서 당신이 굳이 강도가 되어야 필요가 없는 것이다.(그렇다고 필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드 사냥으로 얻는 경험치는 퀘스트로 나오는 경험치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수준이기 때문에 거의 의미가 없다. 주는 것도 없으면서 강력하기만한 필드몹은 피하는 것이 상책인,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DDO>는 쓸 데 없이 돌아다니는 시간이 짧은데 게임의 진행 방식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일단 <M>키를 눌러 맵을 보고 지도상에서 여관의 위치를 확인한다. 머리에 노란색 마크가 있는 NPC에게 말을 걸어 쿼스트를 받는다. <L>키를 눌러 퀘스트의 시작 위치를 확인한다. 5초에서 1분 정도 뛰어가서 퀘스트를 시작한다. 던전을 탐험한 다음 퀘스트를 받은 NPC에게 돌아가서 보상을 받는다.
그리고 또 퀘스트를 받는다. 던전을 탐험한다. 보상을 받는다. 반복… 반복… <DDO>는 쓸 데 없이 필드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다른 게임에 비해 무척 적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던전이 마을 집집마다 있고, 마을이 별로 크지도 않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뭐 어떤가?
지루한 시간을 줄이고,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는 것은 환영 그 자체이다. 그러면 <DDO>의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차근차근 알아보자.
대낮부터 한 잔 걸치고 있는 언냐들 에게서 퀘스트를 받은 다음, 왼쪽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퀘스트가 바로 시작된다. 이 어찌 심플하지 아니한가~
<DDO>는 액션 게임이다. 적에게 뒤를 잡히지 않기 위해 끊임 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적들이 밀집한 지역에 정확히 '파이어 볼'을 명중 시키기 위해선 FPS 처럼 자신이 직접 조준해서 파이볼을 날려야 하기도 하고,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을 피하기 위해 타이밍 맞춰 돌파하기도 해야 하며, 용암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거리를 잘 맞춰 점프를 해야 한다. 단순히 레벨이 높다고 해서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 밑에 흐는 용암이 보이는가? 떨어지면 죽는다. 레벨이고 뭐고 없다. 그냥 죽는거다.
(파이어 이뮨 스펠이면 물론 산다;)
<DDO>는 던전 탐험 게임이다. 퀘스트의 대부분은 던전을 탐험하는 것이며, 던전을 연속으로 탐험해야 하는 연퀘(연속 퀘스트)도 있다.
던전을 클리어 하기 위해선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전사와 힐러가 기본으로 필요하지만, 다른 게임과는 달리 로그(도적)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대부분의 MMORPG에선 로그가 원래의 이미지와는 달리 데미지 딜러의 역할이 주가 되지만, <DDO>의 로그는 함정해체, 잠긴문 따기, 숨겨진 문 찾아내기 등이 주 임무가 된다.
만일 로그 없이 던전에 들어갔다가는 수많은 함정에 당해 더 이상 전진할 엄두를 못내거나, 자칫 실수를 했다간 어이 없이 죽어버린 자신의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아싸~ 보물상자 구나~ 하고 겁 없이 달려 들었다간, 갑자기 튀어 나온 칼날에 몸이 갈기갈기~~ ㅠㅠ
<DDO>가 다른 MMORPG와 차별 되는 점 중 하나가, 캐릭터의 SP(스펠 포인트)를 오직 성소(샤린)에서만 회복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의 HP는 성직자나 바드 등의 마법 혹은 드물게 나오는 힐링 포션으로 회복 시킬 수 있지만, SP만큼은 오직 샤린에서만 회복 시킬 수 있다.
때문에 무턱대고 마법을 남발하거나 캐릭터의 체력 관리를 잘 못한다면 던전을 클리어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것으로 인해 던전이 단순한 사냥터가 아닌, 작은 실수로 생사가 갈리는 긴장감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샤린. 왼쪽의 신상이 HP와 SP를 회복 시켜주고, 오른쪽의 것이 부활을 시켜주는 신상이다. 신상 들은 각각 1회용. 무턱대고 사용 했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
마지막으로 <DDO>는 MMORPG가 아니라, MORPG이다. MMORPG는 서버 한 대당 한 장소가 오직 한 곳만 존재한다. '러스티 네일' 이라는 여관도 한 곳만 존재하고, '세손가락 테드' 라는 NPC도 한 명만 존재 하며, 워터웍스라는 던전도 오직 한 곳만 존재 한다.
하지만 MO는 그렇지 않다. 똑같은 여관과 던전이 같은 서버안에 둘 이상 존재 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필요에 따라 같지만 존재하는 차원은 다른 그 곳으로 마음껏 옮겨 다닐 수 있다.(이러한 방식은 국내 유저들에겐 WOW의 인던, 요구르팅 등으로 어느 정도 소개가 되어 있다)
<DDO>에서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아무리 큰 세계라고 하더라도 던전의 수는 한정 되어 있다. 사람들은 던전 대기표를 받기 위해 게임을 구입 한 것이 아니다. 게임이 게임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를 표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게임을 재미있게 해 주는 요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30분 짜리 던전을 돌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게임을 좋은 게임이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 여기까지 읽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DDO>라는 게임이 국내 유저들에겐 다소 생소한 방식이다 보니, 아직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내용이 무척 길어졌네요. 다음회 부턴 던전 탐험 내용을 중심으로, 장황한 설명 보다는 던전의 짜릿한 긴장감을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회에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