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인생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추리 게임을 즐기곤 한다. 그로 인해 머리가 더 지끈거릴 때도 있지만, 추리의 끝에는 필연적으로 '해결'이라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갈등(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흐릿한 '희망'을 되새기게 해준다. 너의 복잡함과 나의 복잡함을 저울질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추리: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생각함
실종: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됨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숨기는 것은 추리물을 만드는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실종은 사건 자체가 '정보 공백'을 중심에 품고 있는 매력적인 소재다. 오늘 소개할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는 '서원'이라는 아이의 실종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뒤따라가는 게임으로, 유명 인디 개발자 소미(Somi)의 신작이다.
<레플리카>, <리갈 던전>과 같은 그의 전작들이 그랬듯, 이번 작품 또한 정보의 층위와 중요도에 대한 이해가 돋보였고, 플레이 경험과 내러티브 전달 방식 또한 기발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뭔가 미묘했다. 잔도 예쁘고 향도 좋은데 기분이 마냥 좋진 않은 미지근한 새벽 커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감상의 이유 또한 어떠한 '공백'으로 인한 틈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명: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장르: 포인트 앤 클릭, 퍼즐, 추리
출시일: 2024년 1월 18일
플랫폼: 스팀
가격: 7,800원
['전경'의 경감 퇴직 후 12년이 흘렀다. 할머니가 된 그녀 앞에 젊은 여경이 찾아와 '서원이 실종사건'을 끝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흩어진 기억을 떠올리고 재구성하지만, 드러나는 진실은 서원이 주변의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는 것뿐이다.] 스팀 페이지의 게임 소개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문장이다.
'전경'은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진술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기억들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불안해 보인다. 자신을 찾아 온 여경을 사건 피해자인 '서원이의 망령', 자신을 벌하기 위해 찾아 온 '심판자', 시간과 공간의 문지기 '야누스'라고 부른다. 몇 번이고 호칭이 바뀐 끝에 두 사람은 기억의 조각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의 플레이는 텍스트 직소 퍼즐에 가깝다. 총 54개의 진술(또는 대화)가 서서히 열리는데, 다음 진술을 오픈하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눌러 정보들의 관계성을 표현해주는 뉴런을 연결해야 한다. 푸른 선으로 이어지는 연출은 영리한 정보 배치와 함께 차근차근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는 감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시점과 관점이다. 진술은 '언제', '누가' 말한 것인지 불명확한 채로 떠오르기 때문에 해당 발언을 한 캐릭터 아이콘 아래로 시간 순서에 맞게 배치해야 한다. 추리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문장을 집어내거나, 정보 안에서 생일, 사망일, 퇴원일과 같은 특정 날짜를 기입하는 형태의 퍼즐도 등장하지만, 중심에 있는 추론은 진술 순서와 발언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의도된 '착각'들이 산재해 있고, 플레이어를 유도하기 위해 게임은 '정보 공백'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특정 시점까지 이름을 가려둔다거나, 여러 가족을 등장시켜 엄마, 아빠라는 호칭만으로 발언자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진술이 한 캐릭터의 말처럼 보인다) 아이가 실종됐으니 부모가 가장 격정적일 것이라는 일반적 상상과 달리, 각자의 이유로 캐릭터들의 감정 고저차가 있어 추론이 쉽지는 않다.
소미의 게임답게 텍스트 완성도는 높아서, 모든 대화 줄기가 정리됐을 때 문제 없이 매끄럽게 읽혔다. 진술 추론 연출은 심플하면서도 완성도가 높아 텍스트 기반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이 게임이 보편적인 관점에서 '재미'있는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일 것 같다.
스토리, 텍스트 기반의 게임은 '좋은 글' 위에서 꽃을 피운다. 기자는 개발자 소미가 뛰어난 작가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가 글로써도 좋은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먼저, 이 게임에는 두 개의 엔딩이 있다. 플레이타임은 2~4시간 내외이며, 하나의 엔딩을 보면 엔딩 직전의 선택 분기에서 바로 이어할 수 있기 때문에 두 엔딩을 모두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84개 스팀 리뷰 중 98%가 긍정적인 이 게임에 대해 "엔딩을 보고 울었다"거나 "여운이 진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같은 텍스트도 다른 화자, 다른 시점으로 배치될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점은 매우 좋았으나, 이런 이유에서 모든 말풍선이 '직소 퍼즐'처럼 어떤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 것이 아쉬웠다. 마치 각 방의 인테리어가 다른 박스형 조립식 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일체형의 건물이 아닌 조립식 건물이라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인물들의 관계가 '단순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기술하진 않겠지만, 두 개의 엔딩을 보고 나서 인물 관계도를 찬찬히 한 번 그려보시라. 트릭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관계 자체가 일반적 상상력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감정의 입구와 출구도 그렇다. 천인공노할 악도, 대단한 선량함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편적 인간 군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작품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지만, 누구에게 이입해도 좋은 이야기는, 동시에 아무에게도 이입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원'이의 실종을 둘러싼 각 인물들의 입장과 서사는, 복잡한 인물 관계에서 발생한 미세한 틈으로 인해 구심점에서 완전히 뭉쳐지지 않고 서로 조금씩 빗겨나가 있었다.
기자는 "불쾌하지도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고 잔잔하다. 하지만 잊지는 못할 것 같은 느낌"이라는 스팀 리뷰에 가장 공감했다. 참신했고 재밌게 즐겼지만, 인생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찾고 싶은 게임은 아니었다. 오히려 근심이 조금 비워진 순간에 어울리는 게임이랄까.
게임이 시작될 때 주인공 '전경'은 스스로를 해파리라고 소개했다. 70년이 넘는 세월 위를 떠다녔을 뿐이고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독침을 의도 없이 쏘아댔다고. 엔딩 이후 개발자는 "각자도생이 답이라고들 한다. 흔들리고 놀림 받더라도 연대할 수 있는 여러분을 응원한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삶의 플롯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임을 완성했다. 홀로 부유하는 모든 해파리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참신하고 촘촘한 서사와 게임플레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완성도 높은 음악, 그리고 따뜻한 메시지. 일부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했지만, 이 게임을 한 번은 꼭 플레이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조립식 건물도 뛰어난 건축물로 인정받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