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게임에서 성우를 쓰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껏해야 효과음 정도를 작업할 뿐이고, 캐릭터의 내레이션 등에 성우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넥슨은 일본의 자회사 인블루가 만든 모바일 카드배틀 게임 <드래곤 걸즈>의 한국 출시를 준비하며 성우를 기용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 목소리를 맡아 화제가 된 이용신 성우다.
이용신 성우는 <드래곤 걸즈>에서 100개가 넘는 대사를 맡았다. 더빙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무슨 캐릭터를 연기했을까? <드래곤 걸즈> 더빙을 위해 일본까지 다녀온 이용신 성우를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 <드래곤 걸즈>는? ‘용신’인 플레이어가 용을 소환하는 소환사들을 거느리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다른 유저와 대전하는 모바일 카드배틀 게임이다. 카드배틀의 승패는 카드의 레벨과 함께 카드의 스킬에 따라서도 결정되기 때문에 보다 전략적으로 카드 덱을 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친구와 카드를 교환하는 요소도 들어가 있다.
넥슨은 <드래곤 걸즈>의 국내 서비스를 위해 인터페이스(UI)와 대사 한글화, 한국어 더빙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일본 카드배틀 게임 특유의 세로로 긴 UI를 한국 유저들의 취향에 맞게 수정, 화면 스크롤 없이 UI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용신 성우 영상 인터뷰
만나서 반갑다. <드래곤 걸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소개해 달라.
이용신: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3명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드래곤 걸즈>에서는 용왕이 된 유저 주변에 여성 캐릭터가 3명 나오는데, 이들의 대사를 맡았다. 게임에서는 이 캐릭터들은 유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현재 상황을 설명해준다.
더빙 작업을 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캐릭터성을 살리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일본에 가서 작업하기 전에 일본 성우가 더빙해 놓은 결과물을 들어 보니 캐릭터 3명의 목소리가 똑같더라. 하지만 각 캐릭터는 일러스트나 분위기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목소리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를 보고 어떻게 연기할지 정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의 곁에서 가장 많은 대사로 정보를 전달하는 ‘샤론’은 얼음공주 같은 느낌으로 연기하고, 섹시한 콘셉트의 ‘우슘갈’은 섹시하게 연기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슘갈을 연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도 그렇고, 요즘 섹시한 연기에 물이 올랐다.(웃음) 투니버스 소속 성우다 보니 섹시한 연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재미있게 녹음했다.
섹시한 목소리 연기로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비결이 있나?
비결은 무슨 비결인가.(웃음) 연기는 연기고, 캐릭터를 나와 혼동하면 안 된다. 원래는 애니메이션에서 청순한 캐릭터 연기를 많이 한다. 게임에서는 보통 ‘쿨’한 여전사 역을 많이 맡는데, 이런 연기를 할 때는 내 안에서 그런 성향을 최대한 끌어내서 녹음한다. 개인적으로는 게임 녹음이 재미있다.
섹시함을 살려 연기한 캐릭터 ‘우슘갈’.
<드래곤 걸즈> 더빙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사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작업하는 줄 몰랐다. 일본에서 나를 고른 이유가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 정보가 가장 많이 나와서였다고 하더라. 검색했을 때 가장 정보가 많이 나오니 가장 유명한 성우인 줄 알았던 것 같다.(웃음)
그 덕분에 성우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가서 녹음할 수 있었다. 나를 추천해 준 넥슨, 투니버스 관계자들과 내 정보를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려준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용신 성우가 연기한 캐릭터 중 한 명인 ‘피닉스’.
일본에서 나온 게임의 더빙 작업을 했는데, 힘든 부분은 없었나?
녹음하면서 대본을 보니 한국에서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더라. 신문방송학과 출신이라서도 그렇고, 프로 성우로서 그냥 대본대로 작업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순이 이상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쓰지 않는 표현은 담당 팀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가며 수정했다.
나는 성우가 이런 역할을 하면서 녹음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주는 대로 대본을 읽는 것보다는 나의 색을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고, 연기하는 데 도움도 되니까.
일본에서 녹음하다가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대사가 100개가 넘다 보니 녹음 파일을 정리하기 편하도록 번호를 붙여야 하는데, 일본 스태프는 한국어를 못 하지 않나? 내가 일본어로 번호를 붙여서 녹음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래서 녹음을 시작할 때 영어와 한국어로 번호를 붙였는데, 100개가 넘어가니까 헷갈리더라.
그 외에는 좋은 대접을 받으며 일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일본에서 나를 소개할 때 <명탐정 코난>의 ‘보라’ 역을 맡았다고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서 유명한 성우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작업했던 게 그렇게 도움이 되더라.
일본에서 <드래곤 걸즈> 대사를 녹음하던 당시의 사진.
모바일 게임에서 성우를 쓰는 일이 드물지 않나?
맞다. 쓰더라도 고포류 게임의 ‘스트레이트~’ 같은 간단한 사운드가 전부였다. <드래곤 걸즈>에는 서사가 있다는 점이 더욱 특이했다. 온라인게임에서는 <아키에이지> 정도가 서사를 담은 내레이션을 했는데, 모바일게임은 <드래곤 걸즈>가 그런 부분이 있어서 인상 깊었다.
성우로서 다양한 게임에 참여해 본 소감은?
게임시장이 커지면서 성우들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성우로서 기쁜 일이다. 게임은 애니메이션보다 오히려 접근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니까. 애니메이션은 마음을 먹어야 보지만, 게임은 매일 하지 않나?
유저들은 <블레이드 & 소울>의 시스템 메시지 목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다는 건 기쁜 일이다. 그래서 게임 관련 녹음을 할 때는 정말 공을 들여서 일한다.
공들여 녹음한다고 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게임 더빙을 할 때는 대부분 상상하며 녹음해야 한다. 애니메이션은 모니터를 보면서 녹음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욱 어떤 상황에서 하는 대사인지, 누구에게 하는 대사인지 등을 물어봐 가면서 작업해야 한다. 게임 더빙을 하기 전에는 내가 맡을 캐릭터의 일러스트 등을 미리 받아서 어떻게 연기할지 정할 정도다.
조만간 <드래곤 걸즈>가 국내에 출시되는데, 유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마침 내 별명이 ‘Dragon God’인데, 게임이 <드래곤 걸즈>라니 나를 위한 게임 같다.(웃음) <드래곤 걸즈>의 캐릭터 특성을 살려서 열심히 더빙했으니 많이 즐겨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공공장소에서는 꼭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즐겨줬으면 한다. 대신, 집에서는 사운드를 크게 틀고 내 목소리를 마음껏 감상해줬으면 좋겠다.
얼음공주 같은 느낌으로 연기했다는 ‘샤론’.