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한자로 된’, ‘4글자 제목의 게임’이라고 하면, “중국산 싸구려 양산형 게임” 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가 편견처럼 자리 잡은 상태다.
지난 2017년 <소녀전선>의 흥행 이후, 이와 유사한 형태(로 보이는) 각종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들이 범람했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퀄리티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고 단명한 게임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필자가 올해 상반기 <백야극광>의 존재를 처음 인지했을 때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다.
“아, 또 뭔가 양산형 게임 나오나보네. 어, 그런데 텐센트게임즈(aka 중국 No.1 개발사)가 서비스하네? 그건 좀 눈에 띄네?” 이 게임에 대한 기대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 17일, 이 게임을 처음 접하고 4일동안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고' ‘프리즘’(이 게임의 행동력)을 매일매일 한도까지 사서 철근같이 씹으며 달리고, ‘일부 콘텐츠’(오벨리스크) 제외 스테이지 8지역 등 전 콘텐츠 ‘올 클리어’를 달성하고 깨달았다.
이 게임은 단순한 ‘양산형’ 저퀄리티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충분히 ‘재미 있는 미소녀 캐릭터 게임’ 이라는 평가를 줄 수 있는. 그런 게임이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백야극광>은 기본적인 게임의 구조는 다른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다양한 미소녀 캐릭터들을 수집하고 →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 재료를 파밍해서 캐릭터를 육성하고 → 높은 난이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 이걸 반복하는 형태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게임의 구조에서 특이하다고 느껴질 만한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게임이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점, 가장 독특한 점은 역시나 ‘체인 배틀’로 홍보하고 있는 이 게임의 전투 방식 그 자체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이 게임의 전투 방식은 소위 ‘한 붓 그리기’ 형태의 퍼즐 게임들에서 기본 형태를 따왔기 때문에, 완전히 ‘신선하다’ 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붓 그리기’ 형태의 퍼즐에, 캐릭터들의 속성, 다양한 스킬, 그리고 각종 오브젝트들과, 적 몬스터들의 ‘기믹’까지.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다른 일반적인 퍼즐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굉장히 독특한 ‘전략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게임의 전투는 단순히 캐릭터들의 레벨이나 스펙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깰 수 있는 방식이 아니며, 특히 스테이지 단계가 높아질수록 여러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머리를 써야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머리를 써야 하는’ 난이도가 제대로 된 퍼즐 게임처럼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어렵다’까지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여러 계산 끝에 체인을 길게 연결하면 한꺼번에 엄청난 대미지를 줄 수 있는데, 그 연출도 보는 맛이 있고 공략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도 훌륭하다.
그리고 이 게임은 메인 스테이지만 8지역까지 약 110여개의 스테이지를 제공하는데, 8지역에서조차 ‘새로운 기믹’이 등장할 정도로 각 스테이지의 구성이 알차다. 매 스테이지를 공략하는 데 유저들은 충분히 ‘몰입하면서’ 즐길 수 있는 수준은 된다는 이야기다.
서브컬처 게임의 주요 덕목 중에 하나는 바로 유저들이 ‘캐릭터’, 그리고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게임을 '덕질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전투 방식이 재미있기만 하고, 이야기나 캐릭터가 매력이 없다면, 그 게임은 오래 즐길 확률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다행히도 <백야극광>은 이야기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유저들이 “이해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냉정하게 따지면 아주 특별한 서사 구조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인공(=플레이어)이 어떤 존재인지, 왜 모험을 떠나야 하는지. 왜 히로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처음부터 확실하게 ‘동기 부여’를 해준다.
스테이지 진행에 따라 개방되는 스토리 자체도 왕도적으로 유저들에게 계속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계속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일러스트 퀄리티도 전체적으로 준수하며, 각 캐릭터 별로 성격 및 특징의 배분이 잘 되어 있다. 캐릭터들 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캐릭터 별 ‘개별 스토리’도 풍부하게 갖춰져 있다.
그렇기에 서브컬처 게임으로서 충분히 각 캐릭터들에 ‘덕질’할 수 있는 수준은 되며, 전체적으로 이런 요소들을 종합하면 ‘서브컬처 게임’ 으로서 기초는 충분히 탄탄한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백야극광>이 유저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나뉘는 부분은 역시나 게임의 메인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는 “집중” 해야 하고, 그것도 “어마무시하게”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이 게임은 모든 스테이지를 초회 플레이에서는 무조건 ‘수동’으로 클리어해야, 이후의 반복 플레이에서 자동 전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8챕터 약 110개에 달하는 메인 스테이지(한 판에 길면 약 10분 정도 걸린다)를 모두 ‘수동’으로 클리어에 도전해야 한다.
여기에 메인 스테이지 말고도 이 게임은 자원 파밍용 던전, 로그라이크 콘텐츠인 ‘비경’, 도전 콘텐츠인 ‘오벨리스크’ 등 온갖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 순수하게 게임 초기 준비된 콘텐츠 클리어에 도전하는 것만 해도 며칠은 걸린다는 뜻이다. 그것도 ‘집중 하면서’ 플레이해야 한다.
요즘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은 ‘분재형 게임’ 이라고 해서, 유저들이 최대한 ‘캐주얼 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즐길 수 있는 것이 일종의 미덕처럼 불리고 있다. 따라서 <백야극광>은 이런 분재형 플레이에 익숙한 유저 입장에서는 굉장히 ‘귀찮고’, ‘해야 할 게 많은’ 그런 게임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게임은 글로벌 동시 출시 게임이기 때문에, 소위 ‘본섭’에서 미리 게임을 즐긴 고수들이나 할아버지(?)들도 없다. 지금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들은 극히 적은 양의 공략 정보를 보면서 직접 ‘헤딩’ 하면서 게임을 즐겨야 한다는 뜻. 이런 점에서도 더더욱 ‘불호’라고 느끼는 유저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런 ‘어려움’을 오히려 즐기거나, 게임은 게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저라면 오히려 굉장히 ‘재미있게’ 잘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백야극광>은 사실 서브컬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입장에서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히 신기한 게임이다. 일단 이 게임은 게임의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사실 ‘참신한’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몇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 앞에서 지적한 전투 부분 또한 그렇지만, 사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 또한 대부분 “아, 나 이거 XX게임에서 봤어” 싶은 그런 요소들이 참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 게임은 무언가 ‘한 마디로 게임의 특징을 말할 수 있는’ 눈에 띄는 콘셉트, 혹은 엣지가 없다. 무언가 일러스트에서 선정성을 어필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 또한 다른 판타지 소재 게임이나 소설, 만화 등에서 진짜 지겹도록 봐온 요소들이다. 전투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
미소녀 캐릭터 구성을 보면 ‘서브컬처’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하는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그 서브컬처 게이머 중에서도 ‘특정 계층’을 대놓고 노렸다기 보다는 다소 ‘어정쩡하게’ 보편적인 타겟을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백야극광>은 이런 “신선하지” 않은 소재들을 잘 결합해서 ‘몰입하면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그런 게임의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여러 요소들을 버무려놨으면서도 만듦새 자체는 뛰어나고,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퀄리티도 절대로 나쁘지 않다. 최소한 즐기는 동안은 확실하게 ‘몰입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게임"(GAME). 그것이 바로 <백야극광>이다.
<백야극광>은 장기 흥행은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2021년 2분기 ‘다크호스’ 정도로는 충분히 유저들 사이에서 회자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