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사정에 따라 리뷰가 늦어질 때가 있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출시된 지 1주일이 훨씬 넘었다. 그럼에도 늦은 리뷰를 쓰는 이유는 아직 <페르소나 3 리로드> 플레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 원작을 아는 사람 모두 해당된다. 게임을 이미 한 사람에게도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을 적었다.
일본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대부분 원작 <페르소나 3>가 어떤 게임인지 알 것이다. 2006년 출시된 <페르소나 3>은 개발사 '아틀라스'를 위기에서 구원한 히트작이었다. <페르소나 3>은 아틀라스의 대표작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시스템과 청춘 학원물 스토리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입소문을 타고 단숨에 회사의 새로운 대표 타이틀 자리까지 올랐다.
그만큼 팬들의 '리메이크' 요구가 끝없던 타이틀이었다. 개발사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만큼 <페르소나 3>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도 많았고, 더욱 강화된 그래픽과 연출로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페르소나> 시리즈 관련한 공식 발표가 있을 때마다 팬들은 항상 <페르소나 3>의 리메이크 소식부터 찾았다. 이런 팬들의 오랜 염원 속에서 출시된 타이틀이 바로 <페르소나 3 리로드>다.
종합 평가부터 남기자면 <페르소나 3 리로드>는 '리메이크'라는 모토를 잘 살린 게임이다. <페르소나 3 포터블>을 통해 수백 시간 게임을 즐긴 기자에게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어떻게 해야 요즘 사람들이 옛날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라는 개발진의 고민이 녹아들어 있는 게임으로 느껴졌다. 과감한 변화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게임의 베이스를 그대로 유지한 선에서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를 줬다는 점에서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다.
혹여나 <페르소나>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아틀라스의 대표작 <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갈라져 나온 게임이다.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악마를 수족으로 부리며, 악마를 서로 합체시켜 더욱 강력한 악마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리는 대부분 악마로 인한 세계 멸망 이후를 다루고 있기에 무거운 편이다.
<페르소나> 시리즈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무거운 분위기를 일부 희석하고, '악마'의 개념을 사람의 내면을 발현시킨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다. 페르소나는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 만큼 주인공은 여러 사람과의 교류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특징은 <페르소나 3>에서 확립됐다.
그렇기에 <페르소나> 시리즈에서는 전투만큼 등장인물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게임 진행 방식 역시 전투 파트와 일상 파트 두 가지로 구분된다. 평소에는 학교에 다니며 일상을 보내고, 공부하고, 여자 친구를 사귀다가 밤에는 '쉐도우'라는 존재와 맞서 싸운다. 더불어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만큼 주인공은 쉴 새 없이 연락을 받는데, 그 덕분에 "인싸 체험 시뮬레이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페르소나 3 리로드>에서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문자 시스템이 추가됐다.
날마다 문자가 쉴 새 없이 온다.
다양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주인공이 가진 힘의 원천이다.
<페르소나 3>이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이 점에 있다. 냉정히 말해 전투는 다소 반복적이고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몰입감이 높은 일상 파트와 전체적인 스토리의 빌드업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제대로 직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어두운 면을 많이 덜었다곤 하지만 <페르소나 3>의 스토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미소녀, 미소년으로 구성된 철부지 학생들이 비현실적인 능력을 각성해 악당과 맞서 싸우고 우정을 다진다는 단순한 내용은 아니다. 메인 테마부터 '죽음' 그리고 이 예정된 운명에 어떻게 맞서냐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원작의 요소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켰을까?
먼저 원작 재현도를 말하자면 충실하다. 이 부분은 약간의 개선만 있을 뿐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주인공은 방과 후, 혹은 밤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고, 여러 활동을 통해 능력치를 높여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게임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최대치까지 교류하는 것을 '올 커뮤'라고 하는데, 여러 편의 요소들이 추가됐다곤 하나 여전히 스케줄이 빡빡한 편이다. <페르소나 3>은 <페르소나 4>나 <페르소나 5>와 비교해 올 커뮤를 노린다면 주인공의 스케줄을 상당히 타이트하게 짜야 한다. 커뮤 시스템을 처음 시도했던 만큼 여러모로 노하우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 대신 비주얼적으로는 완전히 일신됐다. 땅딸막한 모델링으로 표현됐던 캐릭터들은 비율과 일러스트가 일신되어 원작을 즐긴 입장에서 "이 캐릭터가 이 정도로 예뻤다니?"라고 할 정도가 됐다.
주인공의 학교인 월광관 고등학교나 쇼핑 센터 '폴로니안 몰'의 비주얼도 상당히 좋아졌다. 일상 파트는 대부분 2D 이미지로만 구현한 <페르소나 3 포터블>를 주로 했던 기자에게는 정말로 와닿는 변화였다. 녹음 대사의 분량도 상당히 늘어나 지루함을 덜어 주는 편이다. <페르소나 3 리로드>의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대화가 음성으로 녹음됐다. 원작에는 음성이 별로 없었다.
리메이크인 만큼 <페르소나 3> 이후 출시됐던 게임에 있었던 시스템도 적용되어 편의성을 더해 주는 편이다. 온라인 기능을 통해 같은 날 다른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길라잡이가 되어 준다. <페르소나 4 골든>에 존재했던 텃밭 시스템도 <페르소나 3 리로드>에 역수입됐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지를 골랐거나, 이벤트를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최대 5일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롤백' 시스템도 있다.
<페르소나 4 골든>의 텃밭 시스템이 거의 그대로 넘어왔다.
<페르소나 3>의 호평 이유가 됐던 OST는 모두 일신됐다. 음질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으며, 일부 곡은 보컬의 변화와 함께 편곡됐다. 전투에서는 'It's Going Down Now'라는 새로운 곡이 추가되어 지루함을 덜어 주며, 이마저도 질린다면 다운로드 콘텐츠를 통해 다른 <페르소나> 시리즈의 곡으로 바꿀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원작의 서사를 수정하지 않는 선에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아치 에너미인 '스트레가'는 여러 사이드 스토리가 추가됨으로써 비중이 올라갔으며, '링크 에피소드'를 통해 동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알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동료의 경우 비중이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여러 사이드 스토리가 추가된 스트레가
원작에서 다소 빈축을 사는 부분이 있다면 전투일 것이다. <페르소나 3>의 전투 파트는 '타르타로스'라는 높디 높은 던전을 올라가는 방식인데, 진행 방식이 상당히 반복적이고 단조로웠기 때문이다. 랜덤으로 생성되는 미로 같은 맵을 탐사하며 층계를 하나하나씩 올라가야 하다 보니 좋은 반응이 나오기 어려웠다.
이미 원작을 해 본 팬들도 많은 만큼, 이 부분을 그대로 가져오면 아무리 '팬'이라도 좋은 이야기를 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개발진도 원작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더욱 재미를 주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올라야 할 타르타로스의 층수부터 260개다 보니 전면 재개편은 애초에 무리였을 것이다.
가령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눈에 띈 점은 유의미한 동료 대사량의 증가다. 동료의 조합이나 마주친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음성 대화가 출력돼 정적인 면이 덜해졌다. 맵 곳곳에 파괴 가능한 오브젝트가 있고, 일정 확률로 아이템을 제공하기도 한다. 각 층계마다 디자인 콘셉트도 보다 확실하게 변해 보는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확실한 비주얼 발전이 엿보이는 전투 (위 - 페르소나 3 포터블 리마스터 / 아래 - 페르소나 3 리로드)
<페르소나 5>에서 호평받았던 특유의 UI도 더욱 발전시켰다.
캐릭터의 복장에 따라 스킬 사용 UI의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캐릭터의 복장에 따라 스킬 사용 UI의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전투는 보다 빠르고 상쾌하게 진행되도록 의도한 점이 엿보인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전투 시스템 핵심은 적의 약점을 찌르거나 크리티컬을 발생시켜, 자신의 턴이 한 번 더 오도록 하는 '원 모어'다.
<페르소나 3 리로드>에서는 적의 약점을 조금 더 쉽게 찌를 수 있도록 원 모어를 발생시켰을 때 아군에게 턴을 넘겨 줄 수 있는 '시프트'라는 시스템이 있으며, 적들의 약점을 알고 있다면 플레이어가 일일히 기억할 필요 없이 버튼 하나를 눌러 AI가 즉시 약점 속성의 스킬을 추천해 주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연출의 전환이 빠르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편이다.
조금 더 전략적 요소를 추가해 주는 '테우르기아'라는 시스템도 있다. 동료나 주인공이 개별로 사용할 수 있는 단독 필살기로, 공격이나 스킬을 사용해 게이지를 모아 발동할 수 있다. 원작에는 없었던 요소기에 타르타로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테우르기아를 사용해 화려한 연출과 함께 적을 격파하는 재미가 있다.
테우르기아
<페르소나 3 리로드>는 모범적인 리메이크 타이틀이다. 원작을 즐긴 사람, 즐기지 않은 사람 모두 한 번 쯤 구매를 고려해 볼 만하다. 특히 ‘오래된 명작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2009년 출시된 원작 게임을 지금 하려면 여러모로 불편한 부분이 많겠지만, 리로드에서는 많은 부분이 수정됐기에 원작의 감성을 거의 그대로 느끼면서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페르소나를 합성하고 제작하는 벨벳 룸에서 페르소나 삭제 기능이 없다거나, 원작에서 다소 흥미를 끌기 부족했던 커뮤니티는 스토리가 보다 보완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단점이 눈에 띌 정도로 크지는 않다.
조금 사담을 덧붙이면 <페르소나 3 포터블>에서 추가됐던 여주인공이 <페르소나 3 리로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페르소나 3 리로드>를 플레이하고 나니 여주인공을 추가할 수 없었던 '개발진의 사정'이 이해가 갔다.
여주인공만을 위해 움직이는 UI를 새로 만들고, 별도로 할당된 이벤트나 커뮤니케이션 이벤트를 만들고,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별도의 애니메이션 컷신을 추가하고, 여주인공 전용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음성 대사 녹음을 해야 했다면 개발에 들어가는 리소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페르소나 3 리로드>는 퀄리티 부분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