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리즈라더니 이름도 헷갈리는 게 여럿이고 너무 방대할 것 같은데?' 제 경우엔 워해머 세계관을 알아보려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이야 고작 게임 하나 더 재밌게 해 보려는 건데 게임이 그렇게까지 재밌어 보이진 않으니 결국 시도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 2>는 미뤄오던 워해머 시리즈에 드디어 발을 들이게 했습니다. 푸른색 파워 아머를 입은 듬직한 전사가 비장한 분위기에서 무게감 있는 전투를 벌이는 트레일러를 처음 봤을 때 무조건 해 보고 싶었거든요.
1편 스토리와 개념 요약이 말끔하게 담긴 두 편의 영상으로부터 도움을 얻은 결과,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의외로 세계관은 무척 단순하더라고요. 파고들면야 디테일한 설정이 묘사된 사건이 많을 테고 아는 만큼 더 즐길 게 많겠지만, 복잡할 게 전혀 없어 플레이를 위한 배경 지식을 마련하는 데에는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시작해 본 인생 첫 워해머 게임은 과연 어땠는지 이야기해 봅니다. / 작성=깐(게임 리뷰어)
게임명: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 2 (Warhammer 40,000: Space Marine 2)
장르: 온라인 협동 및 경쟁, 3인칭 슈팅, 핵 앤 슬래시플랫폼: PC / PS / XB개발사 / 배급사: 세이브 인터랙티브한국어 지원 여부: 자막 지원플레이 타임: 8시간 (캠페인) + 4시간 (PvE 및 PvP)*필자가 플레이한 시간으로, 엔드 콘텐츠 완료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돌아온 1편의 주인공
엄청나게 큰 덩치의 강한 우주 해병이 되어 살벌한 체인소드와 번쩍이는 대형 망치를 휘두르며 배신자와 포악한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은, 플레이 하루 전 벼락치기로 공부한 것치곤 팬심을 강하게 불어 넣었습니다. 실제로 그 기대감은 완전히 충족됐고요.
가장 기대한 부분이자 극도로 만족도가 높았던 근접 무기는 멀티에서 추가 되는 파워 피스트를 포함해 총 다섯 가지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무브셋부터 속도와 범위 등 플레이 스타일과 성능은 각각 특색 있으면서 전부 힘차고 묵직하더라고요. 일반 공격을 연이어 가하는 것에서부터 길게 눌러 강하게 공격하거나 돌진하며 밀쳐내는 등 공격 키 하나만으로도 타격감이 훌륭했습니다.
다만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말 그래도 '때린다는 느낌'의 심리적인 면에서 좋다는 것이지 사운드 등의 구체적인 피드백은 아쉽긴 합니다. 워해머 시리즈의 최근작 중 하나인 <워해머 40,000: 다크타이드>가 최상급의 타격감을 보여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아쉽게 느껴지고요. 대신 컨트롤러 진동은 뛰어난 편이며, 듀얼센스의 경우 햅틱과 적응형 트리거의 설계가 대단히 좋아 부족함을 달래줍니다. PC에 연결해도 잘 작동하고요.
수십 가지가 넘는 처형 모션들
떼로 몰려나오는 적들에게 공격을 끊임없이 퍼붓는 전투 방식이기 때문에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직접 플레이를 해 보면 적의 공격을 쳐내고 회피한 후 원거리 무기로 틈새 공격을 욱여넣고 처형으로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주 박진감 넘치고 리듬감도 좋았습니다. "월드 워 Z"의 개발사답게 물량전의 구현도 준수했고요.
또 쳐내기나 처형 등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액션들의 유효 시간도 넉넉해 스트레스가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먼치킨 스타일은 아닌 게, 원거리 적 등 우선 처리해야 하는 적을 신경 써야 하기도 하고, 피격 대미지가 꽤 높아 조금만 얼타고 있다간 빈사 상태가 되는 긴장감도 있어 지루할 새가 없었습니다. 단, 제가 선택한 일반 난이도가 쉬웠기 때문일 수는 있습니다. 네 가지 난이도 중 '의도된 경험'이라고 적힌 베테랑 난이도는 코옵 기준일 거라는 합리화를 거쳐, 일반으로 한 단계를 낮췄거든요.
총과 수류탄도 써야 한다
캠페인의 진행 방식도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퍼즐이나 길찾기 등은 게임에 따라 재밌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이 게임처럼 다급하고 중대한 임무를 맡아 속도감 있는 액션을 연속적으로 펼치는 게임에서는 맥을 끊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 게임에는 퍼즐과 길 찾기는 일절 없고 지시에 따라 필드를 이동하며 전투를 벌이면 그만입니다. 개별 임무마다 세계관에 대한 수집품이 있기는 하지만요.
즐길 거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전투를 벌이는 각각의 공간들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우며 구석구석 신경 쓴 티가 나는 장식들도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신성 로마 제국을 연상케 하는 문화와 디자인 콘셉트도 흥미로운 볼거리고요. 몰입을 고조시키는 주변 상황과 대화들도 세계관 속에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강인하고 신의 있는 주인공 캐릭터의 묘사도 내내 좋았고요. 최후반 임무에서는 이제 막 입문한 입장에서도 혹할 만큼 팬들을 열광하게 할 만한 상징적이고 멋진 연출도 등장해 설렘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종군 기자마냥
자꾸만 열게 되는 사진 모드
캠페인은 8시간 가량에 엔딩을 볼 수 있어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조금 높은 가격이라고 생각이 들 법도 하죠. 하지만 이 게임의 캠페인은 전체 콘텐츠의 절반에 못 미치는 부분이기 때문에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엔드 콘텐츠는 따로 있거든요.
멀티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는 엔드 콘텐츠는 캠페인 임무 중 다른 분대의 시점에서 다루는 PvE 모드와 세 가지 모드로 준비된 6 대 6 PvP 모드가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캠페인과는 다르게 무기 선택에 제약이 있고 특수 기술이 정해진 여섯 개의 클래스에서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멀티 콘텐츠를 하면서 클래스와 무기의 경험치를 올리고 자원을 파밍해 클래스 전용 스킬과 무기를 강화하고 각 클래스 캐릭터의 외형을 꾸며나가는 거죠. 캠페인에서는 써볼 수 없었던 무기도 있고 기술도 여러 가지가 추가돼서 캠페인과는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여섯 개의 직업을 전부 키운다면 플레이 타임도 엄청나게 늘어날 것 같았고요.
개인적으로는 멀티보단 싱글 콘텐츠를 기대했고 반복적인 건 좋아하지 않아서 멀티 콘텐츠들은 가볍게 맛만 봤지만 만듦새는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캐릭터 성장을 위해 반복 플레이하는 과정을 평소에도 즐기는 편이라면 할 만하겠다 싶더라고요. PC 기준으로 저사양에서도 부드럽게 실행될 만큼 최적화가 나쁘지 않은 편이고 크로스플레이도 가능하니,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같이 즐기러 동반 입대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캠페인 외에도 작전(PvE)과 영원한 전쟁(PvP) 모드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유명한 IP로 만들어지는 게임들에는 기대를 하지 않아왔습니다. 팬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충분하지 못해서일 때도 있고, 유명세를 과신한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엉터리여서일 때도 있죠. 특별히 관심이 없는 IP의 경우엔 아예 게임으로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서일 때도 흔합니다.
그런데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 2"는 관심 없던 IP인데도 단지 게임을 해 보고 싶어서 IP를 알아보게 한 데다 게임을 하면서 그 IP를 더 좋아하게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워해머를 좋아하는 분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인 걸 보면 팬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사로잡은 것 같더라고요. 편파적이고 적은 표본으로 단언할 수야 없지만 이 정도면 IP 기반의 게임은 물론이고 매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온 워해머의 디지털 게임들 중 아주 바람직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나 워해머 시리즈를 좋아하고 마초적인 캐릭터와 전투 방식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만족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캠페인이 전부인 게임은 아님에도 캠페인만 보더라도 플레이 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