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면허를 가진 1인 개발자로 널리 알려진 청강문화산업대 김광삼 교수. 그는 이름보다 ‘별바람’이라는 예명이 더 익숙한 게임 개발자이기도 하다. 그는 애플II로 게임 개발을 시작해 PC, 온라인, GP32, 모바일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 개발을 시도했고, 최근에는 스마트폰 플랫폼에 도전해 <혈십자>를 출시했다.
직접 만난 ‘별바람’ 김광삼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개발자이자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교수로서 학생들이 게임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지금도 개발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혈십자>를 개발한 청강문화산업대 ‘별바람’ 김광삼 교수.
■ “스마트폰 게임을 개발하며 온라인 게임의 상식을 버렸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청강문화산업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혈십자> 안드로이드 버전을 개발해 출시했다. 매일 매일이 마감이라 철야 작업의 연속이었다. 1인 개발자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해서 더욱 힘들기도 하다.
이와 함께 <혈십자>를 안드로이드 버전을 열심히 개발했었다.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혼자서 개발 하는데도 스케줄을 맞춰가며 작업하나?
퍼블리셔와의 협업 때문에 스케줄을 맞춰야 했다. 그냥 혼자서 개발했다면, ‘게임 깎는 노인’인 내 성향상 지금 <혈십자>를 낼 수 없었을 것 같다. 덧붙이자면, <혈십자>를 10년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주받은 사정이 있어서 10년이 걸린 것도 있지만…
<혈십자>를 10년 만든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혈십자>를 10년 동안 만든 이유는 ‘꼬여서’다. 첫 버전인 GP32버전을 만들어서 QA작업을 했더니 GP32 플랫폼이 사라지고, 청소년 오락실용 게임으로 만들어서 출시 직전에 갔더니 청소년 오락실 사업을 하던 회사가 ‘바다이야기’같은 쪽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무산됐다.
다른 프로젝트도 잡혔었는데 교수 재직을 하게 되면서 접혔고, 게임폰인 지팡을 위한 버전이 완성될 때쯤 같이 일하던 프로그래머가 교통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는 바람에 출시가 반 년 연기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삼성이 게임폰 사업을 포기하더라.
아이리버를 위한 버전도 만들려고 했었는데, 이것도 ‘역시나’였다.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니 정말 ‘<혈십자>에 저주가 내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번에 <혈십자>출시할 때 정말 몸을 사렸다. 운전도 피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iOS버전이 무사히 출시되어서 다행이다.
<혈십자>의 GP32 버전 공개 당시의 스크린 샷.
스마트폰 버전을 개발 하며 무엇을 느꼈나?
스마트폰 게임에 대한 접근법을 배웠다. 스마트폰 게임은 기존 게임시장과 접근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다가 모바일로 넘어온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인데,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온라인 게임의 상식이라는 게 생긴다. 나도 이전에 한국에는 서비스하지 않은 온라인 게임을 개발했었으니 온라인 게임 개발자의 상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모바일에서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걸 게임빌과 일하며 깨닫게 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혈십자>를 기획할 때는 이 게임의 주 수익이 온라인 대전에서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게임빌과 미팅할 때도 이런 자료를 들고 만났다. 온라인 게임 개발자에게는 대전에서 수익이 발생한다는 게 상식이니까. 그래서 대전이 핵심 컨텐츠에 스토리를 얹어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게임빌에서 배운 건 정 반대였다.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사람들이 지하철 같은 장소에서 간단히 게임을 즐기는데, 진지하게 게임 하는 것 보다는 가볍게 즐기는 걸 좋아하더라. 거기다가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사람들이 남들과 엮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스마트폰 플랫폼에 도전하며 상식이 깨졌는데, 덕분에 큰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덧붙여서 스토리 모드가 주 수익이 되니까 작가 입장에서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 외에도 큰 회사와 일하며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게임빌이 <혈십자>를 퍼블리싱 해 주면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하다. 나는 열심히 게임을 만들면 되고, 마케팅이나 홍보는 큰 회사가 알아서 해 주니까.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은 나를 외향적이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사실은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게임빌과 협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제대로 움직이는 큰 회사의 프로세스를 몸으로 겪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교수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작업하면서 놓칠 것들, 입사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경험해 보고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 “모든 재능을 한 번에 쓸 수 있는 직업이 게임 개발자였다”
처음 게임 개발을 했던 때는 언제였는지 궁금해진다.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했던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 애플II에 베이직 언어를 사용해 게임을 만들었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어셈블리 언어를 배우기도 했었다. 처녀작을 낸 게 91년인데,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 내성적인 성격이라 잡지 같은 데에 투고할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습작기간이 길었다.
사실 그 때는 게임 개발보다는 만화를 더 열심히 그렸었다. 내 게임을 내놓은 이후 만화보다는 게임 쪽에 더 집중했다.
만화도 그리면서 게임도 만들었다니,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분야를 접한 것인가?
그렇다. 만화, 음악, 프로그래밍 등을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다.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해왔던 것들 것 아까워서 게임 개발자가 됐다. 어렸을 때는 다양한 취미를 접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능력들을 버리고 일반적인 일을 하며 평생을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금껏 배웠던 것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게임 개발자가 적합하더라. 수학은 프로그래밍, 미술은 그래픽, 글은 기획, 작곡은 사운드에서 사용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1인 개발자가 됐다.
그럼 지금 키우는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 있나?
내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많이 시키거나 게임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놔 둬야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며 소양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에 음악도 해보고, 운동도 해 보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이들을 방에 가두고 공간적 제약을 주는 순간, 게임밖에 할 게 없어지는 거다.
셧다운제도 사회적인 인식의 투영이자 부모들의 착각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가 게임을 적대하는 이유는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게임을 한다’가 이유일 것이다. 부모들의 착각은 아이가 게임을 안 하면 공부를 할 줄로 알지만, 사실은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것이지 않을까? 지금 아이들이 게임 외의 여가 생활을 즐기기 힘들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방에 가두고 싶지 않다. 공부 외에도 즐길 취미생활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 “<혈십자>의 스토리를 많이 즐겨달라”
<혈십자>이야기로 돌아가서, 게임 개발에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을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게 게임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더더욱 팬들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팬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별바람 답지 않은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고스톱 팡’을 만든다면 어떨까? 팡 게임이지만 족보를 만들어서 홍단, 청단 만들며 머리를 쓰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특이한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도 자주 떠오르지만, 팬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와는 다르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
별바람이라는 이름,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게임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깊이 있는 스토리와 어려운 난이도라는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다. 이걸 바꾸면 팬들이 실망할 테니까.
그리고 나답지 않은 게임들은 ‘별바람 스튜디오’의 학생들이 개발하도록 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 학생들로 이루어진 별바람 스튜디오 2기가 독립했는데, 곧 게임이 나올 것 같다. 이들이 만든 게임은 내가 기획한 게임 같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다.
<혈십자>가 스토리를 강조한 이유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함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아까 말했듯 스마트폰 게임에 대한 상식을 바꾸며 주객이 전도가 된 면도 있다. 초기에는 격투가 중심인 게임이었고, <호랑이의 분노 3>로 시작한 게임이다. 개발하면서 내 취향과 정체성을 붙이다 보니 스토리 반에 격투 반인 게임이 완성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주얼 노블에 격투가 붙어있는 격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와서 조금 아쉬운 것은 비주얼 노블 같은 파트인 스토리모드가 어렵다는 점이다. 해피 엔딩을 보기가 너무 어렵다. 엔딩이 9개인데, 해피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옛날 하드코어 게이머 취향으로 스토리를 꼬았는데, 요즘 젋은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면 다들 어려워한다. 차후에는 패치로 해피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을 쉽게 할 생각이 있다.
<혈십자>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혈십자: 호랑이의 분노>.
<그녀의 기사단 강행돌파>에 나오는 외계인도 정체성의 일부인가?
사실 처음 외계인을 넣은 건 장난이었다. <그녀의 기사단 강행돌파>는 <그녀의 기사단>의 캐릭터만 나올 뿐, 전혀 다른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기사단>은 진중한 판타지물이자 연애 스토리 위주의 게임이다.
<그녀의 기사단 강행돌파>를 <그녀의 기사단>과 비슷하게 만들면 심심할까봐 ‘막 나가보자!’는 생각으로 외계인을 넣어봤다. <그녀의 기사단 강행돌파>는 ‘원작자가 만든 원작파괴’다. 정규 스토리보다는 개그 위주니까. 그런데 그 후부터 스토리에 외계인을 넣는 게 내 정체성이 됐다. 그래서 후속작에도 외계인을 꾸준히 넣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현대 판타지에 외계인을 빼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다. 현대 판타지물이라면 외계인이나 뱀파이어 같은 소재를 활용해야 한다. <혈십자>도 현대 판타지물이라 외계인이 등장한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제 별바람 스튜디오 3기 학생들과 다른 게임을 개발할 생각이다. 그리고 <혈십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게임이 잘 되면 온라인 기능을 붙이거나 안드로이드와 iOS의 크로스 매치를 지원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혈십자>를 많이 사 주고, 플레이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온라인 서버를 붙여서 온라인 대전 콘텐츠를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태그기능이나 신 캐릭터 추가 같은 것도 게임이 더 흥행해야 개발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사실 유저들이 많이 즐겨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많은 유저들이 즐겨주지 않는다면, 고생해서 만든 스토리가 불쌍하지 않나? 그리고 아직 <혈십자>의 세계관은 끝나지 않았다. 주인공 일행의 이야기는 일단락이 되지만, 더 거대한 음모 같은 것들은 후속작에서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게임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봐 줬으면 한다. <혈십자>의 스토리는 우리나라의 전통 소재에서 쓸 콘텐츠가 없다는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