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유저의 상황과는 다르죠. 프로게이머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지금도 오히려 늦은 거라고 생각해요.” <도타 2>의 프로팀 EOT를 이끄는 임태빈 감독의 이야기다.
아직 국내 서비스 일정도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은 <도타 2>에 두 번째 프로팀이 등장했다. 팀이름은 EOT. 지난 2012년 12월 팀을 결성해 연습을 시작했고, 한 달 전부터 대전의 연습실에서 합숙훈련도 시작했다. 지난 3월 창단한 FXOpen과 마찬가지로 WCG 한국대표 선수들이 주축이다. ☞ 관련기사
국내 일정은 물론 흥행성적까지 아직 알 수 없는 게임에서 프로팀이 두 팀이나 나왔다. 확실히 이례적이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임태빈 감독은 ‘글로벌’을 이유로 들었다. <도타 2>는 글로벌 흥행이 예고된 게임이다. 한 해에 수 십 억 원 이상의 대회가 열리고 있고,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때문에 단순히 국내 서비스 일정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뜸을 들일 수는 없었다는 게 임 감독의 이야기다.
<도타 올스타즈> 국가대표에서 <도타 2> 국가대표로, 이번에는 다시 <도타 2> 한국 프로팀으로. 세계최강을 꿈꾸는 팀 EOT를 만났다. /대전=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왼쪽부터 임태빈 감독, 윤덕수, 이주환, 정대영, 김병훈, 이준영 선수.
만나서 반갑다. 우선 선수 소개부터 하자.
윤덕수: <도타>는 3년 정도 했고 닉네임은 baNhwA다. 포지션은 오프레인을 맡고 있다. 원래는 <카오스>를 주로 하던 유저였는데 어떻게 <도타>를 알게 돼서 3년 정도 열심히 플레이했다. <도타 2>로 옮긴 지는 이제 한 달 정도 됐는데, 적응하는 것만 죽어라 연습하다 보니 거의 다 적응한 상황이다. 좋아하는 영웅은 고독한 드루이드, 잘하는 영웅은 도끼전사다.
이주환: 닉네임은 Satan. 캐나다에서 왔다. 포지션은 미드다. 북미리그인 C9DL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다. 대영이가 “한번 같이 해볼래?”라며 꼬셔서 시작하게 됐다. <도타>는 3년, <도타 2>로 옮긴 지는 1년 반 정도 된다. 그림자 마귀와 고통의 여왕, 폭풍령을 주로 사용한다.
정대영: 닉네임은 February. 포지션은 서포터로 팀의 오더를 맡고 있다. <도타>는 <도타>가 생길 때부터 했고 <도타 2>는 작년에 필리핀에서 한국에 왔을 때 아는 사람들이 WCG에 나가자고 해서 나갔다가 재미있길래 그때부터 계속하게 됐다. 경력으로 따지면 2012년 WCG <도타 2> 종목 한국대표다. 후원도 받았다.(웃음)
주환이는 한번 <도타>를 시켜봤는데 잘하더라. 그래서 ‘키워 볼까?’ 싶어서 꼬시게 됐다.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웃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웅은 원소술사, 잘하는 영웅은 지진술사다.
김병훈: <도타>가 나왔을 때부터 하는 중이다. 닉네임은 MafiA. 서포터 역할이다. 대영이와 같은 팀은 아니었는데 WCG 2012에서는 <도타 올스타즈> 종목에 출전했다. 그때부터 친해져서 <도타 2>에서는 EOT에 합류하게 됐다. 좋아하는 영웅은 자연의 예언자, 잘하는 영웅은 그림자 악마다.
이준영: 닉네임은 Reisen이고 서포터를 하다가 캐리로 전환했다. <도타 2>를 시작한 지는 8개월 정도? 팀에서 가장 경력이 짧을 거다. 이제 한창 배우는 중이다. 대영이 형과 마찬가지로 작년 WCG <도타 2> 한국대표였다. 후원사도 같고. 좋아하는 영웅은 미포와 루빅, 땜장이이고 좋아하는 영웅은… 자이로콥터다.
어째 말을 더듬는다.(웃음)
준영: 그게 사실 자이로콥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다들 하라고 그래서 억지로 하고 있으니까. 솔직히 미포나 땜장이를 하고 싶은데 안 시켜준다. 오더에 따라야 하니 다른 걸 할 수도 없고….
임태빈 감독(이하 감독): 미포는 팀 내에서 금지다. 공개방에서 하는 거랑 팀에서 하는 건 다르잖아. 감독 입장에서 질 걸 알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너 FXO 같은 곳이랑 경기하는데 미포 들고 나가라면 나갈래?
정대영: 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준영이가 미포 들고 진 경기가 없다. 다 이겼네? 나가도 될 거 같은데?
감독: 야, 오더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웃음) 그냥 공식적인 이유는 감독이 싫어하니까로 하자.(감독 웃음, 일동 야유)
※ 미포(아래 스크린샷)는 <도타 2>에서 가장 극단적인 영웅이다. 궁극기로 자신의 분신을 계속 만들어 내지만 분신 중 하나만 죽으면 본체까지 모두 죽기 때문에 수 없는 분신으로 경기를 지배하거나, 분신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아무것도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편집자 주
팀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됐나?
감독: 원래 WCG에 나갈 때만 해도 정대영 군과 이준영 군이 뒤를 봐달라고 해서 스폰서를 알아봐주고, 간단한 코치 정도를 맡았었다. WCG가 끝나고 팀도 해체되고, 나도 <리그 오브 레전드>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는데 정대영 군이 갑작스럽게 연락해 왔다.
마침 넥슨에서 정식으로 <도타 2> 서비스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한번 해보자고 판단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초기다 보니 대우가 좋은 곳도 없고, 마땅히 팀을 만들어 주려는 곳도 없더라. 그래서 이럴 거면 직접 팀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WCG에서 실력도 입증했고, 다른 선수들도 <도타>라면 어디 가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국가대표에 해외대회 우승자에. 결국 지난해 12월에 직접 팀을 만들어보자 생각해 팀 EOT를 결성했다.
인원 구성은?
감독: 현재 5명이 합숙 중이고 온라인 멤버가 6명 더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합숙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해서. 일단 합숙멤버를 주축으로 대회에도 참가하고, 훈련도 하고, 영상도 만들고 하고 있다.
프로팀 결성으로는 너무 이르지 않나?
감독: 그건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도타 2> 대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고 상금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스타크래프트 2>에 이어 가장 높다. 이왕 할 거면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정 안 되면 그냥 해외로 가면 된다는 생각도 있다. 선수층도 이렇게 화려한데.(웃음) 물론 그건 국내 사정이 안 좋을 때의 이야기고. 당연히 국내에서 <도타 2>가 흥하고 우리도 잘해서 인기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수 입장은 어떤가? 합숙까지 하려면 고민도 많았을 듯하다.
정대영: 이미 외국에서도 많은 팀이 있다. 경기도 경기고, 상금도 상금이지만 일단 우리도 게임을 즐기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팀으로 즐기는 것과 개인이 즐기는 것은 많이 다르기도 하고.
이주환: <도타 2>의 가능성은 이미 대회 상금으로 입증됐다고 본다. <리그 오브 레전드>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대회로 더 많은 상금을 주고 있다. 그만큼 외국에서도 많이 즐기고 있다.
김병훈: 개인적으로 <도타>를 오래 즐긴 만큼 이제 그만둘 수도 없더라.
모두: 어? 그거 중독? 위험한데.(웃음)
김병훈: 농담은 그만하고. 중간에 다른 진로도 많이 생각했는데 결국 이리로 왔다. 사실 그 전에는 호주에 살았는데 국내에서는 즐길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도타 2> 프로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EOT 덕분에 한국에 오게 됐다.
<도타 2>의 시장성은 글쎄. 마냥 낙관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것과 상관 없이 게임이 좋고,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괜찮다.
이야기를 바꿔서 물어보자. 왜 하필 <도타 2>를 택했나?
이주환: 진입장벽은 높지만 반대로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면 굉장히 매력 있는 게임이다. 진입장벽을 넘었을 때 느끼는 부분이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에 놓지를 못하는 것 같다.
김병훈: 팀 게임이다 보니 서로 호흡을 맞추며 즐기는 과정이 재미있다. 굳이 <리그 오브 레전드>와 비교하자면 일단 사용효과가 있는 아이템이 많고, 그만큼 세세한 콘트롤과 다양한 전략이 가능해진다. 섬세함에서 다른 게임과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랄까?
그럼 <도타 2>를 프로게이머 입장에서 본다면?
윤덕수: 일단 AOS의 특징이야 <리그 오브 레전드>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 차치하고, <도타 2>는 정말 다양하고 변칙적인 전략이 가능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아이템과 스킬이 있고, 10년을 넘게 쌓아 올린 전략들이 아직도 서로 맞물리다 보니 어느 정도 실력만 되면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가 벌어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역전이 가능한?
정대영: 실제 경기에서도 본진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역전한 경우도 많다. 전략만해도 한 라인에 5명이 몰려온다거나, 처음부터 중립보스인 로샨을 잡으며 시작하고, 시작부터 한 라인을 버리는 등 다양하다. 거기에 따른 카운터도 있으니까 경기를 보면 같은 전략이 거의 없을 정도다.
김병훈: 덕분에 보는 맛은 확실히 좋다. 중계 시스템 등도 잘 만들어져 있고. 스킬 하나하나가 강력해서 전투가 깔끔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초보자가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일단 ‘스노우볼링’, 그러니까 이기기 시작한 팀이 완전히 우세를 가져가서 경기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
하지만 <도타 2>에서도 결국 1:1:3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정대영: 맞다. 사실 조금씩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근데 <도타 2>는 개발사부터가 전략이 굳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다들 비슷한 전략이 나온다 싶을 때마다 변화를 주는 편이다. 축구처럼 나라마다 스타일이 다른 점도 특징이다.
감독: 재미난 점은 <도타 2>는 양쪽 팀이 똑같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보통 전략시뮬레이션이나 AOS는 철저한 평등을 요구하는데, 그 경우에는 대부분 게임이 오래될수록 전략보다는 개개인의 기량이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도타 2>는 라인구조나 크립(중립 몬스터)의 배치, 지형 등이 애당초 불평등하다.
예를 들어 위와 아래 라인은 타워 위치부터가 각각 한 진영에 쏠려 있고, 그나마 평등한 미드 라인도 레디언트 진영에서는 정글 몬스터들이 빼먹기 쉬운 위치에 위치한다. 반대로 다이어 진영의 미드 라인 정글 몬스터는 저 멀리 있어서 건드릴 수 없지만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룬’에는 3걸음 더 가깝다.
김병훈: 간단히 말하면 그만큼 드라마가 나올 확률이 높다. 완전히 공평한 게 아니고, 상황이 서로 다른 진영에서 상대 전략을 읽어야 하니까. 선택지도, 변수도 그만큼 많아진다.
접근성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웃음)
정대영: 솔직히 ‘EU 스타일’이라는 게 <리그 오브 레전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역할이 나뉘어 있는 게 제일 배우기 쉬우니까. <도타 2>는 그런 면에서는 다소 불리한 편이다. 다만 요즘 유행하는 1:1:3처럼 기본적으로 배우기 쉬운 전략부터 익혀 나간다면 어려울 건 없어 보인다.
다시 EOT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루 훈련량은 어느 정도인가?
감독: 이건 내가 말하는 게 낫겠지(웃음)? 매일 2번에 끊어서 연습하는데, 개인시간을 제외하고 일어나서 3시간, 그리고 점심 겸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4~5시간 정도 연습한다. 상대팀이 얼마나 잘 매치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하루에 7~8시간 정도 연습한다면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이건 팀 연습이고 그 외에도 개인연습을 하거나 순수하게 놀기 위한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초기단계에는 그냥 온라인으로 연습했는데 통제가 안 되더라. 팀이 화학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연습을 맞춰야 하는데, 누가 늦게 오면 시작도 제때 못하고. 연습의 질도 떨어진다. 그래서 합숙을 시작했는데 효과가 좋다. 합숙을 시작한 지 4주밖에 안 됐지만 정말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느낌?
정대영: 개개인은 다들 잘하지만 그냥 잘하는 개인을 모은다고 팀이 잘 되는 건 아니니까 더 그렇다. 그러니까 준영이는 계속 자이로콥터 좀 하고….
이준영: 아니, 왜 또 나를 갖고….(웃음)
마지막으로 EOT의 목표가 있다면?
감독: 유명해지고, 잘하는 것. 게임도 재미있게 하고. 사실 국내에서 <도타 2>가 확 뜨면 좋은데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국내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니까, 뚫을 생각만 하면 해외시장도 얼마든지 뚫을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팀을 지원하겠다는 많은 기업이 생기고, 우리 팀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 목표라면 당연히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팀이 아닐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