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게임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엇갈리는 기묘한 상황이다. 호기심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직접 게임을 해보는 것 아니겠는가? 마침 <카잔>의 테크니컬 클로즈 베타 테스트(TCBT)를 사전 체험할 기회가 생겨 게임을 켜고 오랜만에 콘솔 패드를 꺼내 쥐었다.
먼저 고백하자면, 기자는 소울라이크의 ‘ㅅ’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플레이 경험은 전무하고, 아는 것은 선배들의 플레이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익힌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액션 RPG라는 개발자의 말만 철같이 믿고 게임을 시작해, 장장 10시간 동안 끝없는 죽음과 도전을 반복해 게임을 클리어한 뒤 내린 결론은 “<카잔>은 소울라이크이면서 소울라이크가 아니다”였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느껴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소울라이크라고 하면 머릿에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방어 또는 회피를 중심으로 한 난이도 높은 전투가 대표적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 힘든 복잡한 길 찾기에 플레이어를 괴롭히기 위해 디자인된 함정과 몬스터 배치, 게임 내 요소에 대한 불친절한 설명도 떠오른다.
여기서 지금까지 떠오른 모든 요소 그대로 게임 내에 포함되어 있다면, 이것을 소울라이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카잔>이 딱 그런 게임이다. 게임플레이 전반에서 소울라이크의 여러 요소를 최대한 계승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카잔>의 전투에는 회피와 패링이 있다. 둘 다 정확한 타이밍에 시전하면 기력 소모량이 크게 감소하고, 패링의 경우 상대의 기력을 대 감소시키는 효과가 추가된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어떤 패턴인지 파악해 그에 맞게 방어하고 남는 기력을 공격에 활용하는 것은 영락없는 소울라이크의 전투 메커니즘이다.
소울라이크 특유의 불친절함도 그대로 계승됐다. 하얀 눈으로 뒤덮 설산에는 군데군데 갈림길이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는 없다. 우연히 앞에 아이템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부주의하게 이동하면 바닥이 무너져 낙사한다. 겨우 들어온 좁은 동굴에서는 느닷없이 박쥐 떼가 날아오며, 모퉁이에선 적들이 깜짝 등장해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진행 도중 보물상자를 만나 신나게 달려가면,
그 곳엔 어김없이 적과 함정이 숨겨져 있다.
여기에 더해 <다크 소울> 시리즈를 상징하는 화톳불과 소울 역시 각각 ‘명계의 검’과 ‘라크리마’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정도면 <카잔>을 소울라이크라 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게임을 조금 더 진행해보면 이 게임을 하드코어 액션 RPG라 표현한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이런 난이도 높은 액션 RPG에 익숙하지 않은 기자 같은 플레이어를 위한 배려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일반 적들과 체력 표기 방식은 동일하지만 더 강력하고 다양한 패턴을 사용하는 적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패턴이 해당 스테이지의 보스가 사용하는 패턴과 겹친다.
예를 들어, 첫 스테이지 ‘설산 하인마흐’에서 등장하는 바위 골렘은 주먹으로 땅을 찍는 패턴과 두 팔을 번갈아서 한 번씩 크게 휘두르는 패턴을 사용하는데, 해당 패턴은 이후 ‘예투가’와의 보스전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엠바스 유적지’의 양날창을 든 용인 병사의 공격 역시 ‘바이퍼’의 패턴과 완전히 똑같다. 보스전에 앞서 플레이어가 파훼할 수 있는 패턴을 미리 숙지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는 보스 공략의 도전 보상이다. <카잔>에선 보스 공략에 실패했을 경우 잃은 보스의 체력량에 비례해 성장 자원인 라크리마를 지급한다. 죽어서 떨어뜨린 라크리마는 세이브 포인트인 명계의 검 근처에 놓이기 때문에 바로 다시 회수할 수 있으니, 도전을 거듭해 쌓인 라크리마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여 공략을 재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잔>의 무기와 스킬 시스템도 액션 RPG에 더 가깝다. 이번 TCBT에서 활용 가능한 무기는 도부와 대검, 창까지 3개다. 각 무기별로 고유의 스킬 트리가 존재해 자유롭게 전투 방식을 조정할 수 있는 점은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와 상당히 유사했다.
보스 공략에 실패했을 때도 보상으로 라크리마가 지급된다.
무기별 스킬은 레벨에 따라 해금된다. 스킬 초기화도 언제든 자유롭게 가능하다.
이 시스템이 게임의 액션 플레이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빠른 공격(약공격)과 강한 공격(강공격) 키를 조합하면 새로운 콤보가 만들어지며, 투지 게이지를 사용하는 액티브 스킬을 영리하게 사용하면 게임의 난이도가 대폭 쉬워진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소울라이크보다는 액션 RPG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라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다시 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카잔>은 소울라이크일까? 개인적으로는 소울라이크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고 말하고 싶다.
<카잔>은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 RPG 장르와 비교하면 어렵다. 단순히 어렵고 패링을 하면서 플레이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소울라이크라고 한다면 약간 결이 다르다.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 묵직한 한방보다는 스킬의 활용 등에 있어서 화려함이 느껴질 정도다.
마치 초창기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를 하는 느낌처럼 어렵지만 적절한 스킬을 이용하는 모습은 <던파>를 해본 사람이라면 "<던파>는 <던파> 맞네"하면서 도전을 통한 플레이어의 성장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굳이 <던파>의 느낌과 소울라이크의 느낌을 저울질하면 살짝 <던파> 느낌으로 추가 기울게 밸런싱을 한 느낌이다.
물론 아직은 테크니컬 테스트 단계로, 고작 3개 스테이지만 플레이한 이후 내린 성급한 결론에 불과하다. 다만 소울라이크의 팬도, 팬이 아닌 사람도 취향에 맞는다면 상당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으면서 적절한 스킬 사용으로 전투를 이끌어가는 재미가 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