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게임예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오늘 만날 EA 코리아 스튜디오의 박창준 디렉터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고, 수 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차린 회사가 문을 닫았지만, 게임을 너무 만들고 싶어서 좌절하고 낙담할 겨를도 없이 EA 코리아 스튜디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피파 온라인 2, 3, 4>의 게임아트를 작업했으며, 역할을 AD(아트 디렉터)에서 PD로 옮겨 <니드포 스피드 엣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박창준 디렉터의 이야기와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게임 철학, 함께 만나보시죠.
박창준 디렉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게임에 빠졌습니다.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코에이의 <삼국지>를 처음 접했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흑백 모니터 속 영웅들을 컨트롤하는 것은 어린 그에게 엄청난 희열이었습니다. 7~8명이 한 컴퓨터를 두고 한 턴씩 게임을 하는 방법이었지만 그 감동은 오늘 이 날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당시 박창준 디렉터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그 친구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비, 조조, 손권이 아닌 원술이나 공융같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군주를 플레이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인터랙티브한 요소, 삼국지의 역사를 내 생각대로 바꿔볼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많이 느꼈다고 하네요.
소년은 집에서도 <삼국지>를 하고 싶었지만 소년의 집에 컴퓨터는 없었습니다. 그의 취미이자 특기는 그림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의 나이로 스케치북과 연필/볼펜으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출판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판본별로 읽으면서 독서실에서 직접 장수 카드를 만들고, 능력치가 맞는지 친구 집에서 검증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장수들의 면면을 상상하며 오려둔 장수 카드에다 초상화를 그리고, 능력치를 설정했습니다. 능력에 따라, 통솔하는 병력 최대수도 다르게 설정하고, 일기토에 능한 장수는 별도의 필살기와 아이템 슬롯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년 반동안 500여장의 장수카드를 만들고, 게임판이 되는 중국 지도를 2개월동안 그렸습니다. 그는 아직도 어린 날의 자신이 그렸던 장수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박 디렉터는 자신의 마음을 굳혔습니다.
'겜돌이' 생활에 푹 빠졌던 터라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한 박창준 디렉터는 여러 회사에서 컴퓨터 아트 관련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게임과 만나겠다는 마음가짐으로요. 실제로 그에게 아바타 도트 작업을 발주하던 회사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는데, 게임도 만들 거라는 말에 바로 입사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포커, 바둑 등 웹보드게임의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경영상의 문제로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죠. 박 디렉터는 이 회사에서 새 회사를 창업할 멤버 2명을 만났고, 에버플랜트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세 사람은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박 디렉터는 자연스럽게 게임에 들어갈 모든 아트를 총괄하게 됐습니다.
박창준 디렉터는 스타트업 실패 과정에서 한계를 명확하게 보았습니다.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업계에 발을 내딛었지만, 여러 차례 고배를 마셨던 그는 "무조건 업계 최고의 선두 그룹에 속하는 조직에서의 게임 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박창준 디렉터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게임아트가 아니라 게임 그 자체였습니다. <피파 온라인 3> 라이브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그는 다른 도전이 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마침 EA 코리아 스튜디오에서 <니드포스피드> IP로 한 게임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거기에 PD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니드포스피드 엣지>의 PD로 일했습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는 가능성이 보이면 상의 후 다른 포지션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고 하네요.
사실 생각보다 EA가 한국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창준 디렉터도 2009년 입사 전까지는 EA가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는 <피파 온라인> 시리즈, <배틀필드 온라인>, <MVP 베이스볼>, <니드포스피드 엣지> 등을 만든 이력이 있는 곳입니다. 160명이 넘는 개발팀 중에 아티스트는 25명 규모입니다.
더 나은 작업을 위해 해외의 다른 EA 스튜디오와도 교류한다고 합니다. EA가 글로벌 기업인 만큼 개발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서 개발 파이프라인이나 게임 엔진 자체를 해외 스튜디오와 함께 공유하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박 디렉터는 EA 코리아가 <피파> HD 버전을 만드는 벤쿠버 스튜디오와 자주 교류하며, 프로스바이트 엔진 컨퍼런스에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양한 국가와 팀의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는 경험은 EA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작업 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D 모델들은 마야나 맥스를 두루두루 씁니다. 인게임 에셋으로 쓰진 않지만 내부 개발 컨셉을 보완하는 목적으로 V-ray랜더러를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2D 모델이나 UI 콘셉트를 만들 땐 당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합니다. 이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유니티 등 모바일 게임엔진을 배우고 있다고 하네요,
영화는 개봉하면 끝이고 책은 출판하면 끝이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해서 인터랙션을 한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고 오래도록 그 일에 직접 뛰어들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과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그런 일에서 매력을 느꼈다.
게임 아트는 예술적인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기술적인 접근과 지식 없이는 실제 제품으로의 적용은 어렵다. 게임 개발의 긴 과정에서 내 작업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콘텐츠가 되는 과정을 경험해왔다. 각각의 마감 단계에서 오는 성취감이야말로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 마감의 끝에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피드백에 신나기도 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피드백에 풀이 죽기도 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더 나은 작업을 위한 양분이라 여기며 다시 모니터를 켠다.
아래부터는 박창준 디렉터의 개인 레퍼런스가 아닌 <피파 온라인 4> 팀 레퍼런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