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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볼셰비키잖아!"

사회주의 계획경제 도시 건설 게임 '워커스&리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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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7-16 18:27:50
국가나 도시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발전시키는 시티 빌더 장르는 '심시티 시리즈'와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거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도 시티 빌더는 주거, 산업, 상하수도, 대중교통 등등을 아우르는 디테일로 독특한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6월 21일, 이 장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일으키는 게임이 출시되었으니, 바로 <워커스&리소스: 소비에트 리퍼블릭>(이하 부제 생략)이다.

플레이어는 지도자가 되어 허허벌판 소비에트 공화국을 자급자족 산업 대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출시 포스터부터 수상한 <워커스&리소스>



# 세금이 없다고? 이거 완전 볼셰비키잖아!

플레이어는 자본주의적 발전상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발전상을 제시해야만 한다. 단적으로 이 게임에는 세금이 없다. 교육과 의료는 물론 대중교통 서비스까지 인민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곧 소비에트 연방 노선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세금을 얼마나 거둘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세금 코너가 없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세수가 1루블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시티 빌더 게이머에게 대단히 불합리한 조건이다. 그간 출시됐던 모든 시티 빌더 게임이 계획경제로 운영되는 게임이었다고 한들, 세금이 없는 경우는 없었다. 다른 게임에서도 에디터나 치트키를 쓰지 않는 한, 세금 없는 도시 운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게임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설정 자체가 설득력을 가진다. 플레이어는 철저한 레닌주의자로 <시티즈> 류의 화려한 마천루를 세우는 게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꽃이나 레닌 동상 따위로 도시를 가꾸어야 한다. 이 게임에서 멋진 도시를 만드는 것 또한 소비에트적 공공 건축 양식에 한정된다.

자급자족 50일 투쟁 중 촬영한 레닌 동지의 동상

그렇지만 장르적 기본은 충실하다. <워커스&리소스>의 기본은 (여타 시티 빌더가 그러하듯) 도시설계이다. <심시티 2000>에서부터 정립된 RCI(주거-상업-공업) 개념이 이 게임에도 구현이 되어있다. 아파트를 짓고 식료품점, 병원 인민을 위한 생활 인프라를 깔아주고, 이들이 일을 할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버스나 철도 같은 교통망을 활용해 구역간 이동을 편하게 만든다.

물류의 차원까지 올라가면 게임의 복잡성은 올라간다. '망을 짠다'는 기분이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은 바로 이 파트다. 농산물로 빵을 만들고, 그 빵을 상점마다 비치해 배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물산이 오갈 수 있도록 길을 내고 관리해야 한다. 꽤 복잡한 이 개념은 중간분배소의 역할로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도시가 커질수록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경험을 준다. 이런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국가는 농업국가에서 경공업국가로, 그리고 중공업국가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시티 빌더에서 무리한 확장은 언제나 화를 불러온다. 이러한 확장으로 어려움을 겪은 플레이어를 위해 게임에서는 전력/쓰레기/난방 등의 필수 인프라에 대한 바로미터를 없애주는 기능이 있다. 게임의 망 구조는 대단히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오랜 얼리억세스를 통해 자잘한 버그 없이 쫀쫀하게 맞아 떨어졌다. 쓰레기를 '제로의 영역'으로 보내는 버그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좋습니다 동지!"

시티 빌더 유저라면 도시를 짓는 데 있어서 편의성이 얼마나 좋은지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워커스&리소스>는 편의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도시의 혈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로 설계에 대한 편의성이 대단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는 인터체인지를 놓을 수도 없고, 고속도로를 깔 수도 없으며, 심지어 직각으로 길을 놓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길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건물이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코 앞에 두고 길이 없어서 물음표가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

<워커스&리소스>의 도로 건설은 엄청 답답하다. 1960년대 소비에트 공화국이라고 생각하면서 플레이해야 한다.


# 소비에트니까 괜찮아?!

그런데 게임의 배경이 1960년대의 동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어딘지 모르게 납득이 간다. 이것이 바로 <워커스&리소스>만의 독창적인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트로피코>에서만 맛보았던 체제 유머가 여기에도 녹아있다. 그러니까 플레이어는 (소련에서 끌어온 차관에서 신나게 나눠먹고 남은 돈으로) 되는대로 해버린 도시계획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소비에트라는 콘셉트는 흥미롭고, 그래서 많은 부조리를 이해시킨다. 비밀경찰이 불량분자를 발각해 석탄공장에 일생을 가둬버리는 게임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자가용 같은 귀한 물건은 오로지 당에 충성하는 열성분자에게 '지급'할 수 있다. 인민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 따위는 없다. 외국에서 모셔온 엘리트도 필요에 따라서 공장 노동을 시킬 수 있다. (손해가 돼서 안 할 뿐이다.)

공산당 본부와 공과대학, 의과대학에서는 플레이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쓸 수 있는 여러 연구과제를 수행한다.

인민으로부터 걷는 돈이 없이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작은 공화국의 서기장을 맡은 플레이어는 해외 수출이나 관광을 통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이 두 옵션 말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

냉전 시대의 초입에 걸맞게 공화국은 소비에트 연방에 수출하면 루블, 나토 지역에 수출하면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 인게임에서는 두 가지 화폐를 두루 사용할 수 있는데, 구매할 수 있는 차량도 약간 다르다. 프랑스에서 만든 열차를 구매하고 싶다면 달러를 써야 하고, 소련에서 만든 버스를 사고 싶다면 루블을 써야 하는 방식이다.

<워커스&리소스>는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가진 시티빌더라고 평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냉전시기 동유럽 공화국의 이벤트가 없다. 핵연료를 나토에 넘기면 소련이 분노해서 모든 교역을 중단한다든지, 반동분자들이 정권을 엎으려는 쿠데타를 획책하는 이벤트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재밌는 게임플레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시티즈: 스카이라인 2>가 미완성 게임 출시 논란을 겪는 와중에, <워커스&리소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2024년 말 올해의 시뮬레이션에 등극하는 게임은 둘 중 어떤 게임일까?


각종 통계가 꽤 자세하게 제시된다.


"레닌이 자랑스러워 할 겁니다!"

종교는 사회주의에 방해가 될 뿐

망을 짜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이 게임은 (사회주의 콘셉트 덕에) 독창적이고, 또 장르적 재미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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