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도전적인 목표는 대개 매력적입니다. 목표 수행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게임에서는 그 매력이 유난히 빛나곤 하죠. 여기에 하드코어한 게임들의 숱한 성공은 더 많은 고난이도 게임의 등장을 부추기는 듯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메트로배니아 장르는 '2D 다크 소울'로 불려 온 <할로우 나이트>가 장르의 대표격이 된지 오래고, 길 찾는 게 콘텐츠인 장르 특성 상 진행부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쉽다고 하는 게임들도 초심자가 즐기기엔 은근히 어려운 게임들이 적지 않고요.
이런 상황에서 <크립트 커스토디안>은 그야말로 메트로배니아의 입문작으로 적합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최근 유저 한글 패치가 공개되어 접근성이 좋아진 <아일렛츠>의 개발자 카일 톰슨의 신작인데요. 전작 못지 않게 귀여운 주인공을 둔 것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집사로서의 사심은 제쳐두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이 게임을 추천하는지 다뤄봅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게임명: 크립트 커스토디안 (Crypt Custodian)
장르: 어드벤처, 메트로배니아
플랫폼: PC / PS / Xbox / 닌텐도 스위치
개발사 / 배급사: 카일 톰슨 / 톱 햇 스튜디오스, 카일 톰슨
출시일: 2024년 8월 27일
한국어 지원 여부: 자막 지원
플레이 타임: 12시간
심연을 지나 눈을 뜬 검은 고양이 '플루토'는 저승의 궁전 입구에서 빗자루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근처에 보이는 건 금이 간 항아리와 석상들이죠. 게임 좀 해 봤다면 다음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모조리 부숴야 한다는 걸 말이죠.
그런데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궁전의 관리인에게 나쁜 고양이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를 당하고 맙니다. 영원히 저승 바깥을 청소하는 벌칙도 함께 받았고요. 졸지에 저승 청소부가 된 플루토는 궁전 반대쪽으로 터덜터덜 발길을 돌립니다.
자연스럽게 몰입을 이끌어내는 재치 있는 스토리 연출로 고양이 플루토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저승 바깥의 여러 구역에는 동물의 영혼들이 하나씩 머물고 있으며, 일찍이 같은 처지에 놓인 영혼들은 플루토의 사정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거나 청합니다. 다른 영혼들과 친구가 되어가는 동시에 탐험을 하며 주워 든 사진으로 알게 되는 저마다의 사연은 게임이 시작될 때 느꼈던 것만큼이나 은근한 몰입을 부릅니다.
<크립트 커스토디안>의 스토리텔링이 갖춘 매력은 엔딩을 넘어 진 엔딩에 이르기까지, 강렬하거나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소소하게 호기심과 동기를 제공해 과하지 않은 감동을 줍니다. 스토리를 보기 위해 플레이 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플레이 내내 집중을 잃지 않게 하는 구역 사이사이의 아교 같달까요.
그땐 몰랐지, 청소부가 될 줄은…
스토리를 재밌게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구역마다 스토리와 연관성 높게 디자인 된 맵과 필드 기믹이 있기 때문입니다.
10시간 남짓이면 지도를 모두 열 수 있을 정도로 장르치곤 크지 않은 규모지만, 10가지 이상의 다채로운 지역이 있고 길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지역 전환이 돼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역마다 새로운 필드 기믹과 기술이 등장해 점차 넓은 지역을 탐색해 나가는 메트로배니아의 재미를 충실히 갖추고 있고요.
꼼꼼하게 둘러볼 구석이 많은 맵은 아닙니다. 너머에 비밀이 있을 법한 함정이나 플랫포밍 구간도 많지 않고요. 옵션에서 미니맵을 켤 수도 있지만 디폴트 상태는 미니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 정도로 길이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적당한 수의 갈림길들과 숨겨진 비밀 공간이 있어 탐색의 재미는 부족하지 않으며, 중간중간 쏠쏠한 보상을 주는 챌린지와 퍼즐도 감칠맛 도는 양념처럼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기믹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임의 동선 자체는 단조로운 편이지만 플레이가 느슨해지지는 않습니다. 곧바로 키 입력에 반응하는 빠릿함과 쫀득함이 느껴지는 모션 및 진동으로 조작감이 깔끔해, 전투는 물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손맛이 좋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게임의 핵심인 빗자루 액션이 아주 시원하고 찰집니다. 한 올 한 올 꼿꼿하게 살아 있는 싸리비를 휘두르는 것처럼 내려치는 소리가 경쾌하고, 공속이 빠르고 날렵해 타격감이 굉장히 좋습니다.
공속을 더 높이고 연타에 추가 공격까지 들어가는 패시브 아이템까지 장착하면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아릴 정도로 비질을 하게 됩니다. 치는 족족 빠르고 강하게 대미지를 입힐 수 있어 너무 신나거든요. 빗자루 공격은 연속으로 가해 콤보를 넣거나 점프에 곁들여 내려칠 수도 있고, 특수 스킬로 강하고 효과적인 기술을 곁들일 수도 있어 보기보다 활용 방법도 다양합니다.
풀 스윙으로 내리치는 비질
보스전도 무척 재밌습니다. 보스마다 특색 있는 콘셉트에 독특한 공격 패턴을 보여주며 페이즈도 명확합니다. 무엇보다 체력이 많지 않아 패턴만 파훼했다면 쉽게 처치할 수 있고요.
전투는 기본적으로 적의 탄막을 요리조리 피해야 하는 방식이지만, 점프와 대시를 활용하는 덕에 정교하게 대응하지 않고도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있어 전투가 몹시 캐주얼합니다. 입문작으로 추천하는 만큼 기본 난이도만으로도 쉬운 편이지만, 난이도를 낮춰 적 공격의 밀도를 줄임으로써 더 순하게 즐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높이는 것도 가능하고요.
점프로 피하면 그만인 탄막
메트로배니아 특유의 길을 찾는 고난까지도 간결하고 매끄러운 동선에서 이미 해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입문작으로 추천하는 데에는 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편의성이 엄청나게 좋기 때문인데요.
청소를 하면서 얻게 되는 쓰레기를 약간 지불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아이템을 놓치고 지나왔는지 지도에 표시해 주는 쾌적한 힌트 시스템이 있습니다. 초심자 뿐 아니라 모든 아이템을 싸그리 수집해야 하는 메트로배니아의 장르 팬에게도 유용한 기능이죠.
또 시작부터 빠른 이동을 사용할 수 있어 체크 포인트마다 로딩도 없이 곧바로 이동할 수 있고, 수 십 개의 마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길을 드러내 주는 아이템이 있는 등 시작부터 엔드 콘텐츠까지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장치도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비용도 저렴하다.
장르에 익숙한 플레이어라면 파고들 공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맵과 길지 않은 플레이 타임에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완벽히 대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탄막 액션이 주는 전투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신나는 비질에 비해 다소 늘어지는 배경 음악이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긍정적으로 보자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기는 했습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취향의 영역이어서 단점이라고 꼽기에도 애매하지만요.
<크립트 커스토디안>은 메트로배니아 팬이라면 꼭 해 봐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나게 대단한 게임은 아니지만, 특기할 단점이라곤 고작 이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입문작을 찾는다면 어떤 게임도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려울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면서 캐주얼하고요. 게다가 깜찍함도 게임 선택에 고려하는 부분이라면 몇 배로 더 추천할 만큼 귀엽습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