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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카드뉴스] 모험은 끝났다. 레이드의 종말을 바라보며...

안정빈(한낮) 2016-03-09 18:59:54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유명 레이드팀인 ‘파라곤’이 지난 2월 해체했다. 그리고 <WOW>에서는 조금씩 레이드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WOW>와 레이드는 물론 MMORPG의 비중까지 줄어드는 요즘 레이드의 최전성기와 파라곤의 이야기를 돌아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지난 주말, 퇴근 후에 습관처럼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웹 서핑을 하는데

눈에 띄는 소식 하나가 있더라고

 

파라곤이 해체했대.

 

파라곤이 누구냐고?

 

소싯적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좀 해봤다면 누구나 들어봤을 레이드팀

그리고 WOW의, 레이드의, MMORPG의 최전성기를 함께했던 레이드팀

 

우리가 평소에 WOW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커뮤니티는 아니지만

이 소식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오늘만큼은 WOW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

 

내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파라곤의 해체와 조금은 낡았을 지도 모르는

어느 흔한 30대 게이머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야.

 

한 10년 전일 거야. WOW가 나오면서 우리나라 게임계에는 대격변이 일어났어.

 

WOW 하나가 말 그대로 모든 걸 바꿨지. 

퀘스트, 탈 것, 키보드 조작, 전쟁… 일일이 열거하면 뭐 끝도 없을 거야.

 

그리고 그 중에는 그때까지 국내 유저들에게 생소했던 레이드(공격대)라는 것도 있었어.

 

40명의 유저가 한 곳에 모여서 상대도 안 될 것 같은 거대한 몬스터를 쓰러트려.

그것도 적의 던전 한복판에서 말야.

 

생각해봐 우르르 몰려가서 머릿수로나 싸우던 시기에 무슨 영화에나 나올법한 전투들을 했다고.

 

내 방패와 갑옷은 나보다 몇 십 배는 거대한 적의 주먹과 발길질, 숨결로부터 동료들을 지켜냈고

내 무기와 마법은 무찌를 엄두조차 나지 앉는 적을 찌르고 또 불태워서 마침내 쓰러트렸어.

그리고 도적은… 구석에서 붕대를 감았지.

 

아무튼 이 끝내주는 전투는 유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어.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야.

 

사실 레이드가 쉬웠던 건 아냐. 체력 1%를 못 줄여 한 달을 고생하거나

패턴을 몰라 일주일을 영상만 본 적도 있어.

 

그래도 그 거대한 녀석을 내가. 우리가 쓰러트렸다는 만족감과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지.

 

덕분에 WOW 유저들 사이에서 레이드가 화제가 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어디 길드가 남작 게돈을 쓰러트렸더라. 

어디 서버에서는 벌써 청지기를 잡고 라그나로스를 봤다더라.

 

하루가 다르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재미였고.

돌이켜보면 하나의 스포츠였어.

 

‘쿤겐은 몇 마리까지 탱킹할 수 있을까?’ 같은 유치한 주제를 놓고

다 큰 어른들이 툭하면 말싸움을 벌였을 정도니 말 다했지.

 

그 전성기에 등장한 게 파라곤이야!

전 서버에서 최초로 리치왕을 처치하며 WOW 유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친 파라곤은

 

이후 11드루이드, 25명 중 달랑 3명만 힐러 같은 기상천외한 공략을 연이어 선보여.

그리고 WOW 최고의 공격대로 자리매김했지.

 

쿤겐을 앞세운 엔시디아와 새로운 강자 파라곤, 그리고 어째 만년 2위만 하던 메소드의 경쟁은

정말 어지간한 게임보다도 재미있었어.

 

레이드를 하는 사람은 더 높은 곳을 동경하고

레이드를 안하는 사람도 그 소식에서 재미를 느끼는

바야흐로 WOW의 레이드의 최고 전성기였지.

 

하지만 시대는 바뀌더라고.

 

사람들은 점점 바빠졌고, 짧고 빠르게 끝나는 게임을 원했어.

그런 사람들에게 레이드는 너무 어려웠고, 길었어.

 

블리자드는 레이드인원을 조절하고, 누구나 깰 수 있는 새로운 모드도 만들어봤지만

레이드의 인기가 식는 걸 막을 수는 없었어.

 

더 크고 화려하고 강력한 적이 나왔고, 경쟁도 계속 이어졌지만

유저들의 열기와 관심은 이전처럼 뜨겁지 못했지.

 

게임의 방향도 조금씩 변해갔고 더 이상 레이드가 WOW의 시작이자 끝이 아니었을 무렵

파라곤이 해체됐어.

 

파라곤의 마지막 멤버는 22명. 파라곤과 경쟁하던 엔시디아도 찾아보니 2012년쯤 해체됐더라고.

 

별 거 아닌 이야기일 지도 몰라. 20여명의 사람들이 몇 년 간 게임을 했어.

그리고 헤어졌지.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 모험도 이젠 정말로 끝난 기분이 들어.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이 나와도,

아무리 뛰어난 짜임새의 레이드가 나와도, 

모두가 함께한 그 시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오늘 이 기나긴 이야기를 꺼낸 이유야. 넌 지금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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