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카드배틀 RPG <데빌메이커: 도쿄 for Kakao>(이하 데빌메이커)는 등장하는 카드의 99% 이상이 미소녀 캐릭터로 되어 있다. 심지어 카드 뒤에 적힌 설명에 당당히 남자라고 적힌 카드마저 가차 없이 여자로 등장한다.
<데빌메이커>에서 이렇게까지 미소녀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수 백 장에 달하는 일러스트를 어떻게 작업했을까? <데빌메이커>를 개발한 엔크루엔터테인먼트의 김택승 대표, 모바일 1팀 이우영 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엔크루 모바일 1팀 이우영 팀장
■ “애니메이션 느낌을 살리다 보니 여자 캐릭터만 늘었다”
TIG>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무슨 약을 빨면 이런 콘셉트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이우영: 개발자들이 많이들 마시는 에너지 음료로는 제대로 된 약발이 안 받는다. 적어도 산수유 진액이나 흑마늘 진액 정도는 되어야 한다.(웃음)
<데빌메이커>는 외주 개발자에게 매뉴얼을 제공하거나 내부에서 그래픽 작업을 할 때 개발자의 취향을 하나씩 반영했다. 단순히 그래픽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개발자가 다 같이 논의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콘셉트를 결정하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그림이 나올 수 있었다.
개발팀을 도핑(?)을 위한 건강음료들.
TIG> 그러니까 한 명이 아니라 다 같이 약을 빤 것인가?
이우영: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웃음) 내부에 마니악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 보니 개성 있는 그림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약을 마시고 그린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만드라고라’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여성 캐릭터인데 다리가 뿌리인 형태로 콘셉트를 잡았었다.
그런데 그런 콘셉트는 너무 흔하다고 생각해서 논의를 하던 중 어린아이가 인삼 같은 걸 기르는 방식은 어떠냐는 의견이 나와서 외주로 제시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문의한 외주 결과물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일러스트 중 하나다. 참고로 외주 작업자와 연락하는 담당자도 마니아 취향인데 아마 그 사람의 입김도 제법 작용했을 것이다.
TIG> 이렇게까지 미소녀 캐릭터만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우영: 처음 기획할 때부터 미소녀만 등장시키자는 콘셉트는 아니었다. 실사체의 회화 느낌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 스티커 같은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 메인 콘셉트였다.
그러다 보니 외주로 카드를 제작하거나 내부에서 개발할 때 다양한 결과물이 나와도 이왕이면 미소녀형 캐릭터 위주로 선택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다. 예를 들어 잭더리퍼도 남성형보다는 여성이 더 섹시하면서 느낌이 강렬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외주를 요청하면 남자, 여자, 괴물 등 다양한 콘셉트의 일러스트를 보내왔었는데 지금은 거의 미소녀 위주로 만들어주더라. 그렇다고 완전히 남자를 배제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인큐버스나 오로치 등이 있다. 물론 수 백 장의 카드 중에 남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긴 하다.
<데빌메이커>에 등장하는 흔치 않은 남자 캐릭터 인큐버스(왼쪽)와 야마타노 오로치.
TIG> 츠쿠요미는 레어보다 커먼이나 언커먼 카드가 예쁘다는 반응이 많다.
이우영: 츠쿠요미의 언커먼 디자인이 레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내부 반응 중에 장발보다 단발이 예쁘다는 평가가 많아서 단발을 더 화려하게 꾸며보자고 해서 만든 것이 지금의 레어 이미지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내부에서도 논의가 많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개인 취향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회사 내에서라도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은 이미지로 순위를 매기려고 한다.
츠쿠요미 외에도 일러스트가 바뀐 캐릭터가 일부 있다. 예를 들어 원래 시바로 만들어진 캐릭터 있었는데 내부적으로 시바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버리긴 아깝다고 생각해 아래 등급인 벨로나로 정해졌다. 일러스트도 예뻐야 상위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낮은 등급의 이미지가 더 예쁘다는 의견이 있는 츠쿠요미. 왼쪽이 언커먼 오른쪽이 레어다.
신급인 시바에서 2성으로 강등(?)된 벨로나.
TIG>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했다. 직접 일본에도 다녀왔는가?
이우영: 나는 아니지만 몇 명은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데빌메이커> 다음 시리즈의 무대는 하와이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경을 잘 찾아보면 월드맵 빌딩 중에 엔크루 빌딩이 있는 등 다들 몰래 자신이 개발했다는 증거를 게임에 남기고 있다.
일부 일러스트에도 작가들이 자신의 사인을 숨겨 두기도 한다. 그러고는 컨펌을 받고 게임에 들어간 후에야 나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개발자들이 어디에 자신의 흔적을 숨겨 놨는지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TIG> 일러스트를 살펴보면 의외로 원래 캐릭터가 가진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정해진 방침 같은 것이 있는가?
이우영: 일러스트를 만들 정해진 룰은 거의 없지만 그것 하나는 있다. 일러스트의 모티브를 잡을 때 그 악마의 가장 대표적인 콘셉트 한두 개를 확실하게 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딘은 외눈과 다리가 여섯 개 달린 말 ‘슬레이프니르’만 남겼다. 원래 그가 할아버지 신이라는 설정 같은 건 바로 버렸다. 토르도 다른 의미는 모두 버리고 번개와 망치만 살렸다.
기본적인 모티브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도 했다. 켈베로스도 머리가 셋 달린 개가 아니라 여자아이가 일명 3대 지옥견인 비글, 코카스파니엘, 슈나우저를 안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TIG> 그러면 서유리의 카드는 무엇을 모티브로 잡은 것인가?
■ 그리고 버리기를 반복한 일러스트
TIG> 대부분 외주를 통해 일러스트 작업을 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이슈가 있다면?
김택승 대표: 사실 일러스트 외주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한 명, 한 명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개성이 강해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러스트 작업을 요청하면 대부분 일주일 안에 연락이 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달 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결과물을 보내기도 한다. 전화도 거절하고 방문도 거절하고 정체를 안 밝혀서 이메일 주소만 아는 사람도 있다. 수위가 높아서 낮춰달라고 부탁했더니 오히려 노출이 심해져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도 그만큼 많은 일러스트 외주 작업을 해와서 조율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김택승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데빌메이커>를 플레이했다.
TIG> 500장 정도의 일러스트를 공개했다. 이 정도 작업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이우영: 지난해 8월 말 게임의 콘셉트와 이미지 매뉴얼이 나왔고, 본격적으로 9월부터 외주작업을 시작하고 내부 일러스트레이터도 충원했다. 그렇게 개발해서 올해 1월까지 작업한 양이 이번에 공개한 일러스트니 5~6개월 정도 걸린 것이다.
일러스트는 일정을 잡고 그 때까지 모인 일러스트에서 일정 비율로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추려내는 작업을 반복하며 퀄리티를 높였다. 100장 중 20장을 탈락시키는 것이 기준이었다. 탈락된 이미지는 다시 외주작업을 맡긴 후 다음 분량에 포함해서 재심사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이미지 중에 사용하지 않은 이미지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TIG> 일러스트를 제작하면서 가장 반복작업이 심했던 캐릭터는?
이우영: 헤케트 같은 경우 개구리와 관련된 여신이라서 콘셉트를 잡기가 어려웠다. 개구리 모자를 쓴 아이, 연못 근처에 있는 소녀 등을 그려 봤다. 그런데 “너무 개구리 같다”, “징그럽다” 등의 평가가 있어서 몇 번이나 수정을 반복했다. 그래서 내부에서 저주받은 캐릭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콘셉트를 잡기 무척 힘들었던 카드 중 하나인 헤케트.
TIG> 의도적으로 혐오감이나 심한 노출 피한 것인가?
김택승: 아무래도 처음 유저들에게 선보이는 만큼 유저들에게 불쾌감을 제공할 만한 요소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기에 노출에 대한 부분도 논의했는데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심의도 있고 ‘아청법’ 등 이슈가 많아서 자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유저 반응도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노출 일변도의 일러스트와는 달라서 좋다고 하기도 하고, 소위 ‘덕력’이 부족하다고 하기도 한다.
TIG> 그러면 앞으로도 노출이 심한 복장은 등장하지 않는가?
김택승: 오픈 후에 수위를 논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난해서 캐릭터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평가가 있었다. 또한 봄이 오는데 옷이 너무 더워 보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 만큼 이제는 봄 옷으로 갈아입을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그리고 개발팀 내부에 괴물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있으니 미소녀 외에 다양한 캐릭터도 기대해주길 바란다.
■ “유저가 몰입할 대상은 주인공 아닌 악마”
TIG> 주인공 캐릭터가 남자밖에 없는 것을 보고 개발을 총괄했던 대표의 ‘덕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택승: 이미 그런 글을 많이 봤다. 맞다. 나는 오타쿠가 아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하다. 주인공이 왜 남자냐 하면 유저를 대변하는 캐릭터고 동시에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자신이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자 캐릭터가 자신의 서번트나 메이드가 되길 바란다. 즉, 계속 함께할 수 있는 안내자가 여자이길 바란 것이다. 그 분들이 말하는 역할은 유키를 말하는 것이다. (갑자기 울컥하며) 이건 정말 말하고 싶었다. 유저가 감정을 이입할 대상은 주인공 캐릭터가 아니라 여자 악마들이다!!
TIG> 대표 스스로 <데빌메이커>가 남성을 위한 게임이라고 밝히는 것 같다.
김택승: 그렇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아니다. 향후 이벤트 카드나 신규 카드로 아이돌 같은 미소년 캐릭터부터 마초 스타일 캐릭터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게임방법을 알려주는 도우미이자 유저와 함께하는 파트너인 유키.
TIG> 출시 초기라서 그런지 버그가 많다.
김택승: 우리도 게임 속도가 느리고, 버그도 있고, 카드 목록이 보기 어렵고, 카드 교체가 어려운 점 등을 인지하고 있다. 최대한 빨리 수정할 수 있도록 개발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저들이 말하는 불만이 대부분 오픈 초기에 생길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게임이 재미없다고 안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TIG> 앞으로 업데이트 예정은 어떻게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