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던전, 세상은 전쟁터. 당신은 용사. 상사는 정예 몬스터, 드랍템은 결재 서류. 직장이란 함정 위치도 매번 바뀌는데, 클리어 보상도 짠 일일 던전. 그런데 왜 이 던전에 오나요? 자아 실현을 위해,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하지만 가끔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버거워 직장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용사도 던전이 필요하지만 던전도 용사가 필요한데. 던전은 생각했습니다. 가장 많은 용사가 힘들어하는 입장 조건을 덜어주면 어떨까. 최소한 아이 걱정을 덜어준다면 능률도 더 좋아질텐데. 이런 이유로 기업에서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 중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사내 어린이집은 엔씨소프트의 '웃는땅콩'입니다. 회사 1층에서 용사와 작은 용사가 "빠이빠이" 하면 또다른 던전이 나타납니다.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지만 귀여운 입구네요. 이처럼 단순해보이지만 곳곳에 눈을 사로잡는 장식이 있고 모험거리도 가득합니다.
1층 실내와 실외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덕분에, 볕 좋은 날이면 언제든 놀이터의 아이들을 볼 수도 있고, 아이를 만나러 갈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등원한 아이들은 여러가지를 배우고, 먹고, 자고 있는 힘껏 놀다가, 마찬가지로 있는 힘껏 세상과 싸우고 온 용사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55명의 정규직 보육교사와 전문 의료인, 조리사, 시설관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꿈 같은 환경. 하지만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200여 명의 어린이 뿐입니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의 직장 어린이집은 785개. 전체의 2%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추첨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 구호뿐인 정책이 만든 세상은 전쟁터가 되었고 행복한 사람의 힘을 모르는 조직은 던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왕 만드는 거,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정서 발달과 창의력도 도움이 되는 환경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했으면 했어요." 보육은 정부가 시켜서, 여론에 밀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보한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