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기자들은 모두 '돈'이나 '정의'에 미쳐 현실을 잊은 극단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정말 그럴까?
아날로그 식으로 신문을 편집하는 게임이 최근 스팀과 스토브인디에 출시되었다. 데카트리 게임즈의 <편집장>이 그것이다. <편집장>은 1990년대 말을 배경으로 '새벽 일보'라는 일간지의 편집장이 되어 신문을 편집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새벽 일보의 편집장이 되어 매일 아침 아이템 회의를 통해 기삿거리를 찾고 오후에는 당일 1면으로 나갈 헤드라인과 사진을 편집해야 한다. 이 기사에 따라서 매체의 신뢰도와 판매 부수, 독립성 등이 평가된다. 일과시간에는 취재를 위해 취재원을 만날 수도 있고, 퇴근 이후 저녁, 밤, 새벽 시간에는 여러 이벤트가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주인공은 주간지인 '새벽 선데이'에 있던 당시 양질의 사진을 많이 보도했고, 국내 최초로 해외 유명 언론인 상을 받았다. 이러한 점을 높이 본(?) 경영진들은 같은 재단에서 운영 중이지만 낮은 구독자 수와 매체 신뢰도로 폐간 직전에 몰린 '새벽일보'의 편집국장으로 주인공을 앉힌다.
이때 주인공의 임무는 막중하다. 기사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기사를 쓰냐에 따라서 많게는 한 사람의 혹은 다수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여러 사람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조율해야만 한다.
우선, 매일 아침 보고를 올리며 만나는 대표와의 관계다. 대표는 새벽그룹의 경영진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좋은 상사다. 경영진이 보는 주인공의 평판에 대해 알려주거나 다른 곳에서 인맥으로 얻은 정보를 공유해주기도 한다. 루트에 따라서는 주인공의 뜻과 능력을 믿고 경영진의 압박에 대신 맞서주기도 한다.
대표는 취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선배 편집기자로서 편집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한다.
<편집장>에 등장하는 조언들은 사진을 찍거나 편집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기사를 작성하는 장본인인 편집국에 소속된 기자 셋과의 관계다. 다행히도 이들은 다른 매체 출신의 편집국장을 잘 따라준다. 그렇지만 셋은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다.
가장 선임 기자인 '현기준'은 팔릴만한 아젠다를 좋아한다. 평기자인 '이나연'과 '권세원'은 각각 진실에 대한 정확한 보도와, 사회 질서 유지를 중시한다. 일반적으로 이 세 개의 기준에 따라 선택지가 주어지고 헤드라인을 정할 수 있게 된다. 그에 따라서 기자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마찰이 생겨 신뢰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제보자와의 관계다. 기자는 업무 상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관계자들 전부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보자와의 신뢰가 중요하다. <편집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본래의 의도를 숨기고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게임에서는 메인 스토리에 따라서 '차기 대통령'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신망받던 국회의원이 피살되고 그 사건의 전말을 밝혀야 하기에 이 점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때, 게임은 늘 '옳은' 선택만 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후반으로 가면 취재가 길어지며 면을 채울만한 아이템이 없어진다. 이 과정에서 여배우의 노출 기사로 1면을 채워야 할 수도 있고, 더 나은 후속 보도를 위해서 찌라시 수준의 의혹 기사를 써야할 때도 있다. 좋은 기사를 많이 보도하여 독자들과의 신뢰를 쌓아왔다면 좋은 평판을 유지할 수 있지만, '편집부수'만을 쫓아 신뢰도를 신경쓰지 않아왔다면 '최악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왼쪽부터 권세원, 이나연, 현기준 기자다. 셋은 생김새로 보나 언행으로 보나
기자로 일하다 보면 어디에서든 한 번쯤 마주칠만한 인간상이다.
이나연 기자의 바람대로 정확한 사실 보도에 집중한 경우다.
그러나 권세원 기자에게는 날이 선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제공받은 정보를 '언제 터트릴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적당한 아이템이 없는 날에는 이런 사진으로 면을 채워야 한다.
그래도 독립성과 매체 신뢰도가 높아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온갖 암투를 헤쳐가며 진실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난관이 여전히 존재한다. 게임의 최종 목표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사를 써서 널리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제공받은 여러 자료에서 적당한 '각'을 본 다음 좋은 제목을 붙이고 적절하게 편집하여 구독자들의 평가를 받는다.
게임의 주인공은 관찰력이 뛰어나 사진을 아주 잘 본다는 설정이다. 그렇기에 편집국의 다른 기자들이 찍었거나 제보로 받은 사진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주요 임무다. 그렇기에 사진을 관찰하며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새벽일보의 1면에는 같은 규격의 사진 한 장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신중을 요한다.
주인공의 손에 주어지는 것은 CCTV의 화면이 될 수도 있고, 살해 현장의 사진일 수도 있고, 혹은 그래프나 기밀 문서일 수도 있다.
이때, 사진을 살피고 보도하는 방식이 포인트 앤 클릭을 기반으로한 다른 추리 게임들과는 조금 다르다.
사진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진을 볼 때처럼 시선이 닿는 곳에 사진을 드래그하여 옮겨가며 볼 수 있다. 살펴보다가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생기면 사진의 제보자에게 질문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후 본격적인 사진의 편집은 아이템 회의를 마친 후 편집국장 실에서 진행된다. 책상에 있는 오래된 IBM 컴퓨터를 사용하여 편집을 진행한다. 어도비의 포토샵과 유사한 프로그램이지만, 기능은 형편없이 단순하여 사진의 확대 축소와 크롭만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잘 진행하고 있다'는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고 판정이 모호하여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사진 편집에 대해 요령이 있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게임의 초반부 대표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기사 제목과 사진이 일치해야 한다"고 일러두었듯이 사진과 기사 내용과 기사 제목이 잘 들어맞아야 제대로된 판정을 받을 수 있다.
<편집장> 속 사진 편집 화면
미디어 속 기자들은 무언가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빌런으로 그려지곤 한다. 주로 '돈'이나 '실적'에 미친 광인이거나 '정의'에 집착하는 천치로 표현된다. 그러나 현실의 기자들은 조금 더 인간답다. <편집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게임의 진엔딩은 놀랍게도 자극적인 보도를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고 올곧은 길만을 걸었을 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게임 곧곧에서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리스펙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게임의 엔딩 크레딧 속 '스페셜 땡스 투'에서는 그동안 <편집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온 '게임 기자'들의 이름도 나열되더라.
현실과 너무 닮아 게임을 하면서도 일하는 기분이 들어 열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선택하고 계속 이어가고 이유가 잘 표현되고 있었다. 대사가 넘어가지않거나 사진이 잘리지 않는 등 아직 고쳐져야 할 버그가 많이 남아있지만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기자라는 일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게임을 추천한다.
<편집장>의 엔딩 크레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