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컴퓨터박물관 ‘내 인생의 컴퓨터’ 시리즈는 국내/외 IT업계 인사들의 컴퓨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현재 (주) NXCL의 대표이사이자 넥슨컴퓨터박물관 최윤아 관장의 이야기를 인터뷰 영상과 함께 공개합니다.
컴퓨터, 게임, 예술 그리고 넥슨컴퓨터박물관의 설립까지
‘투박한 기계’가 뭐가 그렇게 좋을까?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오빠들을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오빠들이 PC를 사용하기 시작해서 어깨너머로 보았습니다. 그때는 별 감흥 없었죠. 그냥 텔레비전 같은 기계구나. 근데 예쁘지는 않구나. 그걸로 오빠들은 참 열심히 무언가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게임이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과제를 작성하려고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게 됐습니다. 고 3 졸업하기 전 겨울 방학에 타자학원에 다녔는데, 그때는 타자학원에 가서 타자를 먼저 배우고 컴퓨터를 이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뒤흔든 건, 온라인.
인터넷을 사용하면서부터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타자기를 배우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까지는 큰 변화라기보다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왔었습니다. 인터넷은 삶의 방식을 확 바꿔버렸습니다. 미국에 있는 친구랑도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고 게임도 컴퓨터랑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컴퓨터가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가는 창이었고 기계와 인간의 교감이 시작되는 출발선이었죠. 하지만 인터넷 이후부터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인간과 정보가 모두 서로 살아 숨 쉬듯 계속 생성되고, 변화되고, 확산하면서 세상을 변화시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창이 이제는 클라우드라는 가상 공간에 인간의 기억과 모든 정보를 담아 놓고 경계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건 단순히 매체로서의 디지털 기기를 넘어 우리 삶의 모든 형식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우리의 몸이자, 이성이자, 감성의 결정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로 표현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미 실제 우리 삶은 너무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게임은 현대미술이다.
현대미술 작품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의 모습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금 앞서서 보여주기 때문에 ‘아! 우리 삶에 이런 것이 있었지’ 라는 공감, 혹은 깨달음을 얻게 해줍니다. 우리는 의식주와 함께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갈망하는 유희의 인간입니다. 예술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됐고 이는 흡사 게임과 유사합니다.
제가 게임을 처음 접하고 놀랐던 건 게임이 예술이 갖추어야 할 모든 걸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게임은 내가 3인칭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1인칭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다양한 시점 속에서 스스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또 게임상에서 결혼을 한다든가 하는 실제 사회의 모습과 현상들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개념과 공간입니다. 게임은 일상화된 예술이고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매력적인 콘텐츠라고 느낍니다.
최초라는 건 두렵지만, 굉장히 흥분되는 일!
컴퓨터가 발명되고 난 이후에는 여러 게임이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어요. 게임들이 그래픽과 사운드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컴퓨터라는 기기도 점점 더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요즘 해외에서는 관련학계에서 온라인게임 아카이빙 이슈들이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이미 유수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게임 관련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게임기를 소장품으로 취득하기도 합니다. 온라인게임 아카이빙은 지금이 딱 적절한 시작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계에서도 이야기되고, 현장도 움직이고 있고,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저희가 어떻게 온라인게임 아카이빙을 하게 될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은 끊임없이 오픈 베타가 진행되는 곳!
규모가 작은 사립 박물관은 한 번 가보고는 다시 잘 안 찾게 됩니다. 유물이 바뀌지 않거든요. 넥슨컴퓨터박물관은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관람객들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박물관 뒤에 숨어있던 기능들인 수장고, 라이브러리, 아키비스트 등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와서 관람객들이 직접 ‘이런 것 보여주세요.’ 라고 할 수 있고, 자신만의 기억과 선지식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콘텐츠에 많이 녹이려 애썼습니다.
단순히 ‘보고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소장품, 전시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보여주고 체험하는 방식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들을 계속해서 해나갈 예정입니다.
컴퓨터의 사고방식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닮은 기기이나 영원히 닮을 수는 없다는 묘한 매력도 있지만 결국 점점 더 인간과 닮아가서 인간과 일체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은 사회교육 기관입니다. 요즘과 같은 평생교육시대에는 사회교육기관의 역할이 학교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자체가 교육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컴퓨터라는 기기, 매체는 현대사회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향성들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가 저의 숙제이고 그걸 풀어나가면서 점차 넥슨이라는 회사가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었던 것처럼 관람객들에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의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 그리고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단초가 되는 그런 박물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