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못생기지 않았다고? 축하한다. 당신이 못생겼다고? 왜 시비냐고? 일단 진정하시라. 우리는 적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인간을 미인과 추인으로 나눈다면 기자는 응당 뒤편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못 믿겠다고? 기자에게는 탈모가 있다……. 혹자는 미에 대한 판단을 주관적 영역이라며 위로한다. 파충류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부림치며 파충류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대상이 유쾌한 감정을 전달하면 '미', 반대로 불쾌한 감정을 주면 '추'라고 규정했다. 인간 모두가 저마다의 이력과 취향이 있고, 그래서 엄밀한 '유쾌/불쾌' 판단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미추(美醜)에 대한 취향의 판단은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카리나랑 윈터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흄은 인간의 선한 의지로부터 이루어지는 합의를 중요하게 여겼다. 흄은 아름다움과 못남 또한 '공감'이라는 감정에 의해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서로가 느끼는 바를 공감할 수 있고, 그것은 미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기 때문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대상이 존재한다. <모나리자> 같은 불후의 예술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카리나와 윈터 또한 현재 세대에서 아름다움의 보편적 기준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숱 없는 배 나온 아저씨(기자 본인을 지칭함)는 대체로 추남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할 수 없다. 동서고금의 이야기에서 추남의 분발은 더 격한 공감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니까 잘생긴 것들이 쉽게 가져가는 것을 우리 추남들은 필사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남의 일대기는 더 큰 울림을 준다. 역사 속 주원장과 온달이 그렇다.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와, <귀멸의 칼날>의 규타로가 그렇다.
<활협전>(活俠傳)은 지난 6월 14일 출시된 무협 RPG다. 최근 유저가 만든 한국어 패치가 공개되며 입소문을 타게 되었는데,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 전달력으로 소싯적 김용 삼부작 좀 읽은 사람이나 오늘날 <화산귀환>을 보는 사람에게 두루 호평을 받고 있다. 기자도 소싯적 만화카페에서 함께 김용을 읽던 사형의 강력한 추천을 받고 게임을 잡았다가 하루를 전부 잡아먹었다.
주인공 조활은 당문(사천당가) 소속의 외성제자로 당가의 성을 받지 못하고 10년째 문파에서 잡일을 도맡고 있다. 그가 당파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장문 당중령의 딸 소사매에게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못생기고 가난한 그는 당문의 무공을 단 하나도 전수하지 못했고, 매일 사형들에게 못생겼다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문중에 남아 그녀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한다.
그는 연이은 시험에서 같은 문파원들을 무찌르지만, 당문을 이끄는 당중령은 조활에게 당씨 성을 내리지 않는다. 이후 3년 동안 소사매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당문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는 플레이어의 손에 맡겨졌다. 우리의 조활은 모두에게 미움받는 추남이지만, 그 어떤 유파의 무공도 주화입마 없이 쑥쑥 받아들이는 천재성을 지닌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는 당문의 정식 수련 과정 없이 뒷산에서 홀로 비기를 읽고 대장간에서 무기를 재련하며 고수가 된다.
스포일러를 전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쓰고 있는데, <활협전>의 이야기는 대단히 방대하다. 청년 조활의 열애지사를 중심으로 무협지에서 곧잘 다루는 남송과 금의 전쟁사나 문파간의 갈등과 협력, 무림맹의 결성 등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기자는 며칠 전 1회차 플레이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뒤로 물렸다. 첫 엔딩에서 소사매를 잃고 게임의 목적을 잃어버려 폐인처럼 숙소에서 종이접기만 했다.
종이접기는 소사매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로 플레이어가 이 행동을 하면 조활의 심성이 차오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종이접기로도 심상이 차오르지 않는다. 소사매가 처가를 방문하려 당문에 돌아오는 이벤트가 있는데, 전과 달린 차가워진 소사매의 대사는 플레이어의 가슴을 짓누르는 듯하다. 이때부터는 종이접기를 해도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심상 게이지가 차지 않는다.
못생긴 외모로 평생을 고통받은 조활의 심정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은 절정에 올랐다. 인공지능 번역의 한계를 넘어 플레이어에게 전달되는 듯하다다. 작가는 <논어>나 <대학>, <사기>, <손자병법> 같은 동양의 고전을 능수능란하게 인용한다. 직접 인용은 물론, 고전 속 내용을 게임 대사에 녹여 유머 요소로 만들며 감탄을 자아낸다.
<활협전>은 게임이라는 탈에 걸맞을 만큼 유머 요소가 많다. 게임의 '구공'은 입싸움을 말하는 것으로, 구(舊) 무협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개발진의 새 요소인데, 말싸움으로 상대방의 기를 줄어들게 하고, 자기 기를 올리는 것이다. 더 강한 구공을 위한 '구력'을 올리려면 뒷산에 올라 책을 읽거나 우울한 심상을 잊으려 술을 마시면 된다.
입씨름으로 상대에게 주눅을 들게 한다니, 주성치의 <구품지마관>이 떠오르는 기능이다. 물론 무협 세계에는 '논검'이라고 해서 서로 무공에 대한 깨달음을 말로 떠들다가 종국에는 "이제 한 수 겨루자"며 대련으로 이어지는 클리셰가 있고, <녹정기>에서는 위소보가 꽤 자주 말싸움에 휘말리긴 한다. 우리의 조활의 '구공'은 논리라곤 일절 없는 저급한 욕설로 상대의 심기를 긁는다.
유저들은 주인공 조활에게 잡일을 시키며 스탯을 키우는 요소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모든 중요 결정에 주사위 던지기를 쓴다는 점에서 <발더스 게이트>를 떠올리고 있다.
실제 플레이한 결과, <활협전>의 게임의 육성, 플레이 요소는 그러한 장르 문법에 비교적 충실한 느낌이다. 플레이어는 당문 안팎에서 여러 훈련을 통해 조활을 성장시킬 수 있고, 이번 회차에는 검법을 집중 수련시킬 건지, 아니면 암기(표창) 위주로 나아갈지 등을 고를 수 있다.
몇몇 히로인과 무림에서 가약을 맺을 수도 있다. 기자는 지금 가약을 맺기 위해 n회차 플레이를 진행 중인데, 아직 몇몇 이벤트는 개발 중인 모양이다.
<활협전>은 다회차 플레이를 권장한다.
각 엔딩을 책처럼 보여주고, 책장에 그 엔딩을 꽂는 형태로 이전 플레이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몇몇 마니아들이 논하는 바와 같이) 게임플레이는 다회차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때부터 게임의 여러 요소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회차부터는 능력치 보정과 행동 추가 수치를 받을 수 있다. 게임상 같은 기간 안에 더 많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에는 아직 기자가 만나지 못한 무수히 많은 대사와 분기 이벤트가 존재한다. 최근 들어 몇몇 게임 팬들은 게임에 분량이 많은 경우를 두고 '고봉밥'이나 '양갈비'라고 부르며 푸짐하다고 말을 얹고는 하는데, <활협전>이 그랬다.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서 더 많은 분기가 열린다면 <발더스 게이트 3>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꽤 든든한 한 끼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참고로 이 게임의 정가는 2만 원이다.
아직 아쉬운 점도 대단히 많다. 유저 번역은 더 많은 한국인이 게임을 접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나,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전문 번역을 기다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한국어에는 존재하는 반말/존댓말이 중국어에는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 번역 결과물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개발사에서 빠른 소통을 거쳐 수준 높은 번역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이 과정에서 유저 번역의 노고가 무시되지 않길 바란다.)
게임에는 1:1 개인전과 다 대 다 단체전이 있는데, 개인전은 가위바위보 형태의 턴제 공방이다. 이펙트가 밋밋한 느낌이 있지만, 다음 이야기를 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반면 단체전의 만듦새는 다소 실망스럽다. 피아 식별이 쉽지 않을뿐더러 판정이 확실하지 않아서 플레이 내내 의문이 들었다. 게임 내 존재하는 전술 스탯이 높은 것과의 차이 또한 알기 어려웠다. 게임에는 여러 바로미터가 있고 플레이어의 선택과 여러 이벤트에 따라서 오르내리는데 UI 단에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또 게임의 이야기는 '무협에 대한 기본 소양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듯하다. 이런 배경이 전혀 없는 이가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도대체 마교가 왜 나쁜 건지, 주인공이 소속된 당문이 왜 독침을 쏘는지 의문을 가지고 플레이하다가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무림이 대회를 여는 후반부에 가면 그 의문이 계속 커질 수 있다.
흄의 말씀대로 못생겼다는 타인의 "공감"을 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조활의 이야기로 생각보다 큰 위안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활협전>에서 조활은 게임 내 표현대로 '더럽게' 못생겨서 멸시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당문을 위협하는 요소를 하나둘 물리치는 한편, 연무장의 잡초를 뽑는 잡일을 멈추지 않으면서 인정받는다. 여러 난관을 극복한 뒤, 높은 향심(충성심)을 유지시키면, 같은 문파원들은 조활에게 당씨 성이 없다고 함부로 굴지 않는다.
무림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든 좋다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받던 조활은 점차 성숙한 협객이 되어간다. 조활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건 생김새나 성씨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아무리 그래도 조활의 얼굴이 못생겨서 싫은 사람은 게임 초반부 거울보기 이벤트에서 '잘생겼다'는 선택지를 고르면, 조금 미형이 된 조활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화장실 거울 자뻑' 같은 건데, 그게 살아가는 재미가 된다면 아무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